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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스칼렛 플레임
나는 어떻게 정원으로 돌아온 걸까? 남동생도 마침 술병을 옮겨 들고 나왔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물었다.

“선우는?”

동생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아까 실수로 술병을 깨서 치우는 중이야. 금방 돌아올 거야.”

나는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대체 얼마나 수없이 거짓말을 해왔길래 이토록 태연하게 둘러댈 수 있을까.

이제 정말 단 1초도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피곤해서 먼저 갈게.”

차에 타기 전, 나는 내 품으로 기르다시피 했던 동생에게 마지막 눈길을 보냈다.

차 문을 닫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가는 길에 차선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왜 혼자 집에 갔어? 다음에 꼭 같이 가. 너무 걱정되잖아.]

하지만 동시에 민채원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우 방금 은지 씨 버리고 나랑 섹스하러 왔어요. 은지 씨가 너무 보수적이라 지루하대요. 별 재미가 없다나 뭐라나.]

둘의 메시지에 나는 일절 답장하지 않았다.

가장 속상한 건 동생이 커버 치려고 보낸 문자 내용이었다.

[나 오늘 매형이랑 끝까지 달리기로 했어. 여기서 자고 갈게,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순간,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남자.

어린 시절부터 나의 손으로 길러온 하나뿐인 남동생.

지금 나는 마치 한 편의 코미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쓱 닦아냈다.

더 이상 가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울고 싶지 않았다.

차선우도, 내 친동생도...

방에 돌아온 나는 그동안 모아둔 차선우의 외도 증거들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결혼기념일 당일.

차선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해 정성껏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여보, 결혼기념일 축하해! 오늘은 장미 정원 가서 지내자. 오늘 밤이면 네가 보고 싶어 했던 장미 꽃밭 실컷 보게 될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 대신 서랍에 미리 준비해둔 이혼 합의서를 꺼내 밀었다.

“사인해.”

이혼 합의서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넘겨두었더니 차선우는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 들고 바로 사인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뭔지 확인도 안 해?”

이 남자가 태연하게 답했다.

“시험관 시술 조정안이겠지 뭐. 예전에도 시험관 실패할 때마다 이런 서류에 사인했잖아.”

나는 USB를 꽉 잡고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차선우가 이혼을 거부할까 봐 일주일을 묵묵히 견디며 그의 외도 증거를 하나씩 모았다.

그가 이혼 합의서에 서명을 망설일 때 보여주려고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단숨에 사인해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시험관 시술 조정안에도 차선우는 꼼꼼히 확인하고 사인했었다.

그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저녁에 돌아와서 함께 기념일을 보내자고 약속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뒤, 짐을 챙겨 홀로 병원으로 향했다.

가만히 배를 쓸어내리는 손끝이 떨리고 목구멍이 메어왔다.

“아가야, 미안해. 네 아빠한테 기회를 여러 번 줬는데 한 번도 안 잡았어.”

의사는 검진을 마치고 다시 한번 내게 확인을 요청했다.

“태아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정말 포기하실 건가요?”

“네. 지울 겁니다.”

담당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시험관 시술을 그렇게 여러 번 하고 어렵게 찾아온 아기인데 지금 포기하시면 나중에 다시 아이를 갖기 어려울 겁니다. 첫 임신 때 보약을 잘못 먹어 유산되지만 않았어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요...”

나는 충격받은 얼굴로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지난번 유산이 보약 때문이었다고요?”

이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분이 말씀 안 해주셨나 보네요.”

차선우도 알고 있었다니!

나는 머리가 하얘지고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첫 임신 때, 나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아무것도 섣불리 먹지 않았다.

오직 차선우의 어머니가 매주 보내주신 보약만 먹었는데... 먹기 힘든 보약은 매번 차선우가 어르고 달래야만 겨우 삼킬 수 있었다.

태아 심정지는 그저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했다.

유산으로 몸이 상해서 할 수 없이 시험관 시술을 하는 거로 여겼는데...

지난 수년간 차선우는 내가 죄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를 잃은 것이 내 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왜 정작 그의 어머니가 준 보약 때문에 유산이 된 거라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수면 마취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뜬 것은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산부인과 앞을 지나던 중,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차선우가 민채원과 함께 진료실을 나서고 있었다.

“선우야, 나 아까 배가 너무 아파서 죽는 줄 알았어.”

차선우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는 한 너랑 아이는 아무 문제 없어.”

민채원은 그의 품에 기대며 마침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은 승리감에 가득 차 있었고 목소리도 한 톤 높아졌다.

“그럼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지?”

차선우가 잠시 침묵하자 그녀는 애교 조로 속삭였다.

“은지 씨랑 앞으로 몇 번이고 기념일 보낼 테지만 우리 아기는 이제 곧 태어날 거잖아.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길까 봐 두려워.”

한참 뒤, 차선우는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남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내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모두가 차선우가 오늘 밤 나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보낼 거로 알고 있지만, 이 남자는 결국 나를 홀로 남겨두고 민채원에게 향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차선우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널 위한 서프라이즈 이제 다 준비됐어.]

곧이어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탑승 전, 나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기념일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비했던 상자 안에 그 휴대폰을 넣고 지인을 통해 차선우에게 돌려보냈다.

그가 직접 골라 내게 선물했던 붉은 리본. 이제 나는 그 리본을 우리의 끝을 알리는 결별의 상자에 매듭지어 묶었다.

결혼기념일 밤, 장미 정원에는 때맞춰 불꽃이 피어올라 어둠을 환하게 갈랐다.

별빛 쏟아지는 하늘 아래, 축하의 함성과 잔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지만 나는 캐리어를 끌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탑승구로 걸어 들어갔다.

더 이상 뒤돌아볼 가치도 없었다.

비행기가 밤의 장막을 뚫고 솟아오르는 순간, 장미 정원 한가운데 나를 위해 비워두었던 자리만이 휑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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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던 날, 꽃이 피었다   제12화

    그 후 반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었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는 어느덧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이 한 명 생겼다.그사이 한번 귀국해서 차선우와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이 인간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통화 이후 놀랍게도 이혼에 동의했다.더욱이 그는 이혼 합의서를 다시 작성하며 대부분 재산을 내게 넘겨주었다.돈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서명이 담긴 서류에 내 이름 석 자를 적었다.차선우를 만난 날,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앙상하게 뼈만 남을 지경이었다.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게 뻔하지만 이제 더는 나랑 무관한 일이었다.내 곁에 선 서도겸을 본 순간, 차선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이제 내게도 새로운 사람이 생겼고 본인은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때 서도겸이 내 앞에 나서며 그를 막았다.한편 나는 귀국한 참에 동생을 보러 갔다.그가 민채원을 밀쳐 산모와 아이 모두 죽게 만들었고 결국 고의 살인죄로 징역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남동생은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자마자 흥분해서 달려들었다.전화를 받으니 동생의 흐느낌이 들려왔다.“누나... 내가 정말 잘못했어. 이제 여기서 달게 벌 받고 살아. 용서해달라는 말은 안 할게. 다만 앞으로도 나를 동생으로 기억해주고... 가끔이라도 면회 와주면 안 될까?”어쨌거나 내가 손수 키운 동생이었기에 차선우에게 했던 것처럼 냉정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앞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다닐 거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러 올게.”이혼을 마치자 서도겸은 나보다 더 기뻐했다.“우리 은지 드디어 이혼했네! 나도 이제 정식으로 대시할 수 있는 건가?”그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고 나 역시 그 모습에 전염된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다시 반년이 흘렀다. 나는 천천히 서도겸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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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도시마다 일주일씩 머물고 다음 도시로 떠나는 일정을 반복했다.차선우의 정보는 늘 한발 늦어 번번이 나와 엇갈렸다.하지만 신기하게도 서도겸은 언제나 나의 다음 행선지를 정확히 알아내고 나타났다.어느덧 나도 서서히 그의 존재에 익숙해져 갔다.심지어 내가 가고 싶은 도시를 먼저 말하고 함께 여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동안 차선우는 끊임없이 번호를 바꿔가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진절머리가 나려던 참에 나는 마침내 그의 전화를 받아줬다.전화기 너머 차선우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가득했다.“여보세요? 여보, 드디어 내 전화 받았네! 내가 다 설명할게...”나는 그의 말을 무정하게 끊었다.“또 그딴 얘기나 할 거면 끊어 그냥. 법원 소장 받았지? 최대한 빨리 이혼하자.”차선우의 목소리가 떨려왔다.“이혼 안 하면 안 돼?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그래서 뭐? 이제 와서 사과하면 죽은 두 아이가 살아 돌아와? 네가 민채원이랑 잔 게 없던 일이 돼? 이혼 말고는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목소리만 들어도 토 나오니까!”말을 마친 나는 전화를 끊었다.고개를 돌리니 서도겸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그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수제 초콜릿 한 조각을 내게 건넸다.“이 동네 초콜릿이 유명해. 한번 먹어봐.”나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화제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도겸 씨, 나랑 선우 일이 SNS에 쫙 깔렸으니 도겸 씨도 다 알고 있겠죠? 난 이제 나이도 적지 않고 한번 다녀온 여자예요. 도겸 씨는 결혼도 안 했으니 나보다 훨씬 젊고 예쁜 여자들 충분히 만날 수 있다고요.”서도겸은 초콜릿을 내 입안에 쑥 밀어 넣었다. 진하면서도 살짝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하지만 그 여자들은 네가 아니잖아. 지난 일은 이미 다 지나갔어. 여태껏 결혼 안 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미 결혼했기 때문이었어. 놀랍게도 그 사람은 이제 이혼했고 난 또다시 다가갈 기회가 생긴 거지.”순간 나는 마음이 설레고 코끝이 찡해졌다.“은지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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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던 날, 꽃이 피었다   제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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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던 날, 꽃이 피었다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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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던 날, 꽃이 피었다   제7화

    하지만 집에는 가정부만 보일 뿐 안은지의 그림자도 찾기 힘들었다.“은지는요?”당황한 차선우의 외침에 가정부가 놀라 되물었다.“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사모님 외출하셨는데 여태껏 안 돌아오셨어요. 아 참, 도련님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해뒀다고 하셨어요.”안은지가 마련한 서프라이즈는 아기방에 있었다.그곳은 차선우가 안은지와 함께 첫 아이를 기다리며 손수 꾸몄던 공간이었다.하지만 아기가 떠난 후, 안은지는 차마 그 방에 들어서지 못했고 결국 여태껏 방치되었다.차선우는 단번에 탁자 위에 놓인 봉투를 발견했다.무심코 지나치려다 정리함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쏟아져 나온 수십 개의 주사기가 바닥을 굴렀다.몇 년간 그가 모아온 주사기들, 안은지가 겪었던 고통이 모두 자신 때문임을 잊지 않으려고, 평생토록 그녀에게 잘해주리라 다짐하며 수집했던 것들이었다.차선우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안에는 일주일 전 날짜가 찍힌 초음파 사진이 들어있었다.그는 숨이 점점 가빠지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안은지가 임신을 하다니!그녀가 이토록 화를 내고 자신을 피하려 한 것까지 전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이 아이는 차선우와 안은지가 무려 5년이나 간절히 기다려온 선물이었다.차선우는 또다시 그녀에게 전화했지만, 여전히 수신음만 들릴 뿐이었다.그는 메시지를 보내고 또 보냈다.사과하는 내용, 변명하는 내용, 애원하는 내용까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일관된 침묵이었다.차선우의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갈 때쯤,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방금 왜 전화 끊었어? 이미 언론에 다 얘기해놨으니 은지한테 촬영 협조하라고 해. 채원이는 당분간 집에만 있고 더는 얼굴 내비치지 않을게. 조용히 이 고비만 넘기면 돼.”“어림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저 이제 은지 속상하게 할 생각 없어요!”차선우의 어머니는 잠시 굳어졌다.“걔가 애를 못 낳으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우리가 계속 아이가 안 생기는 게 결국 다 엄마 때문인 건 잊었어요?”차선우는 처음으로 어머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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