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씨 가문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JS 픽처스 보안은 그가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해남에 인맥도 없던 도정국은 도아린을 한 번 만나기는커녕 연성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돈도 마련하지 못했다.하지만 아마도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긴 탓일까, 시청 단속을 피하던 중 도정국은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차 주인은 그에게 차량 접촉 사고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새롭게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약간의 돈까지 쥐여 주었다.그 돈으로 그는 해남에서 연성까지의 차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도정국은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 앞에서 내린 후, 도아린에게 차비를 내라고 문을 두드렸지만 이내 일북에게 쫓겨나고 말았다.도정국은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았기에 이웃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다.그가 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자 금세 호기심 많은 이웃들이 모여들었다.“어이, 도 씨! 좋은 데서 노후를 보낸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 이런 모습이야?”“딸이 이제 모건 그룹의 회장이라면서? 앞으로 좋은 날만 남았겠구나. 아린이 같은 딸을 두다니,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나 보네.”그 말에 도정국의 얼굴이 벌게졌다.“걔가 그렇게 능력이 있을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얼굴 붉히지 말걸! 그래도 내가 키웠으니 아비에게 보답을 해야지!”“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라 했어. 이제 이 아비를 돌볼 때도 됐지.”도정국은 다시 한번 문을 세게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아린아! 나와서 차비를 내거라! 아빠 왔는데, 나와도 안 보냐?”쿵쿵쿵!하얀 카이엔이 문 앞에 멈췄다.육하경이 차에서 내리며 둘러싼 사람들에게 말했다.“왜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거죠? 이곳은 개인 주택입니다.”도정국은 뒤를 돌아보며 육하경을 올려다봤다.그는 육하경을 모르지만, 그 하얀 카이엔은 알고 있었다.그 차는 도아린이 결혼하기 전, 배건후가 선물한 차였다.“너 왜 내 딸 차를 타고 있어? 아린이랑 사귀려면 아버지인 내가 먼저 동의하는지 물어봐야지!”그 말과 함께 도정국은 거만하게 고개를
공중에서 휘두르던 주먹은 육하경의 손에 제지되었고 도정국이 아무리 힘을 줘도 주먹을 뺄 수 없었다.육하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의 그 혼외자 아들은 탐욕스럽기 그지없었어. 당신한테서 돈을 빼먹지 못하자 도아린에게 투자 사기를 치려고 했지. 다행히 그놈의 악행은 이미 대가를 치렀고 남은 인생은 감옥에서 보내게 될 거야! 당신은 도아린 앞에서 반성하기는커녕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 정말 얼굴이 두꺼워도 분수가 있어야지.”“다 헛소리야!”도정국은 손목이 부러지고 나서도 치료를 받지 않아 뼈가 뒤틀려 있었고 평소에도 힘을 쓸 수 없었다.육하경이 그 손을 꽉 비틀자 손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어쨌든 나는 도아린의 아빠야! 걔는 내 노후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육하경이 한 손으로 도정국을 제압하며 주변 이웃들에게 말했다.“여러분, 당장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여기서 헛소리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도정국은 고통스러워 몸을 움츠리며 다른 손에 장갑을 물어뜯고 손을 높이 들었다.“신고해! 내 손은 도아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경찰을 부르라고, 나는 도아린을 노인 학대로 신고할 거야!”그 말에 신고하려던 이웃들이 잠시 망설였다.도정국의 손은 그의 말대로 모두 변형되어 있었고 손바닥은 부풀어 올라 괴상해 보였다.그의 비양심적인 행동은 불법은 아니었고 도아린도 피해자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정했지만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었다.육하경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그 손은 당신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써서 갚지 못해 빚쟁이들에게 맞고 부러진 거잖아. 그게 아린 씨 탓이라고?”얼굴이 하얗게 질린 도정국이 옆에서 신고를 하는 이웃을 보자 전화를 막으려 달려들었지만 이내 육하경에게 붙잡혔다.“알았어. 다시는 도아린을 찾지 않을게. 이거 놔줘!”“더 이상 당신이 아린 씨를 괴롭힐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그들이 다투는 사이, 도아린이 문을 열고 일북의 보호를
“들었지! 이거 안 놔?”육하경이 내키지 않은 듯 서서히 힘을 빼자 도정국은 급히 집안으로 숨어들려 했다.하지만 그가 발을 내딛자 일북이 다시 문을 막아섰다.“비켜! 내 딸이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 나보고 여기서 살면서 나한테 노후를 보장해 주겠다고 하잖아!”일북은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문을 막았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그를 보며 도정국은 마지못해 도아린을 향해 따졌다.“너 이렇게 많은 이웃들 앞에서 나를 돌봐주겠다고 말해놓고 왜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는 거야?”도아린이 미소를 지으며 이웃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방금 그런 말 했나요?”“아니!”“우리는 못 들었는데.”도정국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이 되어 이를 악물었다.“그러면 최소한 가계 하나는 줘야지. 내가 직접 운영해서 내 힘으로 먹고살게!”경찰차 소리가 멀리서 들리며 점점 가까워지다 대문 앞에 멈췄다. 몇 명의 경찰들이 내리며 노트를 들고 다가왔다.“누가 신고했습니까?”“저요!”도아린이 대답했다.“도정국 이 사람은 25년 전에 해남에서 아이를 납치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 피해자입니다!”“도아린!”도정국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이 악질년! 내가 널 데려와 키웠기에 너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야. 그런데 아비를 이렇게 배신하다니!”“뭐가 배신이야!”도아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정국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내 친부모님에게서 나를 훔쳐 갔고 내 어머니는 그 일로 20년 넘게 시름시름 앓고 있어. 그러고도 내가 당신한테 감사해야 해?”도아린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고, 도정국은 그 시선을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당신은 나를 키운 게 아니라 나를 재벌 집에 시집 보내 이득만 취하려 했을 뿐이야. 내가 지현이 얼굴을 봐서라도 더 이상 당신을 탓하지 않으려고 했어. 그것도 모르고 당신은 그 허황된 욕심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며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 했지. 어떻게 그런 낯짝으로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도아린은 쏘아붙인 뒤 경찰
“뭐라고요?”“호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이 식중독에 걸렸어요. 그 일로 연회도 줄줄이 취소되면서 회사에 큰 손해가 발생했죠.”도아린의 놀란 표정을 보고 육하경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정말 몰랐나 보네요. 이 일은 강재민이 계획한 게 틀림없어요.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고객들을 만나 사과하려 온 거예요. 그쪽에서 우리의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할 텐데...”도아린이 여전히 믿기지 않은 듯했다.“강재민 씨요?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강재민 씨가 고집이 세긴 하지만 이런 수단을 쓸 사람은 아니에요.”“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요?”육하경이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주머니 속에 있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고 화병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잠시 후, 육하경은 도아린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강재민이 엠파이어 빌딩의 고객을 적잖이 뺏어온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게 다 정당한 수법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모건 그룹의 해외 프로젝트도 강재민한테 뺏겼다면서요. 과연 다 올바른 방법이었을까요?”도아린이 뭐라고 설명하려던 찰나, 뒤에서 남자의 냉랭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내 능력으로 얻은 사업인데 뭐가 문제죠?”강재민이 도아린 옆에 다가와서 육하경을 향해 조롱하는 눈빛을 보냈다.“마치 배건후와 당신, 육씨 집안은 편법 없이 사업을 한 것처럼 말하네요.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더니 실력이 안 되니 아린 씨 앞에서 우는소리나 하고. 정말 부끄럽지 않아요?”육하경의 세련되고 온화하던 얼굴에 순간 경련이 일었고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그러다 이내 다시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강재민 씨가 그렇게 말하면 저도 더 이상 설명할 필요 없겠죠.”하지만 강재민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다시 도발해 왔다.“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뿐이에요.”그리고는 손을 뻗어 도아린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
“나는 더 이상 도정국이 아린 씨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강재민이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긴 한데, 내가 속이 좁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어요.”두 사람은 같이 거실로 향했다. 도아린은 강재민이 아직 밥을 먹지 않았다는 걸 알고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였다.“도지현은 누가 뭐래도 도정국의 친아들이에요. 만약 도지현이 그 아비와 계속 만나다 나쁜 물이라도 들면 아린 씨만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난 그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려고 한 거고요.”도아린은 옆에서 얼쩡거리는 강재민을 밀어내고 계란말이를 하기 시작했다.“육청아는 만나 봤어요?”도아린의 물음에 강재민은 벽에 기대서 고개를 끄덕였다.“변호사가 만나고 왔어요. 불법 장기 매매는 확정된 죄라고 하더군요. 왜요? 그 여자에게 다른 죄도 더 씌울 생각이에요?”도아린이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재민 씨가 방금 말했잖아요, 나한테 할 말 있다고. 그래서 난 육청아와 육씨 가문과 연관된 줄 알았어요.”강재민도 웃으며 도아린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아린 씨, 육씨 가문을 끌어내릴 생각이에요?”도아린이 팔꿈치로 강재민을 밀어내고 냉장고 앞에서 케첩을 꺼냈다.“재민 씨가 계속해서 모건 그룹을 공격하는데, 육씨 가문을 겨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그녀는 냉장고 문을 닫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 매혹적이고 잘생긴 얼굴을 보며 차분하게 이어 말했다.“당초에 육청아를 곁에 둔 것도 언제든지 육씨 가문을 끌어들이려고 준비한 거겠죠.”냉장고 문이 닫히면서 소리가 작게 났고 강재민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그는 도아린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느긋하게 벽에 기대어 있었다.“통찰력이 정말 대단한데요. 주작의 팀장 자리는 아린 씨가 맡아야 하는데 말이에요. 내가 추천할까요?”도아린은 대답 대신 라면 냄비를 식탁에 올려놓은 후 일북을 불렀다.“얼른 와서 같이 먹어!”강재민은 이 경호원이 도아린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아
“아가씨...”일북이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그가 뭔가 말하려는 듯 멈칫하자 도아린은 이내 자신의 손을 빼며 대답했다.“내 이익에만 해가 되지 않으면 나는 재민 씨를 탓하지 않을 거예요.”강재민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집을 나서는 도아린과 일북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미소엔 어느새 확신이 담겨 있었다.두 사람은 차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갔다. 장을 보며 쇼핑 카트를 밀다가 일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소식이 들어왔어요. 신 대표가 우정윤이 전에 약을 사 들고 갔던 그 아파트 단지에 갔다가 한 30분 뒤 다시 나왔다고 해요.”“혼자?”“여자 한 명과 함께요.”“한 비서야?”일북이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꺼내 촬영한 장면을 도아린에게 보여주었다.그 여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신지훈에게 가려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가 조금 어색해 보였다.일북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강재민과 손잡을 생각이에요?”“그렇다기보다 그냥 한 번 시험해 볼 생각이야.”이미 육청아와 육씨 가문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육하경도 육씨 가문의 일원이었기에 도아린은 이 사건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그 후, 일북은 계속해서 장을 보고 도아린은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갔다.신지훈은 그녀가 회사에 도착한 걸 알자마자 곧장 문서를 들고 찾아왔다.“도 대표님. 이 프로젝트에 대해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도아린은 그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겉으로는 뭔가 자료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청룡이 메시지를 보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연성의 장기 밀매 조직이 적발되고 육청아가 잡힌 후로 청룡은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말씀하세요.”도아린은 휴대폰을 치우고 진지하게 신지훈을 바라보았다.신지훈은 먼저 이 프로젝트의 장단점을 분석한 뒤, 농담처럼 말했다.“그런데 정말 강재민 씨와 프로젝트를 놓고 경쟁할 생각이에요?”“신 대표님,
신지훈이 떠난 후, 도아린은 바로 레드 후드와 드래곤에게 연락을 했다.자신이 청룡과는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그 두 사람은 아마 연락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다음 날, 육청아는 심문 중에 무심코 2년 전의 한 사건을 언급했다.2년 전, 고속도로에서 가교가 무너져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고 책임은 원래 가교 설계가 불합했는데 악천후까지 겹쳐서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지어졌었다.하지만 사실 가교가 무너진 주된 원인은 불량 건축 자재 때문이었다.그 당시 자재를 구매하고 승인한 사람은 직위가 정지되었고 사건이 잦아든 후에는 육원 그룹의 고위층에 입성했다.육청아가 바로 그 사건을 덮기 위해 도움을 주고 육원 그룹을 도와 사건을 잠재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다.“또 불량 자재라니! 너무 우연한 일이 아닌가?”도아린은 커다란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말했다.일북은 그녀의 뒤에 서서 한참 생각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강재민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배건후의 요양원 개업 전 검수가 불합격이었던 것도 모두 건축 자재와 관련이 있어요! 이 모든 육씨 가문과 관련이 있을까요?”“육씨 가문이라... 그 사람들이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아.”도아린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육씨 가문과 육원 그룹은 주로 호텔, 외식업, 의류 산업 등을 하고 있었고, 건축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단순히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예전에 있었던 일이 까발려지는 게 두려워서일까?”“육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하경 씨?”도아린은 육하경이야말로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사람은 이제 막 세인트존스 호텔을 맡았으니 이전의 육씨 가문의 일과는 상관이 없는 듯해.”하지만 육청아가 다른 건 말하지 않았고 2년 전 사건만 언급한 것은 오히려 육하경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일북이 뭐라 더 말하려던 그 순간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서서히 맞은 편 주민구역으로 들어갔다.
“왜요? 왕진을 가는 것마저도 신 대표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도아린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신지훈은 살짝 당황해서 팔에 소름이 돋았다.그는 백미러를 통해 유선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그럴 리가요...”유선미는 어색하게 웃었다.“저희 진료소에서 한 번 사고가 난 이후로는 더 이상 왕진을 하지 않아서 그래요. 이번에도 특별히 원장님께 허락을 받고 왕진을 한 거라서요. 제가 신 대표님께 크게 신세를 졌었던지라...”“정 그렇다면 저도 무리하게 부탁하지 않을게요. 다만...”도아린은 유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신 대표님께서 아주 중요하게 분이시거든요.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쪽 진료소가 감당하기는 어려울걸요?”유선미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사실은...”신지훈이 막 해명하려는 순간, 도아린의 전화벨이 울렸다.“잠시만요.”도아린은 그의 말을 끊고 전화를 받았다.“도착했어? 그래, 알겠어. 지금 갈게. 좀만 더 앞으로 와.”그녀는 신지훈을 바라보고는 통화를 이어 나갔다....통화를 마친 도아린이 입을 열었다.“운전기사가 데리러 왔다고 하네요. 전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 했고 신지훈은 어쩔 수 없이 차를 갓길에 세웠다.도아린이 떠난 후, 유 간호사님은 급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신 대표님. 아까 순간적으로 당황해 버려서...”신지훈은 백미러를 통해 길가에서 전화를 받는 도아린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신지훈은 입술을 깨물더니 유선미를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도아린이 이쪽으로 지나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도아린은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일북은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신지훈이 나타나자 검은 옷을 입은 마스크 맨도 모습을 드러냈다. 일북은 몰래 그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