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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Penulis: 서담

누군가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매달리는 건 허정안도 처음이었다. 낯선 감각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의 머리를 살짝 눌러 밀어냈다.

“똑같이 생긴 낙엽 열 장을 주워 오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마.”

아이는 그 말에 아주 신이 나서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그제서야 주변이 고요해졌다.

곽영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네 말은 바로 듣는구나.”

“어느 집 아이길래 큰사부님께서 직접 가르치고 계시는 겁니까?”

허정안의 기억이 맞다면, 곽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새 제자를 받고 있지 않았다.

곽영이 웃으며 답했다.

“아주 귀한 집 자식이지. 나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일단 앉아라.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오마.”

회귀 전, 그녀가 죽었을 무렵엔 이미 두 스승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만약 두 분이 살아 있었다면, 그녀도 그토록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차인데. 한 번 마셔보거라.”

곽영이 찻상을 들고 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뗐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보다 훨씬 침착해졌구나. 변방에서 지낸 세월이 적잖은 수련이 된 모양이구나.”

그는 허정안이 남장을 한 채 아버지를 대신해 오라비의 이름으로 출정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장 공주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오라비를 따라 변방에 살다 온 줄만 알고 있었다.

허정안이 쓰게 웃었다.

“큰사부님, 저 요즘 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곽영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허정안은 간략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이야기의 중점을 허 부인의 편애와 허유진의 공식 입양에 두었다.

“어머니가 허유진을 공식적으로 가문에 입적하려 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면 사당을 열어 조상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족보에 올릴 계획입니다. 그래서 큰사부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조정에서 힘 있고, 올바른 마음으로 말을 해줄수 있는 분을 한 명만 제게 붙여 주십시오.”

이게 오늘 외출한 진짜 목적이었다.

허정안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열리는 연회는 비록 황후가 주체한것이지만 실은 황제의 이름을 걸고 허씨 가문을 치하하는 자리였다.

그리하여 허유진이 허씨 가문의 딸로 연회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정식으로 족보에 올라가야만 했다. 그만큼 허유진의 입양을 막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과거 이 일로 인해, 허유진은 허정안을 대신해 장녀로서의 자리를 차지하며 모든 영광을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니,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곽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러한 부탁을 하는 건, 사실 금기를 어기는 것이었다.

보통 새 황제가 즉위하면 전 황제에게 줄을 댄 사람들부터 제거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가 비록 선황의 사람이긴 했지만, 무사히 살아남아 은퇴할 수 있었던 데는 오직 남의 일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신념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는 신념을 어긴 것이 되고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곽영이 말했다.

“아이야, 너는 내가 어떻게 칠십이 넘도록 무탈하게 살아왔는지 아느냐?”

“사부님이 현명하셨기 때문이죠.”

“아니지, 절대로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허정안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오라버니도 세상을 떠났고, 허유진은 제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그녀를 편애하고 힘이 되어주고 있는데, 전 아무도 없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천천히 차를 음미하던 곽영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아까 그 말썽꾸러기한테 무기 쓰는 법을 좀 가르쳐주거라. 그러면 이 부탁을 들어주마.”

“그 아이는 어느 집 자식입니까?”

“아주 귀한 집 자식이지. 그래서 나도 거절하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이제 나도 늙었다. 가르치는 것이 힘에 부치는구나.”

“좋습니다.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분을 보내주실 건가요?”

곽영이 웃으며 답했다.

“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렇게 봐도 아직 연줄이 많단다. 저 아이를 맡기면서 그분이 내게 부탁하신 것이 있지. 험하게 다뤄도 상관없으니, 뭐라도 하나만 제대로 배워주라고 말이다.”

곽영의 말을 들은 허정안은 속으로 각오를 굳혔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낙엽을 고르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만하거라. 세상에 똑같은 낙엽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누가 그래요? 저 꼭 찾아낼 거예요! 그러니까 약속 지켜주세요!”

“낙엽을 못 찾아도 가르쳐주마. 그런데... 은전은 좀 가진 게 있느냐?”

아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있죠! 드릴까요? 제자를 받는 비용인가요”

아이가 소매에서 백 냥짜리 은전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여기, 받으세요. 부족하면 말씀하시고요! 더 있어요!”

허정안은 원래 다섯 냥 정도만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겨우 일곱 살짜리의 소매에서 백 냥짜리가 나오다니, 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만만치 않은 집안의 자제인가 보구나. 이런 아이가 과연 내 수련을 견딜 수 있을까? 괜히 나서겠다고 했나? 잘못 가르치면 귀인의 신뢰를 저버리게 될 수도 있겠는데?'

허정안은 잠시 망설였으나, 곽영과 한 약속을 떠올리며 다시 각오를 새겼다.

“내가 네 사부가 된다면, 매우 엄격히 너를 대할 것이다.”

“괜찮아요! 가르쳐주시기만 한다면 좀 전처럼 은전을 매일매일 드릴 수 있어요! 우리 아버...지는 아주 부자시거든요!”

다 큰 어른이 했으면, 아주 망나니로 취급되었을 말투였다. 허정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 다섯 날에 한 번씩 여기에 오마. 그 사이 넌 먼저 기마 자세를 연습하거라. 자세가 흔들리지 않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가마.”

“기마 자세? 그건 왜 배워요?”

꼬마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허정안은 말없이 빨리 움직이라는 손짓을 아이에게 보냈다. 아이는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일단 그녀의 말에 따라 자세를 취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듯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허정안은 그런 아이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냉정한 분위기를 지녔는데, 웃으니 비웃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에 아이가 주먹을 꽉 부여쥐며 외쳤다.

“웃지 마세요! 아직 자리를 잘 못 잡은 것뿐이에요!”

허정안이 말했다.

“기마 자세는 하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모든 수련은 하체가 튼튼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연습하거라.”

어느새 외출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떠나기 전 꼬마와 이름을 교환했고, 꼬마는 자신의 이름을 안휘라 밝혔다.

허정안은 황족이나 고위 귀족 중에 안씨가 없는 것을 떠올리며 안도했다.

'아무렴 큰사부님께서 맡기신 아이인데, 내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

그렇게 허정안은 현명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곤 무관을 나와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허정안은 꼬마 안휘에게 받은 은전을 소영에게 건네며 환안고 약재를 더 사 오게 했다. 그런데 문득 하인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밝은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껴 소영에게 상황을 알아보라 지시했다.

잠시 후, 소영이 돌아와 말했다.

“저희가 외출 직후, 궁에서 성지가 내려왔답니다. 황후마마께서 열흘 뒤에 있을 연회에 부인과 아가씨를 초대하셨대요. 그래서 부인께서 기쁜 나머지 하인들의 봉급을 두 배로 올려주셨답니다.”

허정안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그녀가 전장의 공로로 받은 은전을 쥐고 하인들에게 상을 베풀면서도, 정작 그녀에겐 숯 하나 아끼는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허 부인은 분명 이 기회를 틈타, 허유진을 족보에 올리는 것도 모자라 입궁해 그녀를 대신해 황제가 내린 상을 받게 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허정안은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소영아, 조용히 이 일을 해오거라.”

허정안이 목소리를 낮춰 자세히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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