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카일은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다.“…….”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아직도 머릿속이 시끄럽게 울리는 기분이었다.꿈속에서 보았던 광경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고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마치 몸과 영혼이 잠시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진 듯한 기묘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윽.”카일이 미간을 찌푸리자 아르페르트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툭—거대한 주둥이가 카일의 어깨를 밀었다.“……아르페르트?”아르페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카일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푹.카일은 얼떨결에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아르페르트가 그런 카일을 가만히 내려다봤다.‘…….’잠시 침묵하던 그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보였구나…… 영혼에 새겨진 기억을.’“……영혼에 새겨진…… 기억?”카일이 멍하니 되물었다.아르페르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흥!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조율자가 되었어야 할 너다. 그러니 평범할 리가 있나.’“…….”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손끝이 떨리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분명 자신의 손인데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던 카일은 무언가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아르페르트가 그런 그를 내려다봤다.‘……좀 더 자거라.’“…….”‘네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영혼에 새겨진 기억을 본 반동이다.’카일은 잠시 아르페르트를 바라봤다.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잠들면…… 또…….”말끝이 흐려졌다.아르페르트는 카일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차린 듯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그럴 리 없다.’“……?”‘중요한 부분만 보여줬을 테니.’“…….”카일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었다.아르페르트는 그런 카일을 잠시 바라봤다.그러더니 거대한 몸을 조금 움직였다.스윽—“……?”카일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
카일은 아주 오래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꿈속의 자신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는 않았다.그리고 언제나 곁에는 두 존재가 있었다.라일라와 아르페르트.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어느 순간에는 드넓은 들판을 걷고 있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낯선 숲과 산을 지나고 있었다.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저—그들과 함께 어디든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라일라가 무언가 이야기하는 모습은 보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주변의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마치 소리 없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그렇게 수많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어느 순간.“…….”카일은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있었다.언제 왕이 되었는지, 어떻게 이곳에 서 있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그저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을 뿐이었다.곁에는 여전히 라일라가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라스가 서 있었다.자신의 곁에는 레시아와 카이가 있었다.모두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어느새 눈앞에는 전쟁터가 펼쳐져 있었다.카일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수많은 병사가 움직이고 있었고,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만이 보일 뿐이었다.그러던 순간—“……?”문득 시야가 이상해졌다.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풍경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카일은 눈을 깜빡였다.하지만 흐려진 시야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그때였다.레시아가 갑자기 바람을 일으켰다.그리고 다급하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근처에 있던 카이 역시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했다.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카일은 의아했다.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레시아가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달려왔다.그녀의 입술이 빠르게 움직였다.무언가를 외치고
창고를 나온 라일라는 다시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어느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카일의 방과 마주 보고 있는, 바로 자신의 방이었다. “…….” 라일라는 잠시 문을 바라보다 천천히 열었다. 끼이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망이었던 방은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흐트러졌던 가구들은 제자리를 찾았고, 어질러졌던 물건들도 모두 정돈되어 있었다. 라일라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 황금빛 눈동자가 천천히 방 안을 훑었다. 창가에 놓인 소파. 가구의 색상과 배치. 그리고 작은 장식품들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익숙했다. 천 년 전 자신이 사용하던 방과 똑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던 가구의 색도, 위치도, 방의 분위기까지. 어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후후.” 라일라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창가에 놓인 소파로 다가가 천천히 앉았다. 사락— 편안하게 몸을 기댄 라일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조금 전 창고에서 발견했던 낡은 일기장이 떠올랐다. 카이프가 남긴 일기장. 천 년 전, 그가 일기장을 작성하고 가장 먼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순간이었다. 그 안에 적혀 있던 문장들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나여.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드디어 마지막 순례가 시작되었겠지. 기억이 없다고 해서 억지로 떠올리려 하지 마렴. 라일라 또한……. 네가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길 원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영혼으로 이어진 반려니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문득 느껴지는 순간이 있겠지. 네가 지금껏 느껴왔던 감정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순례가 완전히 끝나면……. 그저 원래 돌아갈 자리로 돌아갈 뿐이야. 그러니 지금의 인생을 즐기렴. ……나여.』 “…….” 라일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
라일라는 한동안 손에 들린 낡은 일기장을 바라봤다.“…….”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표지는 여전히 온전했다.손끝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오래전 자신이 직접 걸어두었던 훼손 방지 마법이었다.“후후…….”라일라가 손가락으로 표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그리고 가볍게 손끝을 움직였다.우우웅—희미한 황금빛이 일기장을 감쌌다.오래전 걸어두었던 훼손 방지 마법이 더욱 견고해졌다.마법이 완성되자 라일라는 만족스럽게 웃었다.“후후…… 잘 보관해둬야겠구나.”그녀가 일기장을 레시아에게 건넸다.“레시아, 부탁하마.”“네, 라일라 님.”레시아가 일기장을 받아 들었다.그러다 문득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그런데…….”“응?”“안 펼쳐보셔도 괜찮으시겠어요?”라일라가 눈을 깜빡였다.그러더니 작게 웃었다.“후후…….”“……?”“이미 알고 있단다.”“네?”라일라의 황금빛 눈동자가 일기장으로 향했다.“그 녀석이 가장 먼저 보여준 게 나였으니.”“……아.”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라일라는 더 이상 일기장을 바라보지 않았다.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천 년 전, 카이프가 직접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기록이었으니까.레시아는 일기장을 들고 창고 안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남아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물었다.“그런데 라일라 님.”“음?”“카일 님께는 안 물어보실 건가요?”“무엇을 말이냐?”“일기장 말이에요. 어떻게 가지고 계셨는지라든가…….”라일라가 잠시 레시아를 바라봤다.그러더니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후후…… 물어볼 필요가 있겠느냐?”“……네?”“저것을 카일이 가지고 있었다는 건, 이미 펼쳐보았다는 소리일 테니.”레시아가 손을 멈췄다.“……아.”라일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저 안에 적힌 글은 신의 언어란다.”“신의 언어요?”“그래.”라일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인간이 아무리 들여다본들 읽을 수 없는 글이지.”“…….”“하지만 카일이라면 다르지 않겠느냐?
카일의 방을 나온 라일라는 천천히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복도를 지나며 기존에 설치해둔 결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공간이 부족해 보이는 방에는 확장 마법을 덧씌웠다.딱—가볍게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황금빛 마력이 벽과 바닥을 타고 퍼져나갔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녀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라, 라일라 님…….”“음?”“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후후. 괜찮단다. 그저 조금 손보는 것뿐이니.”라일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하지만 시녀들이 보기에는 결코 '조금'이 아니었다.방 하나의 크기가 순식간에 넓어지고, 복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결계가 겹겹이 형성되고 있었다.라일라는 그런 시녀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창고는 어디에 있느냐?”“아! 이쪽입니다!”시녀들이 황급히 앞장섰다.잠시 후.라일라가 도착한 곳은 바이소 대공저의 창고였다.그곳에서는 레시아가 한창 선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사아아—부드러운 바람을 따라 수많은 상자와 물건들이 허공에 떠 있었다.레시아는 손끝을 가볍게 움직이며 물건들을 차례차례 내려놓았다.“어머, 라일라 님?”“레시아.”“카일 님은요?”“잠들었단다. 아르페르트가 곁에 있으니 괜찮을 게야.”“후후. 그렇군요.”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그런데—“……?”그녀의 걸음이 멈췄다.황금빛 눈동자가 창고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뭐냐?”한쪽 벽면에는 몇몇 장식품과 보석함이 놓여 있었다.그러나 그뿐이었다.창고의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라일라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허…….”그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이게 전부란 말이냐?”마침 뒤따라 들어오던 테일이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그는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그게…….”라일라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말해보거라.”“대공 각하께서…….”테일이 잠시 말을 골랐다.“창고에 있던 보석과 예술품 대부분
카일이 잠든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라일라는 여전히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카일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라일라는 잠든 카일을 내려다봤다.이제야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후후…….”작게 웃은 라일라가 조심스럽게 손을 빼냈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덥석.“……?”다시 손이 붙잡혔다.라일라가 고개를 돌렸다.분명 조금 전까지 깊이 잠들어 있던 카일이 어느새 눈을 살짝 뜨고 있었다.하지만 은빛 눈동자는 여전히 흐릿했다.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제대로 초점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카일?”“…….”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라일라의 손을 붙잡은 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어딜…… 가……?”라일라의 황금빛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후후…….”그녀가 다시 침대 곁에 앉았다.“자거라. 잠깐 저택을 구경하고 오려는 것뿐이니.”“…….”카일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응?”“……그냥…….”말끝이 흐려졌다.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자신도 모르는 듯했다.하지만 붙잡은 손만큼은 놓지 않았다.라일라는 그런 카일을 가만히 바라봤다.그러다 작게 웃음을 흘렸다.“……이것도 변한 게 없어 좋구나.”“……?”카일이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무슨 뜻인지 물으려는 듯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라일라는 그의 남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괜찮단다.”“…….”“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자거라.”카일은 여전히 눈을 뜨려고 애썼다.그러나 약기운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느리게 깜빡이던 은빛 눈동자가 결국 다시 감겼다.“……라일라…….”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래. 여기 있단다.”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카일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스르륵.라일라를 붙잡고 있던 손에서도 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