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천대전에는 당대의 모든 문무백관들이 참석했고 이전보다 규모도 커졌다. 제단 아래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안왕의 예리한 눈동자가 군중 속에 서있는 서일에게 멈추었다. 서일의 눈은 줄곧 주지스님을 향해 있었다.안왕은 차갑게 웃었다. ‘과연, 주지가 핵심인물이었군.’그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서일이 주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명원제는 제사를 지낸 뒤 마차를 타고 궁으로 돌아가 우문가(宇文家)의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서일은 가까스로 안왕의 부하들을 따돌렸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명원제가 탄 마차를 쫓기는 역부족이었다.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마차 뒤꽁무니를 쫓았으나 금군의 호위와 수많은 군중들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서일이 큰 소리로 ‘주지스님!’이라고 외쳐도 주지는 듣지 못했다. 그는 우문호에게 명원제가 타고 있는 마차를 멈춰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왕부로 돌아왔다.산실 안에 있던 우문호는 원경릉의 뱃가죽이 찢어지는 것을 보았다. 배를 가르는 모습은 마치 괴물의 입처럼 길게 벌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원경릉이 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지휘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내 심장 뛰는 것 좀 봐줘. 그리고 배는 보지 말고 나를 봐.” 원경릉이 말했다. 우문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청진기를 귀에 대고 그녀의 심박을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원경릉의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고 귀에서 자신의 심장소리만 들렸다. 희상궁과 만아는 겁에 질린 얼굴로 서있었고, 사식이는 원경릉의 지시에 맞게 물건을 강녕후 부인에게 건넸다. 강녕후 부인 옆에 산파는 아이가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자궁을 절개할 겁니다.” 원경릉은 청동거울로 자궁의 위치를 보며 지휘했다. “강녕후 부인, 긴장 푸세요. 손이 떨리시는 건 같습니다. 괜찮으니 심호흡하고 천천히 칼을 대세요.”“사식아 너는 솜으로 피를 막거라. 그래, 잘하고 있어.” 원경릉의 목소
탕양의 말을 들은 구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살폈다.“다바오 소리는 안 들리는데?”잠시 후, 수술실 밖으로 사식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원경릉이 배를 가를 때부터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수술을 돕던 사식이는 안전하게 두 아이가 나오자 마음속의 짐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사식이는 침상에 누워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사식, 여기 한 명 더!” 강녕후 부인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아끌며 “울지 말고 빨리 도와줘.”라고 말했다.원경릉도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고 위에 붙은 청동거울을 보았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이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아, 안 돼!” 원경릉은 눈물이 쏟아졌다. 산파는 아이의 손을 만져도 보고 등을 두드려도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강녕후 부인은 곧장 아이에게 다가가 심장을 살살 누르며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힘없이 머리를 옆으로 돌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았다. “안 돼! 다섯째 빨리 구해줘! 내 새끼를 구해줘!” 원경릉은 아이를 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문호가 창백한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찰나에 “으앙!”하는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축하드립니다! 왕비, 왕야!” 산파가 말했다.우문호는 한 솜으로 침상 가장자리를 잡고 힘겹게 일어나더니 원경릉을 껴안았다.“수고했어!”원경릉은 힘없이 웃으며 우문호를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세상에! 피가 너무 많이 나옵니다! 사식아 여기 빨리 지혈 좀 부탁해!”강녕후 부인이 비명을 질렀다.우문호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원경릉의 얼굴을 감싸 안고 다독였다.“경릉아, 제발 일어나. 정신 차려.”“지혈, 수혈, 빨리 주지를 찾아……” 원경릉이 어렵게 몇 마디를 뱉어냈다.“그래, 주
현비의 마음속에는 몇 가지가 떠올랐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아이는 모두 살고 원경릉이 죽는 것이다. “본궁이 들어가야겠다. 고생한 왕비를 위로하고 옆에 있어줘야겠어.” 현비가 구사에게 말했다.“죄송하지만, 현비마마 왕야의 분부가 있어서 절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구사가 고개를 저었다.“다섯째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 현비가 분노하며 구사를 위아래로 흘겨보았다.“왕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들었습니다!”“비켜!”“죄송합니다. 소신은 왕야의 신하로 그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비마마께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나를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자고! 네가 누구든 본궁의 손끝하나 건드리는 사람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야!”현비가 고개를 쳐들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황제의 여인이기에 구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뒷짐을 지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을 본 현비는 가슴을 쭉 펴고 구사 앞으로 다가왔다.“막아보거라! 본궁을 막아보란 말이야!”그 모습을 본 희상궁이 달려와서는 현비 앞을 막았다.“구사, 비키세요. 제가 하겠습니다!”현비는 희상궁의 뺨을 내리치며 “물러서거라!”라고 소리쳤다.희상궁을 이를 악물며 “현비마마께서 쇤네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쇤네를 물러서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현비는 콧방귀를 뀌며 “이목아! 사람을 데리고 오너라! 본궁을 못 들어가게 막는 이 자들을 모두 데리고 태후께 가거라!”라고 말했다.이목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자 구사가 그들을 향해 “꼼짝 마라!”라고 말했다.이목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현비를 보았다.희상궁은 현비를 막으며 옆에 시녀에게 눈짓으로 혈액이 맞는 사람들을 안으로 들이라고 했다.현비는 팔황자가 다쳤을 때를 생각했다. 팔황자가 죽을 고비에 있을 때 수혈로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현비는 초왕비와 혈액이 맞는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초왕비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이목아! 저 사
구사는 천천히 걸어가 이목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이목은 강하게 반항을 했으나 탕양의 합세로 금세 제압되었다.그 모습을 본 현비는 분노했다.“대담하구나! 본궁의 말에 불복하다니! 구사와 탕양 너희는 태후께서 아주 큰 벌을 내릴 것이야!”호위병들이 이목을 돕기 위해 우르르 몰려갔다. 그 모습을 본 부병들이 호위병들과 싸움을 벌였고, 이내 태후의 금군들도 부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현비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대문을 지키며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문 안쪽에서는 원경릉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고, 밖에서는 금군과 부병들이 현비의 호위병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시간은 점점 흘렀고, 희상궁은 점점 초조해졌다. 희상궁은 결심한 표정으로 머리에 꽂혀있던 비녀를 뽑더니 현비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을 잡아당겼다. “모두 멈추어라!”“감히! 네가 본궁에 옥체에 손을……!” 현비는 희상궁이 자신에 목에 비녀를 갖다 댈 줄을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으로 눈을 희번덕거렸다. “모두 멈춰! 그렇지 않는다면……”“모두들 신경 쓰지 마라! 상궁 따위가 본궁을 해치기라도 하겠느냐!”희상궁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현비, 움직이지 마세요. 저조차도 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지금 당장 제게 중요한 것은 초왕비의 안전입니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결의에 찬 얼굴로 현비를 질질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물러서거라! 저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거라!”희상궁의 모습을 본 호상궁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상궁님, 제발 멈추세요! 현비마마의 옥체를 상하게 하신다면 상궁님은 죽은 목숨입니다!”“괜찮아!” 희상궁이 시녀를 막고 있던 호위병들을 노려보며 “물러서거라 지금 당장!”라고 소리쳤다.현비는 호위병들을 보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아무도 들여 보내선 안 돼!”라고 말했다.희상궁은 호위병들이 물러서지 않는 것을 보고 현비 얼굴을 비녀로 긋고는 바로 옆구리에 바짝 갖다 댔다. 현비의 비명소리에 호위병들은 크게 놀라 물러섰다.“구사! 문을
“데리고 가거라!”명원제가 손을 휘저었다. 현비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명원제를 보며 “신첩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그녀는 많은 이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화도 났지만, 왠지 모르게 희열이 느껴졌다.‘황상께서는 내 죄를 알고도 나를 폐위시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우문호를 태자로 책봉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황실의 법도에 따르면 모비가 폐위된다면 태자로 책봉될 수 없다.현비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끌려 나왔다.현비가 끌려나간 후, 명원제는 현비를 도운자들을 모두 숙청했다. 명원제는 희상궁을 일으키며 “상궁, 고생이 많네요.”라고 말했다.희상궁은 눈물을 흘리며 명원제를 보았다.“소인 그저…… 왕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예, 그 마음 잘 압니다.” 명원제가 수술실을 보며 “모두 무사하니 다행입니다.”라고 말했다.다섯째가 이렇게 빨리 왕부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주지스님이 마차에 타자마자 초왕부로 가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문호는 서일의 말을 듣고 마차를 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명원제와 주지스님이 탄 마차를 보았다.명원제는 초왕비가 삼 형제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입이 귀에 걸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안에서 현비가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분노했다. 현비만 아니었다면 명원제는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 들었을 것이다.명원제는 아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초왕비가 위급하다는 소리에 문밖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황상께서는 소월각에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아이들을 데리고 소월각으로 가 젖을 먹게 할 겁니다.” 희상궁이 말했다.이에 명원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데리고 온 사람들과 함께 소월각으로 향했다. 소월각에 도착한 명원제는 준비된 차를 마시며 초조하게 아이들을 기다렸다.잠시 후 명원제가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목여태감에게 물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아이들은 아직이냐?”“황상,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
명원제의 말 한마디에 원경릉은 태자비로 확정됐다. 수술실 안에서 강녕후 부인이 지혈침을 놓고 자궁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했고, 주지스님은 오자마자 수혈을 시작했다. 잠시 후 원경릉의 심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단시간 내에 많은 피를 흘려서 언제 쇼크가 올 지 모르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주지스님은 진정 주사를 놓고는 원경릉의 복부 피부를 8자로 꿰매었다. 원경릉이 수혈을 받는 내내 우문호는 곁에서 피가 그녀의 혈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지금 이순간 아이들보다 원경릉이 더 중요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 형제를 보고 기뻐했지만, 그들은 낳은 원경릉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우문호는 원경릉의 심장박동을 듣고 있었다. 심장박동은 정상보다 빨라지자 주지수님이 우문호에게 원경릉의 옆에서 그녀를 진정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원경릉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그가 머리카락을 살짝 넘기자 이마가 번쩍거렸다. 그녀의 눈은 감겨있었고 속눈썹에는 눈물이 묻어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가련한지 마치 비를 쫄딱 맞은 까마귀의 날개 같았다.예전부터 우문호는 그녀에게 못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피부도 곱고, 이목구비도 선명하니 절세미인이 따로 없었다. “경릉아, 나와 우리 아이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우문호가 말했다.그 순간 주지스님이 강녕후 부인에게 “부인, 소변관을 연결할 줄 아시나요?”라고 물었다.“예! 압니다.” 강녕후 부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여러 해 용태후의 조수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서둘러 준비했다.주지는 밖으로 나갔고 우문호는 눈을 크게 뜨고 강녕후 부인이 약상자 속에서 무엇을 꺼내는지 지켜보았다. “왕야…… 이건 왕야께서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녕후 부인이 말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사식이와 만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고, 수술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우문호는 그제야 멋쩍은 듯 얼굴을 돌리고
‘이제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구나.’명원제는 곧 황제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째가 적임자이건 아니건 지금 상황으로 태자가 될 자격은 수많은 친왕 중에 다섯째만 갖추었다. 또 명원제도 반신반의했던 기적을 초왕비가 이루었다. 몸도 좋지 않은 초왕비가 건강한 사내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강녕후 부인의 말대로 배를 갈라서 낳은 것이기는 하나 어쨌거나 뱃속에 세 아이를 품은 것이 어디 보통일이겠는가?명원제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목여태감은 줄곧 명원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명원제가 고개를 들더니 “태감,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기기 됐지?”라고 물었다. “황상께서는 영생하실 겁니다!” 목여태감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북당에는 새로운 군주가 필요하다.” 명원제가 말했다.유모 상궁은 아이들이 울기만 하고 젖을 먹지 않자 몹시 당황했다. 그 모습을 본 조어의는 고뇌하다가 명원제에게 갔다.“황상, 세 분이 모두 울기만 할 뿐 도통 젖을 드시지 않습니다. 어찌나 크게 우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셨습니다.”“그게 무슨 일이야? 방금까지는 멀쩡했잖아!”조어의의 말을 듣고 놀란 명원제가 벌떡 일어났다.명원제가 다가가 유모 상궁이 안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으며 콧등에 핏대가 솟아있었다. 그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아이들이 울자 명원제는 안쓰러운 마음에 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이상하게도 그가 품에 안자 아이가 잠시 울음을 그치고 그의 가슴 쪽으로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젖을 찾았다.“이거 봐! 애들이 이렇게 배고픈데 너희들이 안 먹인 거 아니냐?” 명원제가 물었다.“폐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젖을 먹는 법을 모르는 듯합니다.”목여태감이 말했다.“그런가?” 명원제가 물었다.“그래도 젖을 먹어야 합니다.” 조어의가 말했다.명원제는 유모 상궁에게 아이를 안겨주며 “병풍 뒤에 가서 먹이거라!”라고 말했다.유모 상궁은 아이를 안고
조어의는 손을 뻗어 아이의 맥을 짚었다. “산파의 말을 들어보니 세 분 중에 마지막에 나오신 분이 모태에 계실 때 탯줄이 목에 감겨있었다고 했습니다. 강녕후 부인이 급히 조치를 취했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에 가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한 건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명원제는 조어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의는 이제부터 셋째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말거라.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짐에게 보고를 하고!”“예! 알겠습니다.” 조어의가 말했다. 잠시 후, 셋째가 또 울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는 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었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명원제는 셋째가 배고파서 그러는 것 같아 유모 상궁에게 빨리 젖을 먹이라고 했다. 첫째와 둘째는 모두 젖을 먹었지만, 셋째는 젖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울었다.명원제는 셋째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됐다! 됐어! 먹지 않겠다는데 강요하지 말고 잠깐 기다려보자!”유모 상궁은 셋째를 다시 명원제 품에 안겼다. 명원제는 아이를 달래주었고, 셋째는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넌 짐의 품이 그렇게 편하더냐……” 명원제가 잠든 아이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잠시 후 원판이 찾아와 원경릉의 상황에 대해 얘기할 게 있다고 하자, 명원제는 아이를 유모 상궁에게 맡겼다.“왕비께서 안정을 취한 것 같으나, 아직 혼수상태이십니다.”“안정을 취했으면 됐다. 좀 지나면 정신이 들 거야. 아이들을 건강하게 낳아주었으니, 짐이 큰 보상을 해줘야지.” *태후는 초왕부의 소식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녀가 얼마나 기다리던 손주인가. 태후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출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자 그녀 역시도 마음을 졸였다. 초왕이 사내아이 셋을 순산했다는 소리에 태후는 매우 기뻐했다. “상을 내려야지! 상을!”태후가 말했다.*태상황은 초왕비의 출산 소식을 듣고 별 반응이 없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앉아 책을 보다가 아이들이 나왔다는 소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