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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作者: 하늘
강도희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

강희주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비꼬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너... 지금 나를 기만하려는 거야? 그 사람들을 정말로 포기하겠다고?”

강희주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두었다.

“도희야, 세상 모든 여인이 사내의 총애에 목을 매고 살아가진 않는단다.”

강도희는 코방귀를 뀌었다.

가식적인 허세라 치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궁중 연회장에 도착하자, 화려한 등불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고 수많은 빈객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뭇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의기양양하게 담소를 나누던 소도윤, 서태경 그리고 최이현은 강씨 자매가 들어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즉시 그쪽으로 걸어왔다.

“도희야, 옷을 어찌 이리 얇게 입었느냐.”

서태경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금사가 수놓인 검은색 망토를 벗어 내렸다.

“밤바람이 차다. 또 고뿔이라도 걸려 두통을 앓을까 걱정되는구나.”

소도윤과 최이현 역시 거의 동시에 제 망토를 풀어 내렸다.

화려하고 귀한 사내의 망토 세 벌이 오직 강도희 한 사람만을 향해 뻗어졌다.

순간, 강도희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짐짓 부끄러운 척하며 망토를 밀어냈다.

“태경 오라버니, 도윤 오라버니, 이현 오라버니, 저만 챙기지 마시옵소서. 언니도 추울 텐데...”

주변 사람들은 그제야 다소 어색한 시선으로 곁에 서 있는 강희주를 바라보았다.

달빛처럼 은은한 백색 궁중 예복 한 벌만을 걸친 강희주는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외로이 서 있었다.

가냘프고도 처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 사내의 망토는 여전히 강도희의 앞에 머물러 있을 뿐 누구 하나 손을 거두지도, 그렇다고 강희주에게 먼저 건네지도 않았다.

마치 강도희가 선택을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녀가 고르고 남은 것이어야 비로소 강희주의 차례가 된다는 것처럼.

강희주는 입꼬리를 유연하게 끌어 올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잔잔한 수면처럼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

“염려해주어 고맙긴 하나, 난 춥지 않다.”

말을 마친 그녀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곧장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연회가 무르익자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가무가 이어지며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앉은 소도윤 일행은 시선을 강도희에게서 좀처럼 떼지 못했다. 수시로 그녀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손수 음식을 집어 주거나 술을 따라 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반면 강희주에게는 간혹 복잡미묘한 시선만을 힐끗 던질 뿐, 그 어떤 관심도 두지 않았다.

강희주는 그들의 태도를 철저히 무시한 채, 그저 묵묵히 눈앞의 음식을 음미할 뿐이었다.

이윽고 황후가 왕림했다.

모두가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리자, 황후는 영롱한 물빛이 감도는 옥비녀 한 자루를 꺼내 보였다. 오늘 연회에서 장기를 뽐내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자에게 이 비녀를 하사하겠다는 요량이었다.

장내가 단숨에 술렁였다.

“경합을 벌일 이유가 있습니까?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계시는데 감히 누가 장원을 넘보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강씨 아가씨의 거문고 솜씨는 도성 제일에다, 일찍이 춤 한 자락으로 천하를 뒤흔들었으니 주인은 진작 정해진 셈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영애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저마다의 장기를 선보였으나, 이미 대단한 명성을 떨친 강희주가 버티고 있는 한 모두의 실력은 어딘가 빛이 바래 보였다.

이윽고 강희주의 차례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장기인 거문고를 연주하는 대신, 뜻밖에도 화려한 호선무(胡旋舞)를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짓은 제비처럼 가벼웠고, 회전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눈매에 서린 신비로운 광채가 거친 춤사위를 따라 찬란하게 부서졌다. 마치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과 자유로움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온 궁 안의 모든 광채가 오직 그녀 한 사람에게만 쏟아지는 듯했다.

좌중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 강도희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가녀린 몸짓으로 수습무(水袖舞)를 선보였다.

춤사위 자체는 유연하고 제법 고왔으나, 방금 전 연회장을 압도했던 강희주의 호선무 뒤에 이어지다 보니 어딘가 밋밋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돋보이려 과하게 몸을 움직이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까지 하자, 곳곳에서 나직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보아도 이번 부상의 주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강희주의 몫이었다.

그러나 황후의 곁을 지키던 지밀상궁은 옥비녀가 놓인 쟁반을 받쳐 들고는, 곧장 강도희의 앞으로 걸어가 미소를 지으며 선포했다.

“황후마마의 교지가 있으셨느니라. 강씨 가문의 작은 아가씨의 춤사위가 남다른 운치가 있고 청초하고 가련하니 이에 옥비녀를 하사하여 기특함을 치하하노라.”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이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장내를 잠식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아무리 봐도 큰아가씨의 춤이 훨씬 뛰어났는데!”

“자네는 그 소식도 못 들었는가. 삼 황자 전하와 서 장군, 그리고 세자 저하께서 직접 황후마마를 찾아가 간청하셨다더군. 작은 아가씨의 춤이 더 특별하고 고우니 상을 내려 달라고 말이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큰아가씨를 제외하고, 세 분이 다른 여인을 이토록 감싸고 도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쯧쯧, 이제 도성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려나 보군. 큰아가씨가 아무리 절세미인에 천하의 재녀라 한들 무엇하나. 사내들의 마음을 홀리는 솜씨는 여동생만 못한 모양인데...”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강희주의 귀에 똑똑히 흘러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동정, 조롱, 혹은 고소해하는 감정이 뒤섞여 그녀를 집요하게 찔러댔다.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강도희를 기쁘게 해 주려 사적으로 황후를 찾아가 부탁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황후가 대놓고 이런 식으로 상을 내릴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 이토록 큰 논란이 일며 강희주가 모두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강도희는 비녀를 꼭 쥔 채 강희주에게 다가왔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언니, 송구하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라버니들은 제가 이런 큰 연회에 처음 와서 긴장하고 낙담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신 거예요. 제발 노여워하지 마세요. 탓하시려거든 차라리 저를 탓하세요.”

소도윤이 헛기침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을 보탰다.

“희주야, 도희는... 우리는 그저...”

“화나지 않았다.”

강희주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심지어 아주 엷은 미소마저 감돌고 있었다.

“겨우 비녀 한 자루일 뿐인걸.”

말을 마친 그녀는 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밖으로 향하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 묵묵히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강도희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곧은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더니 소도윤 일행을 향해 서글프게 흐느꼈다.

“언니가 단단히 토라진 게 분명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이 비녀를 받지 말걸 그랬어요.”

세 사람은 서둘러 다정하게 그녀를 달래 주었다.

그러나 강도희를 달래면서도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은 강희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을 옥죄어 오는 묘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우려 할수록 더욱 짙고 무겁게 차올랐다.

최근 며칠 동안 그녀는 지나치게 이상했다.

아끼던 봉명금을 달라 하니 아무 망설임 없이 내주었고,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하고 온갖 비웃음을 사게 되었음에도 원망 어린 가시 한 자락 돋워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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