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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8화

Penulis: 눈빛 속의 약속
다행히 등 뒤가 벽이었다.

강유영은 벽에 몸을 기댔다. 온몸에 시린 한기가 스며들었다. 방 안의 화로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얇은 속적삼 한 벌이 전부였다.

"요월원을 모시던 것들은 이미 다 잡혀갔습니다."

어멈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수고스럽게 하지 마시고 곱게 이 약을 드시지요. 제 손을 직접 쓰게 만들면 아씨 꼴만 흉해질 것입니다."

어멈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평소의 강유영이라도 어멈의 억센 완력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하물며 지금처럼 병든 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약 한 사발이 아니라 열 사발을 억지로 들이붓는다 해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강유영은 극심한 고통에 숨을 몰아쉬었다. 도망치려 했으나 다리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바짝 마른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멈이 탕약을 들고 다가왔다.

"정 싫다 하시니, 소인이 직접 수발을 드는 수밖에요."

어멈은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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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40화

    죽음이 두려웠던 어멈은 한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구명줄이라도 만난 듯 다급히 기어가 그녀의 다리를 부여안았다."세자께서 마시라 하시면 마실 것이지."한씨는 다리를 빼내며 고개를 돌려 풍씨 어멈에게 눈짓했다.풍씨 어멈이 다가가 조원철의 손에 들린 탕약을 받아 들었다."국공 부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인께서 소인에게 유영 아씨를 해치라 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서둘러 흔적을 남기지 말라 하셨으면서. 또…."한씨가 매정하게 나오자 어멈은 다급해졌다. 부인이 무슨 지시를 내리고 어떤 약속을 했는지 속사포처럼 모조리 불어버릴 기세였다."무슨 헛소리냐? 국공 부인께서 유영 아씨를 해치려 하셨다면 어찌 오늘까지 기다리셨겠느냐! 어릴 적에 손을 쓸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데!"풍씨 어멈은 어멈의 턱을 틀어쥐고 손에 든 그릇을 입가에 바짝 대어 억지로 약을 들이부었다.이럴 때는 무조건 빨리 들이붓는 것이 상책이었다. 자칫하면 저 어멈이 모든 것을 발설해 버릴 것이다.어멈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두 손으로 그릇을 밀쳐내는 통에 약이 절반 넘게 쏟아졌다.하지만 풍씨 어멈은 재빠르게 움직여 기어이 약 두 모금을 억지로 먹였다.조원철은 싸늘한 눈으로 세 사람을 지켜보았다.강유영 역시 고요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몹시 허약해진 탓에 눈을 치켜뜨는 것조차 버거웠다.약이 넘어가고 숨을 몇 번 쉬기도 전에, 어멈의 몸이 힘없이 무너지며 바닥에 널브러졌다.어멈의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목구멍에서 컥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슴을 부여잡고 몇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품이 몹시도 억울한 듯했다.그 참상을 지켜보는 강유영은 가뜩이나 오들오들 떨리던 몸을 주체하지 못해, 이제는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떨었다.조원철이 제때 오지 않았다면 지금 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그녀였을 것이다."게 아무도 없느냐.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 실성한 어멈을 당장 끌어내라."한씨가 차갑게 명했다.풍씨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39화

    그는 한 걸음씩 강유영을 향해 다가갔다.그걸 지켜보는 어멈의 낯빛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숨통을 옥죄는 것 같았다.어멈은 경악에 차 조원철을 쳐다보았다.조원철은 어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그는 다가가 몸을 굽혀 벽에 기대어 있던 강유영을 안아 올렸다.강유영은 그의 품에 파고들며 바짝 조여 있던 마음을 완전히 놓았다. 옷깃을 꽉 움켜쥔 채 지친 두 눈을 감았다. 몸은 차가웠다 뜨거웠다를 반복하며 쉴 새 없이 떨려왔다.이제야 상황이 명확해졌다.이 어멈은 한씨가 보낸 자였다. 공금을 빼돌린 일로 한씨를 협박했으니, 병든 틈을 타 목숨을 거두려 한 것이다.참으로 악독한 심보였다.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을 목격한 어멈은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둥그렇게 떴다.명색이 남매인 세자와 강유영이 어찌 저리 다정할 수 있단 말인가.어멈은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당장 눈앞에 닥친 처지마저 까맣게 잊었다.조원철은 강유영을 안고 침상으로 돌아가 이불을 덮어주고는 꼼꼼히 여며주었다.그러고 나서야 몸을 돌려 어멈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어멈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세자, 소인은 부인의 명을 받아 유영 아씨를 모시러 온 것입니다. 소인이 속으로 아씨를 얕잡아본 탓에 험한 손버릇이 나갔습니다. 모두 소인의 불찰이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어멈은 횡설수설하며 사정없이 제 뺨을 후려쳤다.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납작 엎드려 비는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경성 내에서 세자가 이치에 밝은 인물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강유영의 뺨을 한 대 쳤으니, 이쪽에서 몇 대 더 치면 무마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조원철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멈 앞에 섰다."어머니가 너를 보냈다고?"그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예, 예."어멈은 뺨 치는 것을 멈추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조원철이 두려운 나머지 스스로에게 독하게 손을 쓴 탓에, 얼굴은 붉게 부어올라 보기 흉한 몰골이었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38화

    다행히 등 뒤가 벽이었다.강유영은 벽에 몸을 기댔다. 온몸에 시린 한기가 스며들었다. 방 안의 화로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얇은 속적삼 한 벌이 전부였다."요월원을 모시던 것들은 이미 다 잡혀갔습니다."어멈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수고스럽게 하지 마시고 곱게 이 약을 드시지요. 제 손을 직접 쓰게 만들면 아씨 꼴만 흉해질 것입니다."어멈의 목소리에는 상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평소의 강유영이라도 어멈의 억센 완력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하물며 지금처럼 병든 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약 한 사발이 아니라 열 사발을 억지로 들이붓는다 해도 막을 방도가 없었다.강유영은 극심한 고통에 숨을 몰아쉬었다. 도망치려 했으나 다리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바짝 마른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어멈이 탕약을 들고 다가왔다."정 싫다 하시니, 소인이 직접 수발을 드는 수밖에요."어멈은 곧장 손을 뻗었다. 벽에 기댄 강유영은 피할 새도 없이 옷깃을 움켜잡혔다.강유영은 이를 악물고 남은 힘을 다해 어멈이 든 약그릇을 내리쳤다.상대가 이토록 다급하게 약을 먹이려 드는 것을 보면 필시 탕약에 뭔가가 들었을 것이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면 저 그릇부터 엎어버려야 했다.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열병에 시달리는 몸에는 쥐어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장대한 체격의 어멈은 그릇을 단단히 쥐고 버텼다. 새카만 탕약은 겉으로 약간 엎질러졌을 뿐이었다."어딜 감히!"어멈은 흉악한 본색을 드러내며 손을 들어 강유영의 뺨을 후려쳤다.억센 손찌검에 강유영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열이 오르던 뺨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고, 얼얼한 통증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마시라니까!"어멈은 억센 손아귀로 강유영의 턱을 우악스럽게 틀어쥐고는 기어이 약을 들이부으려 했다.쾅!문이 부서질 듯한 굉음과 함께 누군가 난폭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어멈이 고개를 돌린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37화

    "좋은 생각이다."한씨는 단박에 생기를 되찾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채비하거라. 경화 공주부로 가야겠다."풍씨 어멈은 대답과 함께 한씨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다만 간밤의 일로 경화 공주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려 있을 것입니다. 부인께서 지금 찾아가 부탁을 청하신다 한들 좋은 낯을 보긴 어려울 터이니, 부디 화를 꾹 참으셔야 합니다.""알고 있다."한씨 역시 제 손으로 옷깃을 매만졌다.경화 공주의 불같은 성정을 그녀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지금 찾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공주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주러 가는 꼴이었다.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강유영이 살아있는 한 하루하루가 목줄을 죌 뿐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강유영은 몽롱한 와중에 온몸이 쑤시고 끊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펄펄 끓는 열기 탓에 숨조차 쉬기 버거웠다.단비와 서유의 부축을 받아 탕약을 한 차례 먹은 뒤, 다시 까무룩 선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정신이 한결 맑아져 있었으나, 뼈마디 하나하나 저릿하게 쑤셔왔다."목말라…."간신히 입을 떼었지만 목소리는 쉬어 갈라진 데다 개미 기어가는 소리만큼 작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반쯤 걷어 올려진 휘장 밖으로 침소 안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서유도 단비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마른기침을 몇 번 내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무언가 이상했다.단비는 그녀가 앓아누운 것을 뻔히 알면서 곁을 비울 아이가 아니었다.무언가 급한 변고가 생긴 게 분명했다.타는 듯한 갈증에 강유영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순식간에 어지럼증이 일며 눈앞이 새카매졌다.그녀는 침상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이불을 걷어내고 신발을 신었다. 화장대와 벽을 번갈아 짚어가며 탁자를 향해 한 걸음씩 위태롭게 발을 내디뎠다.힘겹게 탁자에 닿아 찻주전자를 들어 올렸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고개를 돌려 살피니 화로 안의 숯불마저 언제 꺼졌는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그녀는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어지러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36화

    밖은 벌써 해가 중천에 떴건만, 아씨가 여태 깨어나지 않자 서유는 슬슬 마음이 조급해졌다."내가 들어가 볼게."단비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젯밤 조원철이 아씨를 품에 안고 돌아왔을 때부터 몸 상태가 어떤지 걱정도 되고, 간밤에 대체 어딜 다녀온 것인지 묻고 싶기도 했다.침소 안은 휘장이 굳게 내려진 채 쥐 죽은 듯 고요했다."아씨, 일어나서 탕약 좀 드시고 다시 주무셔요."단비가 나직이 부르며 휘장을 걷어 올리고 침상 안을 살폈다.그러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강유영의 조막만 한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숨소리마저 거친 것이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황급히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불덩이처럼 뜨거웠다.어쩐지 불러도 대답이 없더라니, 몹쓸 열병이 난 것이 분명했다. 조원철이 굳이 몸을 덥히는 탕약을 달이라고 명한 것을 보면, 필시 간밤에 찬바람을 쐬어 풍한이 든 모양이었다.잠시 멍하니 서 있던 단비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서둘러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아씨께선 깨어나셨어?"서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열이 펄펄 끓고 계셔. 단단히 풍한에 걸리신 것 같아. 어서 가서 장 의원님을 모셔 와!"단비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히 손짓했다. 한시가 급했다."풍한이라고? 당장 다녀올게!"그 말에 서유 역시 새파랗게 질려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정월 초이튿날, 본래라면 한씨는 기쁜 마음으로 친정에 가야 할 날이었다.그러나 그녀는 꼼짝도 하기 싫은지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어제 준비한 계획은 완벽했다. 경화 공주의 손을 빌려 강유영을 제거하려 했건만, 서준이 그토록 강유영을 감싸고돌며 일을 산통 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경화 공주 또한 무능했다. 만인 앞에서 폐하께 망신을 당한 것도 모자라 심복 시녀까지 잃지 않았던가.보지 않아도 뻔했다. 경화 공주는 분명 이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돌릴 터였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었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35화

    "다음부터는 오늘 같은 짓을 두 번 다시 벌이지 말거라."조원철은 진지한 얼굴로 경고했다.강유영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자그마한 반발심이 일고 있었다.애초에 그가 먼저 그토록 괴롭히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 같은 일을 벌였겠는가.도리어 자신을 탓하고 있으니, 애당초 모든 것이 조원철의 잘못이었다."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대답이 없자 조원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들여다보았다.강유영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고개를 홱 돌려버린 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또다시 몸을 얼게 둔다면, 오씨 어멈 또한 밖으로 내쫓아 몇 시진이고 얼려버리겠다. 앞으로 네 몸에 상처를 입힌다면, 오씨 어멈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입힐 것이다."조원철의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억양 하나 없는 덤덤한 어조였으나 그 안에는 숨 막히는 압박감이 깃들어 있었다."오씨 어멈이 무슨 상관입니까?"그 말에 화가 치민 강유영이 조원철을 힘껏 밀쳤다.정말이지 야속한 사내였다.그녀가 오씨 어멈을 각별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번번이 이를 빌미로 협박을 일삼다니. 그게 사내가 할 짓인가 싶었다.그러나 힘껏 밀쳐보아도 조원철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품에 더욱 꽉 끌어안을 뿐이었다."오라버니께서 어멈에게 정녕 그리하시지는 않겠지요."강유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어디 한 번 시험해 보거라."조원철의 어조는 서늘했다.강유영은 말문이 막힌 채 홧김에 몸을 돌려 그를 외면해 버렸다.침소 안이 고요해지고, 그녀의 몸에도 점차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오늘 일은 이쯤에서 넘어간 듯싶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의 단단한 품에 기대어 있자니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아, 어느새 꾸벅꾸벅 졸음이 밀려왔다."밤에 탕약은 챙겨 먹었느냐?"정수리 위로 조원철의 물음이 떨어졌다.강유영은 가늘고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져 내린 탓에 대답은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1화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7화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6화

    “기특하기도 하지. 어서 이리 와서 앉으렴.”한씨는 웃으며 강유영을 향해 손짓하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밖에서 강유영에게 잘해주는 것은 인자한 진국공 부인의 명성을 위해서였다.강유영은 약상자를 장 의원에게 건네고는 고분고분 그쪽으로 다가갔다.장 의원은 그녀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유영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았다. 장 의원은 손을 뻗어 한씨의 손목에 대고 진맥을 시작했다.한씨의 옆에 앉은 강유영은 불안하게 병풍 뒤쪽을 힐끔거렸다.조원철은 탁자 앞에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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