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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눈빛 속의 약속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들어오거라.”

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

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

“언제 오셨나요?”

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

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

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심한 듯 물었다.

“손은 좀 괜찮아졌느냐?”

“예, 다 나았습니다.”

강유영은 짤막하게 답했다.

심한 화상도 아니었고 화상 연고를 바로 발랐기에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나았다.

조원철은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강유영은 그 시선에 불안감을 느끼며 조심스레 용건을 물었다.

“손수건 돌려주러 왔다.”

조원철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기다란 손가락 위에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색 손수건이 걸쳐져 있었다. 선이 깔끔하고 유려한 손가락에 손등에는 옅은 청색 핏줄이 선명하게 비쳐 보였다. 참으로 보기 좋은 손이었다. 마치 저 손에 무한한 힘이 담긴 듯, 모든 것을 손에 장악하고 있는 듯했다.

이 손이 그날 자신의 손에 깍지를 끼고 자신을 벽으로 밀치던 것을 생각하면,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날 밤 비밀의 장소에 같이 있었던 손수건을 가로챘다.

하지만 조원철은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강유영은 흠칫하다가 힘껏 잡아당겼다.

마침내 손수건이 그녀의 손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이라도 이걸 어딘가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결국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서 장롱을 열고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장롱을 닫은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조원철을 힐끗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오라버니, 이만 돌아가셔야죠.”

단비가 주방에 밥을 가지러 갔는데 그가 이곳에 계속 버티고 있다가는 이따가 돌아온 단비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약 발라야지.”

그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에는 여전히 백옥병이 들려 있었다.

강유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거절하지 않고 약병을 받아 병풍 뒤로 들어갔다.

거절한다면 스스로 한다고 손을 뻗어올지 모른다.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게다가 약효가 좋아서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터라, 이번에 한번 바른 후에는 더 이상 필요 없을 듯했다.

그녀는 재빨리 약을 바른 후에 병풍 밖으로 나와 약병을 조원철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볼 일이 끝났겠지?

조원철은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 오늘은 이만 쉬고 싶네요.”

강유영은 용기를 내어 축객령을 내렸다.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어 마음이 착잡했다.

낮에는 왕연령과 맞선을 보더니 밤중에 찾아오다니. 설마 몰래 자신을 외실로 두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괜찮은 게냐?”

그가 또 물었다.

“예, 다 나았습니다. 앞으로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강유영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용기를 내어 선을 긋기로 했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다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속으로 그런 느낌을 부정해 버렸다.

조원철에게 다정을 기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유영, 착각하지 마!’

“연화 아씨, 사예 아씨, 저희 아씨는 지금 막 쉬시려고 누우셨어요.”

밖에서 단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유영은 화들짝 놀라 조원철을 바라보았다.

조연화와 조사예가 지금 둘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어찌 해명한단 말인가?

“이쪽으로 오십시오.”

위기의 순간,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조원철의 손을 확 잡아당겨 장롱 쪽으로 데려갔다.

손에 부드럽고 말캉한 감촉이 닿았다. 가녀린 손가락이 안쓰러워 힘을 주기에도 아까웠다.

그녀가 이렇게 먼저 다가와 손을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원철은 흠칫하더니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움직일 수 없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강유영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장롱 안으로 밀쳤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 예법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장롱에 쑤셔 넣기에는 그의 키가 너무 컸다.

허둥대는 사이, 그의 이마가 장롱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조원철은 겁내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삼키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몸을 낮춰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으세요?”

강유영은 당황한 마음에 그의 이마를 문질렀다.

지금의 그녀는 이미 깊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오직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 두려우냐?”

조원철은 장롱 안에서 검고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두렵죠. 전 오라버니와는 처지가 다르니까요.”

강유영은 허둥지둥 장롱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조원철이라면 당연히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진국공의 장남이자 집안의 세자, 삼군 원수인데다 이제는 어전 지휘사의 자리까지 오른 몸이고 온 가문의 영광이었다.

사태가 벌어지면 진국공부는 분명히 그의 명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 일을 덮겠지만, 그 과정에서 제거되는 것은 힘없는 그녀가 될 것이다.

장롱 문이 닫히자, 조원철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이마를 살짝 만져보았다.

한편 강유영이 나가서 문을 열자, 문을 밀치고 들어오려는 조연화와 조사예가 보였다.

“강유영, 이 뻔뻐한 것! 오라버니가 좀 불쌍하게 여겨준다고 고새를 못 참고 부용원에 옮겨달라고 요구하다니! 너 따위가 이런 좋은 곳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진국공부 넷째인 조사예는 서출이었다. 평소 조연화에게 붙어서 아부하며 그녀의 수족 노릇을 했다.

강유영을 보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조사예는 풍만한 몸매에 볼에 젖살이 덜 빠져서 순박한 인상이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강유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막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사예 아씨는 부용원이 무척이나 욕심나나 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국공 부인께 가서 거처를 옮겨달라고 간청하지 그러셨나요?”

언제 돌아온 건지, 서유가 다가와서 조사예를 반박했다.

강유영과 단비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에는 한 번도 대놓고 강유영의 편을 들어준 적이 없는 서유였다.

요즘따라 뭔가 이상했다.

조사예는 흠칫하더니 서유를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년이 정녕 미쳤구나! 내 이것을 그냥….”

예전에 강유영을 비꼴 때도 늘 투명 인간처럼 존재감이 없었던 시녀였다.

오늘은 뭘 잘못 먹었길래 감히 이런 식으로 반발하는 걸까?

“닥치지 못해?”

조연화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화를 끊더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유영을 바라보며 다가와서 냄새까지 맡았다.

맑은 고양이상 눈매에 굉장히 사랑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한씨가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인지 성격은 굉장히 괴팍했다.

조사예는 억울했지만 감히 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서유를 힘껏 노려보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강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 이러는 거지?

“네 몸에서 왜 회춘고의 냄새가 나지?”

조연화는 매서운 눈초리로 강유영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녀는 회춘고의 향기를 너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열두 살 나던 해, 나들이를 나갔다가 부주의로 넘어져 얼굴을 다쳐 흉터가 생긴 적이 있었다. 온 집안이 이에 안달이 났지만 완전히 흉터를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어머니 한씨가 황후께 부탁하여 겨우 회춘고를 하사받아 세 번을 발랐는데 흉터도 사라지고 전보다 더 매끄러운 피부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회춘고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실의 하사품인 회춘고를 강유영이 어떻게 가지고 있었을까?

강유영도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었다.

조원철이 준 연고가 최상급 연고인 줄은 알고 있었다. 통증이 신속히 완화되고 몇 번 안 발랐는데 상처가 거의 다 나을 정도로 효과가 빨랐다. 그런데 그게 그 귀하다는 회춘고일 줄이야!

“이년이 무슨 수로 황실 연고를 구했겠어요?”

조사예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지난달에 쪽문으로 어딜 다녀오는 걸 봤는데 내가 보기엔 저 요망한 얼굴로 어디 귀한 분을 홀려서 얻어낸 거겠죠. 생긴 게 딱 여우처럼 생겼잖아요.”

그녀는 증오에 찬 눈으로 강유영을 바라보았다. 조사예는 예전부터 외모가 자신보다 빼어난 강유영을 질투했다.

“사예 아씨도 첩실의 자식 아닌가요? 호박만한 얼굴이 그리 마음에 안 드셨나 보죠? 그래서 저희 아씨를 질투하시는군요.”

강유영이 뭐라 하기 전에 서유가 비아냥거렸다.

정곡을 찌르는 서유의 말에 조사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서유에게 달려들었다.

“조용히 좀 있어!”

조연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

조사예는 진심으로 짜증이 난 조연화의 눈치를 보고 분노를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내 처소 바로 옆으로 이사 온 거, 굉장히 기분 나빠. 원래는 쫓아버릴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네? 네가 하는 거 봐서 결정해야겠어.”

조연화는 의자로 다가가서 앉더니 교만하게 강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회춘고 말이야. 네가 스스로 내놓을래? 아니면 내가 수색할까?”

마치 회춘고는 당연히 자신의 소유여야 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강유영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제멋대로이고 의심이 많은 조연화이니 없다고 해도 쉽사리 믿지 않을 것이다.

조연화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여봐라, 당장 안을 수색해서 연고 같은 것들은 모조리 꺼내서 가져오거라!”

그녀의 한마디에 수십 명의 시녀와 어멈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몰려들어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

“그만해!”

서유가 다급히 그들을 막아섰다.

단비도 굳은 표정으로 조연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화 아씨, 이러시면 저희가 세자께 알릴 수밖에 없어요. 그 뒷감당을 어찌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조연화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큰 오라버니를 들먹여도 소용없어. 오라버니께서 강유영을 감싸는 건 그저 진국공부의 평판을 위해서야. 친동생은 나라고! 내실도 뒤지거라!”

강유영은 장롱 속에 숨긴 조원철을 떠올리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급하게 달려가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금세 밀려서 문이 열리고 말았다.

단비와 서유도 어멈들에게 제압당했다.

시녀들이 몰려가서 저녁에 금방 정리한 방을 엉망진창으로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강유영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달려가서 장롱 문을 열려는 시녀를 밀쳐내고 두 팔을 벌려 장농 앞을 가로막았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이 이상 무례를 부리신다면 저도 큰 오라버니를 찾아가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습니다. 큰 오라버니 성격은 아씨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그분은 가족의 정보다 공정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강유영은 당황한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겉보기에는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한씨는 지나칠 정도로 조연화를 편애했고 진국공은 집안일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무법천지인 조연화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조원철뿐이었다.

강유영은 그를 내세워 겁을 줘서 이 소란을 그만두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조연화는 강유영의 뒤에 있는 장롱을 노려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마침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계속 뒤지거라! 고작 사흘 정도 사당에 갇히는 것밖에 더하겠어? 누가 두려워할 줄 알고?”

사흘 정도 사당에 갇히는 대가로 회춘고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득이었다.

시녀들이 몰려와 좌우에서 강유영을 붙잡았다.

조연화가 장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강유영은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장롱 안에 숨어 있는 조원철 생각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도 오해를 사기 십상이었다.

하물며 그들은 완전히 결백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장롱 문이 열리는 순간, 강유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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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서로 속내를 감춘 채 기묘한 침묵만을 이어갔다.“그런데 내가 폐하의 의중을 살펴보니, 작년에야 겨우 민간에서 황궁으로 복귀했다는 그 서왕 전하께서 너를 서왕부에 들이고 싶어 하시는 눈치더구나. 유영아, 넌 언제 서왕 전하와 안면을 트게 된 게냐?”한씨는 강유영을 빤히 응시하며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을 마침내 입 밖으로 뱉었다.사실 진국공 역시 한씨에게 이 내막을 알아오라 명한 참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서왕은 조정에서도 본 이가 몇 안 되는 신비의 인물이었다. 조연화조차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덕에 겨우 그의 신분을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그 후 진국공부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한씨는 딸을 위해 특별히 서왕부에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하지만 아무런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강유영이 운 좋게 서왕의 눈에 들 줄이야.한씨는 속으로 강유영 따위가 감히 넘볼 자리가 아니라며 뒤틀렸지만, 한편으로는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강유영의 하얗고 맑은 얼굴에는 그저 막막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녀는 정말로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경화 공주를 제외하고는 황궁의 다른 황족들을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하물며 그 신비주의에 싸인 서왕 전하라니, 정말 가당치도 않았다.“그럼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이냐?”한씨는 그녀가 전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아니자 속으로 더 의구심이 들었다.처소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강유영이 서왕을 만날 기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필히 무슨 내막이 있을 것 같았다.강유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영문을 몰라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되었다, 지나간 일을 캐물어 무엇하겠느냐.”한씨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서왕 전하의 눈에 든 것 자체가 네게는 크나큰 운수다. 과거 그분은 생모와 함께 실종되셨고, 폐하께서 수년간 그 모자를 찾아 헤매셨지. 갑작스레 돌아오신 만큼 서왕 전하는 지금 폐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지옥엽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03화

    강유영은 한씨에게 들킬까 두려워 소매를 꽉 쥔 채 조용히 땀방울을 훔쳤다.그녀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어머니께서 안살림을 도맡아 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제 몸은 제가 잘 건사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녀는 짙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조원철이 부재했던 몇 년 동안, 한씨는 강유영과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그러다 그가 돌아온 뒤로 겉으로나마 인자한 척을 해 왔으나, 정작 실속 있는 배려는 전무했다.이렇듯 손수 이불깃을 다독여 주는 살가운 행동은 난생처음이었다.한씨가 오늘따라 이토록 유별나게 구는 것을 보니, 그녀를 이용해 먹을 속셈이 분명했다.“다른 뜻이 있어서 온 건 아니고, 그저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너는 다도를 어디서 배운 게냐?”한씨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가슴에 품었던 의구심을 슬쩍 던졌다.“그저 적적함을 달래려 셋째 언니가 다도를 연습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혼자 익힌 것뿐입니다.”강유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기색을 감추며 재빨리 핑계를 대었다.오늘 궁에서 가볍게 솜씨를 선보인 일로 한씨를 비롯한 진국공부 전체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다도라는 게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제대로 된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결코 독학으로 깨우칠 수 없는 법이란다.”한씨가 그녀를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그 순간 강유영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심장이 터질 듯 세차게 뛰었다.‘대체 무슨 의도지? 설마 내게 다도를 가르쳐 준 사람이 오라버니라는 걸 눈치챈 건가?’그녀는 덜컥 겁이 난 듯, 속으로 조원철을 원망하며 이불 속에서 발을 슬쩍 움직였다.그러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조원철이 안심시키려는 듯 그녀의 발등을 가만히 다독였다.“그러니 연화가 다도 스승에게서 솜씨를 배울 때, 너도 틈틈이 눈동냥으로 배워 익힌 게로구나?”한씨는 이어서 목적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그 말을 들은 강유영은 오히려 안도의 숨이 나왔다.그제야 강유

  • 밤이 깊어질 즈음에, 숨겨진 마음   제202화

    혼비백산한 강유영은 다급히 버선과 신발을 찾았다.일단 침상 아래로 내려가야 안전했다. 밖에 서서 맞이하면 한씨가 굳이 휘장까지 걷어 내며 안을 들여다보진 않을 터였다.하지만 버선은 이미 더러워졌고, 비단신은 조원철이 저 멀리 치워 두어 손을 뻗어도 도저히 닿지 않았다.그새 한씨의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금 신발을 가지러 움직였다간 꼼짝없이 의심을 살 게 뻔했다.진퇴양난의 순간, 손에 들린 연고가 눈에 들어왔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번뜩 기지가 발휘되었다.“유영아, 많이 고단했느냐? 잠자리에 일찍 들었네.”방 안으로 들어선 한씨는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강유영을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발이 좀 까져서 연고를 바르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실 줄 모르고 결례를 범했네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강유영은 약을 바르던 손을 거두고 신발을 잡아당기며 침상에서 내려오는 시늉을 했다.말투는 공손했으나 은연중에 거리감이 묻어났다.신분이 밝혀지기 전, 아주 어릴 적부터 한씨는 유영을 은근히 배척했다.단 한 번도 살가운 정을 나눈 적이 없었으니, 이제 와 진정한 모녀의 정이 느껴질 리 만무했다.“발을 다쳤다니, 오늘 입궁하느라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예는 되었으니 가만히 있거라.”한씨가 손을 내저으며 다가오려 하자, 강유영은 얼른 몸을 바로 세우며 자리를 권했다.“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이쪽에 앉으시지요.”한씨는 몇 걸음 물러나 의자에 앉으며 강유영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그나저나 손은 왜 그러느냐?”“오늘 다도를 할 때 누군가 제 다구들을 흑자기로 바꿔치기했습니다.”강유영은 눈길을 내리깔며 담담히 대답했다.한씨가 진심으로 걱정해서 묻는 게 아님을 잘 알았다.늘 그래왔듯, 그저 형식적인 질문일 뿐이었다.“감히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진국공부와 척을 지겠다는 심사가 아니고서야! 내 조만간 네 오라비에게 말해서 철저히 조사하라 이르겠다.”한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강유영이 손을 데어서 화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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