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민우는 커튼이 걷히기도 전에 마음속에 담아둔 고백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고백이 끝나자 숨 막히는 침묵이 보건실 안을 가득 채웠다. 민우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꼭 감았다. 마침내 챠르륵 소리를 내며 커튼이 거칠게 열렸다.
민우는 눈을 활짝 뜨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단발머리의 여신 소희가 아니었다. 험악한 인상에 매서운 눈빛을 하고, 손에는 언제나 들고 다니는 두꺼운 출석부를 쥐고 있는 학생부장, 일명 지옥의 저승사자 강철 선생님이었다.
"강민우, 네가 왜 여기 누워서 헛소리를 하고 있냐?"
강철 선생님의 걸걸하고 웅장한 목소리가 보건실 전체를 사정없이 울렸다. 민우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사,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십니까?"
"내가 요즘 혈압이 높아서 보건 선생님 없는 틈을 타 뒷방에서 안마의자 좀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놈이 들어와서 청승맞게 신음 소리를 내더니, 대뜸 나한테 사귀자고 고백을 하네? 3년 동안 나만 바라봤다고?"
강철 선생님의 두꺼운 눈썹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민우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을 넘어 하얗게 질려갔다.
"그게 아니라, 저는 소희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
"소희고 뭐고, 자율학습 시간에 보건실에 무단으로 들어와서 땡땡이를 치고 연애질을 하려고 해? 당장 따라와. 오늘 정신 번쩍 들게 해줄 테니까."
민우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로 그때, 보건실 문이 다시 열리며 진짜 소희가 정구와 함께 허겁지겁 들어왔다. 정구는 민우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덜미를 잡혀 있는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을 쳤다.
소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생님과 민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선생님, 민우 많이 아픈가요?"
강철 선생님은 민우의 교복 뒷덜미를 꽉 움켜쥔 채 껄껄 웃었다.
"아프긴 무슨. 아주 팔팔하다 못해 사랑이 넘쳐나는구나. 한소희, 너는 얼른 교실로 돌아가라. 이 녀석은 나랑 운동장에서 뜨거운 데이트 좀 해야겠다."
민우는 멀어지는 소희를 향해 제발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소희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든든한 조력자라던 정구는 이미 복도 저편으로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칼바람이 부는 차가운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하며 민우는 하늘을 원망했다. 고백하려다 담임에게 찍히고, 교장 선생님의 가발을 날려버리고, 도서관을 무너뜨리더니 이제는 무서운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고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 때마다 민우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단 4일이었다. 민우의 파란만장한 고백 작전은 실패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전교생의 엄청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다.
* 방송실의 유령
학생부장 강철 선생님에게 사랑의 고백을 바쳤다는 유언비어는 하루아침에 전교로 퍼져나갔다.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동급생들은 물론이고 후배들까지 민우를 보며 수군거렸다.
"야, 저 형이야? 학생부장 쌤한테 대시했다는 상남자?"
"진짜 대단하다. 졸업식 앞두고 징계 안 먹은 게 기적이지?"
민우는 귀를 막고 교실 구석 자리에 처박혔다.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소희를 향한 순수한 마음이 어째서 멧돼지 같은 학생부장 선생님을 향한 브로맨스로 둔갑했단 말인가? 가장 큰 문제는 소희의 반응이었다. 소희는 오늘 아침부터 민우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 미소가 긍정의 신호인지, 아니면 상종 못 할 인간을 보는 경멸의 신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 고등학교 인생은 변태로 끝난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 해.'
민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정구가 슬그머니 다가와 민우의 어깨를 주물렀다.
"민우야, 내가 어제는 미안했다. 사춘기 시절의 생존본능이 앞서서 그만 발이 먼저 움직였어."
"시끄러워.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끝났어. 소희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냐?"
"그러니까 반전 카드를 써야지. 이 오해를 단번에 풀고 네 진심을 낭만적으로 전할 방법이 있어."
정구의 눈이 다시금 사기꾼처럼 번쩍였다. 민우는 또 속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다짐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귀를 기울였다.
"뭔데? 또 사고 치려고 그러지?"
"아니야. 이번엔 진짜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이야. 매일 점심시간마다 방송부에서 라디오 사연 신청받잖아? 거기에 익명으로 사연을 보내는 거지."
"익명으로 보내면 소희가 자기 이야기인 줄 어떻게 알아?"
"바보냐? 사연 내용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단발머리 여신, 도서관에서 책장 무너뜨린 소심한 남학생 이야기를 넣으면 전교생이 들어도 다 네 이야기인 줄 알지. 대신 학생부장 쌤 사건은 오해였다는 걸 똑바로 밝히는 거야. 음악은 잔잔한 발라드로 깔고 말이지."
민우는 가만히 정구의 말을 음미했다. 듣고 보니 꽤 그럴듯한 작전이었다. 방송을 통하면 굳이 소희와 대면하지 않고도 전교에 퍼진 소문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동시에 로맨틱한 고백까지 가능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3일뿐이었기에 더는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좋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방송부에 사연은 어떻게 전달해?"
"내 사촌 형이 방송부 기재부장이라고 했잖아? 점심시간에 방송실 문 살짝 열어두라고 할 테니까, 네가 직접 마이크 잡고 읽어. 방송부원 애들 밥 먹으러 간 사이에 기습적으로 하는 거야. 그게 훨씬 진정성 있어 보이지 않겠냐?"
민우는 정구의 제안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직접 목소리로 전하는 고백이라니,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민우는 밤새 작성한 편지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본관 5층 방송실로 향했다. 정구는 복도에서 망을 보겠다며 계단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은채는 신발장으로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진우도 그 뒤를 따라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복도는 지독하리만큼 조용했다.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판만 무심히 숫자를 바꾸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단지 내 놀이터에는 몇몇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서준이와 서아의 노란색 유치원 체육복은 보이지 않았다. 은채는 벤치에 앉아 있던 동네 주민에게 달려갔다."저기, 혹시 우리 서준이랑 서아 못 보셨어요? 노란색 옷 입은 쌍둥이요!"주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어머, 서준이 어머님. 오늘 애들 놀이터에 안 왔는데요? 보통 유치원 버스 내리면 바로 이쪽으로 오는데, 오늘은 못 본 것 같아요."쿵, 하고 은채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는 은채를 진우가 붙잡았다."정신 차려, 은채야. 유치원 선생님한테 전화부터 해봐."진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은채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유치원 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서준이 어머님!""선생님, 저 서준이 엄마인데요. 혹시 아이들 오늘 버스 안 탔나요? 아직 집에 안 들어와서요…….""네?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 서준이 아버님이 직접 데려가신다고 하셔서 아까 4시 반에 정문에서 인도해 드렸는데요?"교사의 말에 은채의
* 이혼의 문턱, 그리고 실종탁자 위에 놓인 흰색 서류 봉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류 상단에 찍힌 ‘협의이혼 의사확인 신청서’라는 글자가 날카롭게 은채의 시선을 찔렀다. 은채는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맞은편에 앉은 진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결국 이렇게 끝내는구나. 당신은 참 쉽다. 언제나 도망치는 게 제일 빠르지?"은채의 목소리에는 뼈가 가시처럼 돋아 있었다. 진우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마른세수를 했다. 셔츠 깃은 구겨져 있었고, 눈 밑의 짙은 그늘은 그가 오랜 시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음을 증명했다. 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바라보았다."내가 도망친다고? 은채 너야말로 내 말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어? 내가 왜 밤새워 일하는지, 왜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올 수밖에 없는지 물어보기라도 했냐고?""돈 벌어다 주면 다 되는 줄 알았어? 서준이랑 서아가 아플 때 당신 어디 있었는데? 내가 응급실에서 밤새 울며 전화할 때, 당신은 거래처 접대한다고 전화 끊었잖아! 그게 부모야? 그게 남편이냐고?"은채의 목소리가 거실을 날카롭게 울렸다. 목이 메어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처절하게 들렸다. 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 밤, 회사의 운명이 걸린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바이어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던 자신의 비참함은 은채에게 변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는 아내가 야속했다.'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버렸을까?'진우는 가슴이 답답해져 넥타
두 사람의 단단한 포옹 위로,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대성기획의 화려한 서막이 내려앉고 있었다. 찐따 사원의 완벽한 영웅 반전극이 마침내 사내 최고의 매력남 등극과 함께 최종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모든 위기와 음모를 완벽하게 분쇄한 대성기획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풍요로웠다. 정성그룹과의 공동 프로젝트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회사는 명실상부한 중견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그 엄청난 신화의 중심에 서 있는 김준우의 위상은 이제 사내에서 신화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출근길마다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직원들의 눈빛에는 경외심과 동경이 가득했고, 그가 지나가는 복도마다 여직원들의 나직한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우는 여전히 겸손하고 든든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자, 다들 주목!"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내 종무식 날, 박 사장은 싱글벙글 웃음이 멈추지 않는 얼굴로 단상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임명장이 들려 있었다."올 한 해, 우리 대성기획을 수많은 위기에서 구하고 회사의 가치를 수백 배로 끌어올린 주역이 있네. 이에 이사회와 정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하겠네! 총무2팀 김준우 팀장을 오늘부로 대성기획의 최연소 '기획총괄 상무이사'로 임명하네!"박 사장의 외침과 동시에 대강당 안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갈채로 가득 찼다. 사원으로 입사해 채 1년도 되지 않아 상무이사라는 별을 단 전무후무한 초고속 승진이었다.준우는 단상 위로 올라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경을
"박 사장! 그리고 거기 숨어 있는 김준우 사원! 당장 나오지 못해?"독사는 정성그룹의 투자로 대성기획이 급성장하자, 배후에 있던 불법 사채 조직과 결탁해 회사를 통째로 삼키려는 마지막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무력으로 회사를 협박해 강제로 경영권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려는 무식하고도 위험한 도박이었다."이, 이봐요! 경찰에 신고했으니 당장 나가시오!"박 사장이 용기를 내어 외쳤지만, 독사는 비열하게 웃으며 품 안에서 시퍼런 칼날을 꺼내 들었다."경찰? 신고해 봐. 그 전에 이 건물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어 줄 테니까! 당장 서류에 도장 안 찍으면 여기 있는 직원들 목숨은 보장 못 해!"덩치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다가오자 로비에 있던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석으로 숨기 바빴다. 채원 역시 공포에 질려 준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바로 그 순간, 준우가 채원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그녀의 앞에 당당히 걸어 나갔다. 구부정했던 어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준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와 위압감이 로비 전체의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독사.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또 매가 그리웠나 보군."준우의 서늘한 목소리에 독사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과거 자신들을 단 1분 만에 초토화 시켰던 그 전설의 용병 '섀도우'의 눈빛이 준우에게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사는 이번엔 머릿수가 많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악을 썼다."이 건방진 새끼가
국 회장의 파격적인 제안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이 기절할 만한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 대기업의 핵심 본부장 자리에 백지수표라니. 박 사장은 부러움과 공포가 섞인 눈으로 준우를 바라보았다.채원의 심장은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준우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신과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먼 세계의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입술을 깨물며 준우의 입술만 바라보았다.준우는 잠시 채원의 떨리는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국 회장을 향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회장님의 과분한 제안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직장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준우는 슬그머니 채원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은 손을 남몰래 꼭 쥐었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준우의 단단하고 따뜻한 온기에 채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이곳에는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상사이자, 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성그룹의 본부장 자리보다, 대성기획의 총무팀장 자리가 저에게는 훨씬 더 가치 있습니다."준우의 로맨틱하고도 확고한 거절에 국 회장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준우와 채원의 잡은 손을 보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전장을 지배하던 늑대가 아름다운 반려를 만나 완전히 길들여졌군 그래! 좋네,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강요하지 않겠네. 대신, 대성기획을 우리 정성그룹의 핵심 전략적 파트너사로 지정하겠네. 앞으로 대성이 진행하는 모든 신사업에 정성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을 걸세!"
신입 사원에서 단숨에 팀장으로 수직 상승하는 것은 중소기업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미 사내에서는 준우가 베일에 싸인 은둔 고수이자 엄청난 천재라는 소문이 사실로 굳어졌기 때문이다.준우의 직급이 올라감에 따라 부서의 직제도 개편되어, 원래 총무부장이던 인물이 상무로 승진하고 한채원 팀장과 김준우 팀장이 각각 총무 1팀과 2팀을 이끄는 공동 팀장 체제가 되었다.졸지에 부하 직원이 동등한 위치의 팀장으로 올라선 것이었지만, 채원의 얼굴에는 그저 뿌듯함과 화사한 미소만이 가득했다."김 팀장님, 아니 준우 씨? 이제 나랑 동등한 위치네요? 앞으로 더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겠어요."자리로 돌아온 채원이 준우의 책상 옆에 다가와 장난스럽게 윙크를 건넸다. 슈트가 터질 듯한 완벽한 핏을 자랑하는 준우는 이제 안경마저 벗어 던진 상태였다.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콧날이 훤히 드러난 그의 외모는 매일 아침 총무부 앞을 여직원들의 런웨이로 만들고 있었다."팀장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 부려지겠습니다? 제 상사는 영원히 한 팀장님뿐이니까요."준우가 매혹적인 중저음으로 낮게 속삭이자, 채원의 뺨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사내 연애의 짜릿함이 두 사람의 공기를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바로 그때, 부서의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한 팀장, 김 팀장. 지금 당장 사장실로 올라오게.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네."박 사장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잔뜩 긴장해 있었고, 심지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준우와 채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사장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