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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하늘과 바다

Author: 소담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6 16:42:36

1화. 하늘과 바다

“아휴, 저 어린것들은 어쩌나. 쯧쯧.”

“애들 생각해서라도 좀 더 견뎌보지. 에휴, 독하기도 해라.”

익숙한 동네 어귀, 평조차 덧씌워진 한낮의 따가운 햇살 아래로 눅눅한 수군거림이 부유했다.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민 이웃들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불쾌함, 그리고 아주 약간의 연민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열세 살 바다는 안다.

저 가벼운 혀 놀림들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어짐과 동시에 흩어질 찰나의 소음일 뿐이라는 것을.

저들은 곧 자신들의 안온한 일상으로 돌아가, 이 비극을 안줏거리 삼아 씹어댈 것이다.

저 선의(善意)는 딱 그만큼의 무책임한 안도였다.

하늘이 바다의 셔츠 끝단이 찢어질 듯 움켜쥔 채 울음을 토해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모와 함께 드나들던 현관문이 열리고, 하얀 천에 덮인 두 구의 시신이 차가운 들것에 실려 나왔다.

열 살 아이는 제 세계가 송두리째 구급차의 뒷문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며, 꺼이꺼이 숨을 몰아쉬었다.

저 아이는 무엇을 짐작하며 저토록 서럽게 울까.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인 자신조차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데.

사실 바다는 그날 밤,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부모의 낮은 목소리를 기억한다.

절망에 젖은 어른들의 흐느낌과 약병이 부딪히는 소리.

바다는 이미 그날 밤에 울음을 다 소진해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슬픔이 아니라, 자신들을 남겨두고 저 하얀 천 너머로 도망쳐버린 무책임한 어른들을 향한 서늘한 원망뿐이었다.

구급차의 뒷문이 무겁게 닫히고, 빨간 경광등이 한낮의 골목을 기괴하게 물들였다.

제 손등 위로 떨어지는 하늘의 눈물은 뜨거웠으나, 바다의 심장은 그만큼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바다는 울음 섞인 하늘의 어깨를 감싸안는 대신, 이웃들의 수군거림을 향해, 그리고 부모를 싣고 떠나는 구급차를 향해 차갑게 굳은 눈빛을 쏘아 보냈다.

이제 이 세상에 우리를 지켜줄 울타리는 없었다. 오직 서로뿐이었다.

***

“미안하다. 바다야, 하늘아. 정말 미안해….”

장례식장을 지키던 고모가 빈소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던 남매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아이들의 마른 어깨 위로 고모의 뜨거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바다는 자신마저 부서뜨릴 듯 꽉 껴안은 고모의 양 팔에서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

고모의 '미안하다'라는 말의 무게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빠를 먼저 보낸 누이의 슬픔이자, 조카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뻔했던 제 혈육의 죄를 대신 짊어지겠다는 처절한 고해성사였다.

그러나 열세 살 소년은 그저 고모의 옷자락을 꽉 쥔 채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하늘은 고모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저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엄마와 아빠가 하얀 천에 덮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은 열 살 아이에게도 명확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상실인지 다 알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제까지 당연했던 일상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던 손길도, 따뜻한 저녁 냄새도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우리 오빠의 죄를 대체 어떻게 다 갚겠니….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고모가 너희 엄마, 아빠 몫까지 다 해줄게. 고모부하고도 이미 얘기 다 끝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

고모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젖어 있었으나 단호했다.

버려졌다는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내민 유일한 구원의 손길.

바다와 하늘은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소 안을 가득 채운 향 연기가 남매의 까만 상복 위로 느릿하게 흩어졌다.

이제 돌아갈 집은 사라졌고, 낯선 천장 아래서 시작될 두 번째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는 고모의 품 안에서 하늘의 작은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그것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약속이었다.

사실 그들에게 선택지가 있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

하늘 보다 한살 어린 주미는 고모의 딸이자 사촌 동생이었다.

외동이었던 아이는 언니와 오빠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세 사람은 어린시절 삼총사로 불렸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살기 전까진.

오빠 바다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입대 신청을 했다.

하늘은 그런 오빠가 서운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오빠 없이 혼자 고모집에서 지낸 적이 없던 하늘에겐 보호막이 사라져버린거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오빠의 절친인 시은과 주미가 하늘을 잘 챙겨 주었다.

주미는 제 친언니 마냥 하늘을 따랐고 시은은 제 친동생 마냥 하늘을 살뜰히 보살폈다.

바다가 제대한 후에도 두 사람은 변함없이 하늘의 곁에서 하늘을 도왔다.

하늘에겐 아무리 갚아도 채울 수 없는 빚이자 고마운 마음이었다.

***

세월은 무심하게도 상처 위로 덧씌워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 입학 원서를 사는 대신, 집 근처 간호조무사 학원을 등록하는 것이었다.

캠퍼스의 낭만이나 꿈 같은 단어들은 애초에 하늘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아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고모 가족의 등 뒤에서 한시라도 빨리 내려와 제 몫의 삶을 지탱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하늘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오빠, 바다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고모와 고모부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헌신해 왔는지.

명절마다 은근히 들려오던 친척들의 수군거림과 가끔 고모부의 지친 한숨 섞인 눈치를 보며 하늘은 자신을 '염치없는 식객'이라 정의 내리곤 했다.

바다만으로도 이미 과분한 도움을 받고 있는데, 자신까지 그 가느다란 가계의 줄에 매달려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모, 저 대학 안 가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 따려고요.”

수줍게 내뱉은 그 말이 사실은 제 꿈을 꺾는 소리였다는 걸 고모는 알았을까.

하늘은 매일 오후와 밤에는 학원을 마친 후, 피시방이나 카페에서 서둘러 앞치마를 둘렀다.

고단한 노동 끝에 손바닥에 남는 지폐 몇 장이, 그녀에게는 대학 졸업장보다 훨씬 절실하고 확실한 구원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상처는 그녀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깎아내렸고, 그 빈자리는 ‘폐를 끼치면 안 된다’라는 강박적인 배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하늘은 자신을 지워가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

“지금도 늦지 않았어. 대학 가, 하늘아.”

편의점 불빛만 듬성듬성한 밤거리를 걸으며 바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새벽 1시.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마친 동생의 퇴근길을 지키는 것은 군 제대 후 복학한 바다의 일과가 되어 있었다.

“오빠, 나는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거창한 꿈도 없어.”

“간호조무사 자격증은 그러면 왜 따는데? 사실은 간호사가 되고 싶은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간호대 진학 준비해. 오빠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아니야. 그냥 빨리 돈 벌려고 따는 거야. 그리고 시은 언니가 간호사 꿈꾸며 열심히 사는 게 멋있어 보여서 시작한 것뿐이야.”

“그럴수록 더더욱 간호사가 되어야지, 간호조무사가 아니라.”

“내 실력으론 못 가. 나 공부 그렇게 잘하는 편 아니었잖아.”

“너 늘 평균 이상이었어. 충분히 갈 수 있어, 네가 포기만 안 하면.”

하늘은 대답 대신 가방끈을 매만졌다.

이 화제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침묵이었다.

“이 얘긴 그만하자. 오빤 어때? 복학하니까 적응하기 힘들지 않아?”

“좀 정신없긴 해. 겉도는 기분도 들고.”

“치, 시은 언니랑은 도대체 언제 사귈 거야? 설마 나 몰래 벌써 사귀는 건 아니지?”

하늘이 짐짓 밝은 척 장난스럽게 웃었다.

바다는 그런 하늘을 보며 피식, 짧은 실소를 흘렸다.

“시은이가 내 유일한 친구인 거 알면서 꼭 그런 소릴 해.”

“아까워서 그래. 언니가 너무 좋기도 하고.”

“그래, 정말 좋은 친구지. 나 없는 동안 널 친동생처럼 아껴주기도 했고.”

“맞아. 오빠 군대 가 있는 동안 언니가 얼마나 날 챙겨줬는지 몰라. 가끔 그런 생각해. 엄마랑 아빠가 우리한테 미안하니까, 당신들 대신 시은 언니를 보내 준 게 아닐까 하고…….”

순간, 밤공기가 얼어붙었다.

바다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늘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 오빠. 나도 모르게 부모님 얘기가 나왔네.“

바다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하늘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늘 이랬다.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것.

그것이 하늘의 생존 방식이었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엇보다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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