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享

제8장

作者: 하늘
다시 깨어났을 때, 극심한 통증이 강희주의 온몸을 엄습했다. 마치 뼈마디가 전부 으스러진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냥꾼들이 쓰다 버린 듯한 허름한 오두막 안이었다.

침상가에는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난생처음 보는 극도의 공포와 밀려드는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희주야! 정신이 드느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서태경이 붉어진 눈시울로 울먹였다.

“네 다리가...”

최이현이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뼈가 몇 군데 부러졌다. 어의 말로는 아주 오랫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강희주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없었다.

고통도, 원망도, 심지어 일말의 파동조차 일지 않았다.

그 평온한 태도는 그 어떤 울부짖음이나 비난보다도 세 사람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희주야, 내 말 좀 들어보거라!”

소도윤이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의 손가락 끝바닥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때는 상황이 너무 다급했다! 도희가 탄 마차가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있었고, 상황도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단 말이다! 널 구하지 않으려던 게 아니었다. 늦지 않게 널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맞아! 늦지 않게 네 마차를 붙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

서태경이 다급하게 말을 보탰다.

“정말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강희주는 말없이 스르륵 제 손을 빼냈다.

하지만 여전히 입은 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거대한 바위처럼 세 사람의 가슴을 짓눌렀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공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결국 소도윤이 큰 결심을 내린 듯 품 안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은빛 신호탄 세 개를 꺼내 강희주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희주야, 이번엔 우리가 잘못했다. 정말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어.”

낮고 진중한 목소리에는 전례없는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이걸 가져가. 앞으로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위험에 처하든 이 신호탄 중 하나만 쏘아 올리면 우리 세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가장 먼저 네 곁으로 달려올 거야! 목숨을 걸고 맹세하건대, 다시는 네가 다치게 두지 않겠다!”

서태경과 최이현도 고개를 엄숙히 끄덕였다.

“만약 우리가 약속을 어긴다면, 네 처분대로 따르겠다!”

강희주는 손바닥 위에 놓인 싸늘한 은빛 신호탄 세 개를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

그 뒤로 한동안 세 사람은 강희주의 곁을 지키며 약을 먹이고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온갖 정성을 쏟으며 어떻게든 과거의 잘못을 만회해 보려 애썼다.

강희주의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며 도성 근교의 황실 사냥터로 가자고 청하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는 강도희도 함께였다.

황실 사냥터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군마들이 기운차게 울부짖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강희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직접 사냥에 나가 아름다운 설호 몇 마리를 잡아 왔다.

그러던 중 소도윤과 서태경은 황제의 부름을 받아 어전으로 향했다.

최이현 역시 왕부의 급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임시로 마련된 천막 안에는 오직 강희주와 강도희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강도희가 고개를 돌려 침상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강희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원망과 독기가 서린 기색이 역력했다.

“언니, 저 사람들이 지금 좀 잘해준다고 해서 마음을 돌린 줄 알아? 착각하지 마. 그저 죄책감 때문에 그러는 것뿐이니까. 저들 마음속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언제나 나야. 못 믿겠으면 우리 한 번 더 내기해 볼래?”

강희주가 서서히 눈을 뜨며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강도희, 대체 언제까지 이 미친 짓을 계속할 셈이지?”

“미친 짓?”

강도희가 비웃음을 흘렸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광기가 스쳤다.

“난 단지 언니한테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뿐이야. 언니는 평생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을 마친 강도희는 돌연 제 머리에 꽂혀 있던 금비녀를 쑥 뽑아 들더니, 망설임 없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천막이 젖혀지며 소리를 들은 소도윤 일행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도희야!”

소도윤이 눈을 부릅뜨며 달려가 강도희를 와락 품에 안았다.

“희주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서태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강희주를 바라보았다.

최이현 역시 다급히 강도희의 상처를 살폈다.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속히 어의를 불러라!”

강희주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황당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막 오해를 풀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강도희가 가쁜 숨을 내쉬며 손을 떨쳐 들어 강희주를 가리켰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언니... 어째서... 제 목숨을 앗아가려는 겁니까? 제가 오라버니들의 정을 탐해서 그럽니까?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전부 언니에게 돌려 줄 터이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감히 어디서 터무니없는 모함을!”

강희주가 기가 막혀 소리쳤다.

“그만하거라!”

소도윤이 매섭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강희주! 네가 이렇게까지 독한 줄은 몰랐다! 도희는 네 친동생이야!”

“난 그런 적 없어!”

강희주가 억울함에 목이 메어 외쳤다.

“스스로 찌른 거야...”

“스스로 찔렀다고? 고작 널 모함하려고 말이냐?”

서태경이 화가 치민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강희주, 도희가 얼마나 겁 많고 나약한 애인지 몰라서 그러냐? 그런 도희가 제 몸에 비녀를 찔러?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최이현이 강희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남아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사그라들었다.

“희주야, 네게 정말 실망했다. 여봐라, 큰아가씨를 부로 모셔라. 사당에 가두고 <여계 (女戒)>와 <심경 (心經)>을 각각 백 번씩 필사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거라! 내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꺼내주어선 안 된다!”

그렇게 강희주는 변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냥터에서 끌려 나와 음산하고 으스스한 사당에 갇히게 되었다.

사당 안은 어두침침한 촛불만 넘실거렸고, 빽빽이 들어찬 위패 사이로 쾨쾨한 향내가 자욱이 퍼져 있었다.

강희주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앞의 두꺼운 경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무감각해진 지 오래였다.

깊은 밤이 지나도록 붓을 쥐고 글을 쓰느라 손목은 시큰거렸고 온몸은 피로로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사당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이는 강도희였다.

가슴에 두꺼운 천을 감아 얼굴은 백지장처럼 투명했으나 눈동자만큼은 기괴한 조소로 빛나고 있었다.

“언니, 경전을 베끼는 기분이 어때? 난 아주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스스로 가슴을 비녀로 찔렀는데, 그들은 고작 경전을 베끼며 반성하라는 벌만 내리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저 사람들 마음속에서 내 무게감이 아직은 좀 부족한 모양이지?”

강희주가 차갑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강도희, 너 대체 어디까지 미쳐 날뛸 작정이냐?”

“맞아! 나 미쳤어!”

강도희의 얼굴에서 가증스러운 가식이 벗겨지며 지독한 원한이 일그러져 나타났다.

“난 언니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어! 내가 그간 겪어온 지옥 같은 고통을 언니도 고스란히 느껴봐야지! 도대체 왜 모든 행운을 언니 혼자 다 독차지하는 건데? 이번엔 과연 누가 널 구하러 올까?”

그녀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순간 사당의 육중한 측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장정 두 명이 굵직한 철쇄에 묶여 낮게 포효하는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를 밀어 넣는 것이 아닌가!

“너...”

강희주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강도희!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 알고 있는 것이냐?”

“알다마다.”

강도희가 광기 서린 미소를 지었다.

“언니를 죽이려는 거지! 아니면...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주거나!”

그녀는 장정들에게 눈짓하여 쇠사슬을 풀게 했다. 그러더니 재빨리 문가로 물러나며 강희주를 향해 독사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 동생은 이만 물러갈게.”

말을 마치자마자 강도희는 사당의 무거운 문을 쾅 닫고 밖에서 자물쇠를 굳게 채워버렸다!

“크어어어억!”

족쇄에서 풀려난 맹수가 귀를 찢을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사당 안에 홀로 남겨진 먹잇감인 강희주를 정확히 조준했다!

찰나의 순간, 절망이 강희주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품속에 있던 신호탄이 퍼뜩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은 그들이 건넨 마지막 약속이었다.

在 APP 繼續免費閱讀本書
掃碼下載 APP

最新章節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20장

    강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야께서 매달 사람을 시켜 보내준 백탄과 약재, 그리고 무료함을 달래줄 서책들... 전부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있사옵니다.”하무현이 그녀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넘실거렸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잘 알고 있사옵니다.” 강희주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촛불 아래 비친 그 미소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운명의 장난처럼 묘하게 어긋나긴 했으나 그 덕분에 신첩이 옳은 선택을 하게 되었사옵니다.”혼인 후, 세간의 짐작을 비웃듯 두 사람은 무척이나 금슬이 좋았다.하무현은 비록 성정이 냉철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내에게만큼은 모든 다정함과 인내심을 아낌없이 내주었다.그는 그녀가 추위를 많이 탄다는 것을 기억하고 겨울이 오기 전부터 서둘러 온돌을 따뜻하게 지피게 했고, 그녀의 입맛이 담백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강남에서 요리사를 불러왔다. 서책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정안왕부 장서각의 열쇠를 통째로 건네주며 마음껏 읽게 하기도 했다.달빛 아래에서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냈고, 그녀가 아플 때면 밤을 새워 곁을 지켰다. 심지어 그녀의 생일에는 군무조차 잠시 내려놓고 교외의 별장으로 데려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강희주 역시 세상 사람들이 ‘염라대왕’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이 사내가 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그는 그녀 앞에서 어설프게나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려 애썼고, 그녀의 칭찬 한마디에 귓가를 붉히곤 했다. 또한, 조정에서 불어오는 온갖 암투와 시련을 묵묵히 그녀 대신 막아주었다.어느 날, 두 사람은 마당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강희주는 하무현의 품에 기댄 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대감, 혹시 신첩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사옵니까?”하무현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여우 털옷을 여며주었다. 이윽고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울려 퍼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9장

    쨍그랑!단검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철고리가 힘없이 늘어지고 도자기 병이 바닥을 구르며 안에 있던 독약이 사방으로 쏟아졌다.순간,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다.세 사람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흙빛이 되어 제자리에 굳어버렸다.그제야 세 사람은 비로소 깨달았다. 눈앞의 이 여인은 이제 더는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던, 자신들이 건네는 약한 소리 한마디에 이내 마음이 누그러지던 예전의 강희주가 아니라는 것을.그녀의 마음은 이미 죽었다.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여버린 것이다.강희주는 그들에게 단 한 번의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내실로 향했다.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마디만을 남겼을 뿐이었다.“손님을 배웅하거라.”혼례 당일, 도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정안왕부(靖安王府)가 영안공주를 맞이하는 혼례의 행렬은 공주부에서 정안왕부까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북소리와 요란한 폭죽 소리가 어우러져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었다.강희주는 금실로 봉황을 수놓은 붉은 대례복을 입고 머리에는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쓴 채, 진주 주렴으로 얼굴을 가리고서 여덟 사람이 매는 용봉 가마 안에 단아하게 앉아 있었다. 낮게 드리워진 가마 휘장이 그녀의 절세미모를 가렸으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귀한 기품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거리 양옆으로는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이 공주의 자태를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앞다투어 고개를 내밀었다.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은 삼 년 전 강희주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 입었던 그 오래된 옷을 입고 인파의 가장 앞줄에 서 있었다.이미 하얗게 바래고 쭈글쭈글해진 옷은 지금 그들의 초라한 몰골 위에 걸쳐져 한층 더 비참하고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가마가 길목에 다다랐을 때, 최이현이 별안간 미친 사람처럼 시위들의 삼엄한 저지선을 뚫고 나와 가마 앞으로 달려들더니 가마 휘장을 와락 움켜잡았다!“희주야! 희주야!” 그가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머리가 하얗게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8장

    그날 밤, 공주부.붉은 화촉이 방안을 환히 밝히고, 화려한 비단 주렴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희주는 번거로운 조복을 벗고 편안한 치마 저고리 차림이었다.창가에 앉아 바둑판에 놓인 잔기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젖어들었다.창밖의 달빛이 물처럼 흘러들어와 옥같이 고운 그녀의 옆모습을 비추니, 청아하고 고결한 자태가 마치 속세를 초탈한 듯했다.그때 돌연 창밖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유령처럼 창문을 넘어 안으로 난입했다!소도윤, 서태경, 최이현이었다.삼엄한 호위망을 강제로 뚫고 들어온 것이 분명했기에, 그들의 옷자락은 더욱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몸에는 싸움의 흔적이 가득했다.소도윤의 관자놀이에 있던 상처는 다시 터져 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지고 있었다. 서태경의 차가운 철고리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최이현은 찢겨 나간 도포 자락을 붙든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강희주!”소도윤이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분노와 절망으로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정녕 하무현과 혼인하겠다는 거냐?! 그자에게 시집을 갈지언정, 우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겠다는 거란 말이냐!”바둑돌을 만지작거리던 강희주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굳었다. 이내 그녀가 툭, 소리가 나게 돌을 내려놓자 청아한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궁지에 몰린 짐승 같은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오직 끝없는 피로와 진저리 나는 혐오만이 감돌 뿐이었다.“깊은 밤중에 내 처소까지 난입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강희주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설마 삼 년 전처럼, 다시 한번 나를 굴복시켜 뜻대로 움직이게 하겠다는 거냐.”“우린 애원하러 온 거다!”서태경이 울부짖었다. 하나 남은 왼손을 어찌나 강하게 움켜 쥐었는지 손등 위로 푸른 힘줄이 사납게 돋아났다. “희주야! 우리가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단 말이다! 지난 삼 년 동안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7장

    소도윤이 절망에 찬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맹렬히 앞으로 달려들더니, 봉련의 끌채를 와락 움켜잡았다!시위들이 깜짝 놀라 즉시 검을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에 겨누어졌다!“그 손 치우지 못할까!”강희주가 마침내 날카롭게 호통을 쳤다. 주렴이 거칠게 흔들리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그녀가 휙 돌아섰을 때 그 눈동자에는 마침내 분노가 서려 있었다. “소도윤! 방자하구나!”“그래, 나 방자하다!” 소도윤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끌채를 죽어라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가죽을 파고들어 목덜미를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 헤진 옷깃을 적셨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희주! 우리를 봐! 지금 우리 꼴이 어떤지 똑똑히 보란 말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나 때문이라고?” 강희주는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입꼬리를 싸늘하게 뒤틀었다. “설마 잊은 거냐. 삼 년 전, 나더러 강도희 대신 죄를 뒤집어쓰라며 십리 형벌을 받게 한 것이 누구였지? 내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은 것은 누구였지? 내가 쏘아 올린 세 발의 신호탄을 무시해 나를 호랑이 아가리에 처박히게 만든 것은 누구였느냐! 지금의 그 처참한 몰골은 너희들이 자초한 일인데,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우리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다!” 서태경이 목을 놓아 통곡하며 쇠갈고리로 돌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희주야! 제발 우리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줘! 딱 한 번만!”“기회?” 강희주의 시선이 그들을 천천히 훑었다. 섣달 한풍보다도 서늘하고 혹독한 눈빛이었다.“나는 너희들에게 수없이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매번 강도희를 선택한 것은 너희들이었지. 이제 너희들에게 남은 기회는 없다.”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억눌렀다. 목소리는 평소의 냉정함을 되찾았고, 도리어 잔인하리만치 단호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오늘,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6장

    맨 앞에 선 사내는 해지고 낡은 북강 변방 수졸의 누비옷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에는 풍상이 가득했고 왼쪽 눈썹뼈부터 턱밑까지 흉측한 칼흉터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소도윤이었다.그의 옆에는 색이 바랜 전포(戰袍)를 입은 서태경이 서 있었다.오른쪽 소맷자락은 텅 빈 채 바람에 나부꼈고 잘려 나간 팔끝은 차가운 쇠갈고리가 대신하여 햇빛 아래 번뜩이고 있었다.최이현은 물이 빠져 하얗게 바랜 푸른 무명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에도 쓰러질 듯 수척해진 몸 위로 그 검던 머리칼은 어느새 하얗게 새어 서리처럼 변해 있었다. 얼굴은 흙빛처럼 초라하여 늙은 기색이 완연했으나 깊게 파인 눈동자만큼은 예전의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옛 모습을 미약하게나마 머금고 있었다.삼 년, 무려 삼 년이라는 세월이었다!북강의 모래바람은 소도윤의 수려한 용모를 거칠게 깎아냈고, 비린 바닷바람은 서태경의 오른팔을 앗아갔으며, 황릉 밖의 쓸쓸함은 최이현의 검은 머리를 하얗게 새게 만들었다.그들은 오직 오늘 이 자리에 서서 그녀의 눈길 한 번, 용서 한 자락을 구하기 위해 가장 처절한 방법으로 죄를 씻어내며 버텨왔다.“희주야!”소도윤의 쉰 목소리가 피눈물을 흘리듯 애절하게 허공을 갈랐다.세 사람은 쿵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백옥 계단 위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는, 신분도 체면도 모두 내팽개친 채 저 높은 곳의 봉련(鳳輦)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강희주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멎었다.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화려한 봉관에 달린 주렴이 가볍게 흔들리며 그녀의 고운 얼굴 대부분을 가렸으나, 우아한 턱선과 그 어떤 물결도 일지 않는 고요한 눈동자만큼은 선명히 드러났다.그녀는 계단 아래, 제 몰골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무릎 꿇고 있는 옛 인연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길가의 돌멩이를 보듯 지독하리만치 무심했다.“이것이 대체 무슨 무례란 말이냐?”강희주가 입을 열었다.주렴 너머로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황실의 엄숙한 격조와 서늘한 위엄이 고스란히 실려

  • 메마른 계절에 네가 날아들었다   제15장

    한편 강도희는 그간의 악독한 행실이 낱낱이 밝혀지면서 어지 한 장으로 강씨 가문에서 비참하게 쫓겨났다.그 후 석 달 동안, 그녀는 철저한 부랑자가 되어 길거리를 전전했다.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얼굴은 땟국물이 흘러, 그야말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쥐새끼처럼 쫓기는 신세였다.처참한 지경에 이른 그녀는 소도윤이 주둔한 북강의 군영까지 찾아가 울부짖으며 그를 만나게 해달라 애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군영을 지키던 병사들의 무자비한 몽둥이질뿐이었는바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쫓겨나야 했다.그 후에는 부두에서 출정을 앞둔 서태경을 가로막고 무릎을 꿇은 채 애걸복걸했다. “태경 오라버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세요...”서태경은 그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북강의 칼바람보다 더 뼛속을 시리게 파고들었다.“꺼져라. 그러지 않으면 네게 진짜 곤장의 맛을 보여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마지막 보루로 그녀가 찾아간 곳은 최이현이 머무는 허름한 초막이었다.최이현은 문을 열지 않고, 얇은 나무문 너머로 그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었다. “희주가 살아 있는 걸 다행으로 알거라. 아니었다면 내 손으로 널...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 속에 살게 만들었을 테니.”모든 길이 끊겼다.모든 희망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깊은 밤, 강도희는 홀로 도성 밖 얼어붙은 강가로 향했다.칠흑같이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불빛이 휘황찬란한 도성을 뒤돌아보았다.그 화려한 곳은 한때 그녀가 온갖 모략을 짜내며 갈망했던 부귀영화의 요람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사흘 뒤, 강을 순찰하던 병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발견했다.차가운 물에 퉁퉁 불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진 시신은 딱딱한 얼음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기만과 탐욕, 그리고 추악한 악독함으로 가득 채웠던 그 눈동자는 마침내 영원히 감겼다.소식이 전해졌을 때, 소도윤은 북방의

更多章節
探索並免費閱讀 優質小說
GoodNovel APP 免費暢讀海量優秀小說,下載喜歡的書籍,隨時隨地閱讀。
在 APP 免費閱讀書籍
掃碼在 APP 閱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