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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서준은 한씨가 나오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가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강유영 때문이었다.

진국공부에서 그저 자신의 말에 대답할 사람만 한 명 나와 있으면 그만이었다.

어렵사리 조원철을 밖으로 빼돌렸으니, 지금이야말로 강유영과의 혼사를 정할 절호의 기회였다.

조원철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쯤이면 자신과 강유영의 혼사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원철이 길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진국공부를 찾았다.

조원철이 돌아와 자신과 강유영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서준은 그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났다.

진국공과 조씨 노부인은 그가 강유영을 찾자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당혹감과 의문이 가득했다.

서왕이 대체 강유영을 왜 찾는단 말인가?

병풍 뒤에 있던 한씨와 조연화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한씨는 조연화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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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철은 손을 뻗어 단숨에 강유영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더니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꽉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옷고름을 풀어내렸다."뭐 하시는 겁니까? 이러지 마세요...."강유영은 남아있던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나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의 손목을 부여잡고 허리를 비틀며 격렬히 반항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고 그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왜 갑자기 돌변한 걸까?"옷을 갈아입혀 주려고 그런다."그는 덤덤한 말투로 답하더니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줄 알았느냐?"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져 있던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그... 그게 무슨...."그녀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분명 일부러 이러시는 거야.'괜히 겁을 주어 놀라 우는 모습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옷을 갈아입힐 생각이면 말로 하면 될 것을, 어찌 아무 말 없이 다짜고짜 옷고름부터 푼단 말인가. "뭐가 문제지?"조원철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깊은 눈동자에는 옅은 웃음기가 숨어 있었다."옷을 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갈아입겠습니다."강유영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한쪽으로 물러나 앉고는 샐쭉해진 얼굴로 등을 돌렸다.조원철은 옷을 가져다 곁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갈아입거라."그녀는 그대로 그에게 등을 돌린 채 겉옷을 벗었다. 상아색 속적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녀는 그가 왜 갑자기 옷을 갈아입으라 하는지 의문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외간 사내 앞에서 겉옷을 벗는 것이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그렇게 강유영은 자연스럽게 그가 준비해 준 옷을 펼쳤다.둥근 깃에 소매가 좁고 허리를 묶는 형태의 옷이었다. 연분홍과 연푸른색이 어우러져 제법 발랄해 보였다. 귀족 가문의 여식들이 말타기나 마구를 할 때 입는 복장이었다.호주로 가는 길에 유흥이라도 즐길 생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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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준은 성문 앞에 다다라서야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러고는 말에서 내려 사람들 뒤에 줄을 서서 밖으로 향했다."호주로 간다."서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산에는 가보시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만에 하나 유영 아씨가 정말 도관에 계시면 어쩌려고요?"남풍이 울상을 지으며 다가가 물었다.황자들 사이의 암투는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그의 주군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탓에, 이미 뭇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어찌 경성의 일들을 모두 팽개치고 호주로 가신단 말인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조원철이 그 아이를 도관에 홀로 내버려 둘 것 같으냐?"서준은 고개를 돌려 남풍을 흘겨보며 되물었다.그는 강유영이 이미 조원철을 따라갔으리라 확신했다."하지만 이대로 가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호주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한데, 적어도 갈아입을 옷과 식량은 챙기셔야지요."남풍은 대놓고 만류하지는 못하고 빙빙 에둘러 말했다."은자를 챙기지 않았느냐?"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챙기긴 했습니다만...."남풍은 여전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은자가 있으면 그만이지." 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하지만, 경성의 일들도 마저 안배를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으면 남은 자들은 경성에서 변고가 생겼을 때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남풍은 조심스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그런 일이 생기거든 내게 서신을 보내라 전해라. 지체할 시간 없다."서준은 여전히 호주로 갈 뜻을 굽히지 않았다.남풍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예."그는 서왕의 속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하를 먼저 얻고 나면 원하는 여인은 얼마든지 품을 수 있을 텐데, 왜 저리 서두르는 걸까?"경성으로 서신을 보내, 사람을 더 데려오라 이르거라."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돌연 분부했다.조원철은 까다로운 상대이지만 수싸움은 서준도 자신이 있었다.수하들을 더 데려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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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국공은 서왕이 독단적으로 청혼하러 온 것일 뿐, 황제는 이 일을 전혀 모르고 계실 거라 짐작했다.서왕은 현재 황제가 가장 아끼는 황자이니, 그가 강유영을 정실로 맞이하는 것을 허락하실 리 없었다.강유영은 서왕의 앞날에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황제의 슬하에는 황자가 적지 않았고, 장차 황위에 오르는 길에는 반드시 든든한 조력이 필요했다.그러니 서왕비의 친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만약 자신의 친딸인 조연화를 정비로 맞이한다면, 진국공부에서는 자연히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다.하지만 강유영은 일개 양녀에 불과했다. 그때 가서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내가 적절하다면 적절한 것이지. 진국공은 내 뜻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건가?"서준은 고개를 돌려 진국공을 응시하며 물었다.여전히 나른하고 느긋한 말투였으나, 눈빛만큼은 서늘하고 음침한 살기가 번뜩였다.만약 진국공이 거절의 뜻을 내비친다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그의 목을 칠 기세였다.진국공은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황급히 정색하며 말했다."전하, 오해하셨습니다. 방금 제가 한 말은 이 일은 마땅히 폐하의 윤허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게다가 집안에 일이 있어 현재 유영이는 국공부에 없습니다. 혼사를 논한다 해도 그 아이가 돌아온 뒤에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조정에서는 다들 서준이 변덕이 심하고 한번 수틀리면 흉폭하다고 수군거렸다.역시나 소문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서왕 전하는 참으로 상대하기 벅찬 인물이었다."국공부에 없다니? 어디로 갔는가?"서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식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최근 집안이 평안치 못하여, 그 아이가 자진해서 도사님을 따라 기도를 올리러 도관으로 갔습니다."진국공이 조심스레 설명했다."얼마나 가 있기로 하였는가?"서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즉각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조원철이 길을 떠나자마자 강유영이 도관으로 갔다니.절대 우연은 아닐 것이다."어제 떠났습니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87화

    서준은 한씨가 나오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그가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강유영 때문이었다.진국공부에서 그저 자신의 말에 대답할 사람만 한 명 나와 있으면 그만이었다.어렵사리 조원철을 밖으로 빼돌렸으니, 지금이야말로 강유영과의 혼사를 정할 절호의 기회였다.조원철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다.그리고 돌아왔을 때쯤이면 자신과 강유영의 혼사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을 것이다.그래서 조원철이 길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진국공부를 찾았다.조원철이 돌아와 자신과 강유영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서준은 그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났다.진국공과 조씨 노부인은 그가 강유영을 찾자 은밀히 시선을 교환했다.두 사람의 눈빛에는 당혹감과 의문이 가득했다.서왕이 대체 강유영을 왜 찾는단 말인가?병풍 뒤에 있던 한씨와 조연화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한씨는 조연화를 바라보았다.조연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강유영! 또 강유영이다.이미 산으로 쫓겨난 주제에, 서왕께서는 어찌하여 아직도 그 계집을 입에 담는 걸까?'끈질긴 년!'"유영이는 저희 국공부의 양녀입니다만.... 전하께선 그 아이를 어떻게 아십니까?"결국 조씨 노부인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알기만 하겠습니까?"서준은 쓸데없는 말을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가 오늘 온 것은 그 아이에게 청혼하기 위함입니다. 유영이를 나의 정비로 맞이할 생각입니다."그는 빙빙 에둘러 말하는 것을 귀찮아했다.턱을 치켜들고 진국공과 노부인을 가볍게 훑어보는 모습에서 황자 특유의 고귀하고 당당한 기품이 물씬 풍겼다.그 태도에서 결코 거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 내비쳤다.진국공과 조씨 노부인은 재차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두 사람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서준이 청혼하러 온 것은 맞으나, 그 대상이 집안의 적녀인 조연화가 아니라 미천한 신분의 양녀 강유영이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86화

    서왕부에 연줄을 대면 그야말로 황실의 인척이 되는 셈인데, 누군들 마음이 동하지 않을까?게다가 서왕은 현재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황자였다. 태자조차 총애만 따지면 그에게 미치지 못했다."틀림없는 사실입니다."시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알겠다. 가서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 옷만 갈아입고 당장 갈 테니."조씨 노부인은 손을 저으며 분부했다."노부인, 서왕 전하께서 갑자기 행차하신 것은 셋째 아씨께 청혼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화씨 어멈이 노부인의 옷시중을 거들며 물었다."우리 국공부의 유일한 적녀가 그 아이뿐이니, 당연히 연화겠지."조씨 노부인의 생각도 화씨 어멈과 같았다."그럼... 부인의 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닙니까?"화씨 어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어이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만약 조연화가 서왕비가 된다면, 이 진국공부 안에서 아무도 감히 한씨에게 무례하게 굴지 못할 것이다.그렇게 된다면 노부인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그 계집이 딸 하나는 참으로 잘 두었구나." 조씨 노부인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허나, 국공부에 나쁜 일은 아니지. 정 안 되면 다시 산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노부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진국공부의 앞날을 위한 생각뿐이었다. 황실과 사돈을 맺게 된다면 한씨에게 한발 양보하는 것쯤은 감수할 만했다."노부인께서 어디를 가시든, 저는 끝까지 모시겠습니다."화씨 어멈은 황급히 충성을 맹세했다.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정말 산으로 돌아가게 되면 노부인과 권력 다툼을 할 사람도 없고, 강유영이 산까지 쫓아와 고자질할 일도 없을 것이다.그리되면 자신이 뒤에서 벌인 짓들도 영영 노부인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묻힐 수 있었다."자네 마음이야 잘 알지." 조씨 노부인은 화씨 어멈의 손을 다독였다. "가자, 대청으로 가보자꾸나."대청.진국공은 이미 서준을 안으로 모시고 차를 올리고 있었다.서준은 긴 다리를 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오만방자한 태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385화

    대부분의 경우, 조원철은 자제력이 꽤 강했다.비록 그녀를 안거나 입을 맞추더라도 그 이상 선을 넘지는 않았다.그러니 그녀가 조금만 얌전히 굴며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내게 감사하지 않느냐?"조원철의 시선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머물렀다. 짙게 가라앉은 눈빛과 말투에는 어딘가 뼈가 있었다.강유영은 자연히 그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감사합니다...."그녀는 새까만 속눈썹을 내리깔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고마움을 어찌 표할 것이냐?"조원철은 조금 더 다가가며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응시했다.강유영은 겁먹은 듯 물기 어린 눈동자로 그를 살피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두 손을 꽉 쥔 채 다가가, 그의 입술 끝에 살짝 입을 맞췄다.오씨 어멈을 만나려면 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그녀 특유의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입술이 그의 입가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마치 새끼 고양이의 말랑한 발바닥이 스치고 지나간 듯 애간장을 태웠다.조원철의 눈꼬리가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단단히 감싸 쥐고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머금었다.처음에는 그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고 끝낼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녀의 달콤하고 말랑한 입술에 닿자마자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입술을 깊이 탐하며 뜨겁게 얽혀들었다.입맞춤이 짙어질수록 그는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맞닿은 입술과 숨결은 데일 듯이 뜨거웠다.오랜만에 안아보는 탓인지, 그의 입맞춤은 몹시 다급하고 거칠었다.강유영의 머리와 몸은 그의 품에 온전히 갇혀버렸다. 짙은 감송향이 그녀를 덮치며 단단히 옭아맸다.도망치려 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젖힌 채 그의 격렬한 탐닉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불만 섞인 옅은 신음마저 그의 입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3화

    “그 애의 말을 믿으시나요?”강유영은 고개를 들고 맑은 눈으로 도경진을 응시했다. 뒤에서 조원철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피하며 애써 무시했다.“아닙니다.”도경진은 고개를 저었다.“아씨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들 하지만, 분명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이 처자는 그가 한눈에 반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녀의 흉을 본다 해도, 그는 평생 그녀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도경진은 이미 그녀와 혼인할 준비를 마쳤고, 이제 그녀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강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52화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조원철이 옆에 붙어 있어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었다.잠시 주저하는 사이, 허리에서 통증이 전해졌다. 조원철이 그녀의 허리를 깨물어버린 것이었다. 그녀가 아파해도, 그의 송곳니는 여전히 경고의 의미를 담은 듯, 그녀의 허리춤에 머물러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심장을 움켜쥔 듯, 숨이 턱 막혀왔다. 아직 아픔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얼굴에 순식간에 붉은빛이 번지며, 귀까지 화끈거렸다.도경진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불안한 기색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강유영은 조심스럽게 허리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6화

    강유영은 새 침상 위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혼자 살기에는 침실이 너무 넓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도 으스스해 불안감만 더해졌다.“아씨, 연화 아씨와 소 군주께서 찾으십니다.”서유가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강유영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빨리 찾아왔을 줄이야.그녀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빨리 안 오고 뭘 그리 꾸물거려?”아까부터 조연화는 소은경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겁쟁이 같으니라고. 보자기에 꽁꽁 싸매고도 만지지도 못하니.”소은경은 피식 웃고는 보자기를 든 채 주변을 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44화

    조원철이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자, 금인과 옥패 장식이 아래로 드리워져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참으로 우아하고 고상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강유영은 슬며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이곳의 차는 품질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강유영이 가끔 졸음을 쫓으려 마시던 차였다. 단비에게 차를 내오게 한 것도 그저 예의상 갖춘 겉치레에 불과했다.한씨 일행이 마시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어째서 조원철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그 차를 마시는 것일까.그는 시선을 들어 담담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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