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그는 먼저 붓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이현겸.
붉은 먹이 종이에 스며들자 글자 아래로 희미한 빛이 흘렀지만, 해월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사라졌다. 예관이 붓을 건네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으나, 화상 입은 손등이 다시 욱신거리는 바람에 손가락에 힘을 주기 어려웠다.
현겸이 곁에서 손목을 받쳐 주었다.
해월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이름을 함부로 맡기지 말라는 당부였지만, 자신이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남자 앞에서까지 진명을 감춰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현겸을 믿었다.
해월이 붓끝을 종이에 대고 자신의 이름을 적기 시작하자 현겸은 손목을 받쳐 주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윤이라는 성을 적고 마지막 이름의 획을 그어 내려가는 동안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마지막 점을 찍는 순간 종이 가장자리에 새겨진 붉은 문양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윤해월.
그 이름이 완성되는 순간 손목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해월은 숨을 삼키며 붓을 놓으려 했으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먹이 종이 위에서 번지는가 싶더니 가느다란 실처럼 풀려나와 손목을 향해 뻗어 왔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팔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귓가에서 여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해월이 고개를 들자 조금 전 사라졌던 일곱 신부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피를 흘리고 있었고, 가장 앞에 선 여자는 잘린 손목을 들어 해월을 향해 뻗었으며, 다른 여자들은 입술을 움직여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해월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붉은 실이 손목을 감싸며 피부 아래로 파고들었다. 불에 달군 바늘이 살 속을 기어가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고, 손목 안쪽에서는 가느다란 문양이 심장 박동에 맞춰 조금씩 새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더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붓이 손에서 떨어지자 소담이 달려오려 했지만 예관이 앞을 막아섰고, 해월은 겨우 현겸의 옷깃을 붙잡은 채 고통스러운 숨을 몰아쉬었다.
"전하…… 아파요……."
현겸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지만, 시선은 해월의 얼굴보다 손목에 머물러 있었다.
붉은 선이 완성되는 순간 현겸의 가슴에서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심장을 조여 오던 저주가 처음으로 느슨해졌고, 그는 해월의 손목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한 뒤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첫 봉인이 열린 것이었다.
"제 손목이…… 이상합니다……."
해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현겸은 재빨리 소매를 내려 문양을 가렸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달랬고, 해월은 그 품에 기대어 겨우 숨을 골랐다.
예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혼례문을 접어 붉은 함에 넣었다. 왕실의 혼례가 성립되었음을 선포하는 목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신들과 종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동안 해월은 현겸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손목은 여전히 뜨거웠고 시야는 이전보다 더욱 흐릿해졌지만, 주변 사람들은 왕실의 경사를 축하하느라 누구도 신부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현겸은 사람들 앞에서 해월의 어깨를 감싸며 선언했다.
"오늘부터 윤해월은 나의 정실이며 대연국의 정왕비다. 그 누구도 왕비의 신분과 지위를 함부로 논하지 못할 것이다."
해월은 그 말을 들으며 현겸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을 지켜 주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조금 전 겪은 고통도 왕실의 낯선 의식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믿으려 했다.
그러나 현겸의 왼쪽 가슴에서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통증이 처음으로 가벼워지고 있었고, 반대로 해월의 손목에서는 붉은 선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
혼례가 끝난 뒤 정왕부 서쪽 별실에서는 왕실 주술관 백이령이 붉은 함을 열고 있었다. 스물아홉 살쯤으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그늘이 어려 있었고, 오래전 왕실과 맺은 계약 때문에 주술을 관리하는 그는 일곱 신부가 죽어 가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본 사람이었다.
맥박은 지나치게 약했다.“마마…….”소담은 해월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붙잡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현겸을 올려다보았다.“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장무경이 즉시 다가왔으나 소담은 물러서지 않았다.“어제는 하녀를 구하시다가 다치셨고, 오늘은 전하를 살리시겠다며 피까지 흘리셨습니다. 마마께서 이렇게 되실 줄 알면서도 의식을 진행하신 겁니까?”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소담은 눈물을 삼키며 해월의 손을 받쳤다.“마마께서는 아직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분의 몸부터 살피지 않는 겁니까?”현겸은 해월을 더 단단히 안아 들었다.“의원을 불러라. 궁중에서 가장 좋은 약재를 가져오고, 왕비가 회복할 때까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마련해라.”소담은 그 명령을 듣고도 안심하지 못했다.“다시는 이런 의식을 시키지 않으실 겁니까?”현겸의 걸음이 멈췄다.소담은 그가 대답하기를 기다렸지만, 현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해월을 안고 밀실을 나섰다.그 침묵이 소담에게는 어떤 대답보다 두려웠다.신방으로 돌아온 뒤 의원은 해월의 맥을 짚고 눈꺼풀을 살폈다. 상처를 씻고 지혈한 뒤에도 그녀의 체온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맥박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피를 잃은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왕비마마의 기력이 지나치게 소모되었습니다.”현겸은 침상 곁에 서서 의원의 말을 들었다.“회복할 수 있느냐?”“안정을 취하시고 더 이상 무리하지 않으시면 회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안의 대가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혈주술까지 사용하셨으니, 시력은 얼마나 돌아올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실명할 수도 있다는 뜻이냐?”의원은 고개를 숙였다.“지금보다 더 많은 생명력을 소모하시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현겸은 해월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자신이 곁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누워 있었고, 손목의 붉은 문양은 의식 전보다 훨씬 길어져 있었다. 현겸은 그 손목을 조심스럽게 이불 아래로 넣어 주었다가, 상처를 누르지 않도록
처음에는 바깥에서 소담이 우는 줄 알았지만, 곧 그 목소리들이 자신의 귓가가 아니라 주술진 안쪽에서 들려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만해.’‘더 주지 마.’‘우리도 그렇게 시작했어.’해월은 고개를 들었다.촛불 너머로 흰 혼례복을 입은 여자들의 형상이 나타났고, 가장 앞에 서 있는 여자는 한쪽 손을 뻗어 해월의 손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월은 그들이 사당에서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경고했던 죽은 신부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전하…… 저기…….”해월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가슴에서 더 강한 통증이 솟구쳤다.그녀는 숨을 들이쉬지 못한 채 몸을 굽혔고, 백이령은 급히 손을 들어 주술의 흐름을 늦추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해월의 피를 받아들인 봉인 그릇은 붉게 빛나고 있었으며, 주술진의 선을 따라 검은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현겸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가슴을 조이던 저주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계속되던 통증이 조금씩 사라졌고, 목덜미에 드러났던 검은 문양도 희미해지기 시작했으므로 그는 오랜만에 깊이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해월은 정반대였다.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고, 손바닥 아래의 비단은 붉게 젖어 있었다. 손등의 화상까지 다시 벌어져 피가 배어 나오자 현겸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백이령이 주술진을 가로막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이령, 이제 충분하지 않으냐?”“저주의 첫 흐름이 거의 안정되었습니다. 지금 멈추면 전하의 몸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현겸은 해월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어깨가 크게 떨렸다. 더는 견디기 어려워 보였으나, 현겸이 의식을 멈추라고 명령하면 자신의 몸으로 저주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입술을 다물었다.해월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전하…….”현겸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멈췄다.“조금…… 편해지셨습니까?”그 질문을 듣는 순간 현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해월은 자신이 어떤 고통을
현겸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미안하다.”해월은 그가 자신에게 부담을 주는 일을 미안해한다고 생각했다.“전하께서 저를 억지로 시키시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제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현겸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해월이 무엇을 감수하겠다고 약속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바로잡지 않았고, 오히려 그 약속을 의식을 진행할 이유로 삼았다.***의식은 서재 안쪽의 밀실에서 준비되었다.백이령은 바닥에 붉은 주술진을 그린 뒤 중앙에 봉인 그릇을 놓았고, 그 주위로 일곱 개의 촛대를 세웠다. 촛대 아래에는 오래된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해월의 흐려진 시야로는 글자를 읽을 수 없었으며, 그녀가 누구의 이름인지 묻자 백이령은 왕실의 오래된 의식 기록이라고만 대답했다.해월은 촛대가 일곱 개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사당에서 보았던 위패도 일곱 개였고, 죽은 신부가 남긴 붉은 실에도 일곱 개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숫자가 지나치게 반복되었지만, 현겸이 다시 통증을 호소하자 그 의문을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소담은 밀실 안에 남겠다고 청했다.“마마께서 쓰러지시면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으니 곁에 있게 해 주십시오.”백이령은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주술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소담이 다시 부탁하자 장무경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고, 해월은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것을 보고 조용히 소담을 불렀다.“밖에서 기다려 줘. 끝나면 네가 가장 먼저 들어오면 되잖아.”소담은 해월의 손을 바라보았다.어제 하녀를 구하려다 입은 화상이 아직 붉게 남아 있었고,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피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해월이 이미 결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말리지 못했다.그녀는 밀실 밖으로 물러나면서도 문이 닫힐 때까지 해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해월은 주술진 중앙의 의자에 앉았다.백이령이 은함
현겸은 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켰다. 해월이 자신의 손을 붙잡는 순간 화상 입은 손등이 소매에 쓸렸고, 그녀는 짧게 숨을 삼키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너도 아프지 않으냐. 아직 일어나서는 안 되는 몸이다.”“저는 괜찮습니다. 전하께서 피를 토하셨다는데 제 몸만 걱정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해월은 남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끝과 불규칙하게 뛰는 맥박을 느끼자 약방에서 환자를 돌보던 때의 습관대로 그의 손목을 살폈지만, 맥이 갑자기 느려졌다가 빠르게 뛰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얼굴이 굳어졌다.“오래된 병이라고 하셨지만, 보통 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게 정확히 말씀해 주십시오.”현겸은 백이령을 바라보았다.백이령은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왕실의 오래된 저주에 관해 설명했다. 일반적인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고, 혼례를 통해 열린 혈계의 문을 이용해야 저주를 억누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해월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그렇다면 어제 제 손목에 생긴 문양도 그 저주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혈계의 표식입니다.”“제가 진명을 적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군요.”백이령이 고개를 숙이자 해월은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제 피가 필요합니까? 진명으로 열린 봉인과 피의 서약은 서로 다른 의식입니까?”현겸은 그녀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놀랐다.해월은 흑월족의 주술을 완전히 배운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에게서 혈맥과 진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진명은 사람의 존재를 묶는 이름이며, 피는 그 이름에 힘을 부여한다는 말을 떠올리자 어젯밤의 혼례문이 단순한 왕실 의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백이령이 대답을 고르던 순간 현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해월아, 네 혈맥에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빌려 내 몸속의 저주를 잠시 억누르려는 것이다.”“제게는 어떤 대가가 있습니까?”현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등 위에서 멈췄다.해월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
“어젯밤 분명 저주가 가라앉았다고 했지.”백이령은 현겸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주술의 흐름을 살폈다. 그의 손끝에서 회색 빛이 번지자 침상 곁의 촛불들이 일제히 낮아졌고, 검은 문양은 살아 있는 벌레처럼 피부 아래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진명 혼례문은 혈계의 첫 문을 열었을 뿐입니다. 왕비마마의 피로 서약을 맺지 않는 한 저주는 전하의 몸에 남아 계속 움직일 것입니다.”“오늘 밤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백이령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현겸의 가슴에서 다시 통증이 솟구쳤다. 그는 침상 가장자리를 움켜쥔 채 몸을 굽혔고,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피를 삼키려다가 결국 수건을 입에 가져가야 했다.“기다리시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저주가 심장의 중심까지 파고들기 전에 의식을 시작해야 합니다.”현겸은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다.해월은 어제 하녀 하나를 살리기 위해 운명안을 사용했고, 그 대가로 시력을 일부 잃었다. 혼례복에 떨어진 기름 때문에 손등에 화상까지 입었으며, 진명 서명을 마친 뒤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현겸은 백이령에게 먼저 물었다.“그 아이가 견딜 수 있겠느냐?”“현재 상태로는 위험합니다. 운명안의 대가가 남아 있는 데다 첫 봉인으로 혈맥까지 열렸으니, 피를 사용하면 생명력의 소모가 평소보다 클 것입니다.”“얼마나?”“정확히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흑월족의 피는 저주에 반응하지만, 저주가 요구하는 만큼 생명력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현겸은 눈을 감았다.산골 약방에서 해월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약초를 다듬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자신의 이름도 신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남자에게 상처를 씻을 물을 내어 주었고, 값비싼 약재를 아낌없이 사용하면서도 치료비를 묻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혈맥에서 흑월족 특유의 기운을 확인한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처음부터 목적이 있었다. 마지막 순혈 마녀를 찾아 자신의 저주를 옮겨야 한다는 왕실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접근했고, 그녀의 믿음을 얻을 때까지 신분을 숨긴 채 여
윤해월이 정왕의 여덟 번째 신부가 된 다음 날 새벽, 그녀는 자신의 피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희미했지만, 이현겸의 목소리만큼은 잘못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산골 약방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수없이 들어 온 목소리였고, 어젯밤에는 바로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살아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므로, 해월은 잠결에도 남편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렸다.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천장의 윤곽이 두 겹으로 흔들렸고,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오른쪽 손등에 입은 화상이 이불에 쓸리면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혼례를 치르던 날 운명안을 사용한 대가는 밤새 사라지지 않았으며, 왼쪽 손목에는 진명 혼례문에 서명한 뒤 생겨난 붉은 문양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해월은 잠시 숨을 고르며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첫 봉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냐?”현겸의 목소리 뒤로 낮은 대답이 이어졌지만, 두꺼운 문에 막혀 정확한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누군가 의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현겸이 거칠게 기침했고, 그 뒤로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해월은 더는 누워 있을 수 없었다.“소담아, 밖에 누구 없느냐?”급히 들어온 소담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해월을 보고 놀라 달려왔다. 밤새 열이 내리지 않아 겨우 잠들었는데 벌써 일어나셨느냐며 그녀의 어깨를 받쳤지만, 해월은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물었다.“전하께서 서재에 계십니다. 새벽부터 의원들이 들락거리고 있어서 아직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합니다.”“방금 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어. 전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소담은 입술을 깨물었다. 해월이 다시 묻자 결국 현겸이 새벽녘부터 검은 피를 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해월은 침상 기둥을 붙잡고 일어섰다.시야가 갑자기 기울어지는 바람에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없었고, 소담이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마마, 지금은 걸으실 수도 없지 않습니까. 어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