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享

제3장

作者: 하늘
하지만 소도윤 일행은 그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다는 강희주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듯했다.

찰나의 경악과 당혹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가장 먼저 이성을 찾은 것은 최이현이었다.

그는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의 투정이라도 들은 양 고개를 내저으며, 이내 가벼운 어조로 받아쳤다.

“알겠다, 지난번 일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인데 그만하거라. 우리가 몇 번이고 보상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대신 다음번에 같이 가자꾸나. 오늘은 도희가 호숫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너를 소외시키려는 게 아니라, 몸도 성치 않은데 찬 바람을 맞았다가 또 앓아누울까 걱정돼서 그러는 거다.”

소도윤 역시 동조하듯 차갑게 굳어 있던 미간을 풀었다.

“그래, 다음번에 황실 사냥터로 같이 가자. 네가 승마를 좋아하지 않느냐.”

서태경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탁자 위의 봉명금을 집어 들었다.

“그럼 몸조리 잘하고 있거라. 우리는 이만 가보마.”

세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방금 전의 불편한 대화를 서둘러 덮어버리고는 몸을 돌려 황급히 희주각을 벗어났다.

강희주는 그 자리에 고요히 앉아, 문밖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어딘가 조급함이 묻어나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지금쯤 강도희에게 앞다투어 보물을 바치며 봉명금을 가져왔다고 말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러면 강도희는 가녀리면서도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이겠지.

“오라버니, 정말 감사하옵니다. 그런데... 언니가 화를 내진 않으시던가요?”

참으로 우스운 꼴이었다.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시녀 다은을 불렀다.

“가서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이 그간 보내왔던 물건들을 죄다 찾아오너라.”

다은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내 분주히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주각 앞마당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당대 명가의 서화부터 세상에 몇 없는 고서, 진귀한 보석 장신구와 최고급 비단, 그리고 바다 건너 들어온 온갖 보물들까지...

눈이 부셔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물건들이 즐비했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 모든 것에는 한때 그들이 자신에게 바쳤던 뜨겁고도 진중했던 정념이 깃들어 있었다.

강희주는 불씨를 손에 쥔 채 그 물건들 앞으로 걸어갔다.

“아가씨!”

다은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강희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가장 바깥쪽에 놓인 오색영롱한 고급 비단에 불씨를 갖다 댔다.

지난해 생일날 최이현이 건넸던 선물이었다.

불꽃이 얇고 가벼운 비단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타올랐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번지는 불길이 물결 하나 없이 고요한 그녀의 눈망울을 환히 비추었다.

거세진 불길은 서태경이 친필로 시를 적어 내린 부채를 집어삼켰고, 소도윤이 변방의 전장에서 거두어 왔다던 단검을 녹였으며, 그들이 정성을 가득 담아 골랐을 선물들을 하나하나 거뭇한 잿더미로 가공해 버렸다.

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덮치자 다은은 옆에서 애가 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차마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희주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과거 자신이 온 마음을 다해 소중히 간직했던 그들의 마음이, 불꽃 속에서 일그러지고 뒤틀리다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십수 년 동안 이어져 온, 사랑받고 있다는 착각 속의 황당하고도 비참했던 그녀의 허망한 꿈처럼 말이다.

이후 며칠간 강희주는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심정으로 황릉으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그러다 황후의 수연 날이 되었고, 그녀는 강씨 가문의 적녀로서 어쩔 수 없이 강도희와 함께 참석해야 했다.

마차 안에서 강도희는 그녀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최신 유행하는 예복을 걸치고 머리에는 엊그제 소도윤이 선물한 비녀를 꽂은 그녀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가득했다.

“언니.”

나긋나긋한 음성과 달리 눈빛은 가시가 돋친 듯 날카로웠다.

“지난번 내기는 언니가 진 거야. 봐, 내 말 한마디에 언니는 피를 쏟으며 사경을 헤맸잖아. 오라버니들은 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아.”

강희주는 눈을 감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강도희는 그칠 줄 모르고 최근 소도윤 일행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지, 무슨 달콤한 말을 속삭였는지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한층 더 과장된 말투에는 노골적인 도발과 비아냥이 가득 묻어났다.

결국 강희주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무감각하고 평온한지, 강도희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강도희, 왜 이렇게까지 나를 걸고넘어지는 것이냐.”

강희주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네 친언니고, 단 한 번도 너를 모질게 대한 적 없다.”

그 말에 강도희의 입꼬리가 굳어지더니 이내 흉물스럽게 뒤틀렸다.

“언니? 네가 무슨 언니야! 대체 무슨 자격으로? 똑같이 강씨 가문의 적녀이자 한 배에서 난 쌍둥이 자매잖아! 그런데 왜 너는 어릴 때부터 도성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비단옷에 귀한 음식만 먹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모두의 손에 떠받들려 살았어? 도성 최고의 미인이니, 최고의 재녀니 하는 칭송을 독차지하면서 말이야! 게다가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처럼 대단한 사내들이 어릴 때부터 네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물처럼 아끼며 감싸 안았잖아!”

“그런데 나는? 나는 원수에게 납치당해 가난하고 궁핍한 곳에 버려져서 배를 곯고 헐벗으며 온갖 냉대와 괴롭힘을 당했어! 내가 명줄이 질기지 않았다면 벌써 이름 모를 길바닥에서 죽어 나갔을 거라고! 날 가여워한다고 했어? 그렇다면 네가 가진 걸 전부 나한테 줘! 네가 누렸던 모든 것을 원래 주인인 내게 돌려주란 말이야!”

강도희의 눈동자에 일렁이는 지독한 원망을 마주한 순간, 강희주는 비로소 깨달았다.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던 동생이 진정으로 저주했던 대상은 자신을 납치한 악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부재를 틈타 마땅히 누려야 했을 모든 권세를 가로챈 친언니, 바로 자신이었다.

그간 보여주었던 가냘픈 의존과 살가움은 모조리 연극이었다.

오로지 빼앗기 위해, 언니의 모든 것을 기어이 탈취하기 위해 쓴 가면이었던 것이다. 저 세 사내마저도...

명치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짓눌린 듯 순간 통증이 일었으나, 이내 감각을 잃은 것처럼 잔잔해졌다.

강희주는 입꼬리를 가볍게 끌어올려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거라.”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그들 모두 네 차지란다.”

在 APP 繼續免費閱讀本書
掃碼下載 APP

最新章節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20장

    강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야께서 매달 사람을 시켜 보내준 백탄과 약재,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줄 서책들... 전부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있사옵니다.”하무현이 그녀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잘 알고 있사옵니다.” 강희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촛불 아래 비친 그 미소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운명의 장난처럼 묘하게 어긋나긴 했으나 그 덕분에 신첩이 옳은 선택을 하게 되었사옵니다.”혼인 후, 세간의 짐작을 비웃듯 두 사람은 무척이나 금슬이 좋았다.하무현은 비록 성정이 냉철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내에게만큼은 모든 다정함과 인내심을 아낌없이 내주었다.그는 그녀가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을 기억하고 겨울이 오기 전부터 서둘러 온돌을 따뜻하게 지피게 했고, 그녀의 입맛이 담백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강남에서 요리사를 불러왔다. 서책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정안왕부 장서각의 열쇠를 통째로 건네주며 마음껏 읽게 하기도 했다.달빛 아래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냈고, 그녀가 아플 때면 밤을 새워 곁을 지켰다. 심지어 그녀의 생일에는 군무조차 잠시 내려놓고 교외의 별장으로 데려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강희주 역시 세상 사람들이 ‘염라대왕’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이 사내가 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그는 그녀 앞에서 어설프게나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려 애썼고, 그녀의 칭찬 한마디에 귓가를 붉히곤 했다. 또한, 조정에서 불어오는 온갖 암투와 시련을 묵묵히 그녀 대신 막아주었다.어느 날, 두 사람은 마당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강희주는 하무현의 품에 기댄 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대감, 혹시 신첩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사옵니까?”하무현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여우 털옷을 여며주었다. 이윽고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울려 퍼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9장

    쨍그랑!단검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철고리가 힘없이 늘어지고 도자기 병이 바닥을 구르며 안에 있던 독약이 사방으로 쏟아졌다.순간,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다.세 사람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흙빛이 되어 제자리에 굳어버렸다.그제야 세 사람은 비로소 깨달았다. 눈앞의 이 여인은 이제 더는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던, 자신들이 건네는 약한 소리 한마디에 이내 마음이 누그러지던 예전의 강희주가 아니라는 것을.그녀의 마음은 이미 죽었다.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여버린 것이다.강희주는 그들에게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내실로 향했다.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마디만을 남겼을 뿐이었다.“손님을 배웅하거라.”혼례 당일, 도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정안왕부(靖安王府)가 영안공주를 맞이하는 혼례의 행렬은 공주부에서 정안왕부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북소리와 요란한 폭죽 소리가 어우러져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강희주는 금실로 봉황을 수놓은 붉은 대례복을 입고 머리에는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쓴 채, 진주 주렴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여덟 사람이 매는 용봉 가마 안에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낮게 드리워진 가마 휘장이 그녀의 절세미모를 가렸으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귀한 기품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거리 양옆으로는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공주의 자태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앞다투어 고개를 내밀었다.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은 삼 년 전 강희주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입었던 그 오래된 옷을 입고 인파의 가장 앞줄에 서 있었다.이미 하얗게 바래고 쭈글쭈글해진 옷은 지금 그들의 초라한 몰골 위에 걸쳐져 한층 더 비참하고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가마가 길목에 다다랐을 때, 최이현이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시위들의 삼엄한 저지선을 뚫고 나와 가마 앞으로 달려들더니 가마 휘장을 와락 움켜잡았다!“희주야! 희주야!” 그가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머리가 하얗게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8장

    그날 밤, 공주부.붉은 화촉이 방안을 환히 밝히고, 화려한 비단 주렴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희주는 번거로운 조복을 벗고 편안한 치마 저고리 차림이었다.창가에 앉아 바둑판에 놓인 잔기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젖어들었다.창밖의 달빛이 물처럼 흘러들어와 옥같이 고운 그녀의 옆모습을 비추니, 청아하고 고결한 자태가 마치 속세를 초탈한 듯했다.그때 돌연 창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유령처럼 창문을 넘어 안으로 난입했다!소도윤, 서태경, 최이현이었다.삼엄한 호위망을 강제로 뚫고 들어온 것이 분명했기에, 그들의 옷자락은 더욱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몸에는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소도윤의 관자놀이에 있던 상처는 다시 터져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서태경의 차가운 철고리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최이현은 찢겨 나간 도포 자락을 붙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강희주!”소도윤이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분노와 절망으로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정녕 하무현과 혼인하겠다는 거냐?! 그자에게 시집을 갈지언정, 우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겠다는 거란 말이냐!”바둑돌을 만지작거리던 강희주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굳었다. 이내 그녀가 툭, 소리가 나게 돌을 내려놓자 청아한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오직 끝없는 피로와 진저리 나는 혐오만이 감돌 뿐이었다.“깊은 밤중에 내 처소까지 난입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강희주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설마 삼 년 전처럼, 다시 한번 나를 굴복시켜 뜻대로 움직이게 하겠다는 거냐.”“우린 애원하러 온 거다!”서태경이 울부짖었다. 하나 남은 왼손을 어찌나 강하게 움켜 쥐었는지 손등 위로 푸른 힘줄이 사납게 돋아났다. “희주야! 우리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단 말이다! 지난 삼 년 동안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7장

    소도윤이 절망에 찬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맹렬히 앞으로 달려들더니, 봉련의 끌채를 와락 움켜잡았다!시위들이 깜짝 놀라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에 겨누어졌다!“그 손 치우지 못할까!”강희주가 마침내 날카롭게 호통을 쳤다. 주렴이 거칠게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그녀가 휙 돌아섰을 때 그 눈동자에는 마침내 분노가 서려 있었다. “소도윤! 방자하구나!”“그래, 나 방자하다!” 소도윤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끌채를 죽어라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가죽을 파고들어 목덜미를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 헤진 옷깃을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희주! 우리를 봐! 지금 우리 꼴이 어떤지 똑똑히 보란 말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나 때문이라고?” 강희주는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입꼬리를 싸늘하게 뒤틀었다. “설마 잊은 거냐. 삼 년 전, 나더러 강도희 대신 죄를 뒤집어쓰라며 십리 형벌을 받게 한 것이 누구였지? 내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것은 누구였지? 내가 쏘아 올린 세 발의 신호탄을 무시해 나를 호랑이 아가리에 처박히게 만든 것은 누구였느냐! 지금의 그 처참한 몰골은 너희들이 자초한 일인데,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우리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다!” 서태경이 목을 놓아 통곡하며 쇠갈고리로 돌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희주야! 제발 우리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줘! 딱 한 번만!”“기회?” 강희주의 시선이 그들을 천천히 훑었다. 섣달 한풍보다도 서늘하고 혹독한 눈빛이었다.“나는 너희들에게 수없이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매번 강도희를 선택한 것은 너희들이었지. 이제 너희들에게 남은 기회는 없다.”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억눌렀다.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을 되찾았고, 도리어 잔인하리만치 단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오늘,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6장

    맨 앞에 선 사내는 해지고 낡은 북강 변방 수졸의 누비옷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에는 풍상이 가득했고 왼쪽 눈썹뼈부터 턱밑까지 흉측한 칼흉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소도윤이었다.그의 옆에는 색이 바랜 전포(戰袍)를 입은 서태경이 서 있었다.오른쪽 소맷자락은 텅 빈 채 바람에 나부꼈고 잘려 나간 팔끝은 차가운 쇠갈고리가 대신하여 햇빛 아래 번뜩이고 있었다.최이현은 물이 빠져 하얗게 바랜 푸른 무명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에도 쓰러질 듯 수척해진 몸 위로 그 검던 머리칼은 어느새 하얗게 새어 서리처럼 변해 있었다. 얼굴은 흙빛처럼 초라하여 늙은 기색이 완연했으나 깊게 파인 눈동자만큼은 예전의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옛 모습을 미약하게나마 머금고 있었다.삼 년, 무려 삼 년이라는 세월이었다!북강의 모래바람은 소도윤의 수려한 용모를 거칠게 깎아냈고, 비린 바닷바람은 서태경의 오른팔을 앗아갔으며, 황릉 밖의 쓸쓸함은 최이현의 검은 머리를 하얗게 새게 만들었다.그들은 오직 오늘 이 자리에 서서 그녀의 눈길 한 번, 용서 한 자락을 구하기 위해 가장 처절한 방법으로 죄를 씻어내며 버텨왔다.“희주야!”소도윤의 쉰 목소리가 피눈물을 흘리듯 애절하게 허공을 갈랐다.세 사람은 쿵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백옥 계단 위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는, 신분도 체면도 모두 내팽개친 채 저 높은 곳의 봉련(鳳輦)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강희주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멎었다.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화려한 봉관에 달린 주렴이 가볍게 흔들리며 그녀의 고운 얼굴 대부분을 가렸으나, 우아한 턱선과 그 어떤 물결도 일지 않는 고요한 눈동자만큼은 선명히 드러났다.그녀는 계단 아래, 제 몰골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무릎 꿇고 있는 옛 인연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길가의 돌멩이를 보듯 지독하리만치 무심했다.“이것이 대체 무슨 무례란 말이냐?”강희주가 입을 열었다.주렴 너머로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황실의 엄숙한 격조와 서늘한 위엄이 고스란히 실려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5장

    한편 강도희는 그간의 악독한 행실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어지 한 장으로 강씨 가문에서 비참하게 쫓겨났다.그 후 석 달 동안, 그녀는 철저한 부랑자가 되어 길거리를 전전했다.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얼굴은 땟국물이 흘러, 그야말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쥐새끼처럼 쫓기는 신세였다.처참한 지경에 이른 그녀는 소도윤이 주둔한 북강의 군영까지 찾아가 울부짖으며 그를 만나게 해달라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군영을 지키던 병사들의 무자비한 몽둥이질뿐이었는바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쫓겨나야 했다.그 후에는 부두에서 출정을 앞둔 서태경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은 채 애걸복걸했다. “태경 오라버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세요...”서태경은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북강의 칼바람보다 더 뼛속을 시리게 파고들었다.“꺼져라. 그러지 않으면 네게 진짜 곤장의 맛을 보여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마지막 보루로 그녀가 찾아간 곳은 최이현이 머무는 허름한 초막이었다.최이현은 문을 열지 않고, 얇은 나무문 너머로 그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었다. “희주가 살아 있는 걸 다행으로 알거라. 아니었다면 내 손으로 널...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 속에 살게 만들었을 테니.”모든 길이 끊겼다.모든 희망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깊은 밤, 강도희는 홀로 도성 밖 얼어붙은 강가로 향했다.칠흑같이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불빛이 휘황찬란한 도성을 뒤돌아보았다.그 화려한 곳은 한때 그녀가 온갖 모략을 짜내며 갈망했던 부귀영화의 요람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사흘 뒤, 강을 순찰하던 병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차가운 물에 퉁퉁 불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진 시신은 딱딱한 얼음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기만과 탐욕, 그리고 추악한 악독함으로 가득 채웠던 그 눈동자는 마침내 영원히 감겼다.소식이 전해졌을 때, 소도윤은 북방의

更多章節
探索並免費閱讀 優質小說
GoodNovel APP 免費暢讀海量優秀小說,下載喜歡的書籍,隨時隨地閱讀。
在 APP 免費閱讀書籍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