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한 마음에 이불로 나를 돌돌 감았다.“내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리고 이곳은 지은 씨 구역이잖아요. 난 이렇게 일찍 죽기 싫다고요.”윤지은은 갑자기 내 침대에 앉더니 명령조로 말했다.“이불 치워.”“왜요?”“치우라면 치워. 뭔 말이 그렇게 많아?”윤지은은 나한테 늘 이렇게 차갑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기에 나는 순순히 이불을 치웠다.윤지은은 내 가슴을 세게 꼬집었다.“잘 들어. 앞으로 내 친구들 건드리지 마. 내 엄마는 더더욱. 어느 하나라도 거역하면 아주 처참하게 죽을 줄 알아.”꼬집은 자리가 너무 아파, 나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막았다.“꼬집지 않으면 안 돼요? 이거 지은 씨 가슴 아니거든요.”여자 가슴과 마찬가지로 남자 가슴도 민감하다.‘고통 한번 느껴보게. 나도 꼬집어 보고 싶네.’나는 속으로 생각했다.그때 윤지은이 나를 풀어주더니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경고야. 내 말 새겨두라는 경고.”“네, 알았어요. 지은 씨 말대로 할게요. 됐죠?”나는 윤지은과 더 이상 말 섞기도 싫었다. 그저 당장 나갔으면 좋겠다.하지만 윤지은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불을 들추더니 침대에 앉았다.그 헹동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하는 거예요? 지은 씨 말대로 하겠다는데, 왜 안 가요?”“이 호텔 전체가 우리 집 건데, 내가 어디서 자든 뭔 상관이야?”나를 쏘아붙이는 윤지은을 보니 순간 어이없었다.“그런데 여긴 내 방이거든요? 돈도 냈어요.”“그 돈 직접 냈어? 소여정이 대신 내준 거잖아. 그런데 어디서 직접 낸 것처럼 굴어?”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째려봤다.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이따가 내 돈으로 다시 방 잡을 거예요.”‘내가 돈이 없는 줄 알아? 나도 여기 묵을 수 있다고.’나는 속으로 내가 직접 방을 잡으면 윤지은이 어떻게 또 꼬투리 잡나 두고 보겠다고 중얼거렸다.윤지은은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인어
“이게 다 지은 씨 탓이잖아요. 지은 씨가 나를 가두지 않았으면 이곳에 이렇게 오랫동안 묵을 일도 없었을 거고, 돈 낭비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나는 화가 나서 윤지은을 째려봤다. 내가 억울한 걸 생각하니 두려울 것도 없어졌다.윤지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그럼 어쩔 생각이야?”항상 쌀쌀맞게 굴던 윤지은이 갑자기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견딜 수가 없었다.나는 몸을 흠칫 떨며 말했다.“어떻게 할 생각 없어요. 그냥 지은 씨가 여기서 빨리 나갔으면 좋겠어요.”윤지은의 얼굴은 다시 어두워졌다.“뭐? 다시 말해 봐!”‘이 여자는 뭔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아무 말도 안 했어요.”나는 결국 타협했다.이길 수 없으면 피하면 되지.내가 침대에서 내리려고 할 때 윤지은이 갑자기 말했다.“내려가지 마, 이리 와.”“윤지은 씨, 또 뭐 하려고요?”나는 할 말이 없었다.‘대체 무슨 생가인 건지?’그때 윤지은이 새하얀 발을 나에게 내밀었다.“마사지해 줘. 좀 뻐근해.”‘난 또 뭐라고.’‘마하지하러 왔으면 마사지나 받을 것이지 꼭 나를 먼저 괴롭힌다니까.’‘이 여자는 영원히 이렇겠지?’“마하지는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쓸데없이 트집 잡지 마요.”“내가 언제 트집 잡았는데? 누가 우리 엄마랑 그러래? 내 친구랑 붙어먹으래?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왜 이러겠어?”윤지은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됐어요. 못 들은 거로 해요.”나는 더 이상 윤지은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싸우기도 싫었다.나는 조용히 윤지은 발 옆에 앉아 그녀의 발을 들어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윤지은은 눈을 감은 채 즐기고 있었다.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기에, 방은 고요함이 맴돌았다.하지만 그 시각, 808호실에서 백연우가 핸드폰으로 CCTV 영상을 보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그도 그럴 게, 백연우가 보고 있는 건 내 방의 화면이었으니까.백연우한테 내 방 CCTV
임천호를 떠나면 그나마 사람이 된 것 같지만, 그의 곁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소여정은 자신이 산송장이 된 기분이었다.살든 죽든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그때 벽연우가 다급히 말했다.“네가 돌아가서 심심할까 봐 내가 재미 좀 불어넣어 주려는 거 아니냐. 얼른 봐. 보고 나면 아마 피가 끓어오를걸.”백연우의 말에 소여정은 너무 궁금했다. 그녀는 얼른 영상을 재생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생기가 없던 텅 빈 눈이 다시 반짝반짝 빛났다.백연우가 보낸 영상은 윤지은이 내 침대에 앉아 나한테 이불을 치우라고 명령하고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꼬집은 부분이었다.그 부분만 보면 내가 마치 윤지은의 스폰을 받는 기생오라비 같았다.윤지은이 나를 마음대로 괴롭히는데, 불쌍한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으니까.형소 친구들 앞에서 윤지은은 항상 무뚝뚝하고 차가운 모습이다.게다가 소여정이 임천호 정부 노릇을 하는 게 싫어, 늘 소여정을 못마땅하게 여겼다.심지어 친구 셋 모두 윤지은이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걸 몰라, 윤지은이 남자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 영상은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었다.영상 속 윤지은은 여전히 무뚝뚝하고 차가웠지만 눈빛이 여성스럽고 매력적이었다.심지어 먼저 나를 유혹하기까지 했다.소여정은 너무 놀라 소리쳤다.[이거 진짜 윤지은 맞아? 윤지은과 수호 씨가 그렇고 그런 사이었어?]백연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어때? 대박이지? 자극적이지?”소여정은 연신 감탄했다.[완전 대박인데? 정말 자극적이야. 이 영상이 없었다면 윤지은한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모를 뻔했네.]“하하, 이제 윤지은 비밀을 알았으니까, 앞으로 윤지은이 너한테 뭐라고 하면 반박해.”소여정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그런데 이 영상 어디서 난 거야? 너 설마 수호 씨 방에 카메라 설치했어?]“응, 왜?”소여정은 바로 미간을 좁혔다.[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윤지은이 알면 네 가죽을 벗기려고 할걸?]백연우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마음대로 하라
“난 사람이지 애완동물이 아니에요. 옆에 묶어두고 있으면 언젠간 우울증 걸릴 거예요. 내가 우울증 걸려 죽으면, 앞으로 누가 회장님 모시겠어요?”임천호는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죽으면 안 되지. 네가 죽으면 내가 슬퍼.]“그러니까 내보내 달라고요. 기분이 좋아야 우울증도 안 걸리죠.”임천호가 물었다.[내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싫어? 예전에는 내 옆에 꼭 붙어 있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소여정은 입을 삐죽거리며 애교 부렸다.“회장님도 말했다시피 그건 예전이에요. 예전에는 같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장님 마음을 몰랐으니까 오래 같이 있어야 안심이 됐거든요.”[너도 참, 내가 너를 너무 예뻐했어. 해달라는 건 다 들어주니 이젠 점점 막 나가네.]소여정은 이내 생긋 웃으며 말했다.“회장님이 저를 예뻐하는 건 알죠. 하지만 나도 자유가 필요해요.”[그래, 네 마음은 알았어. 바쁜 일 끝내면 같이 나다니자.]임천호의 말에 소여정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따라서 얼굴에 걸렸던 미소도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그럼 됐어요. 안 나갈래요.”소여정은 아예 전화를 끈헝버렸다.소여정이 먼저 전화를 끊었지만 임천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던 백발의 남자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남자의 이름은 정태곤, 임천호의 경호원이다.임천호는 정태곤에게 말했다.“강북에 다녀와서 소여정이 그동안 뭘 하고 다녔는지 조사해.”소여정은 예전에도 밖에 나가겠다고 떼쓰곤 했지만 한 번도 오늘처럼 짜증을 낸 적은 없었다.때문에 임천호는 소여정이 강북에 간 게 단지 친구 만나러 간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정태곤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때까지 나는 곧 닥칠 위험을 알지 못했다.그 시각 나는 여전히 윤지은을 도와 마사지해 주고 있었다.하지만 한창 마사지하고 있는데 윤지은이 잠들어 버렸다.나는 윤지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을 갔다.소변을 보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내 방의 문손잡이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백연우는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그 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났다.이 상황에 윤지은이 깨기라도 하면 난 죽는다.나는 살금살금 걸어가 백연우의 팔을 잡아당기며 경고했다.“뭐 하는 거예요? 이러다 깨겠어요. 제발 좀 가요.”백연우는 곤히 잠든 윤지은을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자식, 말로는 남자를 싫어한다더니, 뒤에서 이런 짓이나 하고 다니긴. 이거 참 보기 드문 일인데, 얼른 지은 옆에 누워. 내가 사진 찍게.”“미쳤어요? 싫어요.”‘난 아직 더 살고 싶다고.’백연우는 내 팔을 잡아당기며 명령했다.“얼른 가. 안 그러면 깨운다?”“헐, 여자들은 왜 다 이래요?”‘정말 미치겠네.’‘소여정도 그렇고, 윤지은도 그렇더니 이젠 백연우까지.’역시 사모님이 제일 착하다.다정하고 자상하고, 그야말로 최고의 사모님이다.“얼른 가. 사진만 찍을 거야. 다른 건 안 해.”백연우는 계속해서 나를 부추겼다.하지만 나는 그 말에 넘어갈 리 없었다.여자는 절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걸 진작 알았으니까.이미 소여정한테 많이 당해기에 절대 두 번 당하지는 않을 거다.하지만 내가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백연우는 정말 윤지은을 깨울 수 있다.윤지은의 성격을 생각하면 결구 손해 보는 건 또 나일 거고.나는 순간 좋은 수가 떠올라 밖으로 도망쳤다.‘이러면 어떻게 협박하나 보자고.’백연우는 내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내 쫓아왔다.“정수호, 거기 서!”나는 도망치면서 계속 뒤를 돌아봤다. 백연우는 나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타이트한 침마와 흰색 셔츠를 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은 영락없는 학과장 선생님이었다.솔직히 이런 백연우가 두려웠다.나는 도망치면서 말했다.“제발 그만 쫓아와요. 시킨 대로 할 수 없어요.”“너 이 자식 당장 거기 서. 아직 졸업장 안 탔다는 거 잊지 마.”나는 단번에 우뚝 멈춰 섰다.‘무슨 뜻이지? 설마 졸업장으로 협박하려는 건가?
“형수랑 여자 친구가 지금은 없으니 우리...”백연우는 말하면서 손을 내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다급히 뿌리쳤다.“그래도 안 돼요. 윤지은 씨가 제 방에 있어요. 언제 깨어날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사모님도 있는데 들킬까 봐 걱정도 안 돼요?”“걱정되긴 무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친구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나올 때 네 사장 사모님한테 말했어. 재미 보러 나간다고. 그러니까 상관 안 할 거야.”백연우는 말하면서 또 나에게 손을 뻗었다.이에 나는 또 그녀를 밀어냈다.“그래도 안 돼요. 저 피곤해요.”나는 정력을 아껴뒀다가 애교 누나거나 형수와 하고 싶었다.하지만 백연우가 나한테 기대어 내 가슴을 살짝 께물었다.간지럽고 짜린한 느낌에 나는 순간 피가 들끓었다.“이래도 안 된다는 거야?”백연우는 고개를 쳐들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나는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성의 끈은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백 쌤, 진짜 안 돼요. 저 진짜 죽어요.”백연우는 피식 웃었다.“어디서 거짓말이야? 네 나이대 남자애들이 얼마나 혈기왕성한데, 하룻밤에 7,8 번도 문제없다고. 내가 언제 7.8번 하자고 했어? 한 번만 하면 돼.”백연우는 딱 봐도 경험이 많아 보였다. 때문에 나 하나 휘두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그, 그럼 어디 갈 거예요?”나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끝내 타협했다.백연우는 이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밖에. 난 밖을 좋아하거든.”‘헐, 이런 취향이었어?’하지만 밖에서 하는 건 확실히 스릴 넘친다.낮에 형수와 밖에서 할 때도 평소와는 느낌부터 달라 평소보다 지구력도 늘었다.“그래요. 얼른 가서 속전 속결해요.”나는 윤지은이 깨어나거나 형수 혹은 애교 누나가 갑자기 돌아올까 봐 걱정되었다.그때 백연우가 갑자기 내 등에 뛰어올랐다.“나 업어줘.”‘무뚝뚝할 때는 그렇게 무섭더니, 부산스러울 때는 또 아이 같네. 업어 달라니.’나는 거절하지 않았다.백연우가 등에 엎드리자 갑자기 따
다만 백연우는 나를 바로 흥분시켰다.결국 한 번으로 끝내려던 게 두세 번 만에 끝났다.우리는 기진맥진하여 꽃밭에 벌러덩 누웠다.“너무 좋아. 역시 젊은 게 좋긴 좋아. 열정적이고 에너지도 넘치고.”백연우는 숨을 헐떡거렸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나는 문뜩 정신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가 벌써 1시간 넘게 밖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나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저 이제 가봐야 해요. 윤지은 씨가 깨어나서 제가 없는 걸 발견하면 또 트집 잡을 거예요.”백연우는 자리에 일어나 앉더니 나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윤지은이 그렇게 무서워?”“그걸 말이라고 해요? 재벌가 아가씨인데, 당연히 무섭죠. 어쩜 친구 넷 다 그렇게 무서워요? 아니지, 사모님이 제일 좋은 분이에요.”“유미가 좋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확신해? 유미도 우리 과일 수 있어.”옷을 입던 나는 손이 그대로 굳어버려 놀란 얼굴로 백연우를 바라봤다.“설마요. 유미 사모님도 이래요?”“하하, 농담이야. 얼른 돌아가.”백연우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먼저 옷을 입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산책하겠다고 나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나는 별생각 없이 정리하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갔다.하지만 급히 서둘렀는데도 내고 돌아왔을 때 윤지은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침대에 앉아 차갑게 물었다.“방금 어디 갔어?”“일 있어서 밖에 다녀왔어요.”나는 거짓말했다.윤지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무슨 일이었는데?”“이봐요, 그건 내 사적인ㄴ 일이에요. 나도 내 개인 생활해야지, 뭐든 보고할 필요는 없잖아요?”내 반박에 윤지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그 순간 적당히 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기서 더 하면 윤지은의 화만 돋울 테니까.나는 너무 반항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관심을 한 스푼 섞었다.“아까 보니까 상태가 좀 심각해요. 요즘 마사지 계속 받아요.”잔뜩 화나 있던 윤지은은 내 말에 바로 화가 사그라들었다.“그 정도로 심
윤지은은 내가 자기 친구를 잊은 걸 탓하기라도 하는 듯 째려봤다.‘그게 나를 탓할 일인가?’‘하루에도 손님을 얼마나 많이 받는데, 내가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냐고?’“그래요, 알았어요.”“태도가 왜 그래?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거야?”윤지은은 뜬금없이 화를 냈다.그런 윤지은의 태도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이봐요, 대체 어쩌라는 거예요?”“다정하게 대해줘.”윤지은은 버럭 소리치며 씩씩거렸다.윤지은은 내 태도가 나쁜 게 싫은 게 아니라, 자기한테 잘해주지 않는 게 불만인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윤지은과 더 이상 싸우기 싫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하라는 대로 할게요. 됐죠?”나는 성질을 최대한 죽이고 울분을 참으며 말했다.하지만 윤지은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네가 내 부하야? 왜 그렇게 굽신대는데?”윤지은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짜증 내도 안 된다, 공손하게 대해도 싫다?’“이봐요, 윤지은 씨, 트집 잡으려면 시원하게 말해요. 굳이 핑계까지 댈 필요는 없잖아요?”‘정말 어이없네. 부잣집 아가씨들은 왜 성격이 다 이 모양인 거야?’‘그래도 이런 아가씨들 모시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아무튼 난 싫어.’나도 윤지은한테 화가 나 씩씩거리며 소파에 앉았다.윤지은은 내 태도에 더 화를 냈다.“지금 나한테 얼굴 찡그렸어? 당장 일어나!”윤지은은 나한테 걸어와서 소리쳤다.나도 순간 욱해서 퉁명스럽게 윤지은의 손을 쳐냈다.“싫어요. 안 일어나면 어쩔 건데요?”윤지은은 내 말에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씩씩거렸다.나는 얼른 윤지은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것 봐요. 또 화내잖아요. 왜 몸에 문제가 많은지 알아요? 이렇게 자꾸 화를 내서 그래요. 자꾸 화내면 몸에 해롭다는 거 몰라요? 계속 이러면 그 병 평생 안 나아요.”나는 계속해서 반박하지 않고 윤지은의 문제점을 콕 집어 말했다. 솔직히 나도 싸우는 건 피하고 싶었다.윤지은은 당장 폭발할 것처럼 거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