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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한씨가 고개를 돌려 강유영을 바라봤다.

곁눈질로 보니, 조원철도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했다.

강유영은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떡을 다시 집어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었다.

마치 돌을 씹는 것처럼 입안이 쓰고 껄끄러웠다.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뭘 알고 일부러 저러시는 걸까?’

이유야 어찌 됐건 한씨가 이에 대해 굉장히 불쾌해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조원철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한씨는 손을 뻗어 아들의 목에 난 자국을 어루만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곱게 자란 처자라면 사내의 몸에 이런 망측한 자국을 남기지 않았을 테지.”

비록 얼굴 한번 본 적은 없지만, 한씨 입장에서는 예뻐해 줄 수 없는 여자였다. 귀족가에서는 첩실을 들이더라도 출신을 따지는 법이다.

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푹 숙이고 무슨 맛인지 모를 떡만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는 그저 너무 아픈데 소리는 낼 수 없어서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을 뿐인데, 그게 그리도 점잖지 못한 행동이었던 걸까?

조원철은 말없이 한씨의 손길을 피하고는 잔에 우유차를 따르고 강유영과 한씨의 앞에 놓아주었다.

강유영은 앞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차를 바라보았다. 평소 단것을 좋아하는 그녀이지만, 지금 상황에 저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저 빨리 먹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한씨는 아들이 말이 없자, 재차 물었다.

“그 아이는 어느 집안 딸이니?”

“유영이와 처지가 같습니다.”

조원철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강유영은 심장이 쪼그라들어 하마터면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사람입니다.”

조원철은 한마디 덧붙이고는 강유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강유영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지?

어머니가 뭔가를 알아챌까 걱정도 안 되시는 걸까?

“유영이가 왜 의지할 곳이 없어? 유영이에겐 우리가 있잖니.”

한씨가 다급히 말했다.

“그건 그렇고, 대체 그 아이를 언제까지 밖에 둘 생각이니?”

한씨는 오히려 아들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고아라면 오히려 다루기 쉬웠다.

“어머니께서 돌봐주실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조원철이 물었다.

“내가 보기엔 일단 그 처자를 나한테 맡기고 밖에 있을 곳을 마련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너희는 잠시 안 만나는 게 좋겠어. 네가 혼인을 하면 그 후에 가마에 실어 조용히 첩으로 들이면 되지 않겠니? 지금은 혼처를 알아볼 중요한 때인데 외실(外室:양반댁 사내가 밖에 두고 만나는 여인)을 두고 있다는 게 밝혀져서 좋을 게 없어.”

한씨는 며느리를 못 들일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귀경한지 고작 반달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혼처를 알아보는 중매자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었다.

단지 아들의 명성이 더럽혀질까 걱정할 뿐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조원철은 무덤덤한 얼굴로 강유영에게 물었다.

강유영은 가슴이 조여들어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당연히 한씨에게 그 처자가 사실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첩실이 되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외실도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그저 사고였고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이다.

충분한 은자만 모으면 오씨 어멈을 모시고 진국공부를 떠나 이 집안사람들과 닿지 않는 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너는, 어린애가 뭘 안다고 그런 걸 물어보니?”

한씨는 그저 아들이 처자를 자신에게 맡기는 게 싫어 말을 돌린다고 생각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만 네가 규수들과 맞선을 볼 때 유영이가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겠구나.”

강유영은 묵묵히 시선을 내렸다.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조원철의 혼처에 감히 조언을 해준단 말인가?

“어머니께서 봐두신 처자가 있으신 겁니까?”

조원철이 느긋한 어투로 물었다.

“그럼.”

한씨가 답했다.

“왕 태사네 셋째 따님이 그렇게 참하다던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떡을 물고 있던 강유영의 손이 흠칫 떨리더니 이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왕 태사의 셋째 따님이라면 그녀도 들은 바가 있었다. 태사 부인은 젊었을 적에 경성에 소문난 미인이었으니 그분의 따님이라면 용모도 뛰어날 것이다.

명문 세가의 귀공자와 대갓집 규수. 집안도 어울리고 신분도 걸맞으니,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될 것이다.

‘괜찮겠네.’

조원철은 말없이 강유영을 힐끗 바라보았다.

한씨가 들뜬 어투로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만나볼 의향이 있다면야 당장 내일이라도 만남을 주선할 수 있겠다.”

한씨는 이 혼사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왕 태사는 현임 황제의 스승으로 지금은 추밀원(樞密院: 고대 중요 국정을 총괄하는 기관) 원사직을 맡고 있고 조정에서는 승상과 맞먹는 위치에 있었다.

조원철은 개선하고 돌아온 후, 황제의 치하를 받고 종이품 어전 지휘사직에 봉해졌다. 어린 나이에 무장 중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올랐으니,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셈이다.

그럼에도 한씨는 아들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랐다. 왕 태사의 딸과 혼인한다면 자연스럽게 추밀원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고 더 탄탄대로를 걷게 될 것이다.

강유영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흠칫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젓가락을 쥔 손에 너무 힘을 준 탓에 손바닥에 진한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그녀는 묵묵히 손에 힘을 풀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어머니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조원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유영은 가슴이 갑갑해 더 이상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먹겠네요. 어머니, 오라버니, 천천히 드세요.”

그녀는 살며시 손바닥에 난 자국을 쓰다듬었다.

‘내일이라니. 참 빠르기도 하네.’

예법상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일어나서 처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는 것 같았다.

“부인, 나으리께서 서재에서 급히 찾으십니다. 중요한 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풍씨 어멈이 들어와서 고했다.

“내 다녀와야겠구나.”

한씨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강유영과 조원철에게 당부했다.

“일단 둘이 먹고 있거라.”

문이 닫히자 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말수가 적은 조원철은 맞은편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강유영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자신을 덮친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오라버니, 천천히 드세요. 저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조원철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아직도 많이 아프냐?”

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온몸이 굳었다.

저 질문이 뭘 의미하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등 뒤에서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 이제 괜찮습니다.”

“이걸 가져가거라.”

조원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자, 어제 받았던 백옥병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괜찮습니다. 어제 약을 발라서 많이 나아졌어요.”

그녀는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작게 답했다.

그저 그에게 뭔가를 더 받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어차피 안 될 사람이라면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어디 보자.”

조원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유영은 의자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재빨리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두 발이 허공에 뜨더니 그대로 조원철의 품에 안겨 버렸다.

강유영은 당황한 얼굴로 그의 가슴을 밀치며 애원했다.

“오라버니, 이건… 예법에 어긋납니다.”

하물며 이곳은 진국공 부인의 처소인 본채였다.

잠깐 서재로 간 한씨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만약 이러고 있는 모습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강유영 입장에서는 모든 게 끝장인 셈이었다.

조원철은 바둥거리는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병풍 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손을 쭉 뻗었다.

아까 그가 건넸던 약병이 들려 있었다.

강유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거절할 마음으로 받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까?”

조원철은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강유영은 그의 손에서 약병을 낚아채고는 뒤돌아서 허리띠를 풀었다. 하얗고 긴 목덜미마저 수치심에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조원철은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강유영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채, 대충 연고를 아무렇게나 바르고는 뒤돌아서 약병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왜 아직도 피가 흐르는 거지?”

조원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강유영은 그제야 자신의 손에 은은한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도 왜 간간이 자꾸 피가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에도 그랬고 목욕을 마친 후에도 그랬다.

다행히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 모르겠고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뒤돌아서 옷매무새를 정돈하려는데 조원철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강유영은 흠칫 몸이 굳었다. 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닦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렇게 정직하고 고지식하던 사람이 지금 어머니의 처소에서 이렇게 황당한 짓을 하고 있다. 하얀색 손수건에 은은한 핏자국이 묻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 점점 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강유영은 얼굴이 화끈거려 시선을 돌렸다.

그가 손을 놓아주자 그녀는 뒤돌아서 황급히 허리띠부터 다시 맸다.

조원철은 당황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손수건을 도로 품에 넣었다.

“원철아?”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나갔던 한씨가 돌아왔다.

강유영은 흠칫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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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자비는 온화한 얼굴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조금의 오만함도 없이 그저 평범한 명문가 규수처럼 친근한 모습이었다."강 소저는 과연 듣던 대로 청아하고 뛰어난 미모를 가졌군. 서왕의 눈에 든 것도 무리가 아니야.""마마, 과찬이십니다. 소녀는 그저 보잘것없는 여식일 뿐, 그런 과분한 칭찬은 당치 않사옵니다."강유영은 시선을 내리깔고 황송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 태자비를 뵙게 되어 어쩔 줄 모르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린 처자처럼 행동했다.그녀 같은 일개 양녀가 지체 높은 태자비를 마주했을 땐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여야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태자비는 그녀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불쑥 찾아와 꼭 집어 그녀에게 과분한 칭찬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었다.태자비는 겉보기와 다르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분명했다.게다가 방금 서왕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설마 서왕이 태자비를 앞세워 그녀를 측비로 들이려는 속셈일까?아니 그럴 리 없었다.태자와 서왕은 일찍이 사활을 걸고 암투를 벌이는 앙숙이었다. 태자가 태자비를 앞세워 서왕의 혼사를 도와줄 리 만무했다."강 소저, 그리 긴장할 것 없네."태자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유영의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긴장한 것은... 아... 아닙니다...."강유영은 빳빳하게 굳은 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입으로는 아니라 하면서도 온몸으로 긴장감을 전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국공이 답답한 듯 참견했다."유영아, 태자비 마마께서는 늘 아랫사람을 자애롭게 대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겁먹지 말고 마마의 말씀에 차분히 대답하거라."그는 최근 한씨에게서 강유영이 꽤나 영악하게 변해서 자신을 옭아매려 한다는 불평을 몇 번 들은 적 있었다.하지만 태자비 앞에서 이토록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겁 많고 주눅 들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영악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무능하고 겁쟁이였다."예, 아버지."강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입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847화

    조원철은 다정한 어투로 그녀에게 당부했다."알겠습니다."강유영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누가 기다린다고.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차라리 돌아와서 그녀의 처소에 걸음하지 않기를 바랐다.물론 이런 말은 속으로만 삭일 뿐,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조원철이 떠난 후, 강유영은 요월원 정원에 앉아 오후 시간을 보냈다.그녀는 반나절 내내 손목의 벽옥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퉁퉁 부은 진 부인의 눈과 그녀가 한 말들을 곱씹었다."아씨, 진지 드십시오."단비가 찬합을 들고 오며 그녀를 불렀다."그래."강유영은 짧게 대답하고는 방으로 향했다.그때 누군가 와서 처소의 대문을 두드렸다."누구십니까."서유가 강유영의 눈치를 살피며 바깥을 향해 물었다."국공 어르신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유영은 걸음을 멈추고 서유에게 문을 열라 눈짓했다."무슨 일이지?"서유가 문을 열며 물었다."국공 나으리께서 대청에 계십니다. 유영 아씨를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시녀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국공 나으리께서?"서유는 당황하며 강유영을 돌아보았다."아버지께서 갑자기 날 왜 찾으신다더냐. 대청에 다른 분도 계시느냐."강유영 역시 의아해하며 물었다.진국공의 눈에 그녀는 투명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청으로 부르다니, 필시 어떤 손님을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설마 서왕이 또?'"소인은 잘 모릅니다."시녀가 고개를 저었다."가보아야겠다."강유영이 말했다."너희 먼저 밥을 먹거라.""소인도 같이 가겠습니다."서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녀를 뒤따랐다."아버지."강유영은 대청에 들어서며 진국공에게 인사를 올렸다.상석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난초가 수놓인 옥색 비단치마에 꽃무늬가 은은한 흰색 덧옷을 걸친 차림이었다. 풍성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는 순금 비녀가 꽂혀 있었고, 온화한 이목구비에서 우아한 기품이 흘렀다.단번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동궁의 태자비였다.예전 궁중 연회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화

    “유영아? 얘네가 다 어디로 갔지?”한씨가 병풍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 오지 마세요. 제가 부주의로 우유차를 옷에 쏟아서 닦고 있었습니다.”다급한 마음에 강유영은 아무 핑계나 둘러댔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한씨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네 오라비는?”강유영은 고개를 돌리고 애원에 찬 눈길로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조급한 나머지 맑은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조원철은 그날 밤 그만하자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겨 단단히 품에 안았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화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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