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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 높은 곳을 꿈꾸는 여자

Author: 정로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23:03:58

문이 열리고 실크 잠옷과 가운 차림의 엘레노어가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알몸으로 침대에 앉은 아드리안과

그 발치에 놓인 이불 덩어리였다. 그냥 보기에도 사람이 몸을

이불로 감싼 형태였다.

그 이불 덩어리는 로제린이었으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녀는

누구인지 알 진 못했으나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는 알았다.

분명 자신이 이 방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나

불청객이 된 기분 말이다.

로제린은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이 드러나기라도 할까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엘레노어는 애써 숨을 고르고 황태자비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썼으나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방 안에 가득한 정사의 냄새까지 느껴지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말했다.

"내일...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예를 갖춘 뒤 문밖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드리안은 그 순간까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닫히는 문만 바라보고 있다가

꼼지락대며 다시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 감각에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로제린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다리 사이에 손을 뻗어 쪼그라든 자신의 것을 쥐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 올려다보는 붉은 눈이 마주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기했다.

"하...미치겠군."

아드리안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고간에 뭉갰고

로제린은 익숙하게 목구멍 깊숙이 그의 것을 받아냈다.

**

- 탁

아드리안은 밤새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하듯 그녀를 몰아붙였고

정오가 되어서야 로제린은 수도에 자리한 대공의

타운하우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소파에 보석이 잔뜩 박힌 핸드백을 집어 던지고

아찔한 하이힐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듯 벗어내고 쓰러지듯 기대니 살 것 같았다.

밤새도록 아드리안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애쓴 탓에

온몸이 뻐근했고 어서 씻고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그와의 섹스가 힘들고 불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맛본 "다른" 젊은 남자의 육체는 신선하고 자극적이다.

거기다 자신에게 욕정 하는 남자들의 눈빛은 그녀에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도 자신이 아직 남자들에게 먹힌다는

사실에 살아있음을 느끼곤 했다.

북부에서 종종 어린 기사나 시종들과 관계를 하며

테오도르와의 지루한 결혼생활을 억지로 버텨냈지만

수도에 오니 상대가 황태자다.

거리에서 푼돈에 몸을 팔던 여자가 몸뚱이 하나로 북부 대공을 유혹해

아이를 낳고 대공비가 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황태자의 정부가 된 셈이다. 

-차르륵, 달칵

가슴을 한껏 강조하며 엉덩이까지 딱 달라붙는

스팽글 드레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알몸을 가리지도 않고 선 채, 손짓하자

하녀가 달려와 드레스와 핸드백을 치웠고

또 다른 하녀는 향유 냄새가 진동하는 욕실로 그녀를 안내했다.

이 삶은 꽤나 만족스러웠지만 로제린은 지루했다.

-참방참방

그녀는 항상 같은 향유를 쓴다. 남자를 동하게 한다는 향인데

그녀가 밑바닥 생활을 할 때부터 즐겨 쓰던 향이다.

귀족이나 황족 여인들은 천박한 향이라고 쓰기를 거부하지만

황실 연회나 무도회에 이걸 쓰고 갔을 때 자신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는

남자들을 볼 때면 묘한 승리감에 고취되곤 했다.

"하아..."

그녀는 욕조에 기대 천장을 가득 채운 수증기를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욕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로제린!"

그의 남편이자 북부 대공 테오도르 드 발렌시아였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체구는 마치 거대한 벽 같았고, 손질하지 않은

수염은 거칠고 나이 들어 보이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또 검을 휘두르다 왔는지 땀 냄새까지 나는 것 같다.

로제린은 이 모든 게 정말 지긋지긋했다.

애써 못 들은 척 눈을 감고 자는 척 하자, 테오도르는 가까이 다가와 콧김을 씩씩대며 외쳤다.

"자는 척하는 거 다 알고 있소! 대체 어젯밤에 뭘 하느라 외박을 한 거지?!"

그는 애써 화를 억누르는 건지 목소리가 갈려 있었다.

실눈을 뜨고 그를 흘긋 바라본 로제린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어제 너무 과음해서 황궁에 방을 빌려서 잠이 들었지 뭐에요. 피곤해요."

"당신은 북부 대공비이고 한 아이의 엄마요! 그 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이오?

거기다...이 천박한 향은 대체..."

테오도르는 허공에 퍼진 그녀의 향유 냄새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로제린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반해 그녀와 아이를 갖게 되었고,

주변의 반대에도 다소 무리해서 신분이 낮은 그녀를 대공비로 올렸다.

그 또한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던 남자들 중 하나였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그는 이 행복이 평생 갈 줄 알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치하며 아이를 돌보지 않는 방탕한 여인만이 남아 있었다.

"하암...피곤해요. 나중에 얘기해요."

로제린은 테오도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하품까지 하고 못들은 체 했다.

외박하고 들어와서도 아이를 먼저 찾지 않았다.

그녀에게 테오도르와 아이는 자신을 밑바닥 인생에서 끌어올려 줄

동아줄에 불과했고 이미 그 목적을 이룬 뒤 더 높은 곳을 향하고자 마음먹은 지금,

그저 방해물에 불과했다.

"당신...아이와 다 같이 식사한 게 언제인지는 기억하오?"

로제린은 다리를 물 밖으로 들어 살피며 말했다.

"그런 거까지 기억해야 해요? 밥 좀 따로 먹으면 어떻다고.

당신 이러는 거 너무 답답해요."

"뭐라고?"

"북부에만 처박혀있다가 몇 달 만에 수도에 왔는데,

좀 늦을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북부에 눈 말고 뭐가 있죠? 자꾸 숨 막히게 굴지 말아요!"

테오도르는 아직 젊은 그녀가 자신 때문에 북부의 성에 갇혀

아이만 보는 것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고,

오늘 또한 단순히 놀다가 늦어져 황궁에서 자고 온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물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발목을 잡아 복숭아뼈부터

부드럽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로제린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 가는 발목이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발등에 입 맞추자

그녀는 짜증스럽게 발을 홱 빼서 물에 다시 집어넣었다.

"피곤해요."

시선조차 그에게 향하지 않은 채 말했다. 허공에 놓인 손을 머쓱하게 거둔

테오도르는 말없이 욕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지자, 로제린은

짜증스럽게 발로 물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고 어떻게 해야 황태자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고민했다. 침대를 빠져나올 때 아쉬워하던 눈빛이란. 분명 승산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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