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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치는 요람 (2)

Auteur: 뮤네바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9-12 18:01:11

"전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그곳의 모든 것은 허상이었지요."

아일라의 텅 빈 목소리가 넓은 응접실 안을 서늘하게 울렸다.

"그러니 방금 바닥을 기어 다니던 저 벌레 역시, 제 눈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환상일 뿐입니다. 진짜가 아닌 것에 마음을 내어주는 멍청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배웠으니까요."

카일락은 숨을 들이켜는 법을 잊은 채 굳어버렸다.

그가 주입했던 지독한 세뇌. 네가 보는 세상은 다 가짜이니 오직 나만을 바라보라는 그 폭력적인 통제의 논리가, 지금 완벽한 거울이 되어 카일락 자신의 명치를 꿰뚫고 있었다.

아일라는 노이를 연기력으로 외면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카일락이 심어놓은 '모든 외부 세계는 거짓'이라는 공식을 완벽하게 내면화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노이가 진짜 남부의 핏덩이이든 아니든, 그녀의 붕괴된 인지 체계 속에서는 어차피 카일락이 만들어낸 성가신 환상의 일부로 뭉뚱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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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서늘한 당근과 침묵하는 맹수 (2)

    평소처럼 아일라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투정을 부리거나, 살기를 폭발시키며 관료를 당장이라도 찢어발기려 드는 발작적인 광기는 없었다.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하지만 그 침묵이 더욱 끔찍했다.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는 단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오직 아일라의 하얀 얼굴과 그녀의 손에 쥐여진 서신만을 번갈아 응시하고 있었다. 단검의 날을 쓰다듬는 거친 손가락에서 붉은 핏방울이 맺혀 툭 떨어져 내렸으나, 카일락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그 기괴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관료는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대공이 뿜어내는 무언의 압박감이 내실의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대공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목에 저 단검을 꽂아 넣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가 관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그…… 하여, 내일 자정까지 카엘 자작의 밀사가 다시 오기로……!""나가세요."관료가 발작하듯 보고를 이어가려 할 때, 아일라의 평탄한 음성이 그를 가로막았다.관료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새도 없이, 짐승에게서 도망치는 쥐새끼처럼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내실 밖으로 달아났다. 무거운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내실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화로의 장작이 타들어 가는 미세한 소리마저 집어삼킬 듯 무거운 정적. 아일라는 카일락이 뿜어내는 그 억눌린 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고요하고 건조한 눈으로 그를 직시했다.며칠 전, 재무부 관료를 윽박지르며 살기를 터뜨렸던 카일락은 그녀의 가벼운 쓰다듬과 기만적인 속삭임에 순순히 맹수가 되기를 포기했었다. 하지만 짐승의 본능적인 질투와 소유욕은 한두 번의 조련으로 영원히 잠재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오히려 아일라가 서부의 장부와 관료의 보고에 집중하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서늘한 당근과 침묵하는 맹수 (1)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짙은 어둠 속, 숨을 죽인 내실의 공기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았다.창밖으로는 북부 특유의 잔인한 눈보라가 성벽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고 있었으나, 내실 한가운데에 엎드린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는 온몸을 식은땀으로 적시고 있었다. 그의 거친 호흡만이 서늘한 정적을 간신히 쪼개고 있었다."전하의 하교대로, 서부의 두 짐승은 완벽하게 이성을 잃었사옵니다."관료가 이마를 대리석 바닥에 짓이긴 채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바르토 백작은 카엘 자작이 자신을 대공성에 팔아넘기려 한다고 굳게 믿고 영지의 사병을 총동원하여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이에 경악한 카엘 자작 역시 바르토가 자신을 죽이려 든다며 수비대를 결집시켰사옵니다. 서부의 맹약은 완전히 박살이 났고, 두 파벌은 언제 피를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극도의 혼돈 상태에 빠져 있사옵니다."아일라는 푹신한 긴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 고요하고 투명한 잿빛 눈동자로 관료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무력과 공포가 아니라, 의심과 기만으로 쌓아 올린 완벽한 모래성. 과거 대공비로서 갇혀 지내며 억지로 삼켜야 했던 가신들의 은밀한 역학 관계와 파벌의 약점들이, 그녀의 치밀한 계산 아래에서 찬란한 파멸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그래서."아일라의 건조한 음성이 툭 떨어져 내렸다."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어느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던가요."관료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품속에서 두꺼운 서신 뭉치를 꺼내어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어젯밤, 카엘 자작의 최측근 밀사가 제 처소를 은밀히 찾아왔사옵니다."관료의 목소리에는 그 자신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경악이 섞여 있었다."바르토 백작의 광기를 잠재워 달라고, 서부 수비대가 반역으로 몰려 대공의 칼날에 도륙당하는 일만은 막아달라며 제게 목숨을 구걸하더이다. 그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서로를 물어뜯는 사냥개들 (2)

    "서신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바르토 백작이 대공의 눈을 속이기 위해, 횡령의 모든 죄를 카엘 자작에게 뒤집어씌우고 그의 목을 대공성에 바치기로 황실과 밀약했다는 내용. 카엘 자작을 희생양으로 삼아 꼬리를 자르겠다는 완벽한 배신의 증거를 만들어 심어두란 뜻입니다."그제야 관료는 아일라가 설계한 덫의 잔혹한 전모를 깨닫고 등골이 얼어붙었다.자금줄이 마르고 대공의 압박에 시달리며 반쯤 미쳐있을 바르토 백작. 그리고 그 백작이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다는 결정적인 물증을 발견하게 될 카엘 자작. 두 짐승은 서로가 배신했다고 굳게 믿으며, 대공의 칼날이 닿기도 전에 먼저 서로의 목줄을 물어뜯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무력이 아니라 정보와 의심을 무기 삼아 가신들의 파벌을 산산조각 내는 서늘하고도 완벽한 통제."명심하겠습니다, 전하. 당장 사람을 심어 카엘 자작의 영지에 물건을 흘려두겠사옵니다!"관료가 처절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도망치듯 내실을 빠져나갔다. 아일라는 텅 빈 어둠 속에서,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게 숨죽인 북부의 밤을 직시했다.***며칠 뒤,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대회의실.높은 천장 아래로 육중한 흑요석 탁자가 놓여 있고, 북부를 지배하는 핵심 가신들이 숨을 죽인 채 도열해 있었다.상석에는 카일락이 오만한 맹수처럼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의 옆에는 얇은 숄을 덮어쓴 아일라가 초점 잃은 인형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신들의 눈에 아일라는 여전히 주군의 광기를 자극하는 불길하고 무능한 요부, 혹은 텅 빈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들은 아일라를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하며 카일락의 눈치만을 살폈다.그러나 겉보기에는 고요한 대회의실의 공기 밑바닥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균열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찢어지고 있었다."주, 주군! 서부 수비대의 카엘 자작이 돌연 군수로를 통제하고 영지의 성문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서로를 물어뜯는 사냥개들 (1)

    북부의 밤은 은밀한 거짓말을 숨기기에 가장 완벽한 장막이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성벽을 때리는 소리에 묻혀, 쥐새끼들이 갉아먹는 비열한 배신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서늘한 내실. 타오르는 화로의 열기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서부 상단에서 갓 도착한, 이만 오천 닢의 은화가 보증된 어음이 쥐여 있었다."전하의 예상대로 바르토 백작은 절반의 자금만을 보내왔사옵니다. 로젤 황실에는 북부의 동향이 순조롭다 거짓 보고를 올렸고, 제게는 시간을 벌어달라며 구걸하는 서신을 동봉하였습니다."관료의 탁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서부의 권력자가 단 한 장의 위조된 협박장 앞에 얼마나 무력하게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참이었다.아일라는 푹신한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관료가 바친 어음과 서신을 건조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투명할 정도로 하얀 손가락이 바르토 백작의 다급한 필체를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서부의 늑대는 뒷배도 없이 홀로 고립되었다. 두려움에 눈이 멀어 양쪽을 기만하는 최악의 패를 선택한 순간, 그는 이미 사냥꾼의 덫에 목이 반쯤 잘려 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일라의 목적은 단순히 바르토 백작 한 명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었다.무력으로 가신의 목을 날려버리는 것은 카일락이 휘두르는 자루 없는 검이나 하는 짓이다.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방패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 견고한 가신들의 파벌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물어뜯어 그들 자신의 손으로 붕괴하게 만들어야만 했다."수고했어요."아일라의 서늘한 음성이 떨어지자 관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였다.스릉소름 끼치는 강철의 마찰음이 내실의 공기를 무참히 찢어발겼다.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거대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늪으로 걸어 들어간 늑대 (2)

    '하지만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백작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서신에 적힌 내용은 명백했다. 재무부 관료가 대공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불어버리겠다는 협박. 며칠 전, 대공이 반역의 기미를 보이던 변방의 소영주들을 단신으로 찾아가 사지를 찢어발겼다는 끔찍한 소문이 북부를 휩쓴 참이었다. 만약 자신이 로젤 황실과 내통하여 대공성의 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카일락의 귀에 들어간다면?'그 미친 사냥개는 기사단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내 목을 뜯으러 올 것이다.'숨이 막히는 공포였다. 그렇다고 이 사태를 로젤 황실에 보고하여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로젤의 황제는 철저한 이득주의자였다. 쓸모가 있을 때나 뒷배가 되어주지, 꼬리가 밟혀 썩어 들어가는 장기말을 위해 황실의 기사단을 북부의 혹한 속으로 파병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암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황실에 기댈 수도 없고, 늙은 쥐새끼의 협박을 무시할 수도 없고, 대공에게 엎드려 자비를 구하는 것은 곧 완벽한 자살 행위였다.바르토 백작은 집무실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누구에게 붙어야 살 수 있는가. 충성과 배신 사이, 턱밑까지 차오른 공포 속에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대체 어쩌다 그 무식한 대공 놈이 재무부의 장부를 의심하게 된 거지? 그저 눈이 먼 인형을 끼고 돌아 미쳐가는 줄로만 알았거늘……!"그는 자신을 이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의 존재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시기가 나빴다고, 늙은 재무부 관료의 탐욕이 대공의 변덕을 건드린 것이라고만 착각할 뿐이었다.결국 기나긴 밤의 고뇌 끝에, 바르토 백작은 가장 최악의 패를 집어 들고 말았다.양쪽을 모두 속이며 시간을 버는 것. 영지의 상단을 쥐어짜 절반의 은화만을 마련하여 재무부 관료의 입을

  • 미쳐버린 북부대공의 인형 노릇은 사양하겠습니다   늪으로 걸어 들어간 늑대 (1)

    에이든하르트 대공성의 옥좌 뒤편, 깊고 서늘한 어둠이 깔린 내실. 그곳에서 잿빛 머리카락의 재무부 총괄 관료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 위에 깃펜을 놀리고 있었다.사각 사각적막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만이 맴돌았다. 관료의 이마에서는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려 잉크가 번질 뻔했지만, 그는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문장을 완성해 나갔다.그의 등 뒤로는 거대한 야수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불온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공 카일락 에이든하르트였다. 카일락은 옥좌의 팔걸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제 무릎 위에 안긴 아일라의 하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관료의 뒷모습을 흉포하게 노려보았다.'저 버러지 같은 새끼.'카일락의 붉은 눈동자에 섬뜩한 살기가 일렁였다.그는 이 기괴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일라가 저 더러운 횡령범의 목을 치지 않고 살려두는지. 왜 저 벌레에게 바르토 백작을 향한 서신을 쓰게 만드는지, 그 정치적인 셈법 따위는 카일락의 안중에도 없었다.오직 카일락의 심기를 병적으로 긁어대는 것은, 아일라의 시선이 지금 자신이 아닌 저 잿빛 머리카락의 늙은 사내를 향해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녀의 명령이 저 관료를 움직이고 있다는 그 알량한 연결 고리조차도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스릉카일락의 커다란 손이 검자루를 매만지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흘렸다. 관료의 어깨가 벼락을 맞은 듯 흠칫 튀어 올랐다."저 새끼의 눈깔을 파버릴까, 아일라."카일락이 아일라의 귓가에 입술을 묻고 짐승처럼 속삭였다."네가 굳이 저런 벌레와 말을 섞을 필요가 어디 있어. 서신 따위는 필요 없어. 네가 바르토 백작의 영지가 눈에 거슬린다면, 내가 당장 기사단을 끌고 가 그 땅을 핏빛 진흙탕으로 만들어줄게. 응? 나만 봐, 아일라. 나한테만 명령해."질투. 대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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