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현은 계속해서 하승민을 불렀다.부드럽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옆방 남자는 무심코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절로 시선이 가는 목소리였다.하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방으로 들어오자 지서현은 이미 침대에 올라가 있었다.그리고 하승민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대는 거야? 귀신이라도 부르는 거냐?”“...”지서현은 행여나 하승민이 싸울까 봐 그냥 좋은 마음으로 부른 거였다.“찬물샤워 좀 하고 올게.”그렇게 말한 뒤, 하승민은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지서현이 하승민의 입술을 덮치자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더니 즉시 그녀를 밀어냈다.“서현아!”지서현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승민을 조그마한 얼굴을 살짝 들어 바라보았다. 그녀의 맑고 깨끗한 눈매에 어딘가 어설프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스며 있었다.“지유나한테 전화 왔는데 안 받으실 거예요?”그때, 하승민이 고개를 숙이고는 거칠게 그녀의 붉은 입술을 다시 막아버렸다.핸드폰에서는 진동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지유나가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기에 지서현은 또다시 이 남자와 몰래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분명 지서현과 하승민은 합
이불 속에서 반짝이던 지서현의 촉촉한 눈망울이 갑자기 빛을 머금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러자 하승민이 낮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왜 웃어?”지서현이 그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제가 힘들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아슬아슬한 농담, 은근한 유혹, 그건 하승민의 심장을 뛰게 하는 말이었다.하승민도 지서현을 따라 웃고는 다시 그녀의 붉은 입술을 덮쳤다....다음 날, 지씨 저택.침실 안, 이윤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해준의 품에 안겨 있었다.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투정을 부렸다.“아
“사모님,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하 대표가 저를 가둬뒀는데 간신히 도망쳐 나온 겁니다. 만약 다시 잡혀가면 저는 끝장입니다.”왕우현은 하승민을 떠올리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래서 그는 이윤희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이윤희는 당연히 왕우현을 구해야 했다. 그는 그녀가 쥐고 있는 ‘패’였으니까.그 중요한 패를 함부로 버릴 수는 없었다.“엄마,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지유나가 다급하게 물었다.지해준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이윤희가 간신히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문제가
그 말에 하승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는 하던 일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조현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어디로 도망쳤죠?”“왕우현 씨가 지씨 저택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우섭 씨가 해성의 36개 언론사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사모님이 양아버지인 왕우현 씨를 학대하고 버렸다고 고발할 계획이라고...”하승민의 안색이 조현우의 말에 점점 어두워졌다.‘고우섭,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조현우에게 쳐다봤다.“당신들은 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한 겁니
“아니요!”지서현은 즉각 부정했다.“어젯밤 전 하 대표님이랑 같이 안 있었는데요?”그녀의 말에 하승민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유정우가 알까 봐 그렇게도 겁이 나는 건가? 남자 앞에서 거짓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네. 사기꾼 같으니.’유정우는 하승민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하승민,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하승민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무심하게 대답했다.“지서현이 다 말해줬잖아.”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듯한 태도였다.그러자 지서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님과 유정우 씨는
“전 밥솥 팔고 철물까지 내다 팔면서 저 아이 학교 보냈어요. 가진 거 다 털어서 큰 도시까지 유학 보내줬는데... 이제 와선 자기를 창피하게 만든다고 날 촌으로 쫓아내려고 하네요...”왕우현은 울다가 본인조차 자기 말을 믿을 뻔했다. 이 정도면 연기력 만점이었다.기자들은 ‘찰칵찰칵’ 연신 셔터를 눌렀다. 시골 양아버지를 버린 양녀라니 이건 확실한 사회적 이슈였고 모두가 단독 보도를 원했다.기자들은 왕우현을 몹시 동정하며 지서현을 질타하기 시작했다.“지서현이라는 사람, 너무한 거 아니에요?”“세상에 천성부터 나쁜 사람이 있
기자회견 현장은 분노에 휩싸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지서현을 비난하고 있었다.하승민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이건 전쟁터나 다름없는 자리잖아. 그걸 뻔히 알면서도 혼자 왔다고? 자업자득이지 뭐.’“씨X...”유정우가 낮게 욕을 내뱉더니 당장이라도 앞으로 나가 지서현을 막아주려 했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바로 옆에 있던 하승민이었다.“...”‘얘 진짜 내 친구 맞냐? 상황 판단도 못 해?’그러나 그때까지 시끄럽던 현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하승민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몰매를 맞던 지서현이 조용히 고개를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진세윤 아빠가 마약상이라던데?”양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어. 진세윤은 마약상 아들이야. 게다가 엄마는 눈이 안 보이고 중학생 여동생도 하나 있는데 집안 형편이 말도 아니래. 그런데 마약상 아버지, 눈먼 어머니, 공부하는 여동생, 망가진 진세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내 도전 의식을 자극하더라. 하하.”양지혜와 주변 여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진세윤의 가정을 비웃고 있었다.엄수아는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예쁜 눈으로 양지혜 일행을 쏘아보았다.“그만 좀 웃으시죠?”엄수아의 갑작스
하승민은 답장하라고 명령했다.지서현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누군데 명령하는 거지? 회사 사장인가? 왜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지서현은 다시 한번 무시했다.운전석에 앉은 소문익이 웃으며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랑 이혼은 했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네. 하 대표 그 녀석이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은 것 아니야?”지서현이 대답했다.“글쎄요.”소문익이 말을 이었다.“매장에서 내가 네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때 하 대표 눈빛이 내 손을 잘라버릴 듯하던데. 서현아, 네 가짜 남자친구 노릇하는 것도 쉬
지동욱과 강미화는 예비 사위 C 신에게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예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C 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지예슬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C 신?”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없는 번호라고?’지예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지예슬은 곧바로 카톡을 열어
C 신이 여자라고?박경애와 지예슬은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물었다.“소문익 씨, 무슨 말씀이세요? C 신이 어떻게 여자예요? 저랑 사귀는 사람인데, 남자라고요!”소문익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저는 C 신과 아는 사이일 뿐만 아니라 친분도 두텁습니다. 제가 여자라고 하면 여자인 겁니다.”지예슬은 충격적인 소식에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소문익 씨. 분명 거짓말이죠!”박경애 또한 믿고 싶지 않았다.“소문익 씨, 지금은 서현이 남자친구라고 해서 그런 말도
지유나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녀는 지서현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던진 후 탈의실로 들어가 치마를 입어보았다.곧 지유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윤희와 지예슬은 감탄했다.“유나야, 정말 아름답구나!”지유나는 레이스 치마를 입으니 아름다웠지만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허리가 너무 조였던 것이다.방금 탈의실에서도 숨을 꾹 참고 겨우 지퍼를 올렸다.지유나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하승민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승민 오빠, 나 예뻐?”하승민은 지유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희가 칭찬을 쏟아냈다.“우리 유나가
지유나는 하승민에게 지서현이 입고 있는 치마를 사달라고 졸랐다.지서현에게 지기 싫은 승부욕은 그녀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지서현에게 주목이 쏠리는 게 싫었던 지유나는 그 치마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다.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온천에 갔을 때도 지유나는 지서현의 옷을 빼앗으려 했었다.하승민은 지서현을 바라보았다.그때 소문익이 지서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규칙이죠. 안 그렇습니까?”하승민의 시선은 소문익의 손에 꽂혔다. 아까 소문익이 지서현의 어깨에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