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우우우웅ㅡ띵.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멈춰 섰다.문이 열리고 중년 부부와 젊은 커플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서다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음?""...어머."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독고춘과 지희에게 향했다.정확히는 대낮에 멀쩡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여자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든 채 덤덤하게 서 있는 독고춘에게로.그 기묘한 광경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곧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묘하게 어색해졌다.젊은 커플은 쿡쿡거리며 웃음을 흘렸고, 중년 부부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지희는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아랫배를 찌르는 고통보다도 몰려오는 민망함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차라리 기절해 버리고 싶었다.반면 독고춘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해 보였다.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마지막 사람까지 내리고 나서야 지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아아...""...땅 꺼지겠군."독고춘의 말에 지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뭐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아니, 하...사람들 보는 데서 이게 뭐냐고 진짜...""...뭐 잘못됐나?"독고춘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지희는 결국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아, 됐어요.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띵.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독고춘은 지희를 안은 채 성큼성큼 걸어가 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침대에 지희를 조심스럽게 눕혔다.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지희의 아랫배에서 다시금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으읏..."지희가 침대 시트를 꽉 쥐며 허리를 웅크렸다.고통 때문에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오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독고춘은 말없이 침대 옆에 앉았다.그리고 지희의 아랫배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곧 독고춘의 손
"...은정이가...그렇게 가 버릴 줄...정말 몰랐어요..."주미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흩어졌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꽉 쥔 두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날의 일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갑작스럽게 걸려왔던 은정이의 전화.그리고 다음 날 들려온 부고.자신이 조금만 빨리 눈치챘더라면.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은정이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주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결국 그녀의 가슴속에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후회뿐이었다.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희는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독고춘을 바라봤다.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근데."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이어졌다."정말 은정이를 봤다는 거예요?"지희도 순간 독고춘을 바라봤다.주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는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아까 분명히 봤다고 했잖아요.""...""...은정이가 지금 제 옆에 있는 건가요?"바닷바람이 세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독고춘은 잠시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정확히는...아닙니다."그 말에 주미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그게 무슨 소리죠?""...제가 본 건...그분의 기억입니다.""...기억이라고요?"주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독고춘은 그 말을 끝으로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결국 주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그럼 그렇지..."주미는 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그리고 손등으로 눈가를 한 번 훔쳤다."...잠시나마 기대했던 제가 바보였네요."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새하얀 천장과 낯선 병실 풍경이 흐릿한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눈을 뜨자마자 은정이의 손은 본능처럼 아랫배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배를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제법 동그랗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온기를 전하던 배가, 거짓말처럼 푹 꺼져 있었다. 손바닥에 닿는 느낌은 지독하리만치 평평하고 허전했다.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며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이 걸어 들어왔다. 은정이는 링거 바늘이 꽂힌 손으로 의사의 가운을 붙잡으려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의사 선생님! 제 아기는요?” 의사는 그녀의 절박한 눈빛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뚝 떨구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나온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해서 더 잔인했다.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 이미 하혈이 너무 심했습니다. 복부에 가해진 충격이 컸던 탓에...아기는 유산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의사의 말에 은정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의사도, 병실도, 창밖의 풍경도 모두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그...다행히 환자분 몸은 가벼운 타박상과 미세한 골절 외에 큰 이상은 없습니다.” “...하하...다행...이라고요?” 은정이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에요! 아기가...배 속에 내 아기가 없졌는데!!” 악에 받친 비명이 좁은 병실 안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의사는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알아채고 급히 사과를 했으나, 은정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내 아기 살려내!! 살려내라고!!”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발악하는 은정이를 간호사들이 다급히 붙잡았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아아아악!!"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던 그녀는 결국 간호사가 다급히 주사한 진정제 성분이 온몸에 퍼지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의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집에 도착할 때쯤, 주머니 속에 있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은정이는 걸음을 멈추고 한 손으로 검은 비닐봉지를 고쳐 쥐었다.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화면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름.[주미]늘 제 걱정뿐인 단짝 친구의 이름에 은정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오늘 편의점 점장님에게 받았던 따뜻한 호의를,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이 작은 행복을 주미에게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전화를 받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화면 위로 가져갔다.그리고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바로 그 찰나,멀리서 거친 엔진 소리가 골목 안으로 울려 퍼졌다.부아아아아앙ㅡ!!은정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시선 끝에는 검은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처음에는 그저 배달하는 오토바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순식간에 그 오토바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어?"입술 사이로 멍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검은 오토바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은정이는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그 순간.쾅ㅡㅡ!!엄청난 충돌음이 골목길 전체를 뒤흔들며 은정이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들고 있던 봉투 역시 터져 버리며 안에 들어 있던 삼각김밥과 우유가 아스팔트 위로 흩어졌다.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감각과 함께 복부를 짓누르는 끔찍한 충격이 몰려왔고, 그 뒤를 따라 어깨와 옆구리, 팔과 다리까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쿵!차가운 아스팔트에 몸이 떨어지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시야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음만 울렸다.오토바이는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것처럼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가 사라졌다.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금이 간 휴대폰은 여전히 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화장실 바닥에서 밤새 울었던 그날 이후, 은정이는 한동안 제대로 된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그녀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가까스로 삶을 버티고 있었다.몇 번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박도윤.아이를 지우라고 말했던 남자.그리고 잔인한 말로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남자.은정이는 이를 악물었다.적어도 그 남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어떻게든 살아남아서.어떻게든 버텨서.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나 잘 살고 있어.'그 말만큼은 당당하게 할 수 있고 싶었다.그래서 억지로라도 밥을 먹었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처음에는 그저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느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배를 만져 보고,무언가를 먹을 때도 아이에게 괜찮을지 먼저 생각하게 됐다.병원 검진 날짜를 꼼꼼히 적어 두고, 인터넷으로 임산부 주의사항을 찾아보는 일도 늘어났다.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자신이 버티는 이유 속에서 박도윤이라는 이름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작은 생명이었다.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다시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고 하지만, 은정이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어떤 날은 하루가 일 년처럼 길었고, 어떤 날은 눈을 감았다 뜨니 일주일이 지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세상은 이미 그녀를 잊어 가고 있었다.한때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던 루머도 새로운 연예인들의 스캔들과 사건들에 밀려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그러나 이제는 단역 배우 역할 하나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결국 은정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집 근처 작은 편의점의 오전 근무였다.그러던 어느 이른 새벽, 작은 원룸 안.은정이는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
그날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주미는 곧장 차에 올라탔다. 원래라면 집에 가서 쉬어야 했지만 오늘은 은정이 얼굴을 꼭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 연락은 꾸준히 주고받았지만 대부분 짧은 말 뿐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주미는 운전대를 잡은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진짜 미치겠네..." 잠시 후, 은정이의 자취방 앞에 도착한 주미는 익숙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잠시 기다렸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들리지 않았다. 주미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철컥. 그제야 천천히 문이 열렸다. “어? 주미야!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은정이는 문을 열고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높은 톤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주미는 문 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은정이의 얼굴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 바닷가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웃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지만 지금은 얼굴선이 눈에 띄게 가늘어져 있었고, 창백한 피부 아래로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주미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너...얼굴이 그게 뭐야?" 주미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은정이는 제 뺨을 만지며 짐짓 장난스레 받아쳤다. “내 얼굴이 왜? 이상해?” 자신이 드라마에서 하차당했다는 사실도, 인터넷에서 추잡한 루머로 난도질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처럼 은정이는 해맑게 웃었다. 도윤과 헤어졌다는 아픔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 웃음이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서 더 화가 났다. 주미는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은정이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야, 고은정." "...무섭게 왜 그래?" "너 언제 헤어졌어?" 그 말에 은정이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 반응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미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대중의 관심은 좀처럼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톱스타 강지희의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단순한 연애 상대를 넘어 하나의 화제, 나아가 하나의 논쟁거리로 변해가고 있었다.각종 포털과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관련 글이 끊이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해석과 추측이 덧붙여졌다.특히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묘한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강지희의 상대를 두고 박도윤이냐, 독고춘이냐.누가 더 어울리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편 가르기였다.소위 박도윤파는 재벌 2세이자
혜련은 제 귀를 의심하며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툭툭 건드렸다.“김 비서, 지금 나 놀리는 거야?”“절대 아닙니다, 사모님. 다시 제대로 조사하겠습니다.”“그만 됐으니까 나가 봐요!”혜련이 소리를 지르자 평소 침착하던 김 비서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그는 억울한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혜련은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픈 상황인데, 말도 안되는 보고까지 들으니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김비서가 쭈뼛거리며 물러나려던 찰나, 무거운 정적을 깨고 혜련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지희의 폭탄 발언이 떨어짐과 동시에 회견장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그리고 찰나의 정적 뒤, 여기저기에서 하얀 섬광이 눈부시게 터졌다.수십 대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그 엄청난 번쩍임 속에서 지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톱스타다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그때, 정면만 응시하던 독고춘이 지희의 귓가로 낮게 얼굴을 가져갔다.타인들이 보기엔 연인의 은밀한 속삭임이었으나, 지희의 귓가에 꽂힌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이게 무슨 짓이지?”지희는 카메라를 향한 톱스타의 완벽한 미소를 유지한
이른 아침의 나른한 햇살이 거실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지희의 기분은 그 햇살과는 정반대로 눅눅했다. 전날 밤, 백미러 속에서 마주쳤던 독고춘의 웃는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밤잠을 설친 탓이었다. 거울 속 쾡한 눈밑을 보며 지희는 애꿎은 세면대만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그 인간이 뭐라고 잠을 설쳐, 진짜 짜증 나게!” 지희가 부스스한 머리로 거실에 나오자마자, 현관문 도어락 소리와 함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에서 깔끔한 수트 차림의 독고춘과 눈이 마주쳤고, 깜짝 놀란 지희는 다시 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