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제2장: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마지막 선
문이 열리자마자 진한 알코올향과 익숙하기 짝이 없는 남성용 향수 냄새가 엠마의 코끝을 찔렀다. 거실에 걸린 디지털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클럽에서 마신 술 세 잔 때문에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정신은 완전히 돌아온 뒤였다. 거실 가죽 소파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겨운 광경을 똑똑히 똑똑히 볼 수 있을 만큼은 말이다. 제인은 셔츠 상단 단추를 풀고 뒤로 젖혀 앉아 있었고, 그의 무릎 위에는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은 금발 여성이 제인의 목을 핥으며 붉은 자국을 남기느라 바빴다. 그 여성은 몇 시간 전 제인과 열애설이 터진 신인 배우 바이올렛 아이리스였다. 사실 엠마에게 이런 광경은 새로울 것도 없었다. 지난 7년 동안 제인의 여자가 바뀌는 모습을 질리도록 봐왔으니까. 하지만 오늘 밤,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희망이 산산조각 난 뒤라 그런지 엠마의 가슴은 짓눌리다 못해 바스러지는 것만 같았다. 현관 쪽의 미세한 움직임을 채챈 제인이 고개를 돌렸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석상처럼 서 있는 엠마를 포착했다. 제인은 단호하지만 무심한 손길로 바이올렛의 어깨를 밀쳐냈다. "그만해, 바이올렛." 낮게 갈라진 목소리였다. "내 아내가 오해하겠어." 바이올렛은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리고는 이 아파트에 엠마가 있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엠마를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연예계 종사자로서 바이올렛은 엠마가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인의 뒤를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여자. "아내요?" 바이올렛이 애교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제인의 드러난 가슴을 다시 쓸어내렸다. "제인, 언제부터 아내가 있었어요? 훗, 아내 아니잖아. 그냥 장난감일 뿐이면서, 안 그래요?" 제인은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는 엠마의 표정을 슬쩍 훑어본 뒤, 다시 바이올렛을 바라보았다. "그래, 내 장난감이지." 제인은 그 말이 아무런 무게감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 하지만 내 장난감이 오해하는 건 싫거든." 바이올렛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얼굴을 바짝 밀어붙여 엠마가 보는 앞에서 제인의 뺨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쪽 소리를 냈다. "제인, 나 당신처럼 유명해질 때까지 꼭 도와줘야 해요, 응?" 분위기에 흐르는 긴장감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이올렛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제인은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신의 주변 모든 여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 특유의 오만한 미소였다. 엠마는 그들의 상호작용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 이상 상관없었다. 제인과 바이올렛 아이리스가 어디까지 갔는지조차 알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 전부터 끊임없이 밀려온 통증은 그녀의 마음을 마비시켜 버렸다. 엠마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거실 소파를 지나 곧장 방으로 향하려 발걸음을 옮겼다. 엠마의 차가운 반응에 제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바이올렛이 소파에서 거의 튕겨 나가다시피 할 정도로 억세게 밀쳐냈다. 그리고는 제인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 엠마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챘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제인의 목소리에는 취조하듯 다급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는 흐트러진 엠마의 옷차림을 보며 눈을 날카롭게 찌푸렸다. "이 시간에 귀가라니. 내가 찾고 있었던 거 몰라?" 엠마는 걸음을 멈췄다. 저항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제인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함께했고, 동시에 사랑해 마지않았던 남자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해 보았다. 다만, 언제부터 그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엠마 자신도 알지 못했다. 엠마의 입술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저는 그냥 도련님의 비서일 뿐이잖아요, 제인 도련님." 엠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담담했다. 지독할 정도로 담담해서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왜 비서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하세요?" 제인의 미간이 좁혀지며 눈가에 분노의 기운이 서렸다. "비서?" "아, 죄송해요.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엠마는 자조 섞인 빈정거림을 가득 담아 말을 수정했다. "제 말 뜻은... 전 그냥 장난감이라고요! 그게 더 적절한 표현 아닌가요, 제인 씨?" "엠마!" 제임스가 소리를 질렀다. 정적을 깨뜨리는 고함에 목소리가 찢어질 듯 울렸다. 거친 숨을 내쉬며 화를 참아내고 있었다. 그는 엠마가 냉소적으로 굴며 자신들 사이에 선을 긋기 위해 '장난감'이니 '비서'니 하는 단어를 쓰는 것을 지독하게도 싫어했다. 엠마는 제인이 당황한 틈을 타 손을 세게 뿌리쳤다. 제인의 악력이 풀렸다. 엠마는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제인을 바라보았지만, 이 남자 앞에서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축 늘어진 그녀의 어깨에는 지난 수년간 쌓여온 극심한 피로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 지쳤어, 제인. 진짜 너무 지쳤다고." 엠마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엠마의 얼굴에 드러난 절망의 기색을 본 제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제인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엠마는 이미 돌아서서 복도 끝에 있는 자신의 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찰칵하는 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거실에 남겨진 제인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이곳에 있는 바이올렛의 존재 자체가 이제는 역겹게 느껴졌다. 그는 소파에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바이올렛을 향해 돌아섰다. "나가가." 제인의 목소리는 낮고 협박조였다. "하지만 제인, 우리 아직—" "나가라고 했지, 바이올렛! 당장!" 제인이 냉정하게 소리쳤다. 제인의 분노에 겁을 먹은 바이올렛은 서둘러 핸드백을 챙겨 들고 도망치듯 아파트를 벗어났다. 문이 서급하게 닫혔다. 한편,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엠마는 킹사이즈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떨리는 몸을 밤의 어둠 속에 맡겼다. 참아왔던 눈물이 마침내 터져 나오며, 평소 제인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눕던 베개를 적셨다. 엠마는 눈을 감고 답답한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래, 엠마. 한 달만 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더 주는 거야.' 엠마는 속으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아까 바에서 술에 취해 가입했던 '매치 프라임(Match-Prime)' 앱이 떠올랐다. 무의식 속에서 팝업 광고의 중요한 세부 사항이 떠올랐다. 그 프라이빗 맞선 모임의 일정이 정확히 한 달 뒤로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한 달. 30일. 그것은 엠마가 제인에게 주는 유예 기간이자, 지옥 같은 이 관계에서 자신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계였다. 만약 앞으로 30일 동안에도 제인이 자신을 미래 없는 장난감 취급한다면, 엠마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떠날 것이라 맹세했다. 그 앱에서 만날 이름 모를 남자와의 혼인 계약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바꾸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14화제인은 여전히 침대 옆에 서 있는 엠마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은 제인은 손등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다정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엠마를 진정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자기야, 나 이제 촬영 준비하러 갈게. 괜찮지?”제인이 일부러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 조금 전 바이올렛의 소동으로 남아 있던 긴장감을 없애려는 듯했다.엠마는 남자친구의 짙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잠시 의심의 빛이 스쳤지만, 전날 밤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그녀는 결국 그를 믿기로 했다. 크림색 가운을 여미며 엠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늘도 바이올렛이랑 키스신 있어?”제인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키듯 고개를 저었다.“아니, 자기야. 오늘은 액션 장면이랑 일반적인 대사 장면뿐이야. 로맨스 장면은 전혀 없어.”그의 대답을 들은 엠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가슴을 짓누르던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 두 팔로 제인의 목을 꽉 끌어안은 뒤, 자신의 소유욕을 모두 쏟아내듯 그의 입술을 열정적으로 차지했다. 제인도 기꺼이 그 키스를 받아주며 잠시 입을 맞춰 주었고, 이내 엠마가 먼저 몸을 떼어냈다.“알겠어. 촬영에 필요한 것들 내가 전부 준비해 줄게.”엠마가 눈빛에 다시 생기를 되찾으며 말했다.제인은 엠마의 순종적인 태도가 완전히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고마워, 자기야.”그 후 30분 동안 엠마는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제인의 개인 비서이자 누구보다 그의 모든 필요를 잘 이해하는 여자로서, 그녀는 촬영에 입을 캐주얼한 의상을 준비하고 특수 생수와 비타민, 작은 수건까지 그의 장비 가방 안에 챙겼다. 모든 일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은 채 처리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는 마침
13화태양은 어느새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호텔 방 커튼의 좁은 틈새로 스며들어 바닥 위로 길게 쏟아지고 있었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디지털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정리되지 않은 킹사이즈 침대 위에서 제인은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엎드린 자세로 누워 있었고, 호텔 담요는 허리 아래만 간신히 가리고 있어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넓고 탄탄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독한 술의 영향과 새벽까지 이어진 격렬한 열정의 여파가 톱스타 배우의 의식을 완전히 빼앗아 주변의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제인과 달리 엠마는 아침 9시부터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다. 몸이 살짝 뻐근했지만, 가슴을 가득 채운 따뜻함과 벅찬 만족감 때문에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샤워를 하고 몸을 깨끗이 씻은 뒤, 헐렁한 크림색 새틴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은 대충 틀어 올려 하나의 번 스타일로 묶었고, 가느다란 목선의 우아한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똑! 똑! 똑!성급하고 거친 노크 소리가 방 안의 고요함을 산산이 깨뜨렸다.화장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던 엠마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소음에도 전혀 깨어날 기색이 없는 제인을 힐끗 바라본 뒤 조용히 문으로 걸어갔다.문이 열리는 순간, 바이올렛 아이리스가 이미 문밖에 서 있었다.아름다운 여배우는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허리에 리본이 장식된 세련된 한국식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명품 핸드백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었지만 얼굴에 드러난 불쾌감은 숨길 수 없었다.하지만 바이올렛이 미리 준비해 온 날카로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굳어 버렸다.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엠마의 목덜미에 꽂혔다.새하얀 피부 위에는 짙은 붉은 보랏빛 자국이 십여 개도 넘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전날 밤 제인의 독점적인 욕망이 남긴 흔적임이 틀림없었다.바이올렛은 무언가 무거운 것에 가슴을 얻어맞은 듯 숨이
12장그날 밤, 호텔 방 구석구석은 술 냄새와 뒤섞인 땀, 그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제인은 엠마에게 숨을 돌릴 틈조차 조금도 주지 않았다. 남자는 탄탄하고 다부진 몸의 힘으로 엠마를 아래에 가둔 채 몸을 낮췄다. 평소에도 이기적일 정도로 강하게 그녀를 원하던 제인의 손길은, 잠시 그를 사로잡았던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오늘 밤따라 더욱 격렬하고 소유욕이 강하게 느껴졌다.제인은 몸을 숙여 엠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뒤, 옷 한 겹 걸치지 않은 여자의 몸선을 따라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뜨겁고 집요한 입맞춤이 엠마의 희고 깨끗한 피부 위에 연이어 내려앉았다. 마치 오늘 밤만큼은 바깥세상의 흔적을 하나라도 남김없이 지워버리려는 듯, 붉은 자국이 새롭게 남았다.제인의 입술이 민감한 곳에 닿을 때마다 엠마의 몸은 크게 긴장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침대 시트를 힘껏 움켜쥐었고, 고개는 저절로 뒤로 젖혀졌다."제인…… 아, 제인……."가쁘게 몰아쉬는 숨 사이에서 남자의 이름은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 엠마는 제인의 이름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자신이 그토록 깊이 사랑했던 남자가 마침내 자신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의 감정을 인정했다는 확신을 되새기는 듯했다. 그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은 제인의 자존심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지배적인 남자로서의 남성성과 자부심이 완전히 충족되고 있었다.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제인은 잠시 몸을 일으켰다. 빠르고 성급한 움직임으로 흐트러진 검은 셔츠와 턱시도 바지를 벗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이제 그는 엠마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의 근육이 거칠고 거센 호흡에 맞춰 꿈틀거렸다.제인은 다시 엠마의 몸 위로 올라와 무릎으로 여자의 가느다란 다리를 벌렸다. 희미한 조명 아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제인의 눈에는 힘과 굶주림이 가득했고, 엠마의 눈에는 맹목적인 사랑과 완전한 항복의 빛이 어려 있었다.스륵.제인은 깊고
11장엠마가 제인의 손가락에 마지막 붕대를 감아주는 것을 끝낸 뒤, 호텔 방 안의 밤공기는 갑자기 짙은 침묵에 잠겼다. 엠마는 남은 솜과 소독약을 구급상자 안에 다시 정리하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갑자기 한 쌍의 탄탄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스륵.강한 힘이 실린 동작과 함께 제인은 엠마의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 안에 가뒀다. 남자는 엠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난 7년 동안 늘 그의 중독과도 같았던 달콤한 향기였다. 그 포옹은 너무나도 강했다. 마치 몇 시간 전부터 가슴속을 태우고 있던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전부 쏟아내는 듯했다.엠마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가슴 속을 세차게 두드렸다. 일주일 전부터 단단히 세워왔던 방어벽이 이 남자의 체온만으로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술 냄새와 뒤섞인 제인의 남성적인 향기는 엠마가 방금까지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던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했다."엠마……."제인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쉰 듯했고, 낮게 울리는 진동이 엠마의 귓가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사랑해."그 세 마디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평범했고, 평소 그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던 영화 대본처럼 시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엠마에게 그 평범한 세 마디는 지난 7년 동안 메말라 있던 그녀의 마음에 내리치는 천둥소리와도 같았다. 매일 밤 기다려왔던 말, 제인이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느꼈던 고통 속에서도 늘 꿈꿔왔던 그 말이 마침내 남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엠마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동안 쌓여온 모든 고통과 숨 막힘, 가슴속에 벌어진 깊은 상처가 갑작스럽고도 기만적인 따스함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다. 엠마는 천천히 제인의 어깨를 살짝 밀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배우의 짙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엠마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으로 제인
bab10엠마는 호텔 객실 문을 단단히 닫았다. 그녀를 괴롭히던 허기가 오늘 밤 겪은 온갖 미친 일들로 인한 극심한 피로로 바뀌면서,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그녀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엠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엿보지 않아도 문밖에 누가 서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었다.제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짙은 술 냄새가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눈부시게 잘생긴 외모만큼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사실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엠마를 놓쳤을 때, 제인의 가슴 한구석에는 순간적인 당황과 그리움이 몰려왔다. 젠장, 그의 마음 한편에서는 엠마의 가녀린 몸을 품에 끌어안고 꽉 붙잡은 채,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어 결혼식 피로연 이후 자신을 짓눌러 온 답답함을 달래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다.하지만 제인 블랙우드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았다. 그는 늘 사람들이 쫓아오는 최고의 배우였지, 누군가를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엠마를 끌어안는 대신, 제인은 오만한 태도로 방 한쪽에 놓인 1인용 소파로 걸어갔다. 그는 일부러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고 유혹적인 자세로 몸을 기대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불과 몇 분 전 복도에서 바이올렛 아이리스가 남긴 작품, 목에 선명하게 남은 붉고 보랏빛의 자국을 일부러 드러냈다.제인은 곁눈질로 엠마를 바라보며 자신이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는 반응을 기다렸다. 평소라면 엠마는 그의 몸에 다른 여자가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는 순간 질투심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로 올라가 셔츠를 찢어 열고, 마치 자신만이 제인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침대에서 그를 완전히 만족시켰다. 제인은 엠마가 자신에게 보였던 절대적인 순종과 강렬한 소유욕이 그리웠다.그러나 초조하게 몇 초, 또 몇 초가 흘러도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루카스는 프레지덴셜 스위트의 킹사이즈 침대 위에 엠마를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동작으로 내려놓았다. 그는 품에 안고 있던 부담을 최대한 빨리 내려놓고 싶었고, 안타깝게도 자신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기 시작한 이 낯선 여자의 온기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하지만 엠마는 자신의 먹잇감이 그렇게 쉽게 도망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등이 푹신한 매트리스에 닿는 순간, 엠마는 작게 신음했다. 남아 있는 술기운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고 싶은 절박함을 이용해,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어지럼증에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반사적으로 팔을 움직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재빨리 루카스의 검은 셔츠 깃을 움켜쥐었고, 일부러 몸을 옆으로 굴리며 그를 아래로 잡아당겼다.“추워… 어지러워…” 엠마가 쉰 듯하면서도 극도로 유혹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몸을 루카스의 가슴에 밀착시켰고, 균형을 잃은 루카스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은 채 넘어졌다.순식간에 루카스의 몸이 엠마의 위로 떨어졌다. 두 사람의 얼굴은 불과 몇 센티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루카스는 자신의 몸에 맞닿은 엠마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는 온기를 찾는 것처럼 은근히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루카스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턱이 즉시 단단하게 굳었다.젠장.희미한 침실 조명 아래에서 엠마의 달콤한 체향과 아직 남아 있는 술 냄새가 뒤섞여 방 안을 채웠다. 그것은 10년이 넘도록 억눌러온 그의 본능적인 반응을 자극했다. 성숙한 남자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심장 박동은 빨라졌으며 아랫배에서 뜨거운 열기가 갑작스럽게 치솟았다.루카스는 어두운 눈을 가늘게 떴다. 분노와 억눌린 욕망이 뒤섞인 눈빛은 그의 분위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는 거칠게 움직여 엠마의 양쪽 손목을 움켜쥔 뒤 매트리스에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눈을 떠, 이 빌어먹을 여자야.” 루카스가 이를 악물고 낮게 내뱉었다.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그의 목소리는 한층 낮고 거칠어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