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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Autor: 정하은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9 07:12:58

도라의 숨이 멎었다.

정하은은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결혼식 날짜는 잡혔고, 상대도 정해졌어. 순서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

“아가씨, 저는…….”

“말이 새면.”

정하은은 말을 끊었다.

“너라고 알겠어.”

도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정하은은 말을 거두지 않았다.

“내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 아침에 문 앞까지 온 것도 너고, 지금 이 침대를 본 것도 너야.”

“말하지 않겠습니다.”

“생각도 조심해.”

도라가 고개를 들었다.

정하은은 잔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밀었다.

“사람은 말보다 표정에서 먼저 티가 나. 너는 접수실에서 그걸 배웠고.”

도라의 눈이 흔들렸다.

“배운 걸 내 방에서 쓰지 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도라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시트는 네가 직접 치워. 다른 하녀 손에 넘기지 마.”

“예.”

“이 방에 어젯밤 누가 들어왔는지, 넌 모르는 거야.”

“예.”

“네가 뭘 봤는지도 모르는 거고.”

도라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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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62화

    절벽 위의 궁수 몇이 움직였다.금발 기사는 웃지 않았다.“혼자 올 줄 알았다.”“뒤에 둘은 눈에 안 들어옵니까?”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철퇴를 꺼냈다.금발 기사의 눈이 야라의 무기로 향했다가, 다시 카시안에게 돌아왔다.“로세트가 블랙우드 뒤에 숨었군.”“반대입니다.”“뭐?”“당신들이 로세트 뒤에 숨었죠.”짧은 침묵.금발 기사가 손을 들었다. 절벽 위의 활시위가 동시에 당겨졌다.“쏴.”화살이 쏟아졌다.카시안은 검을 뽑았다.챙.첫 번째 화살이 꺾였다. 두 번째는 검등에 맞아 옆으로 튕겼다.카시안은 앞으로 걸었다.화살이 빗발처럼 내려왔지만, 그의 걸음은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검은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화살은 그의 몸에 닿기 전에 방향을 잃었다.베라는 이미 옆으로 빠져 있었다. 몸을 낮춰 쏟아지는 화살 사이를 파고들었다.베라의 낫칼이 말 위의 기사 손목을 걸었다. 그대로 잡아당기자 기사가 검을 놓쳤다. 그 몸이 아래로 기울기도 전에 베라의 발이 안장 옆을 찼다.기사는 말 아래로 떨어졌다.“살려두래.”베라가 중얼거렸다.“귀찮게.”두 번째 기사가 창을 겨눴다.베라는 몸을 낮췄다. 창끝이 머리 위를 스쳤다.낫칼의 붉은 끈이 짧게 흔들렸다. 창대가 걸렸다.베라가 손목을 틀자 창끝이 옆 기사를 향했다. 말 두 필이 놀라 몸을 틀었고, 뒤따르던 기사들까지 한꺼번에 엉켰다.야라는 정면으로 걸었다.방패병 셋이 길을 막았다.가장 앞의 방패병이 달려들었다.야라의 철퇴가 옆에서 들어갔다.쾅.방패는 부서지지 않았다. 대신 방패를 든 팔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기사가 비명을 삼켰다.야라는 열린 틈으로 들어갔다.옆의 방패병이 급히 몸을 틀었다. 반대쪽 철퇴가 가슴갑옷을 찍었다.쾅.기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마지막 방패병이 검을 뽑았다.야라는 검을 무시한 채 철퇴로 그의 무릎을 찍었다.갑옷 안쪽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기사가 옆으로 무너졌다.베라가 멀리서 말했다.“걸어서 돌아가야 된다고 했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61화

    며칠 전.카이든의 집무실에는 탄 냄새가 남아 있었다.책상 위에 놓인 천 조각과 부서진 나무패, 검게 그을린 보증서에 밴 냄새였다.카시안은 앉지 않았다. 창가에 기대선 채 책상 위의 물건들을 내려다봤다.카이든이 말했다.“최근 열흘 동안 세 번이다.”“들었습니다.”“어디서.”“항구에 입이 많더군요.”카이든의 표정이 굳었다.“로세트 내부 보고보다 빨랐다는 뜻인가.”카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더 기분 나빴는지, 카이든이 책상 위의 보증서를 밀었다.“남부 염료 운송대가 습격당했다. 마차 네 대가 불탔고, 호위 둘이 죽었다.”카시안은 보증서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불에 그을렸지만, 도장은 남아 있었다.로세트의 장미.“두 번째는.”“북문으로 들어오던 철물 운송대. 마차 바퀴가 부러졌고, 협곡 아래로 떨어졌다.”“사망자는.”“다섯.”“세 번째.”카이든의 손이 옆에 놓인 나무패로 향했다.“어제 새벽. 동부 직물 공방 대금 호송.”카시안이 나무패를 집었다. 얇고 납작한 패였다. 한쪽에는 로세트 상단의 지급대 표식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깊은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돈은.”“그대로였다.”카시안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카이든이 말했다.“세 건 모두 화물도 일부 남았다. 금화도 손대지 않았다. 대신 거래 장부와 보증서 사본만 사라졌다.”“그럼 도둑은 아니군요.”“누가 봐도.”카시안은 목패를 내려놓았다.“사고도 아니고.”“그래.”집무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카이든은 그 침묵을 오래 두지 않았다.“세 거래처에서 모두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로세트 운송로를 믿고 물건을 맡겼으니, 손실도 로세트가 책임지라고.”“틀린 말은 아닙니다.”카이든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내 앞에서 남의 편을 들 생각인가.”“의뢰를 받기 전에 값부터 올리는 겁니다.”카이든의 입술이 얇아졌다.카시안은 책상 위의 서류를 한 장 넘겼다.세 거래처의 배상 청구. 발신일은 달랐다. 문장은 비슷했다.운송 안전 보장 실패.기한 내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60화

    이번에는 대답이 빨랐다.“네.”여자들의 목소리가 겹쳤다.정하은은 방금 붙인 머리카락을 다시 떼어냈다.딸각.딸각.이번에는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정하은의 손끝을 따라 가까이 왔다.정하은은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양옆에 붙였다.원래 머리는 뒤로 말아 올리고, 짧은 가닥을 얼굴 옆으로 내렸다.미라가 빗으로 몇 번 정리했다.몇 분 전과 또 다른 모습이 됐다.정하은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이건요?”주방 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자기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목덜미 위로 올려봤다.하녀 하나도 같은 행동을 했다.“저도 저렇게 할 수 있습니까?”“머리 길이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요.”“이 색 말고 제 머리색으로도요?”“있어요.”“끝이 더 말린 건요?”“네. 그것도 있어요.”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머리숱이 적은 곳에만 붙일 수도 있어요?”“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까?”“매일 바꿔도 됩니까?”“긴 것과 짧은 걸 같이 써도 돼요?”“저 붉은색 좀 보여주세요.”조금 전까지 식탁 위의 머리카락을 꺼리던 사람들이었다.이제는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미라가 머리카락을 하나씩 꺼내 보여줬다.“이쪽이 더 밝습니다.”“그건 뒤에 붙이는 길이예요.”“끝이 말린 건 눌리지 않게 잡아주세요.”주방 여자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자기 얼굴 옆에 대봤다.옆에 있던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그건 너무 밝아.”“그래?”“붉은색이 더 나아.”“붉은색은 너무 튀잖아.”“그게 좋은 거 아니야?”두 사람은 벌써 자기 물건처럼 고르고 있었다.그렌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탁 한쪽으로 몰리자 접시를 먼저 치웠다.“음식 위로 넘기지는 마세요.”그는 빈 공간을 만들어 상자를 옮겨놓았다.여자들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따라갔다.엘린은 식탁 끝에 기대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며칠 동안 자신이 본 건 작은 금속 조각과 머리카락 묶음뿐이었다.정하은이 몇 번 붙였다 떼는 것도 봤다.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59화

    며칠 만에 식당 안이 제법 북적였다.그동안 모두 각자 맡은 일로 저택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작은짐 사업은 마일로가 맡았고, 로웬을 비롯한 실무진이 그 일을 도왔다. 카시안과 베라, 야라는 로세트 상단 일로 바빴다. 실렌과 노아도 단풀 마을의 사전 조사를 마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동쪽 창고에서 지내던 엘린은 그사이 식당을 오가며 블랙우드 사람들과 제법 얼굴을 익혔고, 비를 막는 마차 덮개도 완성했다.그렇게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는데, 정하은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베라가 카시안을 봤다.“새 마님은 오늘도 안 오십니까?”“곧 와.”카시안은 정하은의 빈 의자를 당겨놓았다.“오늘은 같이 먹겠다고 했어.”노아가 빵을 뜯다가 고개를 들었다.“새 마님 얼굴 본 지 꽤 된 것 같습니다.”“너도 며칠 없었잖아.”베라가 말했다.“떠나기 전부터 못 뵀습니다.”노아는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요즘은 식당에 아예 안 오십니까?”음식을 내려놓던 주방 하녀가 말했다.“그동안은 일하시는 곳으로 가져다드렸어요.”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맞은편의 엘린을 봤다.“엘린은 알고 있습니까?”“뭘.”“새 마님이 그동안 뭘 하셨는지요.”엘린은 수프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알아.”노아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뭡니까?”“곧 보면 알 텐데.”“조금만 먼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안 돼.”노아는 아쉬운 얼굴로 빵을 다시 뜯었다.그때 식당 문이 열렸다.먼저 들어온 건 미라였다. 길쭉한 상자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그 뒤로 정하은이 모습을 드러냈다.갈색 머리카락이 등을 가득 덮은 채 걸음을 따라 흔들렸다. 짙은 갈색 사이에는 조금 밝은 가닥이 섞여 있었고, 끝부분은 부드럽게 말려 있었다.식탁 위의 말소리가 하나둘 끊겼다.평소 입던 드레스에, 분명 같은 얼굴이었다.그런데 전혀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노아는 입에 넣으려던 빵을 멈췄고, 베라도 잔을 내려놓았다.정하은은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식당을 가로질렀다. 카시안 옆에 멈춰 선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58화

    “버려.”“뭔지는 봐야죠.”베라가 노아를 봤다.“문제는 너 하나로 충분해.”노아는 억울한 얼굴로 정하은을 보았다.“새 마님, 물건은 죄가 없습니다.”정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노아의 얼굴이 밝아졌다.“사람이 문제죠.”노아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베라가 짧게 웃었다.노아는 못 들은 척 첫 번째 물건을 내밀었다.손바닥만 한 나무 조각이었다. 둥근 나무판 가운데에 얇은 쇳조각이 들어가 있었다.“이건 생선 경매장에서 씁니다.”그가 엄지로 가운데를 눌렀다.딸각.생각보다 크고 또렷한 소리가 났다.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노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이렇습니다.”그가 다시 눌렀다.딸각.몇 사람이 미간을 찌푸렸다.노아의 엄지가 세 번째로 움직이려는 순간 베라가 말했다.“손가락 접어.”노아가 멈췄다.“아직 설명이 남았습니다.”“입으로 해.”노아는 딸각쇠를 정하은에게 건넸다.“경매를 시작할 때도 쓰고, 살 사람이 참여한다고 알릴 때도 씁니다. 생선 공판장이 워낙 시끄러워서 목소리보다 이게 낫답니다.”정하은이 가운데를 눌렀다.딸각.손끝에 얇은 쇠가 꺾였다 돌아오는 감각이 느껴졌다.“이거 하나면 사람들이 돌아봐요?”“예. 저도 돌아봤습니다.”“그래서 사버렸어요?”“예.”“잘 만든 물건이네요.”노아의 얼굴이 밝아졌다.“그렇죠?”“소리 한 번에 손님 하나를 잡았잖아요.”노아가 잠깐 생각했다.“저는 손님이 아니라 조사하러 간 겁니다.”“돈을 냈으면 손님이에요.”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맞아.”노아는 딸각쇠를 바라보았다. 조금 배신당한 얼굴이었다.정하은은 한 번 더 눌렀다.딸각.그렌이 식당 문밖에서 들어오다가 멈췄다.“부르셨습니까?”정하은은 손안의 물건을 내려다봤다.“아뇨.”그렌은 노아를 봤다.“또 뭘 사 왔나 보군.”“또라니요. 오늘 처음 보여드리는 겁니다.”“네가 없는 동안 조용했다.”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정하은은 딸각쇠를 보류 쪽으로 밀었다.“남

  • 무능한 장녀라더니 상단을 먹어버렸다   57화

    블랙우드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흩어졌다.정하은이 일주일을 줬지만, 정말 일주일을 다 쓰려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첫 번째 물건은 엘린이 온 날 저녁이 되기도 전에 들어왔다.마구간에서 일하는 소년이 작은 자루를 들고 식당으로 찾아왔다. 자루 안에서는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정하은은 자루와 소년을 번갈아 보았다.“뭘 잡아 왔어요?”“잡은 건 아닙니다.”“그럼 주웠어요?”“샀습니다.”소년은 제법 당당하게 자루를 열었다.안에는 손바닥만 한 잿빛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표면이 거칠고 군데군데 흰 결정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정하은이 하나를 집었다.“돌이네요.”“예.”정하은은 돌을 한 번 뒤집어봤다.“좋아요. 시작부터 예상 밖이네.”소년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렸다.“말들이 좋아합니다.”“돌을요?”“계속 핥습니다.”정하은은 돌을 다시 보았다.“먹어봤어요?”소년이 손가락 끝을 조금 들어 보였다.“이만큼만요.”“왜요?”“말들이 너무 좋아해서.”정하은은 잠깐 소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이해해요. 남이 맛있게 먹으면 궁금하죠.”소년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짭니다.”“소금이네요.”“예.”“말들이 좋아하고요?”“묶어두면 이것만 봅니다.”정하은은 돌을 자루에 내려놓았다.“좋네요.”소년의 얼굴이 밝아졌다.“팔 수 있습니까?”“말한테요?”소년이 눈을 깜빡였다.“말은 돈이 없는데요.”정하은이 웃었다.“그러니까 주인한테 팔아야죠.”소년은 그제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말을 키우는 사람이면 삽니다.”“말이 좋아하는 걸 보여주면 더 잘 사겠네요.”“보여드릴 수 있습니다.”“그럼 이거 하나로 며칠이나 먹는지 알아와요.”정하은은 자루 안의 돌을 한 번 더 보았다.“말이 몇 번이나 쳐다보는지도.”소년이 잠깐 멈췄다.“쳐다보는 것도 셉니까?”“좋아한다면서요.”“예.”“그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알아야죠.”소년은 진지한 얼굴로 자루를 안았다.“세겠습니다.”그가 돌아가자 카시안이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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