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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제1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초여름의 이른 아침.

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

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

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있는 별당으로 들어갔다.

강유영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왔다.

사내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더니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익숙한 감송향이 코끝에 닿자, 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자신을 안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까맣고 동그란 눈이 순식간에 번쩍 뜨이더니 당황한 듯, 두 손을 뻗어 사내의 가슴을 밀쳤다. 분홍빛 도톰한 입술이 급하게 움찔거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높게 솟은 날카로운 콧날과, 윤기가 도는 얇은 입술, 요염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빼어난 이목구비와 가지런하게 틀어 올린 머리, 분명히 얼굴은 귀하게 자란 귀공자인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위압감이 풍겼다.

사내의 이름은 조원철.

강유영의 큰 오라버니이자, 변방에서 5년간 나라를 지키다가 반달 전에야 개선가를 울리며 귀경한 대장군이었다.

오늘 집안에서 덕망 높은 스님까지 불러 제를 지내는 이유 역시 그의 공적을 조상님들에게 알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조원철은 그녀를 놓아주고도 바로 물러서지 않고 시선을 내려 지그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전장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라, 풍기는 위압감이 숨이 막혔다.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드는 위엄이 느껴졌다.

반면 강유영의 차림새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까만 머리에는 은비녀 하나만 꽂아 틀어올리고 귀에는 작은 은 귀걸이 한 쌍이 전부였다. 산차화 모양 비녀는 오랜 세월의 흔적 때문에 더욱 초라해 보였다.

까만 머리와 대조되는 하얗고 고운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물기를 머금은 두 눈은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놀란 토끼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강유영은 떨리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등 뒤에는 차가운 담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소녀는 두 손으로 담벽을 짚고서 그의 품에 반쯤 안긴 상태로 있었다. 마치, 독수리에게 잡힌 토끼처럼 도망칠 수도, 물러설 수도 없었다.

조원철은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체취가 압도하듯 그녀를 감쌌다. 준수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길고 풍성한 속눈썹 아래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까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강유영의 마음은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두 손은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잡고 싶어 안달이 났고, 가슴에서 전해지는 떨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얘지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듯, 조여들었다.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들고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자꾸만 어젯밤을 떠올리게 했다.

조원철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강유영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바짝 긴장한 그녀와는 대조되게, 그는 느긋하게 품에서 백옥 약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달콤한 연고의 향기가 퍼지며 두 사람의 체향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오라버니, 뭘 하시려는 건가요?”

강유영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약 발라야지.”

조원철은 당연하다는 듯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 그럴 필요까지는….”

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 어디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두 손을 저으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얇은 천 사이로 전해지는 그의 체온이 뜨거워,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녀와 조원철은 피가 섞인 남매가 아니었다.

강유영이 여덟 살 나던 해, 국공부는 친딸을 찾았다며 조연화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강유영이 누군지는 알려주지 않고 단지 그녀가 강씨라는 것만 전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강유영은 조유영에서 스스로 강유영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자한 국공부에서 친딸을 데려온 이후에도 그녀를 내쫓지 않고 집안에 두고 키워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정체도 불분명한 고아인 그녀가 이 저택에서 어떤 처지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장남인 조원철이 강직하고 공정한 사람이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강유영은 그 덕분에 많은 고초를 면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감히 뭔가를 바라지는 못하고 그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조원철은 그녀에게 있어 신과도 같은 존재라 감히 바라보기도 죄송스러운 존재였다.

어젯밤, 술을 많이 마신 조원철이 걱정되어 직접 끓인 숙취 해소탕을 들고 그를 찾아갔었다.

그런데 술에 취할 대로 취한 조원철이 그녀를 누구로 착각한 것인지 꿀이 떨어질 것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내 사랑’이라 부르며 몸을 밀착해오기 시작했다.

마치 고독한 배가 파도에 휩쓸리듯, 고요했던 그녀의 마음에 거센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그가 이 정도로 취한 모습은 처음이었고, 자신이 하룻밤 내내 그를 돌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도 잠 못드는 밤이 이어졌다.

그는 마치 뜨거운 불길처럼 온몸으로 그녀를 감쌌다. 평소의 냉담하고 금욕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술에 취한 사람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동이 틀 때까지 그에게 시달리며 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강유영은 날이 밝기 전에 쑤시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처소로 돌아와 겨우 치마만 갈아입고 사당으로 향해야 했다.

‘오라버니가 그토록 애타게 부르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녀가 잠깐 넋을 놓은 사이, 허리는 이미 큰 손에 잡혀 있었다.

조원철은 능숙하게 허리띠를 잡아당겨 풀었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허리춤이 갑자기 헐렁해지더니 치마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이 드러나고, 곳곳에 남은 붉은 흔적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원철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청명하던 눈빛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오라버니….”

강유영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수치심이 밀물처럼 그녀를 순식간에 집어삼키고, 홍조는 빠르게 온몸으로 번져갔다.

밤새 취한 그를 받아주느라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수치심에 발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고 힘껏 깨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차마 볼 수 없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오랜 시간 칼을 잡아 굳은살이 배긴 그의 손길이 조금 거칠었다.

달콤한 연고의 향기가 점점 짙어지며 강유영의 이성을 어지럽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녀는 간신히 벽에 기대어 중심을 잡고 주저앉지 않도록,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머릿속은 자꾸만 지난밤의 광경이 떠올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세자는 아직인 것이냐?”

갑자기 문밖에서 진국공 부인 한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는 조원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소리를 듣자마자 강유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손발이 차갑게 떨리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녀와 조원철은 여전히 가문의 족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남매였다.

한씨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상하군요. 소인이 분명 세자께서 이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았는데… 혹, 별당에 들어가 계신 게 아닐까요?”

한 하인의 목소리도 이어서 들려왔다.

곧이어, 그 하인이 쪽문을 두드렸다.

“세자, 안에 계시옵니까?”

어린 하인의 한마디 한마디가 송곳처럼 강유영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마치 불가마에 올려진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조급해진 그녀는 애원에 찬 눈으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그는 바깥의 소란은 전혀 듣지 못한 듯,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태연히 손에 연고를 다시 묻히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마치 밖에 있는 한씨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세상에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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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화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곱게 자란 처자라면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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