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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병원장이 말했다.

“이쪽이 어제 당직을 선 최지현 선생이에요.”

임지훈은 성큼성큼 걸어가 최지현의 명패를 확인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잠깐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최지현은 넋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

“어딜요...?”

“아이고, 최 선생. 일단 빨리 따라와, 대표님이 기다리실라.”

병원장은 최지현을 끌고 당직실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병원 원장실이었다.

강세헌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원장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창백한 안색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저 타고난 하얀 피부로 보였다. 병원 전체를 뒤덮은 소독수 냄새 덕분에 다행히 피비린내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강세헌은 그렇게 차가운 아우라를 뿜어내며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임지훈은 강세헌의 뒤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의 CCTV는 어젯밤 범인들이 일부러 고장 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어제 당직을 선 최지현 선생님입니다. 제가 직접 병원장님과 당직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강세헌은 머리를 들어 최지현을 바라봤다. 최지현은 몸을 흠칫 떨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천주그룹 대표잖아?!’

“어젯밤 저를 도와준 사람이 당신이에요?”

강세헌은 최지현을 훑어보며 물었다. 감히 그를 직시할 용기가 없었던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네... 맞아요.”

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세헌과 아는 사이가 되면 많은 편리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큰 고민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병원에서는 요즘 군병원으로 보낼 인턴을 선출하고 있었다. 인턴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면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경쟁력이 아주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군병원에 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요, 뭐든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물론 결혼도 포함해서요.”

최지현을 마주하니 어젯밤 일이 다시 떠올랐던지, 강세헌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아... 그게...”

갑작스레 찾아온 행운에 최지현은 멍한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생각 정리가 끝나면 다시 연락해요.”

강세헌은 이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임지훈이 그녀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줬다.

“대표님, 제가 주차장까지 모실게요.”

“됐어요.”

강세헌은 차가운 표정으로 병원장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발걸음을 멈췄다.

“최지현 씨라고 했던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장이 웃으며 답했다.

임지훈은 아무도 듣지 못할 타이밍에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은 어제 이미 결혼하셨어요...”

최지현과의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짐짝처럼 떠맡게 된 여자가 떠오르자, 강세헌의 표정은 무섭게 식어갔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임지훈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가 말하는 상대가 겁도 없이 시집온 여자인지, 일을 이렇게 만든 배후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송연아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바로 남편과의 신혼집 말이다.

“사모님, 어젯밤에는 어디로 가셨어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도우미 오은화가 마중했다.

“당직 날이라 병원에 있었어요.”

송연아는 피곤한 기색으로 말했다. 오은화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오은화가 준비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자, 피곤이 풀리는 동시에 어젯밤 일이 다시 떠올라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송연아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몸을 줘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게다가 그녀는 유부녀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남편 강세헌에게 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다.

샤워를 끝낸 송연아는 옷을 입고 다시 나가려고 했다. 오은화가 보더니 후다닥 걸어오며 물었다.

“사모님, 또 어딜 가세요? 아침은 안 드세요?”

송연아는 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

“네, 이제는 출근해야 해서요.”

오은화는 송연아가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바쁜 것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자신이 모시는 사모님이 의사라는 생각에 약간 뿌듯해진 그녀는 주방에서 우유를 들고 왔다.

“따듯한 우유예요. 이거라도 마시고 가세요.”

오은화의 친절에 마음이 따듯했던 송연아는 머리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오은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러고는 빈 컵을 받아 들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병원에 도착한 송연아는 바로 출근하는 것이 아닌 입원 병동으로 갔다. 중환자실에 있는 어머니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다.

어머니의 상태는 전과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었다. 심부전이 너무 심해서 이제는 심장이식만이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심장이식은 어마어마한 수술비가 필요했다. 이게 바로 송연아가 강씨 집안으로 시집간 이유이기도 하다. 송태범이 시집을 가지 않으면 수술비를 대지 않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어머니와 맞는 기증자만 나타나면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송연아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요. 제가 꼭 낫게 해드릴게요.”

송연아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연아야, 지금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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