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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10:27:39

"전화번호표는 따로 없고, 주문하시면 영수증 하단에 대기 번호가 크게 나옵니다."

태오의 엉뚱한 대답에 뒤에서 음료를 제조하던 연서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저 남자는 자기가 잘생긴 걸 전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천재적인 콘셉트일까? 손님들은 오히려 그 맹한 모습이 때 묻지 않고 순수해 보인다며 귀엽다고 난리를 쳤다.

매장은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연서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에스프레소 샷을 내렸고, 태오는 카운터에서 비주얼 담당 역할을 백 퍼센트 이상 해냈다. 매장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북적였지만 연서의 입꼬리는 귀에 걸려 내려올 줄 몰랐다. 텅 비어 있던 금고에 만 원짜리 지폐가 차곡차곡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폭풍 같았던 오후 업무가 모두 끝났고, 모든 재료가 완전히 소진되어 평소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문을 닫아야 했다. 연서는 카운터 의자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마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풍족했다.

반면 태오는 평생 처음 해보는 거친 육체노동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땀에 살짝 젖어 이마에 흐트러지게 붙은 머리카락마저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했다.

"태오 씨,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태오 씨 덕분에 우리 가게가 기적적으로 살았네."

연서는 진심 어린 고마움을 담아 시원하게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태오는 두 손으로 커피를 받아 마시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많이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사장님 밑에서 앞으로 더 열심히 배우고 싶습니다."

그의 진지하고 깊은 눈빛이 연서의 심장을 사정없이 쿡 찔렀다. 순간 연서의 가슴이 요동치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네 살이나 어린 파릇파릇한 알바생한테 설레는 건가? 연서는 급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이성을 붙잡았다. 정신 차려야 했다. 안 돼, 돈을 벌어야지 신성한 일터에서 연애를 꿈꾸면 안 된다.

바로 그때, 카페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덩치 큰 사내들이 무리 지어 들이닥쳤다.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은 매장 안을 무섭게 두리번거리더니, 카운터 구석에 서 있는 태오를 발견하고 일제히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도련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회장님께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장 본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우렁찬 사내들의 목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을 웅장하게 가득 채웠다. 연서는 빨대로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사방에 뿜을 뻔했다. 도련님? 회장님? 태오는 차갑게 미간을 찌푸리며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안 간다고 몇 번을 말해? 난 여기서 평범하게 내 힘으로 살 거야."

연서는 턱이 빠질 것 같은 표정으로 태오와 정장 입은 사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대박 알바생이 알고 보니 집을 뛰쳐나온 가출 재벌 3세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하고 드라마 같은 시추에이션인가? 연서의 평화롭고 소박했던 카페 사장 인생이 엄청난 금융 폭풍 속으로 대책 없이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들의 우렁찬 외침이 카페 라떼르의 사방 벽을 울렸다. 연서는 입을 벌린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초고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도련님? 회장님?

그렇다면 내 눈앞에 있는 이 어리숙하고 잘생긴 알바생이 진짜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소리인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출생의 비밀과 가출 소동이 왜 내 평범한 카페에서 펼쳐지고 있는 걸까?

사내들 사이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가슴에 달린 금빛 배지가 번쩍였다. 남자는 태오를 향해 다시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련님, 전무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이번 정략결혼 건은 회장님께서도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하셨으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략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태오의 아름다운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연서의 눈에는 그 찌푸린 미간마저 한 편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태오는 평소의 멍하고 순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서늘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사내를 받아쳤다.

"돌아가지 않겠다고 분명히 전했을 텐데요.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사업을 위해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실장님도 이만 물러가세요."

태오의 단호한 태도에 실장이라 불린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시선을 슬금슬금 돌려 카운터 뒤에 굳어 있는 연서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매서운 눈빛이 연서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연서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혹시 이 조그만 카페의 사장님이 도련님을 숨겨주고 계신 겁니까? 도련님을 충동질해 본가와 등지게 만든 배후가 이 여자입니까?"

남자의 거친 목소리에 연서는 억울함이 하늘을 찔렀다. 내가 배후라니? 난 그저 오늘 밀려든 손님들 때문에 영혼까지 털린 불쌍한 자영업자일 뿐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연서가 억울함을 호소하려 입을 여는 순간, 태오가 잽싸게 연서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태오의 넓은 등판이 연서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은은하게 풍기는 그의 향수 냄새가 연서의 코끝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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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브 옴니버스 10   156

    서윤은 도진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거칠고 흉터가 많았던 도진의 손은 매일 밤 서윤이 발라준 핸드크림 덕분인지 제법 부드러워져 있었다. 도진은 서윤의 따뜻한 손길에 가슴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을 느꼈다.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던 황제 자리를 내려놓고 선택한 평범한 삶. 처음에는 오직 서윤의 곁에 머물기 위한 거대한 거짓말로 시작된 춤이었지만, 그녀의 순수한 사랑은 도진의 가짜 옷을 진짜 인생으로 바꾸어 놓았다.이제 그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서윤을 지킬 수 있는 진짜 기사가 되었다.식사를 마쳐갈 때쯤, 도진은 품 안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서윤의 눈이 커졌다.“도진아, 이게 뭐야?”도진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햇살을 받아 눈부신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도진은 은테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28년 인생 중 가장 진지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서윤아. 15년 전에는 네 등 뒤에 숨어 울기만 하던 약골이었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네게 떳떳하지 못한 비밀을 가진 남자였어. 하지만 이제는 네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당당한 사람이 되었어.”도진은 반지를 꺼내 서윤의 약지에 조심스럽게 끼워주었다. 사이즈가 마치 맞춤처럼 딱 맞았다.“내 남은 인생이라는 가장 큰 비즈니스의 유일한 파트너가 되어줄래? 평생 네 앞에서는 안경 안 벗고, 네 눈물 닦아주는 착한 도진이로만 살게. 나랑 결혼해 줘.”도진의 진심 어린 프로포즈에 서윤의 눈가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닌 완벽한 행복의 눈물이었다. 서윤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도진의 품으로 와락 안겼다.“응! 당연하지, 이 울보야. 평생 내 뒤에 서서 나 지켜줘야 해.”“약속할게. 목숨 걸고 지킬게.”도진은 서윤을 품에 더 꽉 안아 통째로 들어 올렸다. 식당 안에서 지켜보던 철구와 사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 주방에서 나오던 영춘 아주머니도 훔치던 눈물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 러브 옴니버스 10   155

    도진의 고백에 서윤은 참지 못하고 빵 터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맑은 웃음소리에 도진의 긴장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서윤은 상자를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도진의 앞치마 깃을 부드럽게 정리해주었다.“와, 대표님이 직접 배달까지 오시고 영광이네요. 그럼 오늘 점심은 대표님 취임 축하 기념으로 내가 제일 맛있는 제육볶음 곱빼기로 대접할게요.”“고맙습니다, 서윤 씨. 아, 그리고…”도진은 주머니에서 소중하게 보관해두었던 비타민 사탕 두 알을 꺼내 서윤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앞으로 내 비즈니스는 평생 서윤 씨 하나뿐입니다. 내 모든 주식을 서윤 씨한테 양도할 테니까, 평생 내 곁에서 경영 자문 좀 해줘.”도진의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프러포즈에 서윤의 얼굴이 잘 익은 망고스틴처럼 붉어졌다. 서윤은 사탕을 꼭 쥐며 도진의 가슴팍에 살짝 머리를 기대었다.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도진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슬픔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소꿉친구를 향한 15년 만의 완전한 사랑만이 가득할 뿐이었다.두 사람의 따뜻한 실루엣 위로 식당 안의 구수한 냄새가 축복처럼 감돌았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 그들의 완벽한 해피엔딩뿐이었다.* 울보 소꿉남친의 완벽한 비즈니스따스한 봄 햇살이 새로 단장한 ‘영춘식당’의 투명한 통유리창을 통해 부드럽게 쏟아졌다. 재개발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식당은 이제 동네의 명물이 되어 있었다.깔끔하게 리모델링된 내부에는 세련된 원목 테이블이 놓였고, 한쪽 벽면에는 ‘청룡 무역 공식 지정 급식소’라는 위트 있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오전 11시 30분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문이 열리며 번듯한 셔츠 차림의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왔다.“안녕하십니까, 사장님!”이제는 어색함 없이 완벽한 직장인의 아우라를 풍기는 철구 대리와 사원들이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사원증은 더 이상 위장용 가짜가 아니었다. 진짜 열대 과일 수입 왕으로 거듭난 ‘청룡 무역’의 정 직원 증명서였다.“철구 씨, 어서 와요! 오늘도 제육볶음으로

  • 러브 옴니버스 10   154

    식당 문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원은 씁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법과 논리로는 결코 끼어들 수 없는, 15년이라는 시간과 지독한 순애보가 만들어낸 단단한 세계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주원은 자신이 이 싸움에서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해야 했다.도진은 참지 못하고 서윤을 제 품에 거칠게 끌어안았다. 등 뒤의 호랑이 문신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품은 따뜻했고 떨림은 간절했다.“서윤아, 나 진짜 변할게. 네가 싫어하는 짓 안 해. 합법적으로 살 거야. 진짜 무역 회사 사장 될게.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 줘.”서윤은 도진의 넓은 등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그래. 내 뒤에 숨던 울보가 내 앞에 서는 기사가 됐는데, 내가 어디 가겠어? 대신 약속해. 이제 내 앞에서는 절대 안경 안 벗기로.”“어, 약속할게. 절대 안 벗어.”도진은 서윤을 더 깊이 안았다. 빗속에서 두 사람의 실루엣은 하나로 겹쳐졌고, 거짓말로 시작된 위태로운 춤은 마침내 진짜 사랑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한 합법화와 해피엔딩을 향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호랑이의 아주 특별한 사직서비가 그친 강북의 아침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영춘식당의 깨진 유리창은 밤새 감쪽같이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골목길은 청소차라도 다녀간 듯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청룡파의 기동력과 자금력이 발휘된 결과였다.같은 시각, 청룡 빌딩 5층의 집무실. 강도진은 어제 서윤이 신신당부했던 대로 알이 굵은 은테 안경을 꾹 눌러쓴 채, 책상 위에 무거운 가죽 가방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조직의 모든 이권이 걸린 장부와 구역 대장이 들어 있었다.“형님… 아니, 팀장님. 진짜 다 넘기시는 겁니까?”철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에 걸린 청룡 무역 사원증이 눈물에 젖어 덜렁거렸다. 도진은 담담하게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착지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그에게 망설임 따윈 없었다.“그래. 삼거리파 놈들은 어제 부로

  • 러브 옴니버스 10   153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서윤을 향해 세상을 다 바칠 것처럼 미련하고 무모하게 구르고 있었다. 방법이 무역 회사 팀장에서 조폭 두목으로 바뀌었을 뿐, 도진의 세계는 여전히 이서윤이라는 단 하나의 태양을 축으로 돌고 있었다. “서윤아, 빨리 가야 돼! 저놈들 진짜 미친 자식들이야!” 주원이 서윤을 다그치며 뒷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서윤은 잡힌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안 가. 나 안 가, 주원아.” “뭐? 미쳤어? 저 남자가 누군지 방금 보고도 그래?” 서윤은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빗속에서 어깨에 깊은 자상을 입고도 굳건히 식당 앞을 막아서서 싸우는 도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 때문에 피 흘리고 있잖아. 저 바보가… 또 나 때문에 저러고 있잖아.” 서윤은 깨진 유리 파편을 밟으며 식당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주원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서윤의 발걸음은 도진이 만들어낸 피와 비의 전쟁터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었다. 결말을 향해 폭주하는 전개 속에서, 두 사람을 묶고 있던 거짓말의 실은 끊어졌지만, 그보다 더 지독하고 붉은 진실의 실이 빗속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 거짓말의 대가와 빗속의 고백 장대비가 아스팔트를 사정없이 때려눕히던 밤, 영춘식당 앞 골목은 아수라장이었다. 청룡파 최정예 요원들인 ‘청룡 무역 사원들’이 뒤늦게 들이닥치며 삼거리파 놈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 러브 옴니버스 10   152

    "조폭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야. 하지만 널 다시 만나서, 네 곁에 있고 싶어서 평범한 남자인 척했던 내 마음은… 단 한 순간도 거짓이 없었어." "오지 마! 끔찍해… 15년 만에 나타나서 이런 사기극을 벌여?" 서윤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뒤로 물러섰다. 도진은 다가가고 싶은 손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손등의 핏줄이 터질 듯 불거졌다. 그때, 식당 밖에서 수십 대의 차량이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삼거리파 용역들이 식당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한주원의 추격과 삼거리파의 기습이 동시에 맞물리며, 절체절명의 위기가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도진은 서윤을 향해 등을 돌려 섰다. 그의 넓은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였다. "한 변호사, 서윤이 데리고 주방 뒷문으로 나가. 여기는 내가 정리한다." 도진은 셔츠 소매 단추를 풀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서윤은 멀어지는 그의 등 뒤로 언뜻 보이는 거대한 호랑이 문신의 실루엣을 보며,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 등을 돌린 기사와 빗속의 붉은 실 미닫이문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거친 함성과 가로등 불빛이 영춘식당의 빛바랜 장판을 어지럽게 불태웠다. 삼거리파 용역 놈들이 몰고 온 트럭의 전조등이 강도진의 등을 무자비하게 비추고 있었다. 안경을 벗어 던진 그의 눈매는 지독하리만치 차갑고 예리했다. 서윤은 주방 문턱에 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평소 자신에게 부드럽게 물병을 건네고, 넥타이를 매만지며 얼굴을 붉히던 그 ‘강 팀장’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셔츠 깃 너머로 드러난 거대한 호랑이 문신과 사정없이 불거진 주먹의 핏줄. 그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식당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강도진! 이 사기꾼 새끼, 여기서 회사원 놀이 하느라 정신없었지?” 삼거리파의 행동대장이 쇠파이프를 바닥에 긁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칠이 벗겨진 문틀을 잡은 도진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우드득, 하는 불길한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 러브 옴니버스 10   151

    * 좁혀오는 포위망과 숨 막히는 숨바꼭질청룡 무역의 가짜 팀장실. 강도진은 짙은 차콜 그레이 정장 재킷을 거칠게 벗어던지며 이마를 짚었다.적들의 움직임과 한주원의 추격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박해졌기 때문이다."팀장님! 큰일 났습니다!"철구 대리가 사원증이 비뚤어진 것도 모른 채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제이 건설과 삼거리파의 비밀 회동이 찍힌 사진들이 들려 있었다."삼거리파 놈들이 제이 건설 뒷돈을 받고 이번 주말에 영춘식당을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용역들을 대거 모집 중입니다. 게다가… 한주원 변호사가 그 정보망을 캐다가 우리 청룡 무역의 진짜 법인 등록 주소지를 캤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도진의 은테 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한주원의 집요함은 예상했지만, 설마 조직의 본거지 냄새까지 맡았을 줄이야. 조폭 두목이라는 정체가 서윤에게 들통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용역 놈들이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 주말까지 기다릴 것 없어. 그리고 한주원… 그 새끼가 서윤이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내가 직접 서윤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해."도진은 책상 위에 놓인 은테 안경을 고쳐 썼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정체가 탄로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서윤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같은 시각, 영춘식당 안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서윤은 테이블을 닦는 둥 마는 둥 하며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어제 도진이 했던 "서윤 씨를 지키는 데는 누구보다 철저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식당 문이 거칠게 열리며 주원이 들이닥쳤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여유로움을 완전히 잃은 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서윤아, 당장 그 강도진이라는 남자랑 연락 끊어. 그 사람, 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무역 회사 팀장이 아니야!"서윤은 찌푸린 얼굴로 걸레를 내려놓았다."주원아, 너 또 시작이야? 팀장님이 우리 얼마나 도와주셨는데 자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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