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금...무슨 말을..."
엘레노어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었다.손이 떨려 포크를 떨어뜨릴지 접시 위에 내려놓은 채
식탁 밑에 숨겨 애써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래요...폐하. 후궁을...정치적인 이유로 들이곤 하죠.""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닌 걸 알잖아?
황태자비도 다 봤으면서...모르는 척할 필요 없어."
아드리안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는 엘레노어를 비웃듯 키득거렸다.황태자의 위엄보다는 시정잡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어차피 다 아는 사이에 솔직하게 말하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네.""..."
엘레노어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문 채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사람입니까?""흠..."
잠시 뜸을 들이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아드리안은 한참 말이 없었다.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 보면 곤란한 신분의 사람인 걸까?대체 어떤 여자길래 하룻밤 사이에
그의 입에서 애첩으로 삼겠다는 말이 나온 걸까?
엘레노어와 아드리안의 침묵으로 차오른 긴장을 가르고드디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부의 아내. 로제린 대공비." 엘레노어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남편이 있는 여자를 정부로 삼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숨겨진 여자일 뿐이다. 대놓고 애첩으로 삼겠다고
황태자가 공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위가 너무 낮아
적당한 귀족과 결혼을 시켜 신분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숙부의 아내라니.북부를 수호하는 대공이자 제국에서 강한 남자
테오도르 드 발렌시아의 아내라니.
"전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어느덧 엘레노어의 얼굴은 파랗게 질리다 못해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로린 대공비가 맞습니까?어찌 숙부의...다른 황족의 대공비를...!!"
목소리가 높아지자, 아드리안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다 생각이 있소. 큰소리 내지 마시오!""전하! 생각이라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아, 정말 시끄럽게 구는군!"
그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 아시오.애첩을 두는 일에 그대의 허락이 필요한 건 아니니,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고 받아들이시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허흠!!!"
엘레노어의 말이 길어지자, 아드리안은 귀찮다는 듯크게 헛기침하며 사라져갔다.
그대로 남겨진 그녀는 평소 입도 대지 않던
와인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식도를 달구는 낯선 감각에 화가 더 솟구쳤다.
"대체...무슨 생각인 건지. 큰일이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 며칠 뒤, 황궁에서는 예정된 연회가 시작되었다.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아드리안이 때문에 별다른 이유 없이
크고 작은 연회가 자주 열리곤 했는데 그 때문에 황실의 금고가
바닥을 낼 지경이었다.
황제가 몸져누운 지 오래인 지금, 많은 권한이 그에게 위임되었고황후의 자리가 비어 있는 지금 그에 대한 관리는
황태자비인 엘레노어의 몫이었다.
어떻게든 알뜰하게 진행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항상 마지막에아드리안이 통 크게 계획을 수정하는 통에 골머리를 앓는 게 일상이었다.
오늘도 그랬다.두 사람은 상석에 앉아 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싫어하는 아드리안은 좋게 말하면 호탕하고,
나쁘게 말하면 체통도 없이 홀에 내려가 귀족들과 섞여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입구의 문이 열리며 늦은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을 담아내기 천이 부족한 타이트한 머메이드라인의 드레스는반짝이는 비즈로 뒤덮여 육감적인 몸매를 더 과장되어 보이게 했고,
한발짝씩 걸을 때마다 실룩이는 엉덩이는 홀의 귀족들의 시선이
그녀의 뒤태에 머무르게 했다.
길게 굽이치는 분홍빛 머리카락은 드레스와 비슷한 스타일의머리 장식으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분명 이 모든 것들은
값비싼 것들이나 천박해 보이는 점이 특이했다.
홀 안으로 몇 발짝 들어서자, 그녀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지루함을 숨기지 않던 아드리안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로린 대공비 드십니다." 뒤늦게 그녀의 이름이 불리며 입장을 알리는 소리에, 그는 맨발로 뛰어나갈 기세였다.그를 발견한 로린은 엉덩이를 과장되게 흔들며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
"강녕하셨습니까? 전하" 로제린은 가슴에 손을 올려 애써 가려 보였지만 흘러내리는두 개의 살덩어리의 반도 가리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오히려 무게 때문에 가슴 안쪽이
더 깊숙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잘 지냈소? 로린...할 이야기가 많은데."
이제는 행동거지를 조심할 생각조차 않는 아드리안.그 모습을 본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테오도르 대공님은 오늘도 참석하지 않으시는 건가요?""매번 저런 차림으로 참석하시는데...한 마디도 안하시는 걸까요? 참."
귀부인들은 부채로 입을 가리고 그 자리를 피했다.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부인이라면 로제린과 어울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로린과 아드리안은
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귓속말로 밀어를 속삭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엘레노어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두 사람의 모습을 본 귀족들이 그녀의 눈치까지 보기 시작한 것이다.
황태자와 황태자비 사이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돌았으나
대놓고 다른 여인과 함께 귓속말을 하다니.
이건 루머가 현실이 된 것과 다름이 었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자 손에 쥔 부채를 부러뜨릴 듯 세게 쥔
그녀는 우아하게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 찬 바람을 쐬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겠지? 테라스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외부의 웅성거림이 차단되고 그녀만의 세상이 되었다.
그 때문에 홀에서 뒤늦게 방문한 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목덜미를 스치자달아오른 그녀의 분노도 조금 사그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머릿속의 복잡함까지 해결이 되진 않았다.
두 사람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따라가 볼까?
아니야, 그랬다 못 볼 꼴을 보기라도 하면.
그것보다 숙부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생각에 잠긴 탓에 테라스에 누가 들어서는 것도 알지 못한 채한숨만 푹푹 쉬던 그녀의 등 뒤로 누군가 다가섰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꺅!!!"
엘레노어는 체통도 잊은 채 놀라 비명을 질렀다. "이런, 놀라셨군요. 인기척이라도 할 걸 그랬습니다." 그는 지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람,아니 오늘 이 장소에 오지 않아야 했을 북부의 수호자 테오도르 대공이었다.
황제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으로 어제가 그렇듯 황권을 위협하지.못 하게 하려고 북부나 변방으로 보내지는 그런 대공 중 하나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는 데다 다른 황족 중 유독 능력이 뛰어나
아드리안이 어려서부터 열등감을 느꼈던 존재이기도 하다.
"하, 제가 실례를 너무 놀라서 그만.""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보다...
혹시 로린이 어디 있는지 보셨는지요?"
"당신은 밤에는 누구보다 거칠지만 여기...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인 거 알아요?"엘레노어가 테오도르의 귓가에 속삭였다. 손가락으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그는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레온과 인사부터 하세요. 오랜만에 보지 않아요?"그녀는 테오도르의 등을 떠밀었다. 테오도르는 어색하게 레온과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먼저 테오도르를 알아보고 뛰어왔다. 레온은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어색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아픈 곳은 없느냐?"무뚝뚝하고 서툴기 짝이없는 질뭉이었다. 레온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도르는 잠시 말을 입 안에서 고르고 말했다."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들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네가 들은 모든 것들은 네 잘못이 아니고 어른들의 못난 부분 떄문이지. 그러니 그 일로 네가 마음 쓸 이유는 없다."레온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까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고이는 듯 했다. 테오도르의 뒤에서 부자의 대화를 바라보던 엘레노어는 다가와서 레온을 다시 품에 안아주었다.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자 삼키려던 눈물이 다시 터져나왔다. 8살 정도의 아이가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는 건 당연했지만 상황은 아이를 제대로 울지 못하게 만들었나보다. 한참을 흐느낀 레온의 울음이 잦아들자 막내인 엘레나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오빠빠...가서 놀아."레온은 그 작은 손에 잡힌 채 작게 웃으며 눈물을 훔치더니 다시 아이들과 정원 한 쪽으로 사라졌다. 테오도르와 엘레노어는 그제야 티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레온을 달래느라 차가 조금 식어있었다."차를 새로 올리라 할까요? 조금 식었는데.""괜찮습니다. 바로 마실 수 있어서 좋군요."
엘레노어는 허리에 감긴 무게를 느끼며 눈을 떴다. 어느새 해는 하늘 높이 떠있었고 온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감각은 어제의 기억을 떠오르게했다. 그의 흔적이 남은 목덜미는 이불이 스칠 때마다 흠칫할 정도였다. 옆자리에는 테오도르가 그녀를 안고 아직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늦잠을 자도 되는건가?엘레노어는 테오도르를 깨워야 하나 잠시 고민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일어났어요?"그 떄, 자는 줄 알았던 테오도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을 찡긋 뜨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꺠어있었네요. 이렇게 늦게까지 있어도 되나요?"엘레노어가 짐짓 엄격하게 말하자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글쎼...내가 아무리 게을러도 아드리안보단 나을거요."아드리안이라는 이름에 엘레노어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때는 그 이름만 들어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며칠 전, 그가 로제린과 아드리안을 유폐한 뒤로 그의 이름을 듣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던 것이 해결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편안한 그녀의 표정을 보자 테오도르도 짐짓만족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무리하지 마시오. 오늘은...그냥 이렇게 쉬어도 좋소."로맨틱하거나 감미로운 말을 쏟아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는 언제나 짧은 말에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 해주었다. 지금도 그 한마디에 엘레노어가 염려하던 것들이 뒷전으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누워만 있을수는 없었다. 철들 무렵 황태자비가 되어 평생 규칙적인 생활을 해온 엘레노어는 그의 입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허리부터 하체까지 묵직한 기분이 들었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테오도르는 살짝 구겨지는 그녀의 이마를 보고 혹시나 불편한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다."불편한 것 같은데...좀 더 누워있지 그러십니까?""아닙
테오도르의 시선은 엘레노어를 잡아먹을 듯 훑었다. 거친 숨이 서로에게 닿으며 마치 열흘을 굶은 새끼 사자가 어미의 젖을 찾듯 움직였다. 손가락과 입술은 서로의 몸을 하나라도 더 만지겠다는 듯 움직이며 흔적을 남겼고 그 행동에 수치심이나 계산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엘레노어가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말했다."빨리...들어와요."테오도르는 뜻대로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쓸며, 눈가를 혀로 핥으며 속삭였다."지금?"목구멍 안쪽을 긁는 맹수의 목소리였다. 엘레노어는 대답 대신 허리를 감은 다리에 좀 더 힘을 주어 당겼다."빨리...!""제대로 말해야 해줄 건데?"테오도르는 다시 그녀을 애태우며 말했다. 그의 입술은 단단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유두를 희롱했고 엘레노어는 허리를 비틀며 그의 것에 자신의 것을 비벼댔다."...뭘? 빨리...넣으라니까."그녀가 체면을 내려놓고 말했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는 듯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며 혀를 더욱 빠르게 놀렸다. 엘레노어의 목이 젖혀지며 바튼 신음이 들리왔고 아랫배가 축축히 젖어들었지만 그녀의 뜻대로 해주지 않았다."가슴만으로 가고 넣으면 더 조이더라고.""그런 말...좀..."엘레노어의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그의 말대로 가슴만으로도 가버릴 것 같았다. 엘레노어의 손이 그의 어꺠를 파고들 듯 움켜쥐었다. 허리가 파들거리며 경련했고 입에서는 더 이상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슴 만으로 이렇게 느낄 수 있단 걸 그 때 알았다."하...아아...테오도르..."그녀의 반응을 느낀 테오도르가 그제서야 자신의 것을 그녀의 입구에 문질렀다. 그리고 천천히 무게를 싯자 축축히 젖은 채 다물려 있던 입구가 벌어지며 그를 맞이했다. 두 몸이 완전히 겹쳐지자 엘레노어는 지금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내벽이 떨려서 그를 저절로 움켜쥐듯 졸라댔다. 테오도르는 그 느낌이 만족스러운지 씨익 웃어보였다. 엘레노어의 피부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 느껴졌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
복도에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라지고 로제린의 비명도 잦아들었다. 아드리안은 숨을 헐떡이며 테오도르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도망치거나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위압감 때문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그의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아드리안을 내려다 보았다."난...난 이 일에 대해 몰라."아드리안은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테오도르는 검을 그의 목 아래에 겨누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은 덜덜 떨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로제린이...우리가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했어. 근데...어떤 방법으로 그랬는지는 정말 몰라!"절박한 목소리로 아드리안이 외쳤다. 뒤쪽에서 북부군에 포박된 로제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 지금 내 탓으로 돌리는거야? 멍청하게 나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게?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로제린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치자 아드리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미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따윈 없었다."닥쳐!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유혹하지만 않았어도.""뭐라고? 내가 널 유혹해? 야!"아드리안의 말에 화가 난 로제린이 몸을 버둥대며 덤벼들 듯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북부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테오도르는 두 사람의 다툼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의 혐의가 확인 된 이상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했다.그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아드리안 황태자를...방에 유폐시키고 로제린은...감옥에 투옥시켜. 내가 친히 심문한다.""뭐...뭐라고? 심문? 미쳤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날 심문한다고? 이 미친새끼야! 아드리안! 도와줘...제발...아악!"로제린이 욕을 퍼부으며 테오도르를 향애 악담을 퍼부었지만 북부군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녀를 끌고 사라졌다. 아드리안은 멍한 표정으로 별궁에 끌려가 유폐되었다. 어느정도 일이 일단락 된 듯 싶었다. 남은 건 조사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황제의 업무를 대리할 사람이 필요했
로제린은 끌려가는 내내 패악질을 멈추지 않았다."안돼! 놔! 아드리안! 어디있어!"북부군 병사 둘이 그녀의 양팔을 붙잡아 끌어내리는 내내 로제린은 발버둥치며 바닥에 굴렀다. 그녀는 병사의 손을 물어 뜯거나 할퀴는 걸 맘추지 않았고 발로 차기도 했지만 그들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지만 그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누구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아드리안! 아드리안! 아악!"그 때, 목이 터져라 부르던 아드리안이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로제린의 비명을 듣고 급히 달려온 것 같았다."무슨 짓이지? 당장 내려놓지 못해?"아드리안이 외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복도 끝에 서있는 테오도르에게 향했다. 테오도르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폐하, 로제린은 임신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의사가 확인 했습니다. 로제린과 짜고 거짓을 고한 의사도 처벌해야 합니다."아드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의 임신했다는 말에 속아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을 해온 것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를 괴롭게 하는 사실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많은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리고...로제린이 폐하의 식사에 독을 넣도록 사주한 걸 알고 계셨습니까?"북부군에게 붙잡힌 채 바닥에 구르던 로제린이 눈을 치켜뜨고 외쳤다."아니에요! 아니야!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아드리안의 얼굴이 더욱 심각하게 굳어졌다. 분명 그 부분은 로제린이 알아서 한다고 했고 자신도 선황제가 죽었을 때 그녀를 잠시 의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죽였는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 자칫했다가는 로제린과 함께 선황제 시해로 엮이게 된 상황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 사실을 부인해야 했다.아드리안은 떨리는 주먹을 다잡으며 테오도르를 노려보았다."숙부...지금...나와 로제린을 모독하는 것이 선을 넘은 걸 알고 계
회의는 없지만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들 결단을 내린 표정이었고 그 결단을 실행하기 위해 테오도르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던 그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봤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로제린의 진찰을 강제로 진행합니다. 아드리안이 막으려 한다면 그 또한 무력으로 제압합니다. 이 이상 이 꼴을 지켜볼 수 는 없으니까요."테오도르가 말을 하는 그 순간 이미 북부군이 황궁을 봉쇄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을 제외하고 가장 서열이 높은 테오도르의 명이었다. 또한 그의 손에는 전 황제가 서거하기 전 남긴 메모가 있었다. 꼭 아드리안이 황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서류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로제린의 사치와 임신 여부, 그리고 전 황제 시해 등. 이 모든 것을 아드리안이 용인한 증거. 이 세가지를 공개하고 절차에 맞게 진행할 것입니다."테오도르의 말에 한 대신이 말했다."로제린이 아드리안의 별채에서 지내는 동안 전 황제께서 돌아가셨지요. 그 때, 로제린이 시녀복장을 하고 드나들었다는 의심이 있습니다. 혹시 모르죠. 그녀가 식사에 손을 댔을 지도요."그 의심은 사실이었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마리가 들은 것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마리는 결국 그들의 편에 서서 로제린을 사지로 몰아넣을 것이다. 회의실에 모인 자들의 입이 순간 다물어 졌다. 다들 알고 있던 부분이나 사안이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정적을 깨고 한 대신이 입을 열었다."그렇다면...아드리안 전하께서 황제 시해에 직접 관여하셨다는...""시해에 사용된 약물을 로제린에게 판 사람이 있네."테오도르가 입을 열었다. 대신들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리고 아드리안은 로제린을 얻기 위해 엘레노어를 치울 이유가 필요했지. 과연 이 모든게 로제린의 독단적인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하시오? 아드리안이 의심만으로 엘레노어를 몰아냈듯, 우리도 그럴 자격이 있소. 이 제국을 위해서 말이오."그의 목소리는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