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녀는 백지처럼 순수했다. 입맞춤조차도 그가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할 정도였다.처음 입을 맞췄을 때, 그녀는 마치 조각상처럼 어색했다.그런 그녀가 나중엔 점점 능숙해져서 어느새 자신이 주도권을 쥐는 작고도 귀여운 요물이 되어 있었다.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서로가 다시 낯설어지기 시작한 건.지금의 신분 때문일까?눈앞에서 화가 나 얼굴을 붉히고 있는 임슬기를 바라보며 배정우는 이유 없이 가슴이 아려 왔다.“배고파요.”그 말에 임슬기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배정우 씨, 요즘 보면 부끄러움이란 게 없
임슬기의 질문에 육문주는 그저 가볍게 웃었다.“그건 슬기 씨가 제일 잘 아는 거 아닌가요?”결국 대답 대신 질문을 되돌린 셈이었다.임슬기는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에서 내린 뒤 육문주가 떠나는 걸 지켜보고서야 병실로 향했다.병실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감정을 가다듬은 후 조용히 노크했다.“들어오세요.”낮고 담담한 목소리에 임슬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섰다.배정우는 병상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고 그녀를 본 순간 차가운 인상은 조금 누그러졌다.“왔네요.”“네.”임슬기는
임슬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가슴 한가운데 뾰족한 바늘 하나가 박힌 것처럼 은근한 통증이 반복해서 밀려들었다.한참 만에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말한 거... 진짜예요?”그제야 육문주의 감정도 조금 가라앉은 듯 그는 코끝을 훌쩍이며 대답했다.“당연하죠. 나도 정우 형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말한 거예요. 그 사람은 슬기 씨를 해칠 사람이 아니라고.”임슬기는 마치 스스로가 우스운 존재라도 된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육문주는 잠시 멈칫했다.“왜 그래요?”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저었
복수라는 두 글자는 유독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4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육문주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범인은 아직도 못 잡았어요.”“알아요. 근데... 나는 그 배후 말인데요.”육문주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임슬기를 바라봤다.“정우 형이 아니라고 믿어요.”“왜요?”임슬기는 주먹을 꼭 쥔 채 되물었다.“그땐 현정이가 직접 말했어요. 배정우라고. 아니었으면... 아니었으면 내가 그 사람 죽이러 가지도 않았어요.”그 말에 육문주의 어깨가 눈에
“네, 그 둘이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요. 현장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요.”석지헌은 어둠 속에 몸을 묻은 채 길고 날렵한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일정한 박자에 맞춰 두드리며 냉소를 흘렸다.“좋아. 계속해서 사람 붙여. 확실히 감시해.”“예.”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석지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잠깐. 둘이 너무 자주 엮이지 않게 해. 무슨 뜻인지 알겠지?”“네, 잘 알겠습니다.”“가 봐.”그가 떠난 뒤, 석지헌은 혼자 조용히 술을 한 잔 따라 들었다. 잔을 흔들며 발코니로 나서더니, 창밖에 떠 있는 밝은
파스타를 다 먹은 뒤, 임슬기는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해 질 무렵이었다. 배정우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아 혼자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었다.“배정우 씨.”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말했다.“시간이 늦었네요. 전 호텔로 돌아갈게요. 내일 다시 올게요.”배정우는 그녀가 오늘 병실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아직 일곱 시도 안 된 상황에서 떠나겠다는 말에 약간 놀랐다.“그럼 저녁에는...”“당신은 다친 팔만 빼면 씻지 못 할 일도 없고 식사도 했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잖아요.”그녀는 이미 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게다가 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