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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작가: 하늘
전각 밖 너른 공터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강희주는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홀로 서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는 그녀는 어딘가 아득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과거에는 이런 연회가 열릴 때마다 그녀의 곁에 늘 그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밀려드는 인파가 그녀를 밀치지 않도록 단단한 벽이 되어 막아주었고, 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터지는 불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녀에게 보여 주었으며, 어떻게든 그녀를 웃게 만들려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벌 떼다! 벌이 엄청나게 많아!”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 소리가 강희주의 상념을 깨뜨렸다.

새까만 벌 떼가 어디선가 구름처럼 몰려와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을 향해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순식간에 사방이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흩어져 달아났다.

그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강희주의 귀에는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의 절박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도희야!”

“도희야, 어디 있는 것이냐?!”

“도희야, 이쪽으로 오거라!”

단 한 번도, 강희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에는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떤 위험이 닥치든 그들이 가장 먼저 품에 안고 보호하던 사람은 언제나 그녀뿐이었거늘.

강희주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날아드는 벌 떼를 피해 커다란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를 지켜 낸 것이다.

다행히 시위들이 빠르게 대처했다.

그들은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불을 피워 벌 떼를 신속하게 쫓아냈다.

소동이 겨우 가라앉나 싶던 찰나, 또 다른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밤공기를 갈랐다.

“큰일 났다! 십삼 황자께서 물에 빠지셨다! 어서 사람을 구하거라!”

방금 전 벌 떼로 인해 혼란이 빚어졌을 때, 아직 어린 나이의 십삼 황자가 인파에 밀려 연못 근처까지 갔다가 그만 물속으로 발을 헛디디고 만 모양이었다. 다행히 시위들이 물을 잔뜩 들이켜고 겁에 질려 자지러지게 우는 십삼 황자를 신속하게 건져 올렸다.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황후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십삼 황자는 황후가 가장 애지중지하며 금이야 옥이야 키운 막내아들이었다.

어린 황자는 연신 딸꾹질을 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어마마마, 누군가... 누군가 뒤에서 저를 고의로 밀쳐냈사옵니다!”

황후가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다.

“조사하라! 당장 철저히 조사하거라! 도대체 어떤 간 큰 자가 감히 황자를 해하려 한단 말이냐? 진범을 찾아내는 즉시 결코 용서치 않고 엄벌에 처할 것이다!”

교지가 떨어지자마자 사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바로 그 순간, 강도희가 비틀거리며 급히 뛰어와 가장 가까이 있던 소도윤과 서태경의 소맷자락을 부여잡았다.

“도윤 오라버니, 태경 오라버니, 이현 오라버니... 어쩌면 좋지요... 방금 너무 혼란스러워서 제가... 저도 모르게 실수로 황자 전하를 밀친 것 같습니다.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저 너무 두렵사옵니다...”

횡설수설하며 울먹이던 강도희는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도윤, 서태경, 최이현 세 사람은 혼비백산하여 그녀를 황급히 부축했다.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가련한 모습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 왔다.

그때, 세 남자가 다급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방금 전 기둥 뒤에서 걸어 나오던 강희주에게 일제히 내리꽂혔다.

소도윤이 가장 먼저 강희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으나 어조만큼은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희주야, 도희는 몸이 유약하고 담이 작아. 만약 황후마마께 심문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질 게 분명하다. 너는 도희의 언니이고 평소에도 동생을 가장 아끼지 않았느냐. 이번 한 번만... 네가 대신 죄를 뒤집어써 주려무나.”

강희주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너무 터무니없는 말에 멍하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소도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서태경 역시 한 걸음 다가와 애원하듯 말했다.

“희주야,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도희는 정말 이 상황을 견뎌 내지 못해. 하지만 너는 다르지 않느냐.”

최이현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희주야, 도희를 돕는 셈 치고 한 번만 양보해 다오. 응?”

익숙하면서도 낯설기 짝이 없는 세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강희주는 뼛속까지 오한이 시려 오는 듯했다.

강도희를 향한 눈먼 비호와 자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뻔뻔하고도 당연한 태도에 전신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동의할 수 없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죄를 인정해야 하느냐?”

강희주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십삼 황자가 있는 쪽에서 이미 궁인들이 연못 주변에 있던 이들을 하나둘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어린 황자에게 직접 범인을 가려내게 하려는 참이었다.

강희주가 기어이 거절하고 가려 하자, 소도윤 일행은 겁에 질려 주저앉은 강도희를 번갈아 보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 최이현이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어 강희주의 혈을 찔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강희주는 경악과 분노로 눈을 부릅떴으나,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소도윤과 서태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양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한 채, 강희주를 사람들 앞으로 사정없이 떠밀었다.

“황후마마! 아까... 희주가 부주의하게 움직이다가 실수로 황자 전하를 밀친 모양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리 직접 청죄하러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강희주에게 쏠렸다.

황후의 예리한 시선이 비수처럼 내리꽂혔다.

“강희주, 네 짓이냐?”

강희주가 다급히 입을 뻥끗거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도윤은 이미 무릎을 꿇고 짐짓 비통한 목소리로 말을 얹었다.

“희주가 실수를 범했으나 절대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어마마마!”

서태경과 최이현 역시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나란히 엎드린 도성 최고의 귀공자 세 명을 지켜보던 황후는 이내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말 한마디 못 하고 고개만 젓는 강희주를 바라보았다.

순간, 황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너희 셋 모두 강희주의 소행이라 증언하고, 본인 또한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하니...”

황후가 위엄 서린 차가운 목소리로 명했다.

“궁의 법도에 따라 처벌하겠다. 황자를 해하려 한 죄는 결코 가볍지 않으나, 초범인 데다 고의가 아니었음을 참작하여 사형은 면해 주마. 허나 지은 죄를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법. 여봐라, 강씨 가문의 영애를 끌고 가 십리탄화(十裏炭火)의 형을 집행하거라!”

그 무시무시한 처벌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마른침을 삼키며 경악했다.

십리탄화.

타오르는 시뻘건 숯을 길에 촘촘히 깔아놓고, 죄인에게 맨발로 그것을 밟아 지나게 하는 형벌.

살점이 처참하게 타들어 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는 잔혹한 형벌이었다.

강희주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몸부림쳤지만, 힘이 장사인 상궁 두 명이 그녀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들은 강희주의 버선과 신발을 거칠게 벗겨 내더니, 붉은 불꽃이 이글거리는 길로 사정없이 끌고 갔다!

숨이 턱 막히는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어둠 속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더미들이 흉물스러운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상궁들의 거친 손길에 짓눌려 강희주의 마른 발끝이 불타는 숯더미 위로 강제로 내딛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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