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일요일에는 손잡아도 됩니다. 대신 허리는……. 채이는 거기까지 쓰고 멈췄다.
화면 맨 위에 적힌 대화방 이름이 ‘마케팅1팀’이었다.
피가 발끝으로 내려갔다. 전송 버튼은 손가락에서 손톱 하나만큼 떨어져 있었다. 채이는 휴대폰을 책상에 눕혀놓고 다른 손으로 입력한 글자를 지웠다. 길게 누른 삭제 버튼이 오늘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윤채이, 뭐 해?”
유나의 목소리에 어깨가 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그렇게 놀라?”
유나는 그녀 앞에 바나나 우유를 놓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 물기가 맺혀 있었다.
“결혼한 사람한테 우유 사주는 건 또 처음이네. 점심 먹으러 갈 거야?”
“응. 갈게. 잠깐만.”
마지막 글자가 지워졌다. 전송 기록을 확인한 뒤 채이는 휴대폰을 잠갔다. 아침에 팀 단체방에 회의실 위치를 안내하다가, 도진에게 답할 생각으로 휴대폰을 다시 연 것이 문제였다.
“신혼 재미가 좋구나.”
“왜?”
“지금 표정이 업무 때문에 놀란 표정은 아니야.”
유나가 웃으며 먼저 복도로 나갔다. 채이는 바나나 우유를 이마에 잠깐 댔다. 이마보다 차가운 것이 필요했다.
올바른 대화방을 세 번 확인하고 메시지를 새로 썼다. 가족 행사에서 손잡기 가능합니다. 허리를 잡는 건 미리 물어봐주세요.
보내고 나니 대화 내용보다 끝의 존댓말이 더 수상했다.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치고 지나치게 결재 요청 같았다. 도진의 답은 점심 메뉴를 고르는 동안 왔다.
범위 확인했습니다. 행사 중 질문이 길어지면 물을 달라고 하세요. 잠깐 쉴 수 있게 하겠습니다.
채이는 메뉴판 뒤에서 웃었다. 도망갈 신호까지 준비하는 남편이었다. 자신도 조부와 식사한 뒤 표정이 굳었던 모양이었다.
유나가 젓가락 포장을 뜯었다.
“사진 안 보여줘도 되니까 취향 정도는 알려줘. 남편 뭐 좋아해?”
채이는 잠깐 생각했다.
“케이크.”
“귀엽다. 또?”
“틀리지 않은 숫자.”
유나는 삼키던 물을 내려놓았다.
“그건 누가 싫어하니?”
채이는 웃으며 휴대폰을 뒤집었다. 사실 자신도 이제 알아가는 중이었다.
***
오후 회의는 신혼과 상관없이 까다로웠다. 현수는 채이의 안내 개선안에 붙인 비교표를 보다가 한 줄을 짚었다.
“이 자료면 설치비 안내만 위로 올리는 걸로 충분하지 않아?”
“회수 신청 경로도 같이 바꾸는 게 좋겠어요.”
“범위 늘리면 운영 쪽 검토 오래 걸려.”
“그래서 버튼을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라 기존 신청 링크를 완료 안내에 넣자는 거예요. 지금 고객은 해지 메뉴까지 들어갔다가 상담을 또 받아요.”
민재가 노트북을 돌렸다. 실제 고객 화면을 따라가니 메뉴가 세 번 바뀌었다. 마지막에는 상담 시간 밖이라는 안내가 떴다.
“저도 찾다가 다른 페이지인 줄 알았어요.”
민재가 말하자 현수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내가 운영 쪽에 물어볼게. 대신 데이터가 깔끔해야 해. 불만이 몇 건인지, 중복은 없는지.”
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일을 만들어도 반대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확인할 근거를 갖다주면 현수도 자기 몫을 했다.
은정은 회의가 끝나기 전 초안의 작성 이력을 확인했다.
“지난번 첫 버전 지우지 마. 문구 바꿔서 결과가 달라지는지 보려면 이전 화면도 있어야 해.”
“별도로 보관했습니다.”
“좋아. 오늘 받은 의견 반영해서 금요일에 보자.”
채이는 파일 이름에 검토 날짜를 붙였다. 결혼 전에 올린 초안부터 오늘 회의 자료까지 연결된 폴더가 화면 왼쪽에 놓였다.
이 일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와 같은 집에 산다고 고객이 덜 화내거나 링크가 저절로 짧아지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상담 기록을 열었다. 한 고객이 식기세척기를 쓰지도 못했는데 왜 체험 후기를 보내라고 하느냐고 항의한 내용이었다.
채이는 설치 기록을 함께 띄웠다. 주방 수도 연결 방식이 맞지 않아 설치를 취소했다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그런데 체험 캠페인 보고서에는 완료로 표시돼 있었다.
단순히 정리 시점이 달랐을 수 있었다.
채이는 보고서 작성일을 확인했다. 취소 기록보다 뒤였다. 그래도 한 건만으로 단정할 수 없었다. 상담 담당자가 다른 주문을 보고 남겼을 수도 있었다.
“민재 씨, 이 고객 번호 연결된 거 맞아요?”
민재가 의자를 끌어왔다.
“잠깐만요. 이름은 같은데 신청 번호가 두 개네요.”
“다른 집에 신청한 건가?”
“주소는…… 같은데요.”
두 사람은 원본을 수정하지 않고 조회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처음 신청한 건은 취소, 다음 것은 접수. 그런데 완료 표시는 둘 다 같았다.
채이는 메모를 남겼다. 확인 필요. 중복 여부 미정.
눈에 띈 줄을 표시하자 또 다른 줄이 보였다. 장비를 아직 못 받았다는 문의 아래에 ‘체험 완료 고객 대상 만족도 조사 발송’이라는 처리가 붙어 있었다. 민재가 낮게 말했다.
“이거 보고서가 잘못된 건가요?”
“아직 몰라요. 기준일이 다른 건지부터 보죠.”
채이는 샘플을 스무 건 골랐다. 자신의 눈에 걸린 사례만 모으면 결과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어 목록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뽑았다. 업무 권한으로 볼 수 있는 고객 번호와 설치 상태만 대조했다. 더 자세한 확인은 운영 담당자에게 요청해야 했다.
스무 건 중 네 건에 표시가 생겼다. 취소, 설치 미완료, 회수 지연. 모두 같은 오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중 한 건은 실제 사용을 마쳤지만 제품 회수만 늦어진 사례였다. 채이는 그 줄에 다른 색을 썼다.
민재가 엑셀 맨 아래를 가리켰다.
“업체가 보내준 완료 보고서가 기준이었네요.”
채이는 연결된 첨부파일을 열었다. 표지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유성컴퍼니.
숙부의 회사였다.
채이는 마우스를 잡은 손을 놓았다. 며칠 전 카페에서 받았던 정산서와는 전혀 다른 돈이었다. 자신의 빚은 끝났지만, 이 표 안에는 고객과 회사의 거래가 있었다.
“대리님?”
민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파일 원본은 그대로 둬요. 지금 표시한 건 별도 파일로 저장하고.”
“네.”
“내일 운영 담당자한테 상태 확인 요청할게요. 아직 오류라고 적지 말고 확인 필요라고 써요.”
말은 평소처럼 나왔다. 그것이 조금 다행이었다.
퇴근 직전 채이는 은정의 자리로 갔다. 팀장이 짐을 챙기다 다시 의자를 당겼다.
“많이 급한 거야?”
“몇 분만요. 완료 실적하고 고객 이용 기록이 맞지 않는 표본이 있어요. 아직 확인 중입니다.”
채이는 네 줄을 표시한 자료를 내려놓았다. 은정은 첫 번째 줄부터 읽었다.
“이건 운영에서 확답 받아야겠네. 업체에도 기준일 물어보고.”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채이는 시계를 보지 않고 팀장을 봤다.
“유성컴퍼니가 제 숙부 회사입니다. 제가 아는 관계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은정의 손이 잠깐 멈췄다. 바로 괜찮다고 하지도, 왜 이제 말하냐고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이 캠페인 업체 선정에 참여했어?”
“아뇨. 고객 문의 분석하면서 이번 첨부까지 본 겁니다.”
“알았어. 그러면 앞으로 업체랑 직접 협의하는 건 내가 맡을게. 윤 대리는 확인한 근거를 그대로 남겨.”
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돌아오자 휴대폰에 저녁을 묻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채이는 늦는다고 답한 뒤 자료가 저장됐는지 다시 확인했다.
표지에 적힌 숙부의 회사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가 해야 할 일도 바뀌지 않았다.
사무실 달력에 여름휴가 표시가 하나둘 늘어났다. 채이는 빈자리에 놓인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지난 캠페인의 체험 기록을 열었다. 재출범안에 기존 실적을 인용하기 전에, 문의 유형별로 고객 경험을 나눠보려던 참이었다.민재가 정산 담당자에게 받은 파일을 공유했다. 유성컴퍼니의 체험완료 명세였다.“종료 보고서랑 건별 목록 같이 왔어요. 총 삼천 건이라는데요.”“고마워요. 설치 기록이랑 먼저 맞춰볼게요.”채이는 파일을 내려받아 읽기 전용 사본을 만들었다. 예전에 표본에서 발견했던 이상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집계 기준 때문일 수도 있어 필요한 자료를 추가 요청해둔 상태였다. 이번에는 종료 명세 전체가 들어왔다.첫 화면은 깨끗했다. 체험완료 삼천 건. 건당 십만 원. 청구액 삼억 원. 굵은 글씨 아래로 마스킹된 고객 번호와 접수 번호, 완료일이 이어졌다.채이는 고객 번호로 정렬하다가 스크롤을 멈췄다. 같은 번호가 네 번 나왔다. 제품을 여러 번 썼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이상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설치 번호를 확인했다.설치 번호도 같았다.완료일만 달랐다. 하루 간격으로 두 줄, 다음 주에 두 줄. 채이는 자기 쪽 고객 응대 화면에서 해당 설치 건을 열었다. 방문은 한 번이었다.“민재 씨, 이 접수 번호 기억나요?”그가 의자를 밀고 다가왔다.“어, 이거 취소 사유 분류할 때 봤어요. 설치 공간 때문에.”“그건 다른 번호죠?”“끝 두 자리만 달라요. 같은 고객이 다시 신청해서 묶었거든요.”채이는 두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고객이 다시 신청한 건과 이전에 취소한 건이 업체 보고서에서는 각각 체험완료로 남아 있었다. 민재가 자
“돈이 생기면 겁나는 것도 같이 없어질 줄 알았어요.”채이는 도진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리 앞에서는 또박또박 말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첫 문장부터 목이 잠겼다. 도진은 손에 힘을 조금 더해주었다.“그런데 오늘은 좋은 가방 들고 있는 게 들킨 일 같더라고요.”“네가 좋아하는 걸 쓴 건데.”“알아요. 그래서 더 화났어요. 나한테도.”채이는 웃으려다 그만뒀다. 도진이 물잔을 조금 가까이 옮겨줬다. 잠깐 마시고 나니 속도가 늦춰졌다.“엄마 수술할 때요. 병원비도 무서웠는데, 그다음 날이 더 무서웠어요. 회복하는 동안 밥은 어떻게 해드리지, 병원은 누가 같이 가지, 내가 휴가를 다 쓰면 어떡하지.”도진의 표정이 조용해졌다. 채이는 그가 듣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뜻은 아닌데, 돈이 없으면 해결할 방법부터 줄어들잖아요.”그녀는 엄지로 손가락 마디를 문질렀다. 예전에 버스 시간을 계산하던 습관이었다. 도진이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퇴근하고 병원에 가면 저녁 시간이 애매했어요. 엄마는 제가 먹고 왔다고 하면 믿는 척했어요. 나중에는 알더라고요. 제가 늘 같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와서.”“식사할 돈을 아낀 거야?”“처음엔요. 나중에는 그냥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어디 앉으면 그때부터 일어나기 싫을 것 같아서.”도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 곁으로 조금 가까이 앉았다. 채이는 그의 어깨에 기댔다가 다시 바로 앉았다. 오늘은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숙부한테 부탁하러 가던 날, 문 앞에서 말을 세 번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서 채이는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번갈아 만졌다. 어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며 자꾸 끄곤 했다.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쪽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윤채이.”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세리가 서 있었다. 새로 산 듯한 선글라스가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손에 든 쇼핑백은 하나였지만, 시선은 채이의 가방과 신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세리 언니.”“여기서 다 보네. 이제 생활 수준이 맞아지니까 만나는 데도 바뀐다?”채이는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 뒤 세리를 보았다.“엄마 이불 사러 왔어.”“큰엄마 것도 여기서 사? 많이 편해졌나 보네.”세리의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채이는 그 웃음에 맞춰 웃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받자 세리가 옆 카페를 가리켰다.“잠깐 앉아. 할 말 있어.”“어떤 얘긴데?”“친척끼리 잠깐 차도 못 마셔?”채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니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십오 분만.”세리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걸었다. 채이는 그 뒤에서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에게 늦는다고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오늘은 알람을 맞췄다.카페에 앉자 세리가 메뉴판을 밀었다.“네가 사. 잘살잖아.”“내 차는 내가 살게.”그녀는 직원에게 각자 계산을 요청했다. 세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금방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많이 컸네. 옛날에는 이런
성북동 저택의 여름 식사는 해가 기울고 나서야 끝났다. 친척 몇 사람이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채이는 식탁 위에 남은 유리잔을 살폈다. 얼음이 녹아 받침 바깥으로 물이 흘러 있었다. 무심코 냅킨을 접어 닦는데 태석이 그녀를 불렀다.“그건 두고 나와라. 너희 둘은 차나 한 잔 더 마시고.”채이는 접었던 냅킨을 내려놓았다. 도진이 옆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친척 중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다음 모임은 채이가 음식도 하나 정해봐. 이제 집안 안주인 노릇도 배워야지.”채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날짜를 먼저 알려주시면 가능한지 보고 말씀드릴게요. 제가 주말 현장 일정이 생길 때가 있어서요.”“회사 일이 아직 그렇게 바빠?”“제가 맡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았어요.”덧붙일 설명이 떠올랐지만 채이는 거기서 멈췄다. 도진도 대신 설명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가 손등으로 그녀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잘 말했어.”채이가 작게 웃었다. 가끔은 길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됐다.태석은 응접실이 아니라 작은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화분 몇 개가 놓여 있었고, 낮은 줄기에 토마토가 달려 있었다. 며칠 더 익어야 할 듯한 초록 열매 사이에서 빨간 한 알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이거 직접 키우세요?”채이가 묻자 태석이 턱을 들었다.“물은 내가 준다.”옆에서 차를 놓던 직원이 조용히 웃고 물러났다. 도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물 너무 많이 주셔서 한 번 옮겨 심었다면서요.”“회복 중인 노인한테 그런 것까지 보
“대표님 손에 물고기 있다.”월요일 아침, 민재의 목소리에 팀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채이는 아이스커피를 입에 댄 채 멈췄다. 사내 소식란에 부산 협력사 방문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도진이 센터 대표와 악수하는 사진이 맨 앞이었다.사진 아래 댓글은 업무 성과보다 밴드에 먼저 반응했다. ‘귀여운 거 좋아하시는구나.’ ‘직접 고르셨을까.’ 민재는 화면을 확대하다가 웃었다.“이거 저랑 같은 겁니다. 조카가 맨날 붙이는 거.”유나가 몸을 돌렸다.“채이도 그거 붙였었잖아. 출장 다녀온 날.”채이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빨대 끝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렸다.“센터에서 받았어.”“거기 밴드까지 홍보용으로 뿌렸어?”“아니. 구급함에 있던 거야. 기사님 댁 아이가 좋아해서 사뒀다고 하셨어.”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도진의 손가락에 누가 붙였는지는 사실에 포함하지 않았다. 유나는 제 턱을 괴고 대표 사진을 다시 보았다.“다행이다. 대표님이 물고기 무늬 콕 집어 고르셨으면 오늘 회의 때 집중 못 할 뻔.”현수가 지나가다 화면을 보고 웃었다.“센터 구급함이 아주 알차더라. 나도 파도 붙였어.”그가 팔목 안쪽을 보여주었다. 이미 밴드는 뗐지만 직사각형으로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채이는 하마터면 안도의 한숨을 소리 내 쉴 뻔했다.민재가 대표 사진 옆에 현수의 손을 갖다 댔다.“세트네요. 이번 출장 복지는 밴드였습니까?”“복지는 없고 작업대 모서리는 날카로웠어.”은정이 커피를 들고
일곱 시 이십 분, 채이는 자기 객실에서 출장 가방을 들고 나왔다. 거울을 세 번 확인했지만 남들이 알아볼 만큼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엘리베이터에서 현수를 만났다. 그는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있었다.“아침 먹었어?”“아직요.”“이거 미숫가루. 조식 먹을 시간 없겠다.”채이가 고맙다며 컵을 받았다. 혹시 표정이 이상한지 눈치를 보았는데, 현수는 휴대폰에 뜬 설치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어제 기사님이 보내주셨는데 이것 좀 봐. 이 집은 연결부가 아예 안 보여.”일 얘기가 나오자 채이의 어깨가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컵을 가방 옆주머니에 끼우고 사진을 확대했다.“사진으로 판단 못 하는 집은 전화 상담으로 넘어가는 경로가 있어야겠어요. 사진 안 올리면 다음 화면으로 못 가는 건 빼고요.”“그러면 전화가 늘 텐데.”“방문 취소가 줄어드는지 같이 봐야죠.”호텔 문을 나설 때 휴대폰이 울렸다. 도진이었다.‘잘 내려갔어?’채이는 현수가 차를 찾는 사이 답장을 보냈다.‘네. 현수 과장님과 이동해요.’보내고 보니 회사 메신저와 다를 게 없었다. 한 줄을 더 쓰려는데 현수가 차 문을 열었다. 채이는 휴대폰을 넣고 탔다.센터의 작은 회의실에는 어제 만난 기사 둘과 상담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채이는 새 안내지를 나눠주었다.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예상 비용이라고 하면 또 정확히 얼마냐고 물으실 텐데요.”“정확한 비용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왜 그런지 적었습니다. 추가 확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