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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84화

Author: 유애
안지여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조금의 망설임이나 연민도 없이 이리봉청의 따귀를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이리봉청은 정신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안지여는 이리봉청이 바닥을 짚은 손을 구둣발로 짓밟더니 옷을 홱하고 감아올렸다. 옷에서는 익숙한 훈향이 나건만 표독스러움은 낯설었다. “내 인내심에 도전하지 마. 결과는 네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이리봉청은 손가락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의 고통이 모든 것을 덮어버려 통각이 마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리봉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반쯤 바닥을 기어 허공에 매달린 여동생을 절망적으로 바라봤다. 자책, 자괴감, 증오, 분노, 절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솟구쳐 올랐다.

안지여가 옷을 여미더니 성루를 내려갔는데, 안지여의 호위 부대인 철위 몇 명이 이리봉청 곁에서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안지여, 당장 네 목숨을 내놓거라!”

아래에서는 계집종 방화가 분개하여 소리쳤다. 비록 외마디 절규에 불과했으나 이리봉청은 몸서리치며 얼른 기어가 성벽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방화가 피바다 위에 쓰러져 있었다.

철위의 긴 창이 방화의 심장을 뚫었는데 방화의 손에 칼이 한 자루 쥐어져 있고 분노로 가득한 눈은 천천히 다가오는 안지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안지여는 핏발이 선 눈을 들어 냉혹하게 말했다. “이년을 사냥터에 던져넣어!”

철위는 방화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청석판이 깔린 길을 질질 끌고 갔다. 방화의 입에선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비통하게 바라보고 있던 이리봉청이, “방화!”라고 소리치며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가 배에 통증이 와도 넘어지고 기면서 처절하게 목 놓아 외쳤다. “안지여, 방화를 놔줘. 네 말대로 할 테니까!”

안지여가 우뚝 멈춰서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손을 흔들어 철위에게 계집종 방화를 놔주라는 표시를 했다.

이리봉청은 달려들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방화를 안았는데 방화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머리를 들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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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의 왕비   제3419화

    비록 잠시 다른 화제가 생기긴 했지만, 다들 이내 신경 쓰지 않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술이 들어간 남자들은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다들 길에서 보았던 풍경들을 흥겹게 풀어내기 시작했다.그러자 여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들 풍경을 볼 때,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심지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치기까지 했다. 시장에서 닭싸움 장면을 보고도, 그저 잠깐 서서 바라봤을 뿐, 돌아설 땐 재미없었다고 시큰둥하게 말했었다.하지만 술을 마시니, 술기운에 닭싸움 장면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자세히 묘사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의 흥분되고 긴장된 기분까지 전했다.물론, 현장에서 보고 있던 관중은 사실 그들이었다. 사실 당시엔 겉으로만 무심한 척했을 뿐, 속으로는 몹시 긴장되었다.너무 웃기지 않은가?여인들은 그런 남자들을 향해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술잔이 계속 오가다 보니, 모두가 흠뻑 취했다. 이리 나리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어느 정도 달래고 나서야, 사람들을 돌아가게 했다.공주는 이리 나리가 취한 모습을 보고, 해장국과 따뜻한 수건을 준비해 직접 곁을 지켰다. 비록 부군의 미모가 준수하다는 것은 늘 알고 있었지만, 항상 함께 지내왔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었다. 하지만 오늘 여섯째 형수님의 말을 듣고, 그녀는 다시 진지하게 부군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러다 보니, 이리 나리가 정말로 젊어 보이는 것 같았다.물론 소년 같은 젊음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와 거의 변함없는 모습이었다."부마, 당신은 왜 늙지 않는 것입니까?"공주가 부드럽게 물었다.이리 나리가 완전히 취해 잠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낮은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난 설랑의 젖을 먹고 자랐소."그는 취기가 짙게 서려 있는 눈을 천천히 떴는데, 눈빛은 몽롱했고, 흐릿하게 눈앞에 공주가 두 명, 세 명으로 보였다. 이리 나리는 어지러움을 느껴 곧바로 다시 눈을 감았다."설랑의 젖을 마시면 젊어지나

  • 명의 왕비   제3418화

    여정이 고되었는지, 우문호는 급히 궁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일행을 거느리고 이리 나리의 저택으로 가서 술 한잔을 기울였다.연회에서는 경단이 쌀가게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깜짝 놀랄 줄 알았던 이리 나리는 오히려 잔을 들고 조용히 자랑했다."이미 오래전에 알았습니다. 처음 쌀가게를 열 때부터 알고 있었기에, 어떻게 하면 화제를 일으켜, 시장을 빨리 차지할 수 있을지 일러주었던 것입니다."그러자 우문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데 어찌 알리지 않았던 것입니까?""별일도 아닌데 이리저리 소문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경단이가 큰일이라도 해낸 줄 알고 거만에 빠져 버리면 어떡합니까?"이리 나리가 답했다.우문호는 잠시 멈칫했다. 돌아오자마자 자랑하는 자신을 향한 이리 나리의 공격을 받자, 그는 이내 반격했다."아비의 심정은 아마 모를 것입니다. 자식이 출세하면 온 천하에 알리고 싶은 법이지요.""참나!"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아이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제 자리를 이어받을 것입니다.""그래도 의미가 다르지요.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리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이에 우문호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유치한 사내들의 전쟁에 고개를 저었다. 사내들은 정말 사소한 일로도 언쟁을 벌일 수 있었다.그리고 그들과 달리, 여인들의 대화는 몹시 평온했다. 한바탕 서로를 칭찬하고 나니, 원경릉은 문득 이리 나리의 늙지 않는 외모가 떠올랐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보니, 부드러운 불빛 아래, 이리 나리의 피부는 예전보다도 더욱 고와 보였다. 여름이 왔으니, 피부가 조금 그을릴 법도 하지만, 오히려 피부가 더욱 좋아진 것 같았다. 게다가 눈가에는 주름도 없었고, 그저 전체적으로 성숙해 보일 뿐,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그리고 원경릉은 시선을 공주에게 돌렸다. 공주는 이리 나리보다 어린 나이지만, 이제는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리 나리의 성숙한 분위기가 아니었

  • 명의 왕비   제3417화

    위왕은 욕심을 부리지도, 바람을 품지도 않았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지나친 욕망은 오히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예전의 위왕은 오늘과 같은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이 순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었다.위왕은 한참 웃고 난 후, 자리를 틀고 앉아 작은 책자를 꺼내어 자녀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자식이 워낙 많다 보니, 위왕은 아직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썼다.몇몇은 이미 혼인할 나이가 되었기에, 위왕은 이번에 돌아가서 그들의 혼사를 먼저 정해두려고 했다. 올해 바로 결혼하지는 않더라도, 우선 혼사를 정해두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못내 가슴이 아파왔다."위왕이 속상해한다고 생각하오?"원경릉이 물었다."그렇지는 않소. 다만, 그 많은 아이 중에 친자식이 하나도 없지 않소."다섯째가 답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소. 정화가 하는 일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오. 그녀가 구해준 아이들은, 모두 새로운 삶과 세상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소.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나지막이 말했다."알고 있소."그는 애써 감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따라 감수성이 많아지는 것 같소."그 모습에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황제는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되네. 자,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준비하시오."명령이 떨어지자, 일행은 다시 길에 올랐다. 다들 타지에 있을 때는 경성이 그리웠지만, 막상 돌아가려니 이 아름다운 강산이 아쉽기도 했다.원경릉은 마차에 오르지 않고 다섯째와 함께 말을 타고 나란히 달렸다."이번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려 했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소. 1년 반 정도 지나면 그들도 자리를 잡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오. 그때 가끔 경성으로 찾아오면 되지 않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좋은 생각인 것 같소."원경릉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다섯째, 아이들을 정말

  • 명의 왕비   제3416화

    일행은 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들은 상처 입은 위왕과 그의 곁을 지킨 정화를 데리러 가기 위해 먼저 강북부로 가야 했다.우문호는 강북부로 가는 내내, 위왕과 정화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지 추측했다. 그는 셋째의 삶에 다시 여인이 나타날지 궁금했다.그렇게 강북부에 막 도착했을 때, 위왕과 정화는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서일이 경성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먼저 알렸었던 터라, 위왕은 당장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상처는 이미 아문 듯하나, 걸음은 여전히 불편해 보였다.우문호는 자신을 위해 저승에 한 번 다녀온 것 같은 위왕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왔다. 이에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다 사양하고, 직접 위왕의 짐을 마차에 실었다. 마지막 여정을 마쳤기에, 그는 급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따라가도 괜찮았다.위왕은 그동안 강북부에 안착해 있었지만, 귀한 물건을 많이 갖고 있지는 않았다. 위왕의 짐이라 하면, 그저 정화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볼 때마다 사두고, 선뜻 선물하지 못한 물건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한꺼번에 정화에게 선물하려 하니, 마차로 운반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들 길을 가다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원경릉은 위왕과 정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위왕과 정화 사이에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고, 그저 부드럽고 가족 같은 느낌을 풍겼다. 두 사람이 가끔 서로를 챙기긴 했지만, 시선을 거의 마주하지는 않았다.다섯째도 그 모습을 살펴보고 원경릉에게 말했다."오붓한 우리 부부의 사이에 미치려면 한참 멀었소.""그렇게 비교하면 안 되오. 우리야, 누군가가 뻔뻔하게 달라붙고 있지 않았소?"원경릉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알고 있소."우문호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당신이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충실한 부하 노릇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토록 사이가 좋을 수는 없었을 것이오. 이렇게 부부 사이의 정을 유지하게 해 준 충실한 부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야지 않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

  • 명의 왕비   제3415화

    원경릉도 우문호의 말을 듣고, 너무나도 기뻐,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마 이리 나리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엄청나게 기뻐하실 것이오.""돌아가자마자 바로 전해야겠소. 우리 아들이 얼마나 뛰어난지, 질투나게 해야겠소."다섯째는 신이 나서 말했다가, 이내 멈칫거리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뛰어난 인재는 마땅히 곁에 두어 조정 일을 돕게 해야 하거늘. 훗날 이리 나리를 따라 장사를 하게 하고 싶지는 않소.""경단이가 좋아하는 일이오. 어려서부터 장사를 좋아했지 않소?"원경릉이 답했다."맞는 말이긴 하오."다섯째는 어린 시절의 경단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경단이는 어릴 적, 다른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돈을 벌만큼 장사를 좋아했었다. 사실 경단의 장사 재능은 어려서부터 이미 드러나 있었다.원경릉은 못내 의혹이 있어, 우문호와 함께 거닐며 물었다."하지만, 이리 나리께서는 어찌 집안 장사를 친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시고, 우리 경단이를 후계자로 삼으신 것이오? 장사 규모가 하도 크니, 해마다 얼마나 벌지 상상도 가지 않소. 경단에게 조금만 나눠줘도 적지 않은 돈이네."우문호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답했다."장사 방면에서는 이리 나리가 북당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하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있는 게 아니네. 엄청난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은, 경단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 해낼 수 있소."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신 말도 일리가 있소.""게다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은 법이오. 이리 나리는 말년이 되어서야 아이를 얻었소. 세월이 지나, 언제까지 자식을 도와줄 수 있겠소? 결국은 돕지 못하는 날이 오기 마련이오. 그리되면, 어마어마한 가업을 넘겨줄 텐데, 탐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소? 1대가 지켰다 해도, 2대, 3대는 또 어찌 장담하겠소? 차라리 가업과 자식에게 평생 넉넉하게 지낼 수 있는 재물을 남겨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

  • 명의 왕비   제3414화

    우문호는 깜짝 놀라 경단을 바라보았는데, 경단의 표정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했고, 마치 길가에서 엿이나 파는 소소한 장사처럼 쉽게 생각하는듯 했다. 하지만 이는 다섯개 도성과 연관이 있는 쌀장사였다. 아직 어린아이가 불과 몇 년 만에 곡물 시장 반이 되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의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경단아, 잠시 걸음을 옮겨 이야기하자꾸나."우문호는 말을 마치고 찰떡이를 남겨 둔 채, 경단의 팔을 잡고 안채로 향했다.그러자 찰떡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우문호의 눈빛 속에서 보이는 반짝이는 희망에, 속으로 둘째 형님의 주머니가 큰 위협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역시나 둘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문호가 다급히 입을 열며 궁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해마다 국고에서 내려오는 돈이 적은 데다가, 지출이 워낙 크다보니, 여러 차례 상을 내리는 것도 그가 따로 모은 돈에서 보태야 하는 지경이었다.심지어 열심히 키운 자식들도 다 컸으니, 이제는 자식이 부모님에게 은혜를 갚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경단에게 효도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경단은 열성을 다해 그를 설득하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갑자기 이리 나리의 말이 떠올랐다."장사를 하는 일은 될수록 폐하에게 숨기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얼마를 벌든, 반은 바쳐야 할 것이다. 폐하는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경단이 웃으며 답했다."아바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마다 버는 돈은 꼭 반씩 드리겠습니다. 이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효도해야지요.""우리 경단이가 참으로 효자로구나. 네 어머니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게다."우문호가 경단의 어깨를 덥석 잡고 감격하며 말했다."그럼 해마다 얼마나 버는 것이냐?"그러자 경단이 우문호의 귓가에 다가가, 몰래 숫자를 속삭였는데, 우문호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넋을 잃고 말았다."그렇게나 많이 번다는 것이냐?""운송 비용을 잘 관리한 덕분에 이익이 다른 사

  • 명의 왕비   제3413화

    미색은 혼인을 맺을 때, 평생 부군의 말을 따르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그렇다고 그녀가 혼인의 단맛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미색은 워낙 강단 있는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부드러운 여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매사에 거칠게 돌진하는 불안정한 사람이었다.그러나 여섯째는 다정한 성격의 군자이며, 생각이 바르고 이치를 잘 헤아려서 모든 일을 척척 잘 조율하기에,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기 가장 적절했다.그래서 여섯째와 혼인 후, 그녀는 그가 지닌 다정함과 애정에 관해 더욱 깊이 알게 되었고, 결국 단단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혼인한 지 이미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의 눈빛 하나에도 설레었다. 그래서 늘 무예도 드러내지 않았다.그가 부부의 정을 배신하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그에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부부 사이에 장난치는 것은 예외였다.미색은 부군에게 빠져서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여섯째가 자신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생기면, 그녀는 분명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박살 내서 모든 것을 끝냈을 것이다. 회왕은 그녀에게 약속을 자주 하지 않았으며, 달콤한 말을 하는 것도 드물었다. 하지만 드물지 않기에, 가끔 건네는 그의 말에 그녀가 마음을 사로잡힐 가능성이 컸다.그리고 달콤한 말이 적다고 해도, 평소 늘 그녀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혼인 후 지금까지, 미색이 월경으로 복통을 겪을 때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직접 흑설탕을 탄 물을 끓여주었고, 발을 주무르며 경맥의 순환을 도왔다.비록 두 사람의 성격은 닮지 않았으나, 그 어떤 부부보다도 금실이 좋았다.한편, 우문호는 도성을 순행하던 중,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도성마다 ‘배부르당’이라는 이름의 쌀가게가 있는 점이었다. 가게 이름이 다소 유치하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대충 계산해 보니, 다섯개 도성에 총 오십여 개의 ‘배부르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쌀

  • 명의 왕비   제3412화

    몇 개 도성을 순행하자, 우문호는 예상 밖의 상황에 못내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로 칭찬해 주고는, 호 대장군에게는 상을 내려 주었다. 집과 토지를 하사하여, 그가 단순히 조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킬 땅이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다.과거 호 대장군은 다소 불손한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야망은 이미 사라진 뒤였고, 이제는 오직 국토에 대한 애정만이 남아 있었다.게다가 호가의 젊은 세대 중 몇 명은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비록 직위는 높지 않지만, 평생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지금의 호 대장군은 우문호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북당 전체가 고작 십수 년 만에 새롭게 태어난 듯하니 말이다.경단과 찰떡은 부모님과 함께 성안을 거닐며 다과도 사고 식사도 했다. 도성은 눈에 닿는 곳마다 평화롭고 화목했다. 비록 바쁠 때면 다툼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일꾼들의 평범한 일상이었다.이곳엔 수공예품이 많았고, 특히 진흙 인형이 많았다.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인형 하나를 선물하면서 어서 손주를 안겨 달라는 농담을 건넸다.그러자 원경릉은 인형을 받긴커녕, 오히려 우문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곧 반격할 방법을 찾아내서 말했다."외손주 말이오?"이번엔 우문호가 그녀를 반격하고 싶어졌다.하지만 그가 반응하기도 전, 원경릉이 스스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막았다.‘내 머리에 지금 뭐가 든 거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야?’그러자 미색이 말했다."그럴 때가 되긴 했지요. 혼사를 정하고, 곧 시집도 갈 나이지요."우문호와 원경릉은 고개를 홱 돌렸는데, 함께 미색을 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하지만 눈치 못 챈 미색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택란이가 시집갈 때, 제가 고모로서 혼수를 넉넉히 마련하겠습니다."그녀의 말에, 여섯째가 다급히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만하시오. 정말 맞을 수도 있소."그러자 미색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웬

  • 명의 왕비   제3411화

    우문호 일행이 다른 성을 순행하러 떠나는 동안, 현대의 여행 삼인조도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북당이 아닌 광원 시로 돌아가 정신을 가다듬고 과거시험을 기다리기로 했다.삼대 거두도 예전에 과거를 본 적이 있었다. 헌제 재위 시절, 한번은 황실 자제들에게 과거 시험 응시를 허락한 적이 있었는데, 예외였기에 그 해를 지나고 나서는 다시 허용되지 않았다.이러한 특례가 생긴 데는 당시 조정의 형세가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세 사람은 광원 시로 향하면서 과거 시험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시험에서 어려움을 느낀 사람은 오직 무상황뿐이었는데, 그는 비록 몸과 마음을 다하여 임했으나, 끝내 통과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는 헌제의 칭찬을 받았었다.소요공도 시험이 쉽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큼은 평온해 했다. 부유한 집안에, 평락공인 조부의 유일한 외아들이니, 조부가 돌아가시면,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것이라 생각해서 성적에 전혀 연연치 않았던 것이다.다만, 시험장에서 그가 잊지 못할 기억은 탁자에 엎드려 자다가 목이 아팠고, 코골이 소리까지 너무 커서 감찰관에게 꾸중을 들었다는 것이었다.추 어르신은 시험에 열심히 임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시험지를 보자마자, 자신감이 넘쳐흐른듯 바로 붓을 들었고, 그렇게 그 해의 장원이 되었다.더 덧붙이자면, 그 해 장원은 평남왕 우문극이었다. 황태손인 그는 늘 예리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뛰어난 인재인 것을 언제 알 수 있을까? 비록 머리를 다쳤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그때 전해지던 말이 하나 있었다. 문인은 문인이고, 인재는 인재며, 태손은 태손이라.이는 뛰어난 태손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게다가 시험에 얽힌 소요공의 웃음거리는 지금까지 모두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무상황은 그 일을 떠올린듯, 웃으며 추 어르신에게 물었다."주대유, 그 일을 기억하느냐? 그 해 십팔매가 시험을 보기 전, 옷에 한가득 부정할 글을 적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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