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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흔들리는 시작

作者: 데이지
last update 公開日: 2026-03-05 14:16:36

이준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서윤의 손길이 남긴 온기는 이미 사라졌지만,

그 감각은 피부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마음에 슬쩍 손을 얹고 갔다는 듯한.

그는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지만, 도무지 편해지지 않았다. 

피곤했지만 졸리지 않았고, 고요했지만 마음은 어딘가 불안정했다. 

무엇보다, 그의 생각이 자꾸만 서윤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목소리, 손끝, 그리고 미소까지.

도대체 왜 그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건 이준 본인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준은 이레제약 본관 회의실에 들어섰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를 마주한 임원들은 뭔가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말투는 예전보다 덜 날카로워졌다. 

짧은 질문 하나에도, 조금은 더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여유가 생겨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다. 

대표가 보여주는 미세한 변화에 대해,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이준은 회의 도중 몇 차례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이 깊어지는 창가, 하얀 목련꽃이 흔들리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그 흔들림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을 뿐이었다.

서윤은 별관에 머물며 그날 오후의 처방 준비를 마쳤다. 

오늘은 촉각 대신 시각 자극을 활용한 감정 이완 처방이 예정되어 있었다. 

은은한 조도, 부드러운 색감, 시선을 부드럽게 붙잡는 영상 자료들. 

그리고 그 속에 은밀하게 섞인 심상 유도.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잠깐 머리를 매만졌다. 

얼굴에 힘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오늘은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준이 그녀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신경 쓰였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그녀에게 사적인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제, 그가 손끝으로 건넨 미세한 접촉은 자꾸만 그녀의 마음에 맴돌았다.

그건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은 제스처가 아니었다.

오후가 되어 이준이 도착했다. 오늘도 정해진 시간보다 3분 일찍이었다.

서윤은 부드러운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늘도 오셨네요."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편한 자세였다.

"어제 잠은 좀 주무셨어요?"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처음엔 뒤척였는데, 새벽쯤엔 괜찮아졌습니다."

그 말에 서윤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그보다 더 빨리 안정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해보죠."

그녀는 영상 장비를 조정하고, 조명을 낮추었다. 

그리고 이준의 앞에 조용히 앉았다. 방 안이 어두워지자, 

화면 속 영상이 천천히 재생되었다.

느리게 움직이는 파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리고 풀숲 사이로 부는 빛.

이준은 어느새 그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고, 손끝에 힘이 풀렸다.

그 조용한 안정 속에서, 서윤은 그를 바라보았다.

한때는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세상과 단절하려 했던 그가, 

지금은 점점 이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마음의 틈을 내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부인할 수 없는 감정을 품게 만들고 있었다.

치유란 언제나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천천히 감각을 나누는 이 시간 속에서

그들의 거리는 점점,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    *    *    *    *    *    *    *    *    *    *    *    *

그날 밤, 이준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전날 밤보다 더 깊은 밤, 회의도 없고 전화도 울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창밖의 불빛들이 반쯤 닫힌 블라인드 사이로 어렴풋이 번져들고 있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책상 앞도, 회의실도 아닌, 

그냥 조용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작은 구석에서. 

눈을 감아보려 했지만, 다시금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상 속 파도, 창가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더 선명했던 서윤의 눈빛.

그가 본 건 단지 힐러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의 눈빛이었고, 

그 시선 안에 담긴 온도는 이준의 마음을 고요하게 흔들고 있었다.

서윤은 별관의 방을 정리하며 촛불을 하나씩 껐다. 

오늘 이준의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그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그녀의 공간에 들어오고 있었고, 

긴장감 없이 스스로를 위탁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의미하는 건 단순히 환자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가 그의 감정선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치유는 결국,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가는 흐름이라는 것을. 그날 그녀는 더 깊이 실감했다.

다음 날 오후, 특별한 처방은 없었다. 격일로 운영되는 일정 사이, 

서윤은 이준의 사무실로 잠시 호출을 받았다. 별다른 사유는 없었다. 

회의 명목도, 업무 지시도 아닌, 단지 "차 한 잔 마시죠"라는 짧은 메시지.

서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별관에서 본관으로 향했다. 

고층 엘리베이터 안,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 얼굴엔 아주 희미하지만, 무언가 설레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이준의 집무실은 조용했고, 짙은 와인 컬러의 커튼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커튼 뒤로 흐릿하게 보이는 도시의 윤곽, 

그리고 그 앞에 서윤이 들어섰다.

"오랜만에 주간에 뵙네요, 대표님."

이준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엔 특별한 표정이 없었지만, 

그 시선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서윤 씨 덕분에 잠을 자는 시간이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어요. 

그냥,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서윤은 조용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이준은 찻잔을 건넸다. 허브티였다. 진한 캐모마일 향이 퍼지는 공간,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있었다. 업무가 아닌, 

처방도 아닌, 단지 두 사람의 존재만으로 구성된 공간.

그건 처음이었다. 서윤은 조용히 물었다.

"이런 자리, 자주 하시는 편은 아니신가요?"

이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런 건 처음이에요."

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정직했다. 

서윤은 그 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역시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둘 사이의 대화는 짧고 간결했지만, 

그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결이 섞여 있었다. 

긴장이라기보다는 조심, 경계라기보다는 집중.

그리고 그 순간, 커튼 사이로 불어든 햇살이 서윤의 얼굴을 비췄다. 

그 빛 아래에서 그녀는 순간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이준은 무심코 그녀의 옆선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곡선, 미간에 살짝 잡힌 주름, 그리고 입꼬리에 머문 잔잔한 미소.

그는 고개를 돌려 찻잔을 들었지만, 입을 대진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날, 손을 얹었던 순간."

서윤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제 반응이 기억나세요?"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네. 기억나요."

이준은 천천히 웃었다. 아주 작게.

"그게 꽤 오래 남더군요. 생각보다."

그 말은, 이준이 그녀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그 감각이 그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서윤은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감정을 숨기려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순간을 고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 사이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감정이라는 이름의 차양, 서서히 드러나는 관계의 기미.

그리고 그 아래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씩, 감정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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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윤은 다음 날,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해가 막 떠오른 시간, 복도는 아직 조용했고, 건물 전체가 꿈에서 덜 깬 듯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커피포트를 올리고, 익숙하게 머그잔 두 개를 꺼냈다.잠시 후, 이준이 예상보다 이른 걸음으로 복도에 나타났다.서윤은 무심한 척 그의 앞에 커피를 내밀었다."이 시간엔, 따뜻한 게 필요하시죠."그는 커피를 받으며 작게 웃었다. "이제는, 따뜻함이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게 만들어요."그 말에 서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따뜻함이 자신이라면, 이제

  • 대표님의 은밀한 처방전   1화. 당신에게만 허락된 시간

    불이 꺼진 방 안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차가운 바닥 위로 촛불이 뿜어내는 따뜻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 작은 조명들만이 이 공간의 유일한 온기처럼 흔들렸다. 깊은 밤, 시곗바늘은 자정이 훌쩍 넘은 시점을 가리키고 있었고, 바깥의 세상은 모두 잠든 시간이었다.그리고 그 방의 가장 깊숙한 곳,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이준. 이레제약의 대표이사. 성공한 청년 CEO, 냉정하고 완벽한 경영인. 그러나 지금 그의 얼굴엔 그러한 수식어들이 어울리지 않았다. 눈꺼풀은 닫혀 있었지만 이마엔 미세한 긴장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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