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미친 폭군 길들이기: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제발…… 살려 주세요!”어둠 속에서 가냘프고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돌아오는 건 조금의 동정도 없이 더욱 거세지는 광기 어린 겁탈뿐이었다.나른하면서도 매혹적인 숨소리가 유시연의 귀에는 끝없는 절망과 공포로만 들렸다!그녀는 몇 번이고 그를 밀쳐 내며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때마다 무자비하게 다시 끌려 들어왔다……어둠은 마치 악마가 쳐 놓은 그물처럼 그녀를 뒤덮으며 잠식해 들어왔고, 유시연은 절망 속에 눈을 질끈 감았다.몇 번이고 이리저리 짓눌리고 뒤틀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시달린 유시연은,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 무렵에야 비로소 사내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칼로 깎고 다듬은 듯 수려한 얼굴에 서슬 퍼렇도록 차가운 눈빛, 눈가에 붉게 박힌 매혹적인 눈물점, 방탕하면서도 조소를 머금은 듯 살짝 올라간 입꼬리까지......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유시연은 온몸이 오싹해 부르르 떨었다.그녀는 눈앞의 사내가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보았다.봉현욱. 황후의 유일한 적자로, 여섯 살에 북명국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고, 다시 창용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배운 것 하나 없는 건달로 변해 있었다. 황제는 미안한 마음에 운효위를 그에게 맡겼지만, 봉현욱은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치와 방탕에 빠졌고, 직권을 남용해 충신들을 해치며 도성 사람 누구나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이제 그녀는 순결을 지키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울 판이었다.차갑게 가라앉은 봉현욱의 핏발 선 눈동자는 실낱같이 여린 여인을 매섭게 흘겨보았다. 그 눈에서는 어느새 살기가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입맞춤 자국으로 뒤덮인 가녀린 목이 갑자기 그의 손아귀에 붙들리자, 숨이 턱 막혀 오는 압박감에 유시연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맑은 살구빛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그 여리디여린 모습은 애처로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봉현욱의 차가운 눈빛에는 조금의 동정도 없었다. 그는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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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봉현욱의 그 무정한 말 한마디에, 유시연이 그나마 붙들고 있던 마지막 희망마저 마침내 툭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렸다.놀란 토끼처럼 사시나무 떨듯 떨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그래,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그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혈육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도성의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었거늘.뱃속의 이 아이 하나로 그가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 기대했다니, 참으로 헛된 망상이었다.유시연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초췌하고 창백한 작은 얼굴에 문득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봉현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잔잔한 우물처럼 고요하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 그러고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몸을 돌려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봉현욱은 여리고 가녀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곁에 서 있던 소칠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현왕께 후사가 생기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구경 한번 재밌게 하는구나. 본왕이 걸상이라도 갖다 줄까, 해바라기씨나 까먹으면서 보게?”소칠의 엉덩이에 발길질이 세게 날아들었다. “멍청한 놈,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뭘 하느냐!”“예!”정신을 차린 소칠이 황급히 뒤쫓아 나갔다. 그러다 몇 걸음 못 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전하, 잡으면 어찌할까요?”봉현욱은 씩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어찌하냐고? 아내로 들일까? 아니면 매질을 해서 방 안에 가둬 놓을까? 매일같이 애지중지하면서 본왕의 대를 잇도록 실컷 괴롭혀 줄까? 참으로 좋은 질문이로구나!”소칠은 그 야릇하면서도 살기 어린 목소리에서 순간 낌새를 알아채고는, 쏜살같이 자리를 떴다.봉현욱은 그 일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훌쩍 말에 올라 거리를 내달렸다.그는 한 무리의 귀족 자제들과 만화루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무릎 꿇은 소칠이 보였다. 그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사람을 못 찾았느냐?”“소인이 무능한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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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여인은 두려움도 없이 풍만한 자태를 그에게 바짝 기대었다. 곱고 요염한 작은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새끼 고양이처럼 여리고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사람 마음을 간질이듯 파고들자, 봉현욱은 저도 모르게 목이 턱 막혀 잠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회임을 했다고?”곁에 있던 서태후는 눈을 반짝이더니, 별안간 몸을 홱 돌려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아이고, 부처님께서 영험을 보이셨구나!”봉현욱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거칠게 유시연의 옷깃을 잡아 올리며 이를 갈았다.“요것 봐라, 수작도 여러 가지로구나!”그녀를 얕본 것이 문제였다. 이제 일이 제법 골치 아프게 되었다.유시연은 그의 음산하고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하며 속으로 치미는 두려움을 억누른 채, 시선을 피했다.“내 증손주 다치겠다, 어서 놓지 못해!”서태후는 시녀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고는, 봉현욱의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때린 뒤 유시연을 자기 곁으로 끌어당겼다. 곱고 어여쁜 얼굴을 똑똑히 보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반색하며 소리쳤다.“유씨 가문 처자로구나!”“아이고, 이거 잘됐다!”손자 나이가 벌써 스물이 넘도록 집안에 여인이라곤 그림자도 얼씬 못했으니, 저 못난 놈이 유씨 가문 처자처럼 단정하고 현숙한 여인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지려던 찰나, 곁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할머님, 쓸데없는 생각은 마십시오. 저 여인 배 속의 씨는 제 자식이 아닙니다!”유시연은 겁먹은 눈으로 봉현욱을 슬쩍 올려다보았다가, 그 매섭고 차가운 눈빛 속에서 살기를 읽고는 화들짝 놀라 서태후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서태후는 봉현욱을 매섭게 흘겨보며 차갑게 소리쳤다.“이 못된 놈, 이 일은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서태후는 유시연의 손을 잡아끌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유시연은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서 있는 봉현욱을 슬쩍 훔쳐보았다가, 그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더는 감히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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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안 돼요!”겁에 질린 유시연이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전하, 이 아이는 전하의 혈육입니다!”봉현욱의 칼끝이 그녀의 아랫배 위에서 멈추더니, 별안간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본왕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인데, 그깟 자식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유시연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숨조차 멎을 것만 같았다.“누가 보냈느냐?”칼끝이 살갗에 스치자 붉은 피 한 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유시연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했다. 그녀는 다급히 그의 날카로운 비수를 움켜잡았다. 새하얀 손 위로 선홍빛 피가 한 방울씩 떨어져, 그 모습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봉현욱의 손이 멈췄다. 그녀가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이 아이를 다치게 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유시연의 목소리는 빗물에 젖은 새끼 고양이처럼 애처로웠다. “이 아이는 제게 남은 마지막 혈육입니다. 부디 이 아이만은 살려 주십시오!”칼을 쥔 유시연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아픈 줄도 모르는 사람처럼 악착같이 칼날을 부여잡은 그녀의 처연한 눈동자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아무도, 아무도 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아이가 저를 따라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서일 뿐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이 아이를 해치지 말아 주십시오.”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처량하고 가련한 모습이었다.“쯧, 보기에는 참으로 애처롭구나.”봉현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며 새끼손가락 끝으로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레 훔쳐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칼을 거칠게 빼내며 말했다.“안됐지만, 본왕이 알 바 아니다!”날카로운 칼날이 그 여리고 고운 손을 스치며 더 깊은 상처를 냈다. 유시연은 밀려오는 통증에 식은땀을 흘렸다.냉혹하기 짝이 없는 봉현욱에게 미인계가 통할 것이었다면 그는 이미 수백 번은 죽었을 것이었다.이런 얕은 수작으로 그를 상대하기에는 유시연의 수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유시연의 마음은 마치 얼음 구덩이에 빠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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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유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 망나니 같은 놈!”경양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벼루를 내던졌다. 봉현욱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피했다.“남의 집 규수를 건드려 놓고,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 하다니!”“제가 건드렸다고 다 책임져야 한다면, 부황께서는 만화루의 제일가는 기녀도 저에게 혼인시켜 주시지 그러십니까!”봉현욱이 웃으며 말했다.유시연은 내리깐 속눈썹을 가늘게 떨었다. 자신을 기녀와 나란히 놓는 것 자체가 이미 모욕이었다. 하지만 오늘 봉현욱에게 시집가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기녀보다도 못한 처지가 될지도 몰랐다.“만화루의 여인들이 어찌 유씨 가문 규수와 견줄 수 있단 말이냐!”경양제는 이 불효막심한 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하오나 소자는 바로 그 만화루에서 저 여인을 품었습니다!”봉현욱이 눈을 들어 웃으며 유시연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그리 애를 써서 본왕의 침상에 기어든 목적이 무엇이냐. 설마 네 가문에 전해진다는 보물 지도를 이어받을 자가 없어, 하필 본왕을 택한 것이냐?”유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경양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소녀는 실로 억울합니다. 벗과 차를 마시던 중 누군가에게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이미 현왕 전하의 침상 위였습니다. 소녀의 가문에는 보물 지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현왕 전하와 함께 있던 당시 소녀의 옷은 모두 찢겨 있었고, 밖으로 나올 때는 전하의 옷을 걸치고 있었으니, 소녀가 무언가를 몸에 지니고 있을 리는 없사옵니다!”봉현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저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이 여인은 제법 눈치가 빨라 그의 말을 빌려 보물 지도와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 버렸다.“그러게나 말입니다. 혹여 이 여인 몸에서 보물이라도 나올까 싶어 원앙이 수놓인 속옷까지 다 찢어 봤지만 아무것도 없더군요. 보물은커녕 골칫덩이 하나만 떠안았으니, 저는 못 합니다. 데려가고 싶은 자가 있으면 데려가라 하십시오!”경양제가 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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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취해서 헛소리하는 것 아닌가?”진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노총각인 주제에, 대체 어디서 색시를 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때 호부상서댁 공자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흠칫 숨을 들이켰다.“참, 그러고 보니 아까 현왕부 앞을 지나오는데 문 앞에 붉은 등롱이 걸려 있고, 혼례에 쓰는 오색 비단도 장식되어 있더군요.”그 말을 들은 좌중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에 있던 이들 중 태반이 우르르 일어나 현왕부로 구경하러 달려갔다.“왕비마마, 아무래도 전하께서는 오늘 밤 돌아오지 않으실 듯합니다!”곁에 서 있던 조 어멈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유시연의 야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온 도성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현왕 전하는 방탕하기로 이름난 데다, 사람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여길 만큼 인정사정없는 인물이었다. 하필 그런 사내를 낭군으로 맞은 왕비마마가 저토록 여리고 고우니, 앞으로의 날들이 순탄할 리 없을 듯했다.“알겠습니다.”유시연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머리를 덮고 있던 붉은 면사를 벗어 내렸다.손에 든 면사에는 다정히 목을 맞댄 원앙 한 쌍이 곱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서글픔이 밀려왔다.본디 이 면사는 신랑이 직접 걷어 올려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주려 하지 않는 그가 이 신방에 발을 들일 리 만무했다.유시연은 고개를 들어 조 어멈과 몸종 소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태후가 그녀에게 내려 준 이들이었다.혼례식 날, 태후는 직접 현왕부를 찾았다가 정작 신랑인 봉현욱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노했다. 이후 유시연을 몇 마디 위로한 뒤, 패물과 함께 하인 여러 명을 상으로 내려 주었다.그러나 유시연은 오랫동안 태후를 모셔 온 조 어멈과 성정이 순박해 보이는 소진만 곁에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정중히 사양했다.“어멈, 번거로우시겠지만 뜨거운 물을 좀 준비해 주세요. 몸을 씻고 싶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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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뭐라고?”봉현욱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내가 그런 헛소리를 믿을 것 같으냐?”유시연 역시 제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를 악문 채 끝내 말을 이어 갔다.“시간이 지나면 진심은 드러나는 법입니다!”억울하게 모함당했다는 말도 믿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을 연모한다는 말도 믿어 주지 않으니 유시연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시간이 지나면 진심을 알게 된다라…….”봉현욱은 입술을 슬쩍 핥았다. 문득 이 앙큼한 것이 제법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차라리 시간을 끌어 보려는 거라고 솔직히 말하는 게 어떠냐.”유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단번에 속내를 꿰뚫린 셈이었다. 사실 그녀에게 그런 속셈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수작 부릴 생각 마라. 네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든, 이곳은 네가 머물 곳이 아니다!”봉현욱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녀를 거칠게 밀쳐 냈다. 다시 물속으로 쓰러진 유시연은 그가 자신을 두고 가 버릴까 봐 다급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붙잡았다.그 순간 겨우 아물어 가던 상처가 다시 터지며 피가 번졌고, 순식간에 그의 옷소매를 붉게 물들였다.봉현욱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녀를 뿌리치지는 않았다.“전하, 부디 이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저를 곁에 두어 주십시오. 저는 이 아이까지 저를 따라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유시연은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정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전하의 곁을 떠나겠습니다.”봉현욱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의 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내 자조 어린 웃음을 흘렸다.“그 아이가 나를 따라 사는 것이, 너를 따라 사는 것보다 나을 것 같으냐?”유시연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애초에 그 아이가 생긴 것부터가 잘못이거늘, 어찌 굳이 그 잘못을 되풀이하려 하느냐?”봉현욱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냉담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지워 버려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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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칠은 제 주군이 비틀거리며 유시연의 침소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됐다. 어쨌든 오늘은 초야를 치르는 밤이 아닌가. 신랑이 발걸음조차 하지 않는다면 왕비마마의 체면이 무엇이 되겠는가. 뜻밖에도 일이 이렇게 풀린 셈이었다.유시연은 모처럼 따뜻한 잠자리에 누워 곤히 잠들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채 잠이 깊어지기도 전에 별안간 문이 걷어차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누구냐?”문 앞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본 유시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소리 없이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뽑아 손안에 단단히 움켜쥐었다.며칠째 쫓기는 신세로 살아온 탓에 그녀는 조그마한 기척에도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누구냐?”키 큰 그림자가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봉현욱의 목소리임을 알아챈 유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촛불을 밝혔다.막 몸을 돌리려던 순간, 갑자기 단단한 가슴팍에 부딪혔다. 곧이어 억센 큰 손이 그녀의 양어깨를 힘껏 붙잡았다.“넌 누구냐? 어찌 본왕의 침소에 있는 것이냐?”유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봉현욱은 수려한 눈썹을 찌푸리며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술을 과하게 마신 탓에 눈앞이 흐릿한지, 좀 더 똑똑히 확인하려는 듯했다.길고 반듯한 손이 유시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에 유시연은 순간 숨을 죽였다가, 다급히 소리쳤다.“전하, 저는 유시연입니다!”“유시연이 누구냐?”봉현욱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그런데 제법 곱상하게 생겼구나!”유시연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그제야 그녀는 봉현욱이 단단히 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전하, 저희는 혼인한 사이입니다!”유시연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혼인?”봉현욱은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끄덕였다.“아, 생각났다. 네가 내 색시였지. 다들 너를 보겠다고 안달이기에 화가 나서, 그놈들을 죄다 술로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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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흐트러진 붉은 비단 사이로 매끈한 쇄골과 둥근 어깨가 드러났다. 그의 가슴팍에 닿은 살결은 구름처럼 부드러웠고, 낯선 감각이 아랫배까지 번져 그의 호흡을 흐트러뜨렸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강렬한 감각이었다.“어딜 도망가려고 그래?”얇은 옷자락 사이로 전해진 뜨거운 체온에 유시연은 순간 숨을 멈췄다. 온몸이 저릿하게 떨려 왔다.“전하, 저는…… 흑…….”그 순간 거칠고 사나운 입맞춤이 느닷없이 그녀를 덮쳤다. 잇새를 비집고 들어온 혀가 숨결마저 빼앗을 듯 얽혀들며 정신없이 그녀의 혀끝을 훔쳤다.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커다란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유시연은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떨리는 손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맞닿은 단단한 가슴과 옷 너머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이 그녀의 정신을 어지럽혔다.봉현욱의 입맞춤은 그의 성정만큼이나 뜨겁고 거침없었다. 숨을 돌릴 틈조차 내주지 않던 그가 유시연의 숨이 가빠질 즈음에야 문득 입술을 떼더니, 천천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유시연은 몽롱한 눈으로 제 가슴에 파묻힌 그의 머리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무언가에 약이 오른 듯 손을 뻗어 그의 긴 머리카락을 힘껏 움켜쥐었다.“음!”기쁜 것인지 괴로운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 소리에 유시연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봉현욱의 입맞춤은 다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고, 이내 그녀의 아랫배 가까이까지 몸을 낮췄다. 뜨거운 손이 붉은 침의 자락을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순간, 유시연의 머릿속이 번쩍하며 정신이 돌아왔다.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봉현욱의 손을 붙잡았다.“전하, 안 됩니다!”봉현욱은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어째서? 초야를 치뤄야지!”“전하, 신첩이 회임을 했습니다!”유시연이 다급히 사실을 알렸다.“뭐라고?”봉현욱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술기운이 감도는 눈동자에 희미한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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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다음 날 이른 아침, 밤새 술에 취해 있던 봉현욱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어렴풋이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문득 품 안에 무언가 말랑한 것이 닿자, 별생각 없이 손끝으로 슬쩍 움켜쥐었다.그 순간,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봉현욱은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안겨 있는 여리고 고운 여인을 발견하고는 순간 멍해졌다.“대담하구나!”날카로운 호통에 품 안의 여인도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유시연은 아직 잠이 덜 깬 듯 몽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누가 감히 본왕의 침상에 기어들라 했느냐!”유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응?누가 누구의 침상에 기어들었다는 건가?“어젯밤엔 분명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더니, 이게 네가 지킨다는 약조냐?”봉현욱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한 번 흘겨본 뒤 이불을 걷어 젖혔다. 그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보고는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유시연을 돌아보며 말했다.“어쩐지, 이 계집이 순순히 있을 리 없다 싶더라니!”유시연은 그가 원망 어린 눈으로 노려보자 억울하다는 듯 눈만 깜빡거렸다.봉현욱은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은 뒤 돌아서서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옷매무새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침상에 반쯤 기대앉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시연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그녀의 봉긋한 가슴으로 향했다. 순간 숨결이 절로 흐트러졌다.그는 이를 악문 채 내뱉었다.“이 요망한 것!”정말이지 사람을 홀리는 재주 하나는 타고난 여인이다.봉현욱은 순식간에 낯빛을 굳히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유시연은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사부께서는 술을 많이 마신 사내들은 종종 전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설마 봉현욱도 그런 부류인 걸까.유시연은 다친 손으로 반대쪽 손목을 조심스레 문질렀다. 시큰거리는 통증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어젯밤, 그가 온갖 말로 그녀를 달래 자신의 뜻대로 하게 만들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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