김단은 길에서 위험한 일이 생겨 숙희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다.그녀는 벌써 많은 사람을 헤쳤다.더는 숙희를 그녀 옆에 둬서는 안 된다.하지만, 숙희는 받아들일 수 없어 온 얼굴에 벌써 눈물 자국이 범벅 했다.“아씨께서 집 지킬 사람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사람을 찾을게요. 제발 저도 같이 데리고 가세요. 아씨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숙희가 이렇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김단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숙희가 더는 마음 아프지 않았으면 해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그럼, 이 일은 나중에 다시 하고, 너 지금 먼저 기성복 가게에 가서 남자 옷 두 벌을 사와.”밖에서 돌아다니려면 남장하는 것이 편리하다.숙희는 그제야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갔다 올게요. 아씨, 집에서 기다시고 계세요.”“알았어.”김단이 대답하자, 숙희는 눈물 닦으면서 나갔다.그녀는 그제야 방으로 들어가 간단한 짐을 싸려고 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편지를 봤다. 정암이 소하에게 쓴 편지다.그녀는 하마터면 이 일을 잊어버릴 뻔했다!한양을 떠나기 전에 이 편지를 소하에게 줘야 한다.이렇게 생각하자, 김단은 편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소하를 만난 것은 벌써 한 시간 뒤의 일이다.소하는 나무로 만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안색이 창백했고 이마에도 땀이 얇게 한 층 맺혔다. 무슨 재난을 겪은 것처럼 허약해 보였다.김단은 걱정이 됐다.“소하 오라버니, 괜찮으세요?”소하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담담한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들어 김단을 보더니, 수척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슬퍼하지 마시오.”큰 마님을 놓고 한 말이기도 하고 정암을 가리키는 것도 있었다.김단은 마음이 씁쓸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상황을 보자, 소하는 김단에게 물을 따라주고는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오늘 나를 찾으러 온 게 무슨 일 때문이지오?”김단은 그제야 반응하
김단은 소한의 이런 당당한 말투가 매우 싫다.그녀가 여기에 있든 말든, 나아가서 어디에 있든 간에 그랑 무슨 상관인가?그래서 바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녀가 이제 떠나려는 마당에 그랑 말다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정암이 생전에 소하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남긴 게 있어 가져다주러 왔어요.”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소한에게 인사 올렸다.“소 장군도 바쁘실 텐데,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러고는 빨리 떠나갔다.그와 더 이상 한마디도 더 섞기 싫다는 뜻이다.소한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고, 돌아서 보니, 소하는 계속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는 방안에 들어서 소하 앞에 놓인 찻잔을 한 번 보고 나서 물었다.“단이가 왜 왔어요?”소하는 소한을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정암 대신 편지 가져다주러.”소하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아하듯 소한을 바라봤다.“김 낭자가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소한의 표정은 여전히 침울했다.“다른 얘기는 안 했어요?”소하는 시선을 거두고 찻잔을 탁상 위에 놓았다.“했어.”이 말을 듣자, 소한이 급해서 물었다.“뭐라고 했는데요?”이번에, 소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더니 되물었다.“넌 뭐가 그리 급한 건데?”소한은 갑자기 멍하더니 그제야 그가 조금 전에 김단을 만나고 나서부터 뭔가 모르게 급해졌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소한은 소하 앞에서 승인하기 싫어서 그저 둘러댔다.“저는 그저 갑자기 형 마당에서 단이를 만나서 이상했을 뿐입니다.”이 말은 소하의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전에 김 낭자를 내 침대에 보냈을 때는 나중에 내 마당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고 예상 안 해봤어?”소한의 말은 마치 못처럼 정확하게 그가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곳에 박혔다. 소한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그는 여전히 집요하게 물었다.“단이가 도대체 뭘 말했는데요?”소하도 자기의 동생이라 어쩔 수 없어서,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말했다.“김 낭자
김단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숙희가 위험에 빠지는 것도 싫지만, 그녀가 떠난 후, 숙희가 이렇게 슬프게 우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굳게 먹지 못했다.김단이 대답하지 않자, 숙희는 자신도 모르게 김단을 놓고, 눈물이 가득 담긴 가련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아씨, 저를 버리실 건가요?”숙희의 이런 모습을 보자, 김단은 끝내 숙희에게 졌다.“아니.”“그럼, 제가 가서 짐 쌀게요!”숙희는 바로 김단의 품에서 뛰쳐나가더니, 눈물을 닦으면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숙희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데리고 가지 뭐! 잘 보살피면 되지.숙희는 4시간 동안 짐을 쌌다. 중간에 왕철을 찾아서 집 열쇠를 그에게 맡겼다. 두 사람이 말에 탔을 때는 벌써 오후였다.김단은 이미 남장 모습이었고 멋스러워 보였다.숙희도 머슴애로 분장하고 김단을 보고 웃었다.“아씨, 아니지, 도련님, 저희 어디로 가요?”김단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한양을 떠나 남쪽으로 가면 작은 읍이 있어, 우리가 빨리 가면 저녁 전에는 도착할 거야. 내일 어디로 갈지는 내일 다시 생각하자.”김단은 이렇게 말하고는 말을 타고 숙희랑 함께 성문 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문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되었다.예전의 일을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흥분한 마음이다!그러나, 흥분된 마음에 누군가 찬물을 뿌렸다.김단은 성문 앞에서 임학과 임원을 만났다.성문에서 막고 있는 임씨네 남매를 보고, 김단은 어쩔 수 없이 말을 세우고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봤다.“두 분, 지금 뭐 하는 것입니까?”“내가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임학은 아주 화가 났다.“하인이 우연히 숙희가 기성복 가게에서 남자 옷을 사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면, 난 네가 떠나는 줄도 몰랐어!”숙희는 놀라더니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움츠렸다.그녀는 그때 아씨가 그녀를 버릴까 봐 너무 걱정해서 주위에 진산군댁의
지금은 성을 나서는 사람이 몰릴 시간이다. 더군다나 임원이 조금 전에 감명 깊은 말을 해 주위에 백성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임원은 연극을 벌리고 싶은 심정이 더욱 커졌다. 그녀는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리더니, 모든 사람 앞에서 김단에게 무릎을 꿇었다.“원이야!”임학은 놀라서 임원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뭐 하는 짓이야?”그러나 임원은 임학의 말림도 상관하지 않고 계속 꿇으면서 가련해 보이게 흐느끼면서 말했다.“언니, 언니가 계속 내가 언니의 물건, 부모님의 사랑, 오라버니의 총애를 뺏었다고 생각하는지 알고 있소. 그런 게 아니오.”“부모님과 오라버니는 여전히 언니를 아끼고 있소. 제발 언니 마음대로 하지 말고 우리랑 돌아가면 안 되오? 언니가 싫다고 하면 내가 집에서 나가지오. 모든 것을 언니에게 돌려 주겠소!”“언니는 여자로서 한양을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이오? 만약에 위험에 닥치면 어떻게 하겠소?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얼마나 걱정하실지 생각해 봤소?”임원이 눈물 흘리면서 하소연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주위에서 질책하는 소리가 더 커졌다.“아이고, 땅에 꿇고 있는 사람은 몇 년 전에 진산군댁으로 돌아온 친딸이 아닌가? 친딸이 어찌 양딸에게 무릎을 꿇어!”“가출하려는 모양인데, 참으로 제멋대로구나. 사랑을 빼앗으려고 그러는 건가? 정말 나가서 뜻밖의 변고를 맞으면 진산군과 마님은 얼마나 슬프겠어?”“참나, 어쨌든 진산군댁의 부귀영화는 원래 친딸의 것인데 어찌 뺏었다고 할 수 있나?”“내가 듣기로는 양딸이 어릴 적부터 횡포했데. 지금 이러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지!”백성들의 질책을 듣고, 숙희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지 마라! 한마디만 더 하면 입 찢어질 줄 알아!”“봐봐, 양딸 옆에 있는 시녀도 이렇게 사나운데, 쯧쯧...”숙희는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그녀는 혼자서 주위의 몇십 명과 싸워서 이길 수 없어서 그저 ‘네, 네, 네’ 밖에 하지 못했다.김단은 계속 임원을 바라봤고 당연히
임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구경꾼들 사이로 한목소리가 들렸다.“진정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거야?”“당연한 소리!”김단이 눈썹을 치켜들고 말했다.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임원을 향했다.옆에 있던 숙희도 입을 열었다.“매화당의 매화꽃 나무 한 그루만 해도 삼백 냥은 거뜬하오, 하물며 도련님께서 아씨를 위해 가져 온 야명주도 있소! 임 낭자께서 진정 모든 것을 돌려주실 수 있다 하면, 한 사람당 십 냥은 손톱 밑의 때만큼도 안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숙희의 말에 주위의 백성들이 술렁 거렸다.십 냥은 그들이 2-3년을 일해도 얻을 수 없는 돈이다.이때, 김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뿐만 아니라, 소 씨 가문의 혼약도 있지 않은가. 소 씨 가문의 안방마님이 되면 임 낭자에게 고마움을 표하겠소.”김단은 혼약마저 빼앗으려 했다.순간 진산군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저지하고 싶었다.이때, 임학이 먼저 나서 김단을 꾸짖었다.“그만해! 원이가 듣기 좋게 설득하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더하여 그 혼인은 네 것이 아닌 원이의 것이야!”그의 말에 임원은 두려움이 사라졌다.곧이어 울상을 지어 보였다.“다른 것은 모두 돌려 드릴 수 있나이다. 허나, 소녀와 한이 오라버니의 감정이 두터워 양보..”“하하하!”김단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양보라 하였소?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오. 방금 전 낭자께서 모든 것을 돌려준다고 하였는데, 그 안에 혼약이 들어 있지 않소? 어릴 적부터 소한과 혼약을 맺은 이는 바로 이 김단이옵니다. 이십 년의 정이 삼 년의 정을 이길 수 있겠소?”그녀의 말에 구경꾼들이 김단의 편을 들었다.하지만 금방 다른 사람에 의해 저지 당했다.그러자 넓은 성문 앞은 까마귀와 참새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진산군이 찻집에 서있다.눈살은 이미 찌푸려진 지 오래다.그는 김단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 생각했다.심지어 원이를 괴롭히지 않는가.한편, 임원은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그리고 눈물을 쏟아냈다.김단은 미소를
그녀의 말에 임원과 임학이 깜짝 놀랐다.뿐만 아니라 찻집에 있던 진산군도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철저히 숨기려 했던 3년 전의 일이 결국 김단에 의해 밝혀지고 말았다.만약 주상의 귀에 들어가면 관저가 위험해지고 만다!관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주위가 떠들썩해졌다.3년 전, 진산군 관저의 양녀가 잘못을 저질 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리고 세답방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진실이 무엇인 지 알지 못했다.오늘에서야 그녀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주위에서 진산군 관저를 욕하기 시작하자 임학이 다급해졌다.“김단! 함부로 말하지 마!”“함부로?”김단이 임학을 차갑게 노려 보았다.“도련님께서는 제가 진산군 관저를 모함하는 것으로 들리시나 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양 서쪽으로 끌려가, 죽기 전까지 맞은 일에 대해 말해 보십시오. 또 법화사에서 도련님께 얻어맞아, 중상을 입은 것도 같이 설명 해주시지요.”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하지만 명정 대군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저 진산군 관저의 가식적인 낯을 퍼뜨리고 싶었다.한양 서쪽의 일에 대해 백성들은 들은 바가 없었다.하지만 법화사의 일은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이때, 군중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봤네. 엄청나게 굵은 막대기였는데, 몇 번 만에 부러지고 말았지.어디가 멀쩡 한 곳 인지 알 수가 없었다네, 저 도련님은 아씨를 죽이려고 했을 지도 몰라!”“나도 봤어! 얼마나 잔인하던지!”임학의 안색도 순식간에 달라졌다.그는 이빨을 꽉 깨물고는 고함을 쳤다.“네것들이 알긴 뭘 알아? 계집이 말을 안 들어서 오라버니로써 혼을 내주었을 뿐이다!”“오라버니?”김단이 코웃음을 쳤다.“이 세상에 누이에게 약을 먹이는 오라버니도 있소?”그저 약을 먹였다고 했을 뿐, 자신을 다른 사내의 침상에 올려놓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충분히 임학의 체면을 지켜 준 것이다.임학은 깜짝 놀라 김단을 바라보았다.온몸이 덜덜 떨렸다.그는 김단이 이 사실을
“아이고, 더러워라! 저런 것도 유명 가문이라고!”곧이어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들을 비난했다.임원과 임학은 마치 길에서 심판을 받은 듯했다.숙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이 시원했다.한편, 진산군이 찻집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그의 마음은 썩어 문들어 가는 것 같았다.한편으로 임원과 임학의 모습이 마음 아팠다.당장이라도 하인을 시켜 그들을 군중 속에서 빼어 내고 싶었다.또 한편으로는 김단의 태도에 마음이 아팠다.그녀의 모습에서는 단 한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했다.이때, 김단이 입을 열었다.“잘 들으시오! 내 조모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진산군 대감과의 절연을 위해 손을 쳤소. 그리하여 진산군 관저를 떠났으되, 어찌하여 이 두 사람이 나를 만류하는지 알지 못하겠소. 허나 나는 이제 한양을 떠나, 진산군 관저와는 더 이상 관계를 맺고 싶지 않소.그러므로 모두 물러나 주시오, 부탁하오.”그녀의 말에 백성들이 서둘러 길을 텄다.그들은 진산군 관저의 큰 마님도 김단의 절연을 도왔다는 말에 놀랐다.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힘들었는 지 알 수 있었다.임학이 주먹을 꽉 쥐었다.김단의 차가운 표정에 불안함이 밀려왔다.이때만큼은 주위의 비난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만약 이 문을 나가면 앞으로 그녀를 보지 못한다.“단아...”그는 낮게 김단을 불렀다.곧이어 목소리가 떨렸다.“내려와, 오라버니랑 집에 가자.”집?김단의 눈가가 빨갛게 변했다.그녀도 집이 그리웠다.하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집은 없다.깊게 숨을 들이키고 말 고삐를 땡겼다.찻집에서 지켜보던 진산군은 창틀을 세게 잡았다.자리에서 그녀가 떠나는 것만 지켜볼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김단과 절연했다.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여식이 아니다.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군중 속을 빠져 나가자 임학이 다급해졌다.“단아!”그는 혹여나 자신의 외침에 김단이뒤를 돌아 볼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김단은 돌아 보지 않았다.그저 앞으로 달려갔다.
김단은 여전히 말 고삐를 꽉 잡고 있었다.곧이어 숙희의 말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아씨, 얼른 내려오십시오.”성지를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참수형에 처해진다.그제야 김단은 천천히 안장에서 내려왔다.어두운 소한의 눈동자를 보자 복잡한 생각이 가득했다.하지만 지금만큼은 순순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하늘의 뜻을 받들어, 조상께서 조서를 내리노라. 상부에 아뢰옵건대, 소 씨 가문에 자제가 있다 들은 바. 용맹하고 전쟁에 능하며, 자주 공을 세우고, 참으로 인중지룡이라 할 만하도다. 임 씨 가문의 양녀는 어질고 공손하며, 재덕을 겸비하여, 두 사람이야말로 하늘이 정한 인연이니라. 이에 특별히 두 사람에게 혼인을 하사하노니, 길일을 택하여 혼례를 치르고, 이것이 성지이노라.”곧이어 주위가 떠들썩해졌다.김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한을 바라보았다.성지를 앞세웠지만 내용이 혼례에 대한 내용 일 줄은 몰랐다.그는 항상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는 가.임원은 성지를 듣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이다.임학은 무릎 꿇고 있는 채로 소한에게 소리쳤다.“소한! 자네가 얻어 온 성지의 말을 따라 원이를 버릴 생각이오?!”찻집에 있던 진산군도 놀란 눈치다.이때, 소한이 대답했다.“주상의 뜻은 원이와 단이를 같이 본처로 맞이하는 것이오.”같이?그의 말에 임학은 자리에 얼어붙었다.마음속으로 예상치 못한 안도감을 느꼈다.사실 전부터 소한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단이가 한양을 떠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진산군도 똑같은 생각이었다.임원은 계획대로 소 씨 가문에 들어갈 수 있고, 김단은 그들 옆에 남을 수 있게 된다.어쩌면 제일 좋은 결정 일지도 모른다.임원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다.같이 본처가 된다고?임 씨 가문의 친 여식이 어찌 양녀와 본처가 되는가 말인 가.하지만 감히 말할 수 없었다.김단을 위해 소한이 궐에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