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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대면

Author: 소담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2 19:36:09

25화. 대면

일주일간의 연차.

바다에게 그것은 휴가가 아니라 일종의 형벌이었다.

동생이 사고를 당할 때 곁에 없었다는 자책감은 그를 주방으로, 청소기로, 그리고 하늘의 방 앞으로 끊임없이 내몰았다.

“하늘아, 전복죽 좀 더 먹을래? 오빠가 간 딱 맞춰놨는데.”

바다는 국자를 든 채 거실을 기웃거렸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던 하늘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2024년의 기억 속에 멈춘 하늘에게, 훌쩍 커버린 오빠의 헌신적인 모습은 듬직하면서도 왠지 모를 서글픔을 자아냈다.

띵동-.

정적을 깬 것은 초인종 소리였다.

바다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현관으로 달려갔다.

“재현인가 보네. 아까 퇴원 축하한다고 케이크 사 온다더니.”

바다가 활짝 문을 열었지만,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화려한 케이크 상자가 아니었다.

감색 코트 깃을 세운 채, 서늘한 눈매를 가진 사내.

동혁이었다.

“……팀장님? 아니,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바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회사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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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멍든 꽃의 계절   49화. 자책

    49화. 자책일상은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현관문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새로 달렸고, 창문마다 방범 센서가 덧대어졌다.물리적인 세계에서 이재현은 완전히 지워졌으나, 하늘의 집 안에는 여전히 그가 머물다 간 듯한 서늘한 기운이 박제되어 있었다.하늘은 밤마다 불을 끄지 못했다.형광등의 차가운 빛이 눈꺼풀을 찔러야만 겨우 얕은 잠에 들 수 있었다.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층간소음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진동에도 하늘은 발작하듯 깨어나 현관으로 시선을 던졌다.디지털 도어락의 '띠릭'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때면, 그녀는 숨을 멈추고 문틈 아래의 그림자를 살폈다.당장이라도 문손잡이가 돌아가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재현이 성큼 걸어 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그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본능의 영역이었다.재현이 남긴 '푸른 꽃'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랗게 변하다가 이내 살색 밑으로 숨어버렸다.거울 속의 피부는 말끔해졌지만, 정작 통증은 피부 아래에 똬리를 틀었다.밤이 깊어지면 재현이 거칠게 잡아챘던 팔목이 타는 듯이 뜨거웠고, 차가운 바닥에 짓눌렸던 등줄기에서는 감각 없는 통증이 되살아났다.꿈속에서의 별장은 매일 조금씩 구조를 바꾸며 하늘을 가두었다.어떤 날은 창문이 아예 없는 방이었고, 어떤 날은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실 계단이었다.꿈에서 깨어나면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거친 호흡은 좁은 방 안을 공허하게 메웠다.하늘은 침대 모서리에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어깨를 감싸안았다.가해자는 철창 뒤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보이지 않는 창살은 여전히 하늘의 밤을 촘촘히 에워싸고 있었다.사그라지는 멍 자국과는 대조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곪아 터진 기억의 흉터는 밤마다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이제 하늘에게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처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 안에서조차 이방인처럼 서성이는 이 지독한 불안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결국 바다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하늘의 손을 이끌었다.현

  • 멍든 꽃의 계절   48화. 선고

    48화. 선고일주일 뒤의 법정은 지난번의 소란이 무색할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방청석은 듬성듬성 비어 있었고, 취재진의 카메라도 눈에 띄게 줄었다.선고 공판에는 치열한 공방이 없다.오직 차가운 결과만이 선언될 뿐이다.이 지루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견딜 수 있는 이들, 혹은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 이들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피고인석에 들어선 재현은 지난번과는 딴판이었다.구슬 같던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었고, 고가의 슈트 대신 입은 수의는 그의 오만함을 깎아내린 듯 수척한 실루엣을 만들었다.하지만 하늘이 방청석에 앉는 순간, 죽어있던 그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뜩였다.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그 시선은 끈질기게 하늘의 얼굴을 핥았다.바다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하늘의 시야를 가로막았다.동생에게 닿으려는 그 불결한 집착을 물리적으로라도 끊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재판장이 판결문을 펼쳤다.종이가 넘겨지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법정 안을 무겁게 울렸다.낭독은 느렸고, 그만큼 잔인했다.“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한 반복적 접근, 계획적 납치와 감금, 거주지 보안 시설 무력화, 외부와 차단된 공간의 개조….”재판장의 목소리는 메마른 무채색이었다.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았기에, 그가 읊는 문장들은 오히려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재현의 죄질을 낱낱이 도려냈다.문장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재현의 어깨가 조금씩 아래로 꺾였다.그것은 반성이 아니라, 자신의 치밀한 ‘사랑’이 법이라는 건조한 논리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굴욕처럼 보였다.“피고인은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사랑이라 강변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외상과 신체적 고통을 안겨주었다.”재판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안경 너머로 피고인을 응시했다.법정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피고인 이재현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다.”순간, 바다가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고함이 터져 나오려는 찰나, 곁에 있던 동혁의 손이 그의 팔을 낚아챘다

  • 멍든 꽃의 계절   47화. 재판

    47화. 재판바다는 현관에 서 있었다.불을 켜지 않은 채로, 잠시 그냥 서 있었다.어둠 속에서 집이 낯설었다.같은 벽, 같은 가구인데 공기가 달랐다.뭔가가 배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성으로는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이 쉽게 떼지지 않았다.그는 손을 뻗어 조명을 켰다.빛이 거실을 채웠다.바다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하늘의 가방을 찾아 침실로 향하면서, 지나치는 것들을 눈으로 훑었다.현관 도어락. 손잡이. 창문 잠금장치.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었다.그게 오히려 더 찜찜했다.아무 흔적도 없이 드나들었다는 뜻이니까.세면도구를 챙기며 욕실을 한 번 봤다.칫솔, 스킨, 수건. 별것 아닌 것들인데 손이 잠깐 멈췄다.동생이 이걸 다시 쓰러 돌아와야 한다.그 생각 하나가 바다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가방에 물건을 넣으면서 그는 집 안 조명을 전부 켰다.이유는 없었다.그냥 켰다.환해야 할 것 같았다.하늘이 돌아왔을 때,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 같았다.그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취조실은 좁았다.누런 형광등 아래 재현은 등을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수갑을 찬 손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손가락으로 쇠를 가볍게 두드렸다.긴장한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조찬수가 서류를 펼쳤다.도어락 입력 시도 기록. 날짜와 시각이 찍힌 로그가 열두 줄이 넘었다.틀린 번호를 하나씩 눌러가며 맞는 것을 찾아낸 흔적이었다.그 옆에는 수십 개의 발신 번호 목록. 재현이 번호를 바꿔가며 하늘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록이었다.마지막 날짜에는 하늘의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는 통신 기록이 붙어 있었다.그다음 재현이 한 일은 직접 찾아간 것이었다.서류 맨 아래에는 하늘의 몸에서 확인된 멍 사진, 그리고 납치 당일 현장에서 확보된 녹음 파일 재생 기록이 있었다.조찬수는 한 장씩 재현 앞에 밀었다.재현은 내려다봤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전 누나를 지키려고 했던 것뿐이에요."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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