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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전화를 건 사람은 송연아와 친하게 지내는 의대 선배 심재경이었다. 심재경은 그녀보다 두 학번 높았는데, 해외 연수를 다녀온 덕분에 꽤 높은 명성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지금껏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럼요. 무슨 일인데요?”

“아주 중요한 환자가 갑자기 불러서 그러는데, 네가 대신 가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말이야.”

송연아는 시계를 힐끗 봤다. 오늘은 외래 없이 오후 수술만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네, 저 시간 돼요.”

“주소는 로즈가든 A동 306호야. 가서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돼, 그럼 경비가 문을 열어줄 거야.”

“알겠어요.”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지? 치료할 때도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할게요.”

전화를 끊은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로즈가든으로 향했다.

로즈가든은 고급 주택구로 주민의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었다. 입구에 도착하자 역시 경비가 막아서서 방문목적을 물었다. 임지훈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그는 짧은 통화로 확인을 하고 그녀를 들여보냈다.

송연아는 306호 앞으로 와서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주러 나온 임지훈은 심재경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온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

송연아는 심재경의 말을 통해 환자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꼈다.

“심재경 선생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임지훈은 송연아가 들고 있는 약품 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죠?”

“그럼요. 심 선생님한테서 다 들었어요. 비밀 유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임지훈은 심재경이 보낸 사람이면 실력은 보증할 거라고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는 송연아를 데리고 2층에 있는 한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침실은 커튼이 굳게 닫혀 있는 데다가 불을 켜지 않아서 낮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어두컴컴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진찰하죠?”

강세헌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한쪽에 벗어뒀던 외투를 끌어와 얼굴을 가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불 켜.”

임지훈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침실은 순식간에 눈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송연아는 얼굴을 가린 남자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갔다. 남자의 셔츠에는 반쯤 마른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오래 관찰하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특별한 환자는 관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송연아는 약품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위를 꺼냈다. 그리고 상처 부위의 옷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상처 부위에는 대충 처치를 한 것으로 보이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를 잘라내자, 선명한 칼자국 두 개가 드러났다.

송연아는 가위를 내려놓고 상처 소독과 함께 봉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빠르게 마취제를 준비하며 물었다.

“혹시 마취제 알레르기 있으세요?”

비록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지만, 봉합을 하기 위해서는 꼭 마취제가 필요했다.

송연아의 차분한 목소리는 어젯밤과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강세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짧고 차갑게 답했다.

“아니요.”

송연아는 이미 만들어 놓은 마취제를 봉합 부위에 놓았다. 약 2분 후,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녀는 빠르게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처 처지를 끝낸 송연아는 피범벅이 된 손을 들며 말했다.

“잠시 화장실을 쓸 수 있을까요?”

“화장실은 아래층에 있어요.”

임지훈이 답했다. 그리고 송연아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방문을 닫았다.

“대표님, 조사 끝났습니다. 범인은 역시 장진희 씨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천주그룹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적발되자 급한 마음에 대표님의 목숨을 노린 것 같습니다.”

강세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엉망진창이라고 할 수도 있는 옷차림은 그를 병약하게 만들기는커녕 예리한 기운만 더해줬다.

강세헌은 심연과 같은 눈으로 임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그 여자랑 연관 되어 있는 건가?”

임지훈은 잠깐 멈칫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장진희 씨가 송태범 씨와 만난 적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건 저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는 한데, 송태범 씨는 도대체 왜 강세욱 씨가 아닌 대표님을 선택한 걸까요? 혹시 이것 또한 장진희 씨의 계략은 아닐까요?”

“이렇게 많은 선물을 한꺼번에 보내줬으니 나도 답례를 해야겠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듣기 싫으니까.”

강세헌은 자신이 잠깐 해외로 출장 간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느긋하게 말했다.

“강세욱이 중앙로에서 ‘트랜스’라는 클럽을 운영한다고 했던가?”

임지훈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답했다.

“네, 천주그룹에서 설 자리를 잃고 클럽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클럽이 사라진다면 꽤 난감한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그래, 이만 가봐.”

강세헌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지훈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송연아는 마침 올라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심재경이 이미 당부했을 것으로 여기고 그저 짧게 말했다.

“만약 오늘 일을 외부에 발설한다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강세헌이 다쳤다는 사실이 장진희, 강세욱 모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게 뻔했다.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약품 상자만 찾아들고 바로 떠날게요.”

송연아는 머리를 숙인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안의 남자는 문을 등진 채 앉아 있었다. 피 묻은 셔츠를 벗어 던지자 넓고 단단한 등이 드러났다. 군살 하나 없는 남자의 등에서 근육들이 강렬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가만히 서 있을 거예요?”

남자는 등진 상태에서도 송연아의 시선을 느낀 듯 비웃음 섞인 말투로 말했다. 자신이 잠깐 넋이 나갔다는 것을 알아차린 송연아는 부랴부랴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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