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럽고 우아한 회의실에서 하승민은 맞춤 제작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잘생기고 고귀한 모습으로 서광 그룹 임원들과 함께 프랑코 루비마의 대표 마크를 접대하고 있었다.“사모님, 대표님은 프랑코어를 아주 잘하세요. 20개가 넘는 외국어를 구사하셔서 통역사가 필요 없으시답니다.”안내 데스크 직원은 지서현에게 커피를 건넸다.지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천만에요, 사모님.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네.”안내 데스크 직원이 나가자 지서현은 맑고 투명한 눈동자로 다시 유리창 너머 회의실 안의 하승민을 바
하승민의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무심하게 꿀렁였다. 타고난 선녀 같은 얼굴은 마치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듯했지만 그런 움짤을 보내다니, 그것도 그가 바쁠 때. 정말이지 그녀의 다른 모습은 요물이었다.뭘 모르는 게 없고 못 하는 게 없었다.마크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은 앳돼 보이는데, 아마 애교가 넘치겠죠? 하 대표님 버틸 수 있겠어요?”집에 어린 아내가 있다고 해도 남자가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하승민은 밖에 있는 지서현을 바라보았다. 알 길이 없었다. 그와 지서현은 아직 그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았으니
‘지금 뭐라는 거지?’지서현은 하승민이 더 이상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나쁘고 음흉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느꼈다.아까는 그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기고 싶어 했지만 막상 그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니 그렇게까지 원했던 건 아니었다....롤스로이스 팬텀은 도로 위를 부드럽게 질주했다. 지서현은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린이를 못 만나게 한 거 당신 맞아요?”하승민은 뼈마디가 뚜렷한 큰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건성으로 대답했다.“어.”그는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다.“그럼 정우 씨가 떠난 것도 당신과 관련
하승민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피임 용품 코너 저기야. 가서 사 와.”그는 그녀에게 콘돔을 사 오라고 시켰다.소아린이 그의 손아귀에 없었다면 지서현은 정말 그에게 당장 꺼지라고 소리쳤을 것이다.정말 너무했다.지서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승민은 손바닥만 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끄러움에 붉게 물든 얼굴은 하얀 귓불까지 번져 더없이 청순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놀리고 싶은 마음이 더 들었다.“왜 가만히 서 있어? 네 소중한 친구가 나오길 바라지 않는 거야?”그는 그녀를 협박하고 있었다.‘그래.
지서현의 마지막 말은 너무 작아 하승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앞부분만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피임약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하승민은 그녀가 유정우 때문에 피임약 알레르기로 쓰러졌던 일을 떠올리며 차갑고 조롱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른 남자 때문에 피임약을 먹을 수 있다면 나 때문에 먹는 것도 괜찮잖아?”‘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가 언제 다른 남자 때문에 피임약을 먹었다는 거야?’예전에 그가 자신을 오해해서 여러 남자를 만났다고 했을 때는 참았지만 그날 밤 자신이 처음이라는 걸 알면서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숨이 막혀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의 혀끝을 깨물었다.갑작스러운 통증에 하승민은 입을 떼었고 지서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부채처럼 펼쳐진 속눈썹은 연약하고 무력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랑스러웠다.하승민이 손을 뻗어 그녀의 작은 턱을 잡자 지서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지서현, 지금 넌 나에게 부탁하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나를 깨물면 네 소중한 친구는 두 번 다시 못 볼 줄 알아. 내 말 알아듣겠어?”그는 낮고 쉰 목소리로 협박했다.위에서 내려다보는 권력자의 모습이었다
분명 그녀가 무언가를 해서 소아린을 구해낸 것이 틀림없었다.지서현은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였고 엄수아는 수화기 너머로 하승민의 목소리를 들었다.“서현아, 너 지금 하 대표랑 어디에 있어?”“우리...”“서현아, 나 하 대표님 차 보여!”다음 순간,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엄수아가 차 창문을 두드렸다.지서현은 엄수아가 근처에 있을 줄은 몰랐다. 비싸고 어두운 차량용 틴팅 필름 때문에 밖에서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엄수아의 등장에 지서현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지금 하승민의 무릎 위에 앉아 그와 묘한 자세로 얽혀 있었기
지서현은 소아린을 꽉 안아주며 말했다.“아린아, 이틀 동안 고생 많았어.”소아린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안에서 나라 밥 잘 먹고 잘 잤어. 괜찮아.”세 사람은 모두 웃었다.그때 유지안이 다가왔다. 그녀는 지서현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원래는 소아린을 붙잡아 지서현을 괴롭히려고 했지만 오히려 지서현에게 당하고 말았다. 분했다.하지만 유지안은 하승민이 지서현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그날 밤, 하승민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지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서현의 문자를 보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