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휘이이잉
살을 에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첨탑의 발코니를 휘감고 맴돌았다. 시퍼런 북부의 칼바람이 아일라의 은빛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트려 놓았지만, 그녀의 두 발은 단단한 대리석 바닥 위에 뿌리를 내린 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바닥을 더듬거리며 얼어붙어 있었다.
환상이 아니다. 미쳐버린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의 손으로 부수고, 짓밟고, 텅 빈 무위의 늪에 익사시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형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아니, 살아 숨 쉰다는 얄팍한 표현으로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하고도 거대한 압도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허공을 부유하던 흐릿한 눈동자에는 더 이상 빛바랜 잿더미의 공허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리도록 차갑고, 소름이 끼칠 만큼 명징한 이성의 날.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 지독한 지옥도를 가장 높은 곳에서 서늘하게 관망하다,
카일락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전율에 휩싸였다.그가 그토록 갈구하고 원했던 그녀의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 생기는 그를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를 발밑의 벌레처럼 내려다보며 군림하기 위해 부활한 것이었다.아일라는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허리를 숙여 짐승처럼 웅크린 카일락에게 다가갔다.그녀의 하얗고 가녀린 손이 허공을 가르고 내려와, 카일락의 떨리는 뺨에 닿았다. 늘 체온이 느껴지지 않던 얼음장 같은 인형의 손이 아니었다. 피가 돌고, 맹렬한 의지가 숨 쉬는 살아있는 인간의 뜨거운 온기였다.그 온기가 뺨에 닿는 순간, 카일락의 눈동자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환희, 그리고 죽음과도 같은 공포가 한데 뒤엉켜 폭발했다.그는 본능적으로 아일라의 손길에 얼굴을 기대며 헐떡였다.하지만 아일라의 손은 애정을 갈구하는 짐승을 쓰다듬는 자비로운 주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카일락의 턱을 억센 힘으로 쥐고 들어 올려,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 만들었다.눈과 눈이 마주쳤다.붉게 충혈된 채 덜덜 떨리는 지배자의 동공과, 잿빛 폐허 위에서 가장 오만하게 피어난 은빛 동공.아일라의 입술 끝이 아주 천천히 말려 올라갔다.그것은 지난 수개월 동안 카일락을 미치게 만들었던 그 대칭적이고 기형적인 밀랍 인형의 텅 빈 미소가 아니었다.한쪽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간, 소름이 끼치도록 생생하고 잔혹한 비웃음.자신의 발밑에서 숨죽이고 있는 먹잇감을 내려다보며 그 비참한 몰골을 조롱하는, 완벽한 포식자의 미소였다.그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미소를 마주한 순간, 카일락의 뇌리에서 이성을 지탱하던 마지막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갔다.자신은 패배했다.남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무력과 권력이 여전히 자신의 손에 쥐여 있고, 대륙을 짓밟을 수 있
휘이이잉살을 에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첨탑의 발코니를 휘감고 맴돌았다. 시퍼런 북부의 칼바람이 아일라의 은빛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트려 놓았지만, 그녀의 두 발은 단단한 대리석 바닥 위에 뿌리를 내린 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바닥을 더듬거리며 얼어붙어 있었다.환상이 아니다. 미쳐버린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다.그가 스스로의 손으로 부수고, 짓밟고, 텅 빈 무위의 늪에 익사시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형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아니, 살아 숨 쉰다는 얄팍한 표현으로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하고도 거대한 압도감을 설명할 수 없었다.방금 전까지 허공을 부유하던 흐릿한 눈동자에는 더 이상 빛바랜 잿더미의 공허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리도록 차갑고, 소름이 끼칠 만큼 명징한 이성의 날.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 지독한 지옥도를 가장 높은 곳에서 서늘하게 관망하다, 마침내 무대 아래로 내려와 사냥감의 목줄을 거머쥐기로 작정한 절대적인 포식자의 시선이었다."아일라."카일락의 목구멍에서 핏물이 섞인 듯한 처절한 쇳소리가 긁혀 나왔다.그는 북부의 무소불위의 지배자였다. 대륙의 절반을 공포로 몰아넣은 오만한 군주로서, 감히 자신을 저토록 불경하게 내려다보는 시선 앞에서는 당장 벌떡 일어나 그 사지를 찢어발기겠다고 호통을 쳐야 마땅했다.하지만 그의 육체는 뇌의 명령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었다.그녀가 뿜어내는 그 숨 막히는 이성의 빛 앞에 노출된 순간, 카일락의 척추를 타고 짐승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공포가 뻗어 나갔다. 이것은 절망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던 이전의 붕괴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서열의 본능.거대한 포식자의 아가리 앞에서 숨을 죽이고 목을 조아려야만 하는, 가장 비참하고 맹목적인 굴복의 자세가 그의 거구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철저한 수동성의 봉인이, 서늘한 눈보라 속에서 소리 없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스락아일라가 움직였다.카일락의 명령도, 허락도 없는 완벽하게 독립적인 움직임이었다.그녀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카일락의 거대한 어깨 위로 하얀 손을 뻗었다. 이전처럼 뻣뻣하고 기계적인 반사 작용이 아니었다. 관절의 삐걱거림 하나 없이 물이 흐르듯 유려하고 통제된, 살아있는 생명체의 명확한 의지가 담긴 움직임.아일라의 차가운 손바닥이 카일락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밀어냈다.아주 가벼운 힘이었음에도, 그 손길이 닿은 순간 카일락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흠칫 굳어졌다."……어."카일락이 헐떡이던 숨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그는 자신의 어깨에 닿아 있는 아일라의 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명령하지 않았다. 움직이라고, 나를 밀어내라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스스로 손을 들어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다.카일락의 충혈된 붉은 눈동자가 경악과 혼란으로 미친 듯이 팽창했다.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아일라가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던 카일락의 억센 두 팔을 풀어냈다. 카일락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힘없이 팔을 늘어뜨렸다.그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일라가, 발코니의 서늘한 대리석 바닥 위로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탁구두 굽이 바닥에 닿는 아주 작고 명료한 소리.그것은 지난 수개월 동안 텅 빈 껍데기가 되어 질질 끌려다니거나, 헝겊 인형처럼 억지로 부축을 받으며 걷던 자의 발걸음이 아니었다.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턱을 살짝 치켜든 채, 지면을 단단하게 지지하며 내딛는 명백한 주인의 발걸음.탁 탁
휘이이잉살을 에는 북부의 눈보라가 첨탑의 발코니를 미친 듯이 할퀴고 지나갔다.하지만 카일락 에이든하르트의 고막을 찢는 것은 거센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품에 안긴 창백한 인형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너무나도 고요하고 텅 빈 관람의 선고였다.전하의 군대가 남부를 짓밟고 사람들의 비명이 세상을 채운다 해도, 저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저 바깥세상이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얌전히 지켜보겠습니다.그 끔찍한 무반응 앞에서, 카일락의 거대한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기둥이 소리 없이 바스러져 내렸다.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폭군이었다. 수만 명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거두었고, 적들의 비명과 피바다 위에서 오만하게 군림했다. 그 압도적인 공포와 폭력이 있었기에 아일라의 발목을 꺾고 그녀를 이 대공성의 깊은 밀실에 가둘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 절대적인 권력의 칼날이 허공을 가르다 못해 자신을 향해 역류하고 있었다.인질이 인질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을 때. 협박당하는 자가 죽음과 멸망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완벽한 허무의 늪이 되어버렸을 때. 지배자가 휘두를 수 있는 채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세상 전부를 불태운다 한들 저 여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아니, 오히려 텅 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헐떡이는 꼴을 무심하게 내려다볼 것이다.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은 순간, 카일락의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장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원초적인 공포와 무력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툭카일락을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에서 핏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힘이 풀렸다.무소불위의 대공, 북부의 맹수가 깎아지른 듯한 첨탑의 발코니 바닥 위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일라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로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얼
"당장 북부의 전 병력을 몰고 남부로 진군할 것이다. 펠루아 구역의 모든 집과 상단을 불태우고, 네가 길을 걷다 옷깃을 스친 적 있는 자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여 목을 치겠다. 황실이 나서면 로젤 수도마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어."그는 아일라를 안은 팔에 뼈가 부서질 듯 억눌린 힘을 주었다."세상에 네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면. 저 바깥에 오직 죽음과 피비린내만이 진동하게 된다면. 그때는 너도 알게 되겠지. 이 세상에 네가 안심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곳은 오직 내 품안뿐이라는 걸."광기 어린 협박.그것은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폭군이, 자신의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꺼내 든 가장 극단적이고 유치한 발악이었다.카일락은 절박하게 아일라의 얼굴을 살폈다.이토록 끔찍한 학살을 예고했다. 남부가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수백만 명의 목숨이 도륙 날 것이라 선언했다. 네가 아끼던 세상의 완전한 멸망을 선고했는데, 과연 이번에도 입을 다물고 있을 텐가.당장 나를 멈춰 세워라. 두려움에 떨며 내 멱살을 잡고 울부짖어라. 제발 이 미친 짓을 멈춰달라고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애원해라.카일락의 속내가 짐승처럼 쩍 벌어져 그녀의 살아있는 반응을 탐욕스럽게 기다렸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그녀의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배자임을, 이 공포를 통해 기어코 증명받고 싶었다.휘이이잉살을 에는 눈보라가 두 사람의 몸을 매섭게 훑고 지나갔다.아일라는 낭떠러지 아래의 까마득한 허공과, 카일락이 불태우겠다고 선언한 남부의 지평선을 텅 빈 눈으로 응시했다.그녀의 캄캄한 내면 깊은 곳에서, 단 하나의 조용한 불씨가 이 소란스러운 광기를 서늘하게 관람하고 있었다.'불쌍하고 초라하구나.'아일라의 의식 속에서 건조한 조소가 일었다.남부를 불태우겠다니. 세상의 모든 미련을
숨이 막힐 듯한 밀실 안에서, 짐승은 마침내 자신이 갇힌 덫의 정체를 깨달았다.카일락 에이든하르트는 충혈된 눈으로 응접실의 허공을 응시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암막 커튼 너머로 며칠째 낮과 밤이 바뀌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야에 맺히는 것은 오직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창백한 인형뿐이었다.아일라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가 주는 물만 마셨고, 그가 허락하는 숨만 쉬었다.그 완벽한 무위의 늪에 발을 들인 대가로, 북부의 지배자는 자신의 모든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단 일 초의 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중증의 편집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국경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반란의 불씨가 타오른다는 다급한 전령의 외침조차 이 굳게 닫힌 철문을 열게 하지 못했다.자신이 지배자인가, 아니면 저 텅 빈 껍데기를 살려두기 위해 영원히 복무해야 하는 노예인가.극도의 수면 부족과 신경 쇠약으로 이성이 너덜너덜해진 카일락의 뇌리에, 기괴하고 파괴적인 광기가 불길처럼 치솟기 시작했다.내가 왜 이 방에 갇혀 짐승처럼 헐떡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나는 대륙의 절반을 공포로 짓밟은 무소불위의 군주다. 저 여자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도, 남부의 그 보잘것없는 영지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모두 나의 권력이다. 그런데 왜 내가 저 텅 빈 눈동자 앞에서 벌벌 떨며 애정을 구걸하고 있단 말인가.그의 부서진 논리는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끔찍한 비약을 만들어냈다.그래. 저 여자가 저렇게 완벽하게 비워진 것은, 아직 미련의 뿌리가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남부 펠루아 구역의 척박한 땅, 로젤 수도의 위선적인 황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시선을 주었던 저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녀의 영혼이 내게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고 허공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