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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작가: 쌍춘
last update 게시일: 2026-04-17 13:33:17

라디오 방송국의 복도는 조용했다.

하지만 조명 아래에 깃든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오빠, 저쪽.”

지아가 손으로 안내하자, 독고춘은 굳은 얼굴로 뒤따랐다.

그의 시선은 계속 천장과 벽을 오갔다.

일렁이는 희미한 그림자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작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이때까지 독고춘은 아직 검은 연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지아가 문을 열자, 따뜻한 조명이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지희는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앉았다.

스탭들과 작가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독고춘은 문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얼마후,

방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오프닝 음악,

지희의 맑은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별빛처럼 사라진 것들을 기억하는 시간, 강지희의 ‘별빛사이’입니다.”

---

라디오 방송이 끝나고, 밤.

“오늘도 완벽했어요! 언니 최고!”

지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희는 피곤한 듯 손을 흔들었다.

“이제 드라마 촬영장으로 바로 가죠!”

지아는 태블릿을 확인하고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세 사람이 라디오 건물을 나올때, 독고춘은 한 번 뒤돌아봤다.

붉은 네온 아래, 누군가 그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스쳤다.

---

드라마 세트장은 밤에도 낮처럼 밝았다.

커다란 조명탑들이 하얀 빛을 쏟아내며 인공의 낮을 만들고 있었다.

지희는 긴 머리를 묶고 의상 점검을 받으며 스탠바이 중이었다.

그 옆엔 오늘 첫 촬영을 함께하는 서가연이 있었다.

“지희 언니! 진짜 오랜만이에요.

같이 작품 하는 게 벌써 세 번째죠?”

서가연의 눈웃음은 달콤했다.

사탕을 입에 문 듯한 웃음,

누가 봐도 사랑받는 얼굴이었다.

지희도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오랜만이야. 이번엔 서로 싸우는 역할이라 좀 어색하네?”

“제가 완전 불리해요! 이렇게 이쁜 언니랑 싸우는데 제가 어떻게 이기겠어요?”

가연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

그 모습에 주변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독고춘만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높은 곳에서 빛을 밝혀주는 조명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조명탑 위 —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검은 연기 한 줄기가 미세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독고춘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조명 준비 완료! 배우들, 4신 2테이크 들어갑니다!”

감독의 목소리가 울리자, 모두 일제히 움직였다.

지희와 가연은 서로를 마주 본 채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가연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지희의 얼굴은 차가운 분노로 물들었다.

그 순간 —

‘찌익—!’

조명탑 위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금속선이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흔들거리는 커다란 조명.

그 방향은 지희와 가연의 한가운데 쪽이었다.

“위험해!”

독고춘은 반사적으로 뛰어들었다.

조명이 떨어지려는 순간,

그는 지희가 아닌, 옆에 있던 가연을 밀쳐냈다.

‘쾅!’

폭발음과 함께 하얀 불빛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후,

스탭들과 배우들의 비명 소리들 속에서 독고춘은 오른팔에 뜨거운 통증을 느꼈다.

“꼬춘씨!!”

지희가 달려왔다.

지아도 놀라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피! 피나요! 119! 119! 누가 119좀 불러줘요!! 롸잇 나우!!!”

“..,.괜찮으니까 호들갑 떨지마.”

독고춘은 단호히 말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검은 연기가 사라진 자리만 남아 있었다.

‘이 현장에...원귀를 품은 인간이 있었다.’

---

촬영은 중단되었고,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가연은 울먹이며 독고춘에게 다가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쪽 아니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요.”

독고춘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 나중에 제가 꼭 보답할께요.”

가연은 그의 손등을 조심스레 붙잡고 얼마동안 몇마디를 더 나누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독고춘의 양손을 꽉잡은 가연이 생긋 미소를 짓더니 스탭들 사이로 사라졌다.

지희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말없이 돌아섰다.

그 눈빛 속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

---

밤의 도로는 길고 조용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가로등 불빛이 차 안을 번갈아 비췄다.

깜빡이는 불빛마다 세 사람의 얼굴이 잠시씩 드러났다.

말없이 핸들을 잡은 지아, 창가에 시선을 둔 지희, 그리고 팔에 붕대를 감은 독고춘.

“오빠, 진짜 병원에 안가봐도 돼요?”

지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짧은 대답.

그는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아가 독고춘과 지희를 힐끔 봤지만 괜히 끼어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조금 뒤, 지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명이 가연이쪽으로 떨어지는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는 눈이었다.

“...감.”

“감으로? 그게 다에요?”

“...그냥.”

“...그냥?”

그녀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가연이 바로 옆에 저도 있었거든요? 그 조명이 저한테 떨어졌으면 어쩌려고요?”

"...밀쳤겠지."

지희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다시 얼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지아가 뒤를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자자~ 와아, 분위기 참 무겁다. 오늘 진짜 다들 고생했어요! 사고도 있었지만...그래도 아무 일 없었잖아요? 다행이에요, 그쵸?”

지희는 작게 미소를 지었고, 독고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지아가 일부러 더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 오빠가 슈퍼맨인줄 알았다니까요? 막 날라다녀~ 참! 그리고 오늘 뉴스에 나올지도 몰라요! ‘신참 매니저, 스타 구하다!’ 뭐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갑자기 잘나가는 스타가 되는 전개! 어? 이 장면 어디서 본거 같은데?”

“그만해, 지아. 진짜 그럴거 같아서 무섭잖아.”

지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렸지만, 그 웃음에는 어딘가 힘이 없었다.

그때, 독고춘의 시선은 불현듯 창밖에 멈췄다.

도로 옆 가로수 사이, 희미하게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 한 줄기.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지희와 지아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도심의 불빛이 스쳐 지나가며 그 검은 형체를 잠깐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그들의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아가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진 그를 보며 말했다.

“왜 그래요?”

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기분이 묘하군.”

지아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묘한 기분이요? 그게 어떤 기분? 고양이 같은 기분?”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독고춘의 눈빛은 웃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는 이제 세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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