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서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편지봉투를 주워 올렸다. 봉투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한소희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
"강민우! 너 지금 도서관에서 고백 작전 하느라 책장을 다 부순 거냐?"
사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도서관에 메아리쳤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대피해 있던 소희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쏠렸다.
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민우와 사서 선생님의 손에 들린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교차했다.
민우는 차라리 이대로 책들과 함께 화석이 되어 영원히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백은커녕 도서관 기물 파손죄로 반성문을 쓰게 생겼다.
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재난 영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 보건실의 시크릿 하트
도서관 대참사의 대가는 참혹했다. 사서 선생님의 자비 없는 심판에 따라 민우는 졸업식 직전까지 매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쓰러진 책장들을 정비하고 수천 권의 책을 원래대로 분류하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손가락 끝은 책장에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
"야, 강민우. 넌 진짜 레전드다. 고백하려다 도서관을 통째로 무너뜨린 놈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역사상 네가 처음일 거다."
정구는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낄낄거리며 민우의 등짝을 두드렸다. 민우는 이미 영혼이 유체 이탈한 표정으로 사서 선생님이 준 반성문 양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유서 칸에는 도서관 비품 훼손 및 심각한 면학 분위기 저해라고 엄숙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도 소희가 내 편지를 봤을까? 사서 선생님이 소희 이름을 도서관이 떠나가라 대차게 부르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다 났는데.'
민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소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미친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아니면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려야 할 위험인물로 찍힌 걸까. 불안감에 휩싸여 손톱을 깨물고 있을 때였다.
교실 뒷문이 열리며 오늘의 주인공인 소희가 들어왔다. 민우는 깜짝 놀라 황급히 반성문 종이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소희의 가벼운 발걸음은 뜻밖에도 민우의 책상 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민우야, 몸은 좀 괜찮아?"
소희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귀에 꽂히는 순간 민우는 심장이 그대로 멎는 줄 알았다. 종이를 슬그머니 내리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희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단발머리가 오늘따라 더욱 눈부셨다.
"어? 어어, 난 괜찮아. 완전 튼튼해. 천하장사야."
민우는 삐걱거리는 고장 난 로봇처럼 대답하며 허공에 앙증맞은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소희는 그 황당한 모습에 풉 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미소 한 번에 지난 이틀 동안 겪은 모든 고통과 수치심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어제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 네 편지는 사서 선생님이 압수해서 교무실로 가져가셨던데, 나중에 꼭 돌려받아서 읽어볼게."
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민우는 멍하니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편지를 읽어보겠다고? 아직 기회는 있다!'
절망은 순식간에 터질 듯한 희망으로 바뀌었다. 비록 교무실에 압수당한 첫 번째 편지는 이미 주임 선생님들의 검열을 당해 갈기갈기 찢겼을 확률이 높았지만, 소희의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달력은 잔인하게도 디데이 4일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정구야, 들었냐? 소희가 내 편지 읽어본대. 나 이제 어떡하냐?"
"뭘 어떡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이번엔 스케일을 줄이고 확실하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노려라."
정구는 턱을 괴고 눈을 번짝이며 새로운 전략을 제시했다.
"어디를 공략하라고?"
"보건실이다. 마침 오늘 오후에 예방접종 서류 제출 때문에 보건 선생님이 교육청으로 출장을 가신대. 네가 어디 한 군데 크게 부러진 척하고 보건실 안쪽 침대에 딱 누워있어. 내가 소희한테 네가 어제 도서관 일로 몸살이 심하게 나서 보건실에서 홀로 신음하고 있다고 슬쩍 흘릴 테니까."
"그게 통할까?"
"통하고말고. 소희 성격에 어제 일로 미안해하고 있는데, 네가 아프다고 하면 백퍼센트 병문안 온다. 그때 커튼 딱 치고 밀폐된 공간에서 진심을 전하는 거야. 이건 로맨스 소설의 단골 클리셰라고."
민우는 정구의 그럴듯한 감언이설에 다시 한번 귀가 얇아졌다. 확실히 보건실의 하얀 커튼 안쪽은 주위의 방해 없이 단둘만의 진지한 분위기를 잡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번에야말로 그 어떤 방해 요소도 없을 터였다.
드디어 오후 자율학습 시간, 민우는 화장실에서 이마에 뜨거운 물을 살짝 묻혀 열이 나는 것처럼 위장한 뒤 보건실로 향했다. 정구의 정보대로 보건실 문에는 출장 중이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고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민우는 가장 조용하고 아늑한 안쪽 침대에 누워 하얀 커튼을 빈틈없이 쳐놓고 소희의 발걸음을 기다렸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사방이 적막했고 오직 자신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만 쿵쾅쿵쾅 요란하게 울렸다.
'좋아, 소희가 오면 담담하면서도 애절하게 내 마음을 전하는 거야. 이번엔 절대로 사고 같은 건 없다.'
얼마 후, 보건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민우는 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 이어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서서히 민우가 누워있는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하얀 커튼 너머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비쳤다.
'왔다!'
민우는 호흡을 가다듬고 슬픈 눈빛을 장착했다. 진지하고 아픈 사람 연기를 해야 했기에 최대한 가녀리고 애틋한 목소리를 쥐어짰다.
"소희야 왔어? 나 사실 어제 도서관에서 너한테 줄 편지 전하려다가 그렇게 된 거야. 3년 동안 내 눈에는 너밖에 안 보였어. 나랑 사귀어 줄래?"
사서 선생님은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편지봉투를 주워 올렸다. 봉투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한소희에게’ 라고 적혀 있었다."강민우! 너 지금 도서관에서 고백 작전 하느라 책장을 다 부순 거냐?"사서 선생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도서관에 메아리쳤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대피해 있던 소희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민우에게로 쏠렸다.소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민우와 사서 선생님의 손에 들린 편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 교차했다.민우는 차라리 이대로 책들과 함께 화석이 되어 영원히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백은커녕 도서관 기물 파손죄로 반성문을 쓰게 생겼다.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민우의 짝사랑 연대기는 이제 코미디를 넘어 재난 영화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보건실의 시크릿 하트도서관 대참사의 대가는 참혹했다. 사서 선생님의 자비 없는 심판에 따라 민우는 졸업식 직전까지 매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쓰러진 책장들을 정비하고 수천 권의 책을 원래대로 분류하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손가락 끝은 책장에 긁혀 성한 곳이 없었다."야, 강민우. 넌 진짜 레전드다. 고백하려다 도서관을 통째로 무너뜨린 놈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역사상 네가 처음일 거다."정구는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낄낄거리며 민우의 등짝을 두드렸다. 민우는 이미 영혼이 유체 이탈한 표정으로 사서 선생님이 준 반성문 양식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유서 칸에는 도서관 비품 훼손 및 심각한 면학 분위기 저해라고 엄숙하게 적혀 있었다.'그래도 소희가 내 편지를 봤을까? 사서 선생님이 소희 이름을 도서관이 떠나가라 대차게 부르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다 났는데.'민우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소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미친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아니면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려야 할 위험인물로 찍힌 걸까. 불안감에 휩싸여 손톱을 깨물고 있을
* 고백 D-5, 도서관의 도미노 여신어제의 가발 비행 사건은 단숨에 학교의 전설이 되었다.다행히 정구의 사촌 형이 방송부 드론의 비행 기록을 빛의 속도로 삭제한 덕분에 민우와 정구는 주동자로 색출되는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하지만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계엄령 수준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가발 대신 번쩍이는 대머리를 당당하게 드러낸 채, 매서운 눈빛으로 교내를 순찰하며 범인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교장 선생님과 마주칠 때마다 민우의 심장은 쫄깃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야, 박정구. 너 왜 안경을 두 개나 쓰고 있냐?"민우가 등교하자마자 정구의 몰골을 보고 물었다. 정구는 시력 교정용 안경 위에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겹쳐 쓰고 있었다. 변장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 그 자체였다."교장샘 눈빛 못 봤냐? 눈만 마주쳐도 자백하게 만드는 눈빛이다? 난 당분간 이렇게 살 거다."정구가 이빨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조력자마저 공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민우는 홀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달력을 보니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5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대담하고 화려한 작전은 교장 선생님의 수사망에 걸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였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은밀하며, 가장 안전한 장소를 공략하는 것뿐이었다.'도서관이다.'소희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수능 특강 문제집을 풀곤 했다. 시끄러운 운동장이나 교실과 달리 도서관은 사서 선생님의 엄격한 통제 아래 조용함이 유지되는 성역이었다. 이곳이라면 돌풍이 불 일도 없고, 교장 선생님의 가발이 날아갈 일도 없었다.점심을 대충 입으로 쑤셔 넣은 민우는 곧장 본관 4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와 정적만이 민우를 반겼다.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소희가 앉아 있었다. 햇살을 받으며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소희의 모습은 어제 드론 소동 속에서도 홀로 빛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민우는 주머
눈물이 찔끔 났지만 아직 달력에는 6일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우는 차가운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작전을 짜야겠다고 다짐했다.* 고백 D-6, 하늘에서 초콜릿이 내려온다면어제의 대실패로 인해 강민우의 멘탈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흡연 단속반으로 오해받은 사건은 다행히 조용히 넘어갔지만, 소희의 손에 닿지도 못한 채 끝나버린 초코 소라빵의 비극은 밤새도록 민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그러나 포기할 시간은 없었다. 달력의 숫자는 무정하게도 D-6을 가리키고 있었다.점심시간, 매점 뒤편 벤치에 앉아 민우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정구와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야, 박정구. 아날로그 방식은 안 되겠다. 소희한테 가기도 전에 중간에 가로채기 당할 확률이 너무 높아."정구는 매점 소시지를 한 입 베어 물며 한심하다는 듯 민우를 보았다."그러니까 왜 그런 고전적인 방법을 쓰냐?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디지털로 가야지, 디지털로.""디지털? 캐톡으로 고백하라고? 그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잖아.""누가 캐톡 하래? 마침 오늘 5교시가 전교생 체육대회 연습이잖아? 운동장에 전교생 다 모인다고."민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그래서?""내가 어제 방송부 애들이 드론 띄워서 촬영 연습하는 거 봤거든? 거기에 선물을 매달아서 소희 머리 위로 정확하게 배달하는 거야. 어때, 지리지?"정구의 제안은 확실히 파격적이었다. 드론을 이용한 고백이라니? 마치 유행하는 웹드라마의 남주인공이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드론이 소희에게 다가가 달콤한 사탕 상자를 전달하는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그거 괜찮은데? 근데 방송부 드론을 우리가 어떻게 빌려?""걱정 마라. 방송부 기재부장이 내 사촌 형이다. 점심시간에 잠깐 빌려오기로 합의 봤어."정구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민우는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든든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그렇게 시작
* 고백 D-7, 작전명 초코 소라빵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졸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긋지긋한 야간 자율학습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3년 동안 남몰래 키워온 짝사랑의 강제 종료를 의미하기도 했다."일주일 남았다고? 진짜로?"강민우는 책상에 이마를 쾅 부딪쳤다. 칠판 옆에 걸린 달력의 숫자는 잔인하게도 졸업식까지 딱 7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소심한 영혼,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이대로 졸업하면 끝이다. 소희는 서울로 대학 가고, 나는 여기 남는데 영영 남남이 되는 건가?'창가 자리에서 햇살을 받으며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한소희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단발머리가 마치 이온 음료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야, 강민우. 너 얼굴 왜 그렇게 빨갛냐? 어디 아프냐?"눈치라곤 밥 말아 먹은 절친 박정구가 민우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아니, 안 아파.""그럼 왜 그래? 혹시 소희 보냐?""쉿! 조용히 해!"민우는 정구의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소희가 들었을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행히 소희는 자기 친구들과 급식 메뉴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민우는 정구를 구석으로 끌고 가 낮게 속삭였다."야, 정구야. 나 일주일 안에 고백할 거다."정구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방귀를 뀌었다."네가? 3년 동안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 네가 일주일 만에 고백을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진짜야. 이번엔 진짜라고. 졸업하면 다신 못 보잖아? 억울해서라도 말은 해봐야지."민우의 눈빛에 전례 없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정구는 민우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 놀란 듯 턱을 괴었다."그래, 사나이 삼세번인데 고백 한번 못 해보고 졸업하면 평생 이불킥이지. 근데 방법은 있냐?""방법? 당연히 있지."사실 아무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민우는 일단 큰소리부터 쳤다. 머릿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