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43화. 당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조찬수와 형사들은 별장 주변부터 살폈다.거실의 희미한 불빛 외엔 전부 커튼이 쳐져 있어 안의 상황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어떻게 하죠? 그냥 밀고 들어갈까요?”박 형사가 낮게 속삭이며 현관문 손잡이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조찬수는 잠시 턱끝을 만지며, 고민에 빠졌다.영장 없는 가택 침입은 나중에 독이 될 수 있었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진 신호를 보냈다.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며 데크를 밟았다.나무판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게 체중을 분산하며 현관 앞에 섰다.똑, 똑, 똑.박 형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노크 소리는 밤의 정적 속으로 무력하게 흩어졌다.안에서는 그 흔한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조찬수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그는 박 형사를 뒤로 물리고 직접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거칠고 단호했다.“이재현 씨! 경찰입니다. 안에 있는 거 다 압니다. 문 여세요!”조찬수의 외침이 텅 빈 복도를 울리는 울림처럼 돌아왔다.문 뒤에서 바다와 시은은 서로의 손을 부서질 듯 움켜쥐었고, 동혁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별장 주변의 탈출로를 눈으로 훑고 있었다.바다의 심장 소리가 귓전을 때릴 만큼 커졌을 때였다.끼이익—.기름칠이 덜 된 경첩이 불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틈새로 쏟아진 빛과 함께 나타난 인물은 뜻밖에도 너무나 평온한 모습의 이재현이었다.실크 소재의 짙은 감색 잠옷 차림을 한 그는, 방금 자다 깬 듯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입가에는 수면의 여운이 남은 듯한 나른한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아니, 이 밤중에 무슨 실례입니까? 형사님들.”재현은 문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조찬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당황하거나 겁먹은 기색은커녕, 오히려 불청객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여유로운 짜증이 묻어났다.뒤편에 선 바다를 발견한 재현의 눈동자가 잠시 가늘어졌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42화. 일촉즉발재현은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진 하늘을 굽어보았다.방금 전의 폭발적인 광기는 어디로 갔는지, 그의 얼굴에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비탄이 서려 있었다.그는 느릿하게 무릎을 굽히고 앉아 하늘과 눈높이를 맞췄다..“그러게, 왜 자꾸 내 말을 안 들어, 누나.”재현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하늘의 붉게 부어오른 뺨을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깃털을 만지듯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가해자의 손길이라기엔 지나치게 애틋해서 더 기괴한 온기였다.하늘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거북이처럼 어깨를 말아 쥐었다.그 사소한 거부의 몸짓에 재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왜 내가 옆에 있는데 다른 남자를 앉혀두고 웃어? 왜 그 팀장이라는 놈이랑 그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 사람 질투 나게.”그는 정말로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재현에게 있어 하늘의 외부 소통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배신이자, 정해진 궤도를 이탈한 행성처럼 보였다.그는 하늘의 턱끝을 들어 올려 억지로 시선을 맞추게 했다.공포로 초점이 흐릿해진 하늘의 눈동자 속에 오직 자신만이 담기길 원하는 갈구였다.“나만 보기로 약속했잖아. 그날 우리 분명히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누나는 자꾸 약속을 안 지켜서 나를 이런 나쁜 놈으로 만들어? 나는 누나한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재현은 억울하다는 듯 웅얼거리며 하늘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그의 눈에 고였던 눈물 한 방울이 하늘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가해자의 눈물이 피해자의 얼굴 위에서 번지는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그는 나직하게 결론을 내렸다.“약속 안 지킨 누나가 나쁜 거야. 이건 다 누나가 자초한 거야, 알지?”그는 대답을 바라지 않는 듯 다시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재현의 등 뒤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그 그림자는 거대한 손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하늘을 완전히 집어삼킬 듯 덮쳐오고 있었다.“내가…,
41화. 흔적 찾기경찰서 안의 탁한 공기는 밤샘 근무자들의 피로와 찌든 담배 냄새로 눅눅했다.조찬수 형사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서류를 넘기다, 밀치듯 들어오는 두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다급하게 들이닥친 바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곁을 지키는 동혁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형사님, 이것 좀 봐요. 당장 보라고요!”바다가 거칠게 내민 휴대전화는 액정이 거미줄처럼 박살 나 있었다.조찬수가 당황하며 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바다의 떨리는 손가락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곧이어 복도를 울리는 둔탁한 구타 소리와 짐승 같은 고함, 그리고 그 모든 소음에 짓눌려 신음처럼 새어 나오는 가녀린 여자의 비명이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은혜도 모르는 년이! 내가 널 어떻게 가르쳤는데!’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조찬수의 미간이 깊게 팼다.불과 얼마 전,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법망을 비웃던 남자의 얼굴이 스쳤다.‘증거 불충분.’조찬수가 법적 절차를 이유로 내뱉었던 그 면죄부가 머릿속을 때렸다.자기 손으로 풀어준 괴물이 결국 어떤 사냥을 저질렀는지, 녹음 파일 속 절박한 비명이 증명하고 있었다.이재현.그 이름 석 자가 조찬수의 혓바닥 위에서 비릿하게 맴돌았다.“이거…… 이재현이죠?”조찬수의 물음에 바다는 대답 대신 이를 악물었다.턱 근육이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그놈이 내 동생 끌고 갔어요. 형사님이 증거 없다며 풀어준 그 새끼가요.”동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찬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형사님, 이제 '애매하다'라는 말은 안 통합니다. 위치 추적 시작하세요. 협조 안 하시면 이 녹음 파일 들고 바로 청문감사실로 갑니다.”조찬수는 마른세수를 하며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책상 위에 놓인 형사 수첩과 차 키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조금 전까지 그를 짓누르던 피로감은 이제 형사로서의 부채감과 분노로 치환되어 있었다.그는 옆자리에
40화. 납치현관문이 기어코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번호를 맞힌 것인지, 아니면 느슨해진 틈을 타 물리적인 힘으로 짓이긴 것인지 판단할 겨를조차 없었다.밀려 들어온 재현의 체취가 거실의 정적을 단숨에 집어삼켰다.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하늘의 시야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고, 곧이어 뼈가 으스러질 듯한 통증이 손목을 타고 뇌를 찔렀다.“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네. 이제 나와 함께 있어야지, 누나.”재현의 목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차분했다.그는 하늘의 손목을 낚아챈 채 짐승을 다루듯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비틀거리며 일어난 하늘의 몸이 종잇장처럼 흔들렸다.거실 바닥을 긁는 발소리와 재현의 거친 숨소리가 뒤섞였다.“제발, 재현아. 제발 그만해. 제발…….”하늘이 흐느끼며 매달렸지만, 재현은 돌아보지 않았다.오히려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복도를 향해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그만두다니? 뭘? 나랑 헤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나랑 헤어지고 그 팀장이라는 새끼한테 가려고?”재현이 멈춰 서서 하늘을 돌아보았다.희게 질린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연민도 없었다.오직 소유물을 향한 비뚤어진 집착만이 번득였다.“그렇게는 안 되지. 약속을 어긴 건 누나야. 누나는 앞으로 평생 내 곁에서 그 벌을 받아야 해.”재현은 하늘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집 밖으로 끌어냈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그는 하늘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으며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몸부림치던 하늘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복도 바닥으로 떨어졌다.녹음기가 켜진 채 바닥을 뒹구는 휴대전화였다.하지만 재현은 승리감에 도취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를 지하 주차장으로 몰아넣었다.주차장의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재현은 뒷좌석 문을 거칠게 열고 하늘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쾅,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마침표와 같았다.“하늘아, 이제 아무도 방해 못 해. 우리 둘뿐이야.”운전석에 올라탄 재현이 백미러로 겁에
39화. 침입정오의 햇살이 내리쬐는 옥상은 지나치게 평온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바다는 난간에 위태롭게 기댄 채 타들어 가는 담배만 내려다보았다.연기를 깊게 들이마셔도 가슴 속의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머릿속은 온통 거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하늘의 잔상으로 가득했다.도어락을 누르던 재현의 손가락 소리, 문 너머로 들려오던 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담배가 짧아질 동안 한숨만 세 번이네요.”뒤에서 들려온 낮은 음성에 바다가 어깨를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동혁이었다.그는 평소처럼 단정한 셔츠 차림이었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팀장으로서의 의무감 그 이상의 염려가 담겨 있었다.“……아, 팀장님.”“무슨 일 있습니까? 안색이 더 안 좋습니다.”동혁은 바다의 곁으로 다가와 난간을 짚었다.바다는 머뭇거리다 결국 억눌러왔던 고통을 쏟아냈다.누구라도 붙잡고 이 막막함을 털어놓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그놈이……. 어젯밤에 집 문 앞까지 찾아왔습니다. 번호를 계속 바꿔가며 하늘에게 전화를 걸고, 문밖에서 다 들으라는 듯이 떠들다 갔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집에 혼자 있는 하늘이가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을지 생각하면…….”바다의 목소리가 끝에서 가늘게 떨렸다.담뱃재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스토킹입니까?”동혁의 질문은 날카롭고 직설적이었다.감정적인 공감보다 상황의 본질을 먼저 파악하려는 태도였다.“스토킹……. 신고가 가능할까요? 경찰서에서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저놈을 풀어줬는데, 겨우 전화하고 집 앞에 온 걸로 뭐가 바뀔지 모르겠습니다.”바다의 자조 섞인 물음에 동혁은 잠시 먼 하늘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현행법상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 신체적 위해를 가하거나 지속적인 위협이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바다 씨, 법이 느리다고 해서 우리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동혁이 고개를 돌려 바다와 눈을 맞췄다.그의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38화. 스토킹재현은 통제권을 잃었을 때 느끼는 불쾌한 박동을 억누르려 애썼다.경찰서 문을 나설 때만 해도 조롱하듯 여유로웠던 미소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손안의 스마트폰은 벌써 수십 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연결이 끊기거나,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기계적인 음성만이 공허하게 방안을 채웠다.차단.재현에게 이 단어는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정교하게 짜인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가는 소리였다.그는 거칠게 휴대전화를 집어던지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어두운 거실, 텔레비전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무의미한 불빛이 그의 일그러진 안면 근육을 기괴하게 비췄다.“유하늘. 지금 장난하는 거지?”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눈동자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재현에게 하늘은 사랑의 대상이자 완벽하게 박제되어 있어야 할 소장품이었다.자신이 지운 기억의 빈자리를 오직 자신만이 채워야 했다.그런데 그 빈틈에 구동혁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었고, 이제는 유바다라는 장벽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재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병을 집어 들었다.잔도 없이 병째 들이켜자 타는 듯한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알코올의 기운이 머리에 닿자, 불안은 곧 날카로운 분노로 치환되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하늘의 사진들 앞으로 다가갔다.“감히 네가 나를 거부해?”재현의 손이 사진 속 하늘의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연락이 닿지 않는 1분 1초가 그에게는 하늘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영영 빠져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그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어 새로운 번호로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손가락이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방안에 신경질적으로 울려 퍼졌다.[누나, 오빠랑 같이 있는 거지?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누나가 오해하는 거야. 제발 전화 좀 받아.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내가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이야.]전송 버튼을 누른 재현은 광기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