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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해각
“취해서 헛소리하는 것 아닌가?”

진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노총각인 주제에, 대체 어디서 색시를 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호부상서댁 공자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흠칫 숨을 들이켰다.

“참, 그러고 보니 아까 현왕부 앞을 지나오는데 문 앞에 붉은 등롱이 걸려 있고, 혼례에 쓰는 오색 비단도 장식되어 있더군요.”

그 말을 들은 좌중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 있던 이들 중 태반이 우르르 일어나 현왕부로 구경하러 달려갔다.

“왕비마마, 아무래도 전하께서는 오늘 밤 돌아오지 않으실 듯합니다!”

곁에 서 있던 조 어멈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유시연의 야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온 도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현왕 전하는 방탕하기로 이름난 데다, 사람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여길 만큼 인정사정없는 인물이었다. 하필 그런 사내를 낭군으로 맞은 왕비마마가 저토록 여리고 고우니, 앞으로의 날들이 순탄할 리 없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유시연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머리를 덮고 있던 붉은 면사를 벗어 내렸다.

손에 든 면사에는 다정히 목을 맞댄 원앙 한 쌍이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서글픔이 밀려왔다.

본디 이 면사는 신랑이 직접 걷어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 그가 이 신방에 발을 들일 리 만무했다.

유시연은 고개를 들어 조 어멈과 몸종 소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태후가 그녀에게 내려 준 이들이었다.

혼례식 날, 태후는 직접 현왕부를 찾았다가 정작 신랑인 봉현욱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노했다. 이후 유시연을 몇 마디 위로한 뒤, 패물과 함께 하인 여러 명을 상으로 내려 주었다.

그러나 유시연은 오랫동안 태후를 모셔 온 조 어멈과 성정이 순박해 보이는 소진만 곁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정중히 사양했다.

“어멈, 번거로우시겠지만 뜨거운 물을 좀 준비해 주세요. 몸을 씻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리저리 몸을 숨기며 지내느라 제대로 몸을 씻은 지도 오래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싶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의 유시연에게는 몸 하나 편히 누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과분한 사치였다.

먹물처럼 짙은 긴 머리카락이 물 위로 느슨하게 풀어져, 해초처럼 하늘거리며 떠다녔다. 유시연의 머리카락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곱기로 유명했다. 윤기가 흐르고 숱도 풍성했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머릿결 좋은 아이는 팔자도 좋다더구나. 우리 시연이는 분명 세상에서 제일 아껴 주는 낭군에게 시집갈 거야. 대체 어느 집 도련님이 그런 복을 타고나서 내 귀한 딸을 데려갈지 모르겠구나.”

시집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의 눈에는 늘 아쉬운 기색이 어렸다. 그럴 때면 유시연은 어머니 품으로 파고들어 어리광을 부리듯 말하곤 했다.

“그럼 저는 시집 안 갈래요. 평생 아버지랑 어머니 곁에 있을래요!”

어머니는 그녀의 어리광에 유난히 약했다.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다정하게 타이르곤 했다.

“무슨 소리니. 시집 안 가는 처자가 어디 있다더냐. 우리 시연이는 이렇게 예쁘니, 분명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내를 만나게 될 거란다.”

유시연은 그때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눈을 감을 때마다 그날의 참혹한 광경이 선명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쓰러져 있던 어머니.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이어진 핏빛 상처. 그리고 그 곁에는 그녀가 손수 지어 드린 짙푸른 도포를 입은 목 없는 시신이 누워 있었다……

욕조 가장자리를 짚고 있던 유시연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겨우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기라도 한 듯, 가슴을 찢어 놓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순간, 유시연은 그대로 몸을 물속 깊이 잠갔다.

아버지, 어머니, 큰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 셋째 오라버니……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었다……

봉현욱은 피비린내를 맡고서야 안으로 들어섰다. 구슬발을 걷어 올리자, 물속에 몸을 잠근 유시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수면 위로 어지럽게 흩어져 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봉현욱은 다급히 욕조 앞으로 달려갔다.

첨벙!

물소리와 함께 유시연의 몸이 순식간에 물 밖으로 끌어 올려졌다. 눈앞에 낯선 사내의 옷자락이 들어오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짝!

청명한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 속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순간, 유시연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 왔다.

여인의 손힘이 그리 세지는 않았기에, 맞은 뺨에는 얼얼한 통증만이 남았다. 봉현욱은 혀끝으로 볼 안쪽을 지그시 밀어 올리며 치솟는 분노를 억눌렀다. 곧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유시연에게 향했다.

유시연은 본능적으로 두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잘못을 저지른 어린 메추라기처럼, 애처롭게 목을 움츠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물에서 막 나온 그녀의 자태는 눈부시도록 고왔다. 투명한 물방울이 희고 매끄러운 피부 위로 흘러내리고, 온기에 물든 작은 얼굴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생기와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흔들 만큼 눈부셨다.

봉현욱은 본래 크게 화를 낼 작정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매혹적인 자태를 마주한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치밀어 오르던 분노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감히 본왕을 쳐?”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유시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전하! 죄송합니다. 전하이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타고나길 여리고 부드러워, 애써 매혹하려 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봉현욱의 시선이 거리낌 없이 아래로 흘렀다. 여인은 몸이 가냘팠지만 굴곡만큼은 숨이 막힐 만큼 선명했다. 풍만한 가슴과 아찔하게 휘어진 허리와 엉덩이의 선, 그리고 언젠가 그의 허리를 단단히 휘감았던 늘씬한 다리까지……

봉현욱은 본래 색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물이 넘도록 곁에 여인 하나 두지 않았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와 몸을 섞은 뒤로는, 눈부시게 매끈한 그 자태가 이따금 꿈속에까지 나타나곤 했다.

정말이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았다.

두 팔로 가슴을 힘껏 감싸고 있었지만, 가릴 수 없는 자태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봉현욱의 시선이 그 위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윽고 그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왜, 보여 주기 싫으냐?”

유시연은 흠칫 놀라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다 문득 그 뜻을 알아차린 듯,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팔을 내렸다.

가려져 있던 자태가 고스란히 드러나자 봉현욱의 몸이 순간 팽팽하게 굳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큰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유시연은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가, 이내 부끄러운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회임까지 한 몸으로, 아직도 본왕을 홀리려 드는 것이냐?”

낮게 가라앉은 봉현욱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고, 숨결마저 평소보다 거칠어져 있었다.

유시연은 애처로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신첩은 정말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라고?”

봉현욱이 문득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토록 애를 써서 본왕의 침상까지 기어올라 놓고, 이제 와 아니라는 말 한마디로 끝낼 셈이더냐?”

유시연은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에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날 밤 부모님과 오라버니들을 따라 함께 목숨을 잃는 편이,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보다 나았을지도 몰랐다.

“어째서 하필 본왕이냐?”

봉현욱이 몸을 기울이며 나직이 물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손을 써 그를 함정에 빠뜨릴 정도라면, 배후에 있는 자가 결코 평범한 인물일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대체 누가 그런 일을 꾸민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단서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유시연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위태로운 처지만 아니었더라면, 봉현욱은 진작 그녀를 붙잡아 심문했을 터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를 잡을 방도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차에 제 발로 그의 앞에 들어온 셈이었다.

감히 본왕을 해쳐 놓고 이제 와 왕비 자리까지 넘보다니. 참으로 헛된 꿈을 꾸는 계집이었다.

차갑고 음산한 그의 눈빛에 유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급해진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전하를 연모합니다!”

말을 내뱉고 나서야 유시연 자신도 얼떨떨해졌다.

세상에, 방금 무슨 말을 한 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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