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21화. 초자연 현상
반면, 서연에게는 시계 위로 윙윙거리는 검은 날파리 떼와, 쿱쿱한 곰팡이 냄새만이 느껴졌다.
다만 시계와 날파리의 소음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커서, 바닥을 구르며 절규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연은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아우, 진짜! 집이 겉만 번지르르하지 관리가 엉망이라니까! 가스 새지, 날파리 꼬이지, 이 집 상태 왜 이래요?"
서연이 살충제를 찾아 들고 날파리 떼를 향해 난사했다.
치이이익!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계에 손을 얹었다.
"좀 조용히 해! 시끄러워!"
44화. 정신 차려신기하게도 거울 앞에서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참으로 어여쁘시군요. 저잣거리에 놀이패가 왔다는데 같이 가보시겠어요? 좋다구……요? 아버님께서 허락을 해, 해, 해 주실지. 모, 모, 모르겠……어요.”그녀는 매일 경대를 닦으며 거울 속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세월이 흘러 소녀에게도 혼담이 들어왔다. 소녀는 밤새 공포에 떨었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무서웠다.소녀는 용기를 내어 혼담이 오간 남자의 집을 몰래 찾아갔다. 그리고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 집안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말을 더듬는 반푼이라더군.”“상관없지. 혼수로 들어올 재물이 막대하다지 않나. 결혼식 날까지만 입을 다물게 하면 그만이다.”소녀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얻기 위한 거래 품목일 뿐이었다. 그날 밤, 소녀는 방으로 돌아와 경대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무서워.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않아. 차라리…… 여기서 사라지고 싶어.”깊은 수치심과 외로움 속에서 소녀는 결국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그 슬픈 한이 경대에 깊게 남겨졌다.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면 그땐 기필코 달라지리라 다짐했다. 제 진심과 맞닿을 영혼을 기다리리라…… 기약 없는 세월을 품은 채.“헉!”서연이 현실로 돌아오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서연은 힘없는 모습으로 광기를 뿜어내는 김미영을 바라보았다.“미영 언니. 그 경대를 보는 순간, 꼭 가져야 할 것 같았죠?”미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어, 어떻게 알았어?”“골동품 가게에서 저걸 본 순간…… 내가 저걸 가지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았어.”외로움 속에서 그녀의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를
43화. 경대의 기억“와…….”서연이 기가 찬 듯 입을 벌렸다.“이 정도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광고 세트장인데요?”“정확히는 광고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감옥이겠지.”단의 서늘한 시선이 거실 안쪽의 어둠을 천천히 훑었다. 그 순간이었다.“안녕하세요, 블링이에요!”통로 너머에서 경쾌하고 높은 톤의 여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조명 한가운데, 화려한 실크 드레스를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오늘은 여러분이 정말 많이 기다리셨던 신상 언박싱 영상이에요!”여자는 렌즈를 향해 찬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짜잔!”고급스러운 신상 가방을 들어 올린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어때요? 너무 예쁘죠?”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톤이 높고 밝았다.하지만 서연이 자세히 다가가 보았을 때, 삼각대에 고정된 스마트폰의 화면은 검게 꺼져 있었다.전원조차 들어오지 않은 검은 유리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윙크를 날리고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블링 언니?”서연이 낮게 불렀다. 여자가 움직임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누구세요?”방금 전까지 기계처럼 웃고 있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곤하고 텅 빈 눈동자가 서연 일행을 향했다.어색함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연의 시선이 화려한 명품들 사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물건 하나에 멈췄다. 조선시대의 양반가에서 사용했을 법한 자개경대였다.서연이 홀린 듯 천천히 다가갔다.“이건…….”서연의 손이 경대 위로 향했다. 손끝이 경대 표면에 닿는 순간, 강렬한 전율과 함께 서늘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척추까지 올라갔다.서연의 눈
42화. 거짓의 냄새"피부관리 하기도 빠쁜데 오직 너 실습 시키려고 경찰 사건 접수 내역부터 SNS 뒷조사, 뉴스까지 싹 다 훑어보고 왔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해라.""아...... 네, 감사합니다! 정말 은혜롭네요. 근데 언니......."서연이 안전 손잡이를 생명줄처럼 꽉 쥐며 다급하게 외쳤다. 창밖 풍경이 잔상으로 남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운전 좀 살살 하시면, 제가 더 격하게 존경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존경심이 막 솟아날 것 같은데요!""참아. 멀미 봉투는 글로브 박스에 있다. 참고로 토하면 세차비 청구한다. 500만 원이야."루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핸들을 꺾었다. 서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500만 원이라는 말에 울렁거림이 쏙 들어갔다."아무튼, 상황이 안 좋아. 밤마다 저 집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민원이 관리실에 빗발치고 있어. 층간 소음 수준이 아니래. 그리고 관리실 직원 말로는... 문틈으로 썩은 화장품 냄새가 난단다.""네? 화장품이 썩어요? 설마, 사람이 죽은 거예요?""가서 확인해 봐야지. 죽었는지, 아니면 산 채로 지옥에 갇힌 건지."루나의 붉은 눈이 백미러를 향했다. 뒤따라오는 단의 검은 세단이 보였다."저 꽉 막힌 도둑놈도 따라오고 있네. 과잉보호는......."오피스텔 지하 주차장. 최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서연은 차 문을 열기도 전에 코를 쥐었다."우욱, 냄새가......."지하 주차장의 매캐한 공기 속에 섞여 있는 이질적인 냄새.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비릿하고 역겨운 악취가 깔려 있었다.끼이익!뒤따라 들어온 검은 차가 거칠게 멈춰 섰다. 단과 은랑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젠장...... 공기가 썩
41화. 실습넥타이. [이거 색깔이 딱 고려청자 비취색이에요! 단 씨가 만든 그 청자랑 똑같아서 보자마자 질렀어요. 잘 어울릴 거예요!]홍차. [이건 임페리얼 얼그레이래요. 두통에 좋대요. 향도 엄청 고급져요!]앞치마. [공방에서 작업하실 때 입으세요! 지금 입으시는 거 너무 낡아서…… 이거 입으면 완전 장인 포스 날 것 같아요.]핸드크림과 책 한 권. [그리고 이건 제 사심…… 단 씨 손 거칠어지면 안 되니까 핸드크림! 그리고 <최신 유머 대백과 - 김 부장도 빵 터지는 유머 100선>…… 단 씨 유머 감각이 좀…… 올드해서…… ㅎㅎ 공부하세요!]"……."단의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화를 내야 하는데, 광대뼈가 자꾸만 승천하려 했다.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 근육이 리모델링되고 있었다."허. 뻔뻔하긴. 내 돈으로 내 선물을 사다니. 창조 경제가 따로 없군. 도둑놈 심보야, 아주."말은 그렇게 했지만, 단의 목소리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그는 사진 속 어이없는 유머 책을 확대해서 보았다."가지가지도 사는군. 넥타이에 홍차에…… 유머 책? 내가 유머가 없다고? 허, 참나."단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손가락은 이미 사진을 저장하고 있었다.김 실장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흐뭇해 보이십니다, 주인님. 입꼬리가 귀에 걸리셨습니다. 제가 내려드릴까요? 아니면, 차라도 내려드릴까요?""혹시 그거 유머 한 건가?""아! 아셨습니까?
40화. 감 잡았어요"일시불이요. 영수증은 버려주세요.""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결제가 완료되는 순간, 지지직 영수증 출력되는 기계음.그 소리가 팡파르처럼 들리고, 가슴속에서 묘한 쾌감이 솟구쳤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를 위해 이렇게 큰돈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 아니 자애감이 차올랐다."어……?"서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다시 펌프질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이것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가장 확실한 심리 치료. 역시, 모든 심리 치료는 금융 치료가 직빵이었다."느껴져? 그게 바로 기야."루나가 서연의 귓가에 속삭였다.“돈이란 건 말이야,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 도구야. 사람을 지키는 갑옷이고, 기를 살려주는 부적이지.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해야 세상도 나를 귀하게 대접하는 법이야. 귀신도 마찬가지고. 네가 쫄면 잡아먹히고, 네가 왕처럼 굴면 알아서 무릎을 꿇어.”루나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물론 돈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야. 지식이나 지위, 명성으로도 기세를 세울 수 있고,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도 있지. 하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건 역시 돈이야.”루나가 씩 웃었다.“우리는 지금 한시가 급하잖니. 그러니까 일단 가장 쉬운 방법부터 써보자.”서연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돈이 자존감을 만든다. 자존감이 기세를 만들고, 기세가 신력을 키운다.듣고 보니……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옷을 갈아입고 카드를 긁었을 뿐인데,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것은 사치가 아니었다.무장이었고 훈련이었다. 서연은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씨익
39화. 충성! 따르겠습니다 서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돈으로 아우라를 산다? 쇼핑이 수련이다?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신개념 수련법이었다. 108배나 냉수마찰보다 백 배, 천 배 마음에 들었다. "저기…… 스승님. 근데 혹시 제 돈으로……?" "걱정 마. 수업료랑 교재비는 당연히 도둑놈이 내야지." 루나가 주머니에서 검은색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 재질. 일전에 보았던 단의 블랙카드였다. "왕재수 도둑놈 돈으로 오늘 백화점 기둥뿌리 하나 뽑으러 간다. 천년 동안 모은 재화가 창고에 썩어나는데, 좀 써줘야 경제가 돌지 않겠니?" "헉…… 하, 하지만 지난번 이사 올 때도 옷에 신발에 비싼 거 잔뜩 사주셨는데, 여기서 더 받으면 저 진짜 평생 노예 확정 아닌가요? 뼈가 삭도록 일해야 할 것 같은데……." "걱정 마. 뼈는 안 삭아. 멘탈이 좀 털릴 뿐이지. 우린 지금 '세상 구하는 투자'를 하는 거야. 준비됐나, 제자?" 루나가 선글라스를 다시 끼며 비장하게 물었다. "추…… 충성! 따르겠습니다!" 서연은 깨달았다. '붉은 여우'는 자신과 코드가 아주, 매우, 격하게 잘 맞는다는 것을. 그녀는 비장하게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산을 타는 것보다 더 험난하고 짜릿한 '쇼핑의 산'을 정복하러 갈 시간이었다. S백화점 명품관. 대한민국 상위 1%가 모인다는 이곳은 공기부터 달랐다. 은은하게 퍼지는 시그니처 향수 냄새,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경쾌한 하이힐 소리, 그리고 손님보다 더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직원들의 프로페셔널한 미소까지. 모든 것이 '돈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깨 펴. 쭈뼛거리지 마. 넌 여기서 제일 돈 많은 고객이야. 아니, 네가 이 백화점 주인이라고 생각해. 쫄지 마." 루나의 지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