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말을 남긴 뒤 심도윤은 자신이 머물던 아파트로 돌아갔다.그곳에는 아직 임유나가 살고 있었다.그녀는 심도윤을 보자마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도, 도윤 오빠, 돌아왔어요?”심도윤은 대답 대신 그녀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이 년아!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임유나는 고통에 몸을 웅크린 채 더욱 심하게 떨었다. 그런 모습을 본 심도윤은 연민은커녕 분노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아가 돌아왔어. 네가 직접 가서 빌어.”“모든 게 네 생각이었다고 나도 너한테 속은 거라고 말해. 그리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해.”“서아를 내 곁으로 돌아오게만 해주면 목숨은 살려줄게.”그 말을 들은 임유나는 살길이라도 찾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요! 지금 당장 갈게요!”그렇게 약혼식이 끝날 무렵, 만신창이가 된 한 여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서아 언니, 도윤 오빠... 아니, 심 대표님을 용서해 줘요.”그녀는 두 손을 초조하게 비벼대며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얼굴은 긁힌 상처투성이였다.눈물 또한 멈출 줄 몰랐다.“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가 언니 외할머니를 죽인 거예요!”“제발요. 심 대표님을 용서해 줄 수 없어요?”“언니가 돌아와 주지 않으면 정말 그 사람한테 죽을지도 몰라요!”나는 형편없이 망가진 임유나를 잠시 바라봤다.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그녀의 아랫도리에 피가 배어 있는 것이 보였다.무심코 미간이 찌푸려졌다.“또 임신했어요?”임유나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심도윤이 걷어찬 거예요?”임유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만 떨었고 이내 스스로 자기 뺨을 연거푸 때리기 시작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전부 제 잘못이에요! 제발 저 좀 살려줘요.”나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한 뒤 담담하게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경찰서에서 하세요.”“그리고 심도
“어디 갔었어? 조서아, 내가 꼬박 일 년을 찾아다닌 거 알아?”“네가 떠난 뒤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나는 술잔을 가볍게 흔들며 피식 웃었다.“심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이혼 확인서는 이미 받으셨잖아요.”“저와 심 대표님은 이미 아무 관계도 아닌데요.”“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해야겠네요.”“올해 심원 그룹이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서 성공적으로 탈락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겠네요, 심 대표님.”내 말을 들은 심도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나는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렸지만 그가 내 손목을 세게 붙잡으며 막아섰다.“나한테 돌아와. 예전 일은 전부 없던 일로 할게.”“그 아이들도 전부 정리할 거야. 아이는 필요 없어. 나는 너만 있으면 돼.”“조서아, 이제 그만 화 풀면 안 돼?”“주식 헐값에 판 것도 따지지 않을게. 결혼식 원하면 해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돌아와. 뭐든 다 들어줄게.”말을 이어갈수록 그의 눈은 점점 붉어졌다.“이 일 년 동안 네가 없으니까 한숨도 제대로 못 잤어.”“나 너 없이는 못 살아.”나는 그 말을 듣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입가를 가린 채 말했다.“그래요?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요?”“아이들 돌보느라 그러신 거 아니에요?”“심 대표님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아이가 일곱이나 되는데 잠 편히 주무실 틈이 있었겠어요?”“정말 훌륭한 아버지시네요.”심도윤은 또다시 말문이 막힌 듯 나를 바라봤다.잠시 후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네가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 알아. 약속할게. 앞으로는 절대 사생아 같은 일 없어.”“너 하나만 보고 살게. 아이 없어도 괜찮아. 어때?”나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친 뒤 배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웃었다.“됐어요.”“내가 왜 당신 때문에 엄마가 될 권리를 포기해요?”“당신이랑 못 낳으면 다른 사람이랑 낳으면 되죠.”그 말을 들은 심도윤은 완전히 굳어버렸다.그러더니 다음
“서아 말이 맞아. 넌 내연녀 취급도 못 받아.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나랑 결혼할 생각을 했어?”심도윤은 그 말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임유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 시각 나는 강운에 있는 한 병원 특실에 누워 있었다. 병상 곁에 앉아 있던 진연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외할머니 장례는 내가 다 처리해 놓았어.”“가지고 있던 주식도 변호사랑 상의해서 전부 헐값에 정리했어. 지금쯤이면 심원 그룹은 난리가 났을 거야.”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진연우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외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직도 내 안에 짙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감싸 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이 너한테 이렇게까지 할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날 나무 뒤에 숨어 있지 않았을 텐데.”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진연우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채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일을 당했던 날, 사실 나도 거기 있었어. 다만 한발 늦었을 뿐이야.”그의 눈에는 짙은 후회가 어려 있었다.“그때 난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범생이였어.”“심도윤처럼 싸울 줄도 몰랐고 널 지켜줄 수도 없었어. 경찰에 신고한 뒤 나무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지.”“네게 다가가 말 한마디 건넬 용기조차 없었어.”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라움에 그를 바라봤다.‘그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진연우였다니.’나와 진연우는 같은 반 동창이었다.진연우는 심도윤처럼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고 나는 성적으로 학비를 면제받아 겨우 편입한 학생이었다.당시 진연우는 반장이었는데 유독 나를 많이 챙겨주곤 했다.내 기억 속 그는 늘 다정하고 부드러운 소년이었다.지금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단단한 인상을 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내가 무심코 그를 훑어보자 진연우가 옅게 웃었다.“의외지?”“네가 심도윤과 사귀기 시작한 뒤 우리 집은 망했고
문 너머에서는 임유나가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그 아줌마 진짜 웃기지 않아? 내가 그동안 심도윤 곁에 있던 여자 여섯 명이랑 같은 줄 알았나 봐. 그년 상대하는 건 나한테 식은 죽 먹기야.”“내가 사람 시켜서 그년이 내 앞에 무릎 꿇고 스스로 뺨을 때리며 사과하는 영상 몰래 찍어 인터넷에 올린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병원 네트워크 시스템도 해킹해서 모든 TV에 그 영상 틀어버렸어!”“아, 맞다. 예전에 그 여자 남편한테 사생아가 줄줄이 생겼다고 비웃던 영상들 있잖아. 그것도 전부 다시 퍼뜨려.”“그년이 그 병원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거야.”“다들 알게 해줄 거야. 걔가 애도 못 낳는 데다 얼마나 뻔뻔한 년인지. 이 지경이 되고도 아직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잖아.”“걔가 그 늙은이를 얼마나 끔찍이 챙기는지 알잖아. 그래서 일부러 보여주고 싶었어. 자기 손녀가 얼마나 비참한 꼴이 됐는지 똑똑히 보라고.”“그 약이 얼마나 비싼데. 이미 이혼까지 했는데 왜 도윤 오빠가 계속 돈을 내야 하는데?”“걔만 없어지면 진짜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아. 나랑 도윤 오빠 앞에서 다시는 안 보였으면 좋겠어.”“조금만 기다려. 내가 도윤 오빠랑 결혼하면 너희도 다 챙겨 줄게. 재벌 2세 한 명씩 소개해 주는 건 일도 아니야.”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앞다퉈 맞장구를 쳤다.“유나야, 너 진짜 대단하다! 심원 그룹 대표 아이까지 낳았으니까 그 아줌마 쫓겨나면 바로 심도윤이랑 결혼하는 거야?”“당연하지. 너희 몰랐어? 도윤 오빠가 나 엄청 좋아하거든. 어제 SNS 못 봤어? 나 발도 씻겨줬는걸!”“결혼식도 준비해 준다고 했어!”“나한테 둘째 낳아달라고 사정까지 했다니까!”“조서아 주제에 감히 내 앞길을 막아? 그러니까 내가 독하게 나와도 원망하지 말라고.”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도윤이 문을 거칠게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왔다.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한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삼켰다.곧이어 하나둘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심도윤은 제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곧바로 비서와의 통화를 끊고 비틀거리듯 특별 병동으로 달려갔다.나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는 누구보다 내가 외할머니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잘 알고 있었다.내 어머니는 도박꾼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다. 아버지는 그 일로 십 년을 복역했지만 출소한 뒤에도 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그 긴 세월 동안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은 오직 외할머니뿐이었다.외할머니는 나를 키우기 위해 그 나이에도 쉬지 않고 일을 나갔고 그렇게 평생을 나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다.그런 외할머니는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다.그러니 심도윤 역시 외할머니를 이용하면 내가 결국 굴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임유나에게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지금 심도윤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아니야. 그냥 겁만 주려던 거야. 특효약도 실제로 끊지 않았어. 아무 일 없을 거야.’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외할머니의 주치의와 마주쳤고 황급히 상대의 손목을 붙잡으며 물었다.“할머니는요? 괜찮으신 거죠?”의사는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어르신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조 선생님도 그 자리에 계셨는데 모르셨어요?”심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는 사이 의사가 말을 이었다.“연구소 쪽에서 특효약 공급을 잠시 중단한다는 연락이 와서 저희도 투약을 멈췄습니다.”“다만 어르신의 직접적인 사인은 극심한 충격이었습니다.”“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노인분들은 원래 큰 충격을 견디기 어려우시니까요.”말을 마친 의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도윤을 바라봤다.“두 분 사이 일은 이미 병원에 다 알려졌습니다. 조 선생님이 이 층 의료진을 전부 찾아다니면서 어르신께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더군요. 충격받으실까 봐서요.”“그런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TV에서 온종일 조 선생님이...”의사는 끝내 말을 흐렸다.심도윤은 눈을 크게 뜬 채 이상함을 감지했
하지만 내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임유나를 감싸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서아야, 괜찮아? 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심도윤이 막 다가오려던 찰나, 임유나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그녀는 곧장 그의 팔에 매달리더니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도윤 오빠, 나는 그냥 서아 언니한테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온 것뿐이에요.”“그런데 갑자기 이혼 합의서를 꺼내더니 저한테 남자 꼬시는 여우 같은 년이니, 파렴치한 내연녀니 하면서 막 욕을 하잖아요.”임유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마치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몸을 움츠린 채 떨고 있었다.“저랑 도윤 오빠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때렸어요.”“집에서 나가라고도 했고요.”남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며 임유나의 눈빛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도발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심도윤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침대에서 끌어 내린 뒤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조서아, 유나한테 사과해.”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그러다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걔가 한 말 중에 틀린 게 뭐 있는데? 내가 왜 사과해?”“서아 언니...”심도윤이 말을 잇기도 전에 임유나는 분을 삭이지 못한 듯 그의 품으로 쓰러지듯 기대며 울음을 터뜨렸다.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심도윤을 차갑게 한 번 바라보고는 천천히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러자 임유나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서아 언니가 사과해 주지 않으면 밖에서 다들 우리 아이를 사생아라고 할 텐데, 저는 어떡하라고요?”“그럴 바에야 저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그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심도윤의 눈빛은 마치 원수를 바라보는 것처럼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과해.”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협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