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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달빛
남자의 손이 하니의 허리께로 다가왔다.

그 뜨거운 손바닥의 온도에 하니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자기야, 나... 그날이야.”

순간, 승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시선이 잠시 떠나더니, 이내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었다.

“여보, 생리 주기는 내가 다 외우고 있어. 이번 주는 아니잖아.”

승오는 하니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내가 야근이 많아서 잘 못 챙긴 거 알아. 혹시 그래서 기분 나쁜 거야? 지난번엔 결혼식 장소 바꾸자고도 했잖아.”

그러곤 이어서 말했다.

“내일 우리 할머니 생신이야. 같이 가자, 응?”

‘할머니... 주금자 여사.’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하니의 온몸이 경직됐다.

사실 승오의 가족들은 처음부터 하니를 반기지 않았다.

특히나 할머니 주금자는 노골적으로 하니를 싫어했다.

6년이나 같이 살았는데도, 임신 소식 하나 없는 하니를 보며, 아이를 못 낳는 거 아니냐는 말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지금쯤이면, 강승오 집안 어른들도 백권아가 임신한 소식 들었겠지.’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긴... 내가 가봤자, 웃음거리만 되겠지.’

하니는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말했다.

“요즘 조금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하니는 더 이상 승오의 가족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승오는 하니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여보, 혹시 우리 가족 싫어하는 거야?”

승오는 예전에 하니에게 가족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렸다.

그래서 하니에게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승오는 감정에 호소하듯 말했다.

“여보한텐 부모님이 안 계시잖아.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을 네 부모님처럼 생각해 주면 안 돼?”

하니는 피식 웃었다.

‘그 사람들이 날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긴 했을까?’

그동안 애써가며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모든 순간.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헛수고였다.

“응. 갈게.”

결국, 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일이었으니까.

왜냐하면, 승오 앞에서 ‘거절’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었다.

승오는 만족한 듯 하니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여보, 이렇게 안아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야. 나 진짜 여보 없으면 안 돼. 이렇게 평생 안고 살고 싶어.”

‘평생...’

하니는 그 말이 우습기만 했다.

‘이 사람한테 평생이란, 새로운 자극이 생길 때까지겠지.’

승오는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걸 좇았다. 안정된 관계, 오래된 연인 따윈 금세 싫증 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늘 다른 여자였다.

하니는 그런 승오를 알면서도 아직 완전히 손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다음 날 아침,

승오는 하니에게 드레스를 보냈다.

분홍빛이 감도는 화이트 롱 드레스.

어쩐지 그 드레스를 본 순간, 하니의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채 욕실로 달려가서 세면대에 몸을 숙이고 ‘웩’ 하고 신물을 토해냈다.

메이크업을 준비하던 스타일리스트는 깜짝 놀라 달려왔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하니는 입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드레스, 바꿔 주세요. 네이비 컬러로.”

스타일리스트는 난감한 듯 말했다.

“하지만 강 대표님께서 꼭 이 드레스가 어울린다고... 직접 맞춤 제작하셨다고 하셨어요. 네이비 컬러는 어르신들이 별로 안 좋아하실 수도 있다고...”

‘또 시작이야. 나는 단 한 번도 내 마음대로 드레스를 고른 적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강승오가 정한 대로...’

하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분명히 말했다.

“저는 그 드레스 안 입어요. 네이비 컬러로 주세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어 말했다.

“저는 곧 강 대표랑 결혼할 사람이에요. 강 대표가 당신한테 준 돈, 결혼하면 우리 부부의 공동 자산이 돼요. 계속 저한테 거슬릴 생각이세요?”

스타일리스트는 그제야 숨을 삼켰다. 하니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던 거다.

늘 조용하고 순하디순하던 하니니까.

주변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하니가 참 성격이 좋다고, 뭐든 다 받아들이고, 한 번도 불만을 말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처음부터 하니가 승오보다 부족한 조건을 가진 여자라 ‘강승오에게 버려지지 않으려면 더 참아야 한다’는 식으로 입을 모았다.

그러나 이제, 하니는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드레스를 갈아입고 스타일링을 마치자 스타일리스트는 마무리로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고급 보석 목걸이가 하니의 차분한 쇄골 위에서 눈 부신 빛을 냈다.

“와... 사모님, 진짜 예쁘세요.”

스타일리스트조차 감탄을 터뜨렸다.

하니는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큰 눈과 맑은 분위기, 그리고 차가운 듯 고요한 눈빛은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대학 시절에도 그랬다. 하니는 항상 ‘얼음 공주’라 불렸다.

반면 권아는 작고 귀여운, 말 그대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하니도 알고 있었다.

권아는 단순한 귀여움이 아니라, 남자를 다룰 줄 아는 여자라는 사실을.

승오가 넘어간 것도, 권아라는 여자에게서 느낀 ‘새로운 자극’ 때문이었다.

6년이라는 세월, 누구보다 승오를 잘 아는 사람은 하니뿐이었다.

...

하니는 강씨 가문의 본가로 향하는 차량에 올랐다.

운전기사는 거듭 설명했다.

“강 대표님은 급한 일이 생기셔서, 사모님을 직접 모시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니는 얇게 입술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흘렸다.

‘못 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거겠지.’

차창 밖 흐르는 풍경만큼이나 마음도 복잡해졌다.

도착 후, 하니는 홀로 대문을 지나 본채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강연하였다.

“하니 씨!”

활짝 웃으며 달려오던 연하는, 하니의 옷차림을 확인하자 그 표정이 잠깐 멈췄다.

“어? 하니 씨, 원래 이 색 안 좋아했잖아? 오늘은 웬일로...”

‘아니? 내가 안 좋아하던 게 아니라, 강승오가 싫어했던 거겠지.’

하니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원래 입으려던 옷이 찢어져서요. 급하게 갈아입고 나왔어요.”

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니의 팔짱을 끼었다.

“근데 있잖아... 그때 부탁한 가방... 혹시 소식 있어?”

하니는 살짝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아직 연락이 없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연하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쳤지만, 금세 사라졌다.

‘어차피 이하니는 내가 부탁하면 다 들어주니까.’

그때, 주금자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화려한 옷에 진주 장신구까지 빼곡히 차려입은 상태였다.

그 존재감은 여전히 강렬했다.

하니를 보자마자, 주금자의 얼굴빛이 싹 바뀌었다. 지팡이를 툭툭 바닥에 찍으며 말했다.

“얘는 왜 또 왔어?”

곁에 서 있던 며느리 심주영이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하니는 어머니 손자며느리잖아요.”

주금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저런 손자며느리 둔 적 없어. 6년 동안도 알을 못 낳는 암탉이 무슨 손자며느리냐?”

“승오한테는 턱없이 부족한 애가, 애도 못 낳고 우리 집안에 뭐 하나 보탬도 안 되는 것들이...”

하니는 이미 이런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고개 숙이고 조용히 넘겼겠지만, 지금의 하니는 달랐다.

‘우린 이미 파혼했는데,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참을 이유가 없잖아.’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맑고도 단단한 눈으로 주금자를 바라봤다.

“할머님, 저와 승오 씨, 나름대로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 근데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전 아무 이상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승오 씨가 요즘 야근을 많이 해요... 혹시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 거실 안은 순간 조용해졌다.

강씨 집안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주금자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지금 우리 손주를 저주하겠다는 거냐!”

심주영이 재빠르게 나섰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사실 요즘 승오가 좀 무리하긴 했어요. 하니한테 화풀이할 일은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연하의 눈이 커졌다.

‘어머, 하니 편을 들어? 평소엔 그렇게 차갑게 대하더니... 오늘은 왜?’

모두의 시선이 흐트러진 그때, 본채 입구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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