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민석은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물론 아정과 가까이 있고 싶었다.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자기 몸이 너무 솔직해서... 민석의 허락도 없이 아정에게 무례한 반응을 보일까 봐 두려웠다.하필 아정은 겁도 없었다. 가끔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을 툭 던져, 민석의 심장을 정신없이 뛰게 만들곤 했다.“이리 와 보세요!”아정이 서운한 듯 말했다.“저 좋아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있어요?”민석이 말했다.“좋아하니까 더... 널 존중해야지.”“정말 저를 존중하고 싶으시면, 애초에 저랑 같이 온천을 하시면 안 됐죠. 이미 같은 탕에 들어와 놓고 이제 와서 뭘 그렇게 조심하세요.”틀린 말은 아니었다.민석은 몇 초쯤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정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일어나자 가슴은 목욕 타월에 가려져 있었지만, 복근은 그대로 드러났다.수영복 바지가 하이웨이스트도 아니어서 가릴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아정은 부끄러움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평소에도 영상이나 잡지를 볼 때 남자 모델의 복근을 빤히 보곤 했다.지난번에 직접 만져 보고 감촉이 꽤 좋다고 느꼈던 터라, 이번에도 사양하지 않고 민석의 배를 바라보았다.민석은 얼른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았다.아정이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민석은 버티기 힘들었다.민석도 예전에는 욕구가 강한 남자였다.그런데 여자를 멀리한 지 얼마나 됐는가?민석은 진짜 스님도 아니고, 모든 감정과 욕망을 버린 사람도 아니었다.오히려 그동안 쌓였던 욕구가 아정 한 사람에게만 향해 더 크게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아직도 그렇게 멀리 앉으시네요.”민석이 앉아 버리자 복근이 보이지 않았다.아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제가 유 대표님을 잡아먹기라도 해요?”민석은 속으로 생각했다.‘네가 날 잡아먹어? 내가 너를 잡아먹을까 봐 무서운 거지.’아정은 갑자기 손을 들어 민석에게 물을 끼얹었다.민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머리부터 얼굴까지 그대로 물을 맞
아정은 탕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 해비를 달래며 놀아 주고 있었다.민석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아정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허니는 어때? 힘들어 보이면 사람 불러서 먼저 보내게 할게.”아정은 예전에도 몇 번 허니를 데리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허니는 꽤 얌전하게 잘 따라와 줬다.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달랐다.아마 호텔에 처음 들어올 때 들렸던 이상한 새 울음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그때부터 허니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그래요.”아정도 걱정이 됐다. 허니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까 봐 마음이 쓰였다.“누구한테 맡기실 건데요?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해요.”“걱정 마.”민석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를 걸어 그 일을 바로 지시했다.전화를 끊은 뒤 민석이 말했다.“내 비서야. 너도 본 적 있어. 일 처리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야.”민석의 비서 이야기가 나오자 아정은 떠올렸다.안경을 쓴, 차분하고 반듯해 보이는 남자였다.아정이 말했다.“전 예전부터 유 대표님 옆에 있는 비서나 보좌진은 다 여자일 줄 알았어요.”“왜 그렇게 생각했는데?”“유 대표님 성격이면 여자 비서 한 명쯤 곁에 두는 게 더 자연스럽잖아요.”민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했다.“내 비서랑 보좌진은 늘 남자였어.”아정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회사 사람은 안 건드린다는 거네요!”민석은 씁쓸하게 웃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그래도 나한테 일은 일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야.”민석은 여자 문제로 자신의 업무가 흔들리는 일만큼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좋아요.”아정은 해비의 턱 밑을 살살 만져 주며 달랬다. 해비가 얌전히 있도록 진정시켰다.“일단은 믿어 드릴게요.”민석은 아정이 귀여우면서도 어쩔 줄 몰랐다.“왜 일단인데? 내가 너한테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잖아.”아정이 말했다.“거짓말 안 한다면서요. 저는 유 대표님이 정말 여기서 며칠 묵었다는 말도 안 믿어요.”민석은 증명해 줄 사람까
서하는 믿을 리 없었다.‘이렇게 우연일 수가 있나?’‘온천을 하러 오자마자 유 대표가 같은 곳에 있다니.’아정도 놀라움이 가라앉자 바로 눈치챘다. 곧장 은혁을 바라보았다.“형부, 혹시 형부가 알려 주신 거예요?”은혁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민석이 먼저 말했다.“은혁이랑 상관없어. 나 요 며칠 밤마다 여기서 지냈어.”옆에 있던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바로 입을 열었다.“맞습니다. 유 대표님은 사흘 전부터 계속 이쪽에서 숙박하셨습니다.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은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민석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였을 줄은 몰랐다. ‘증인까지 미리 준비해 두다니.’이렇게 되자 다른 사람들도 더 캐물을 말이 없었다.아정만 물었다.“유 대표님은 왜 여기서 주무셨어요?”시내에서 차로 여기까지 오려면 한 시간은 넘게 걸렸다.민석이 말했다.“요즘 잠을 잘 자지 못 해서. 여긴 조용하고, 온천에 몸 좀 담그면 잠도 잘 오거든.”“아...”아정은 작게 대답했다.민석은 아정에게 다가와 품에 안은 허니를 받아 들었다.“너희는 어떻게 온 거야?”일행은 이야기를 나누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은혁은 생각했다. ‘저 정도 머리면 민석이 아정을 못 잡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되잖아.’은혁은 서하와 아들을 데리고 자신들의 객실로 향했다.민석은 아정을 따라가며 짐을 들어주고, 허니까지 안았다.아정은 해비의 리드줄만 잡고 있으면 됐다.아정은 맞춤 제작한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름답고 우아했다.민석은 왼팔에 허니를 안고, 오른손으로 캐리어를 끌었다. 셔츠에 베스트, 재킷까지 갖춘 차림은 마치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허니의 털이 민석의 옷에 묻어 있었지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묘하게 다정한 분위기가 났다.아정은 시선을 거두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정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민석의 복근이었다.민석이 말했다.“오늘은 진짜 우연이야. 다만 객실 배정은 우연 아니고. 네가 내 옆방에 묵었으면 해서
“당신이 불편할까 봐 그래.”구나린이 말했다.“나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걸 억누르지는 않았으면 해. 아이들이랑 같이 사는 게 싫거나, 혼자만의 공간이 없어서 답답하면 우리 따로 나가 살아도 돼.”엄선호가 말했다.“예전이라면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편해.”“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사실은 아직도 혼자 사는 게 더 좋은 거네.”“말도 안 되지. 난 당연히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아.”구나린이 옅게 웃었다.“혹시나 당신이 힘든데도 참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내가 참고 살 사람으로 보여?”구나린이 말했다.“나 때문이라면 그럴 사람이잖아.”엄선호는 다시 구나린에게 입을 맞췄다.“맞아. 그래도 나는 좋아서 하는 거야. 여보, 나 지금 정말 행복해. 생각도 다 했어. 지금 맡은 일은 천천히 넘길 거야. 다음 임기는 안 하려고.”구나린은 멍하니 엄선호를 바라보았다.남자에게 권력이라는 유혹은 사랑보다 훨씬 강했다.엄선호는 운 좋게도 두 가지를 모두 손에 쥔 사람이었다.사실 지금의 삶만으로도 구나린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엄선호가 아무리 바빠도 구나린 역시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다.다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선호가 조금만 덜 바빴으면 좋겠다고.구나린도 알고 있었다. 그건 현실적인 바람이 아니었다.엄선호는 구나린만의 엄선호가 아니었다. 엄선호는 정부의 사람이었고, 일의 사람이었고, 국민의 사람이었다.구나린은 자신이 그렇게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적어도 엄선호가 은퇴한 뒤의 시간은 모두 구나린의 몫이 될 테니까.게다가 구나린은 엄선호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아무리 바빠도 엄선호는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정말 생각 다 한 거야?”구나린은 제 귀로 들은 말을 아직도 믿기 어려웠다.엄선호가 다음 임기를 맡지 않겠다고 말한 건, 임기 후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었다.손에 쥐고 있던 권한 대부분을 내려놓는
민석은 거실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몸속을 뒤흔들던 열기가 겨우 가라앉을 때까지.아정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 얻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아정에게 부족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사실 아정은 부족한 게 없었다.민석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아정에게 굳이 뭘 사다 바치며 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그런 것들은 결국 전부 물질적인 것들이었다.아정이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민석은 아정에게 보여 줘야 할 건 결국 자기 진심이라고 생각했다.민석에게도 다른 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바람기 있고 가볍다는 점만 빼면 장점도 분명 있었다.오래 지켜보면 아정도 민석을 다르게 봐 줄 것이다.아정이 한숨 자고 나왔을 때, 민석은 이미 가고 없었다.그녀는 하품을 하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손 닿는 곳에는 적당히 따뜻한 꿀물이 놓여 있었다.가사도우미는 아정의 침실에서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미리 준비해 두고, 언제든 아정을 챙길 수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해비와 허니는 오전에 산책 겸 등산을 다녀온 탓에 완전히 지쳐 있었다.아정이 잔 만큼... 두 녀석도 내내 곯아떨어져 있었다.아정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자, 해비가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폴짝 올라와 아정의 가슴팍에 자리를 잡았다.허니는 몸놀림이 훨씬 날렵했다. 훌쩍 뛰어오르더니 아정의 발치에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고양이에 강아지까지, 딸과 아들처럼 곁에 있으니 인생이 꽤 충만하게 느껴졌다.핸드폰이 울렸다. 아정이 집어 들어 확인해 보니 서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온천에 갈 건데, 아정도 같이 갈 거냐고 묻는 내용이었다.아정은 벌떡 일어나 앉아 빠르게 답장을 쳤다.[가요, 가요! 언니, 반려동물도 데려가도 돼요?]서하가 답했다.[반려동물 동반 가능한 호텔이야. 데려와도 돼.]아정은 단번에 더 신이 났다.[그럼 저 갈래요! 언제 출발해요?]한편 은혁은 조용히 절친에게 소식을 흘렸다.[우리 온천 간다. 내 아내가 지금 아정이 초대하는
아정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슷한 소설을 몇 권 더 찾아 읽었다.『하룻밤에 여섯쌍둥이, 재벌 후계자가 재결합을 애원하다』라든가, 『봄밤』이라든가, 『그만 흔들어, 장군님은 이미 항복했습니다』 같은 제목들이었다.덕분에 아정은 전에는 전혀 몰랐던 지식을 꽤 많이 얻었다.다만 소설 속 내용이 얼마나 부풀려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민석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소설 속 남주들과 조금 닮아 있는 것 같았다.‘설마... 진짜 반응이 온 건가?’아정은 민석을 슬쩍 훑어보았다.민석이 앉아 있는 데다 윗옷이 가리고 있어서, 겉으로는 딱히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일어나 보세요.”민석은 일어날 수 없었다.“왜?”‘아정이는 왜 자러 가지 않는 거야?!’‘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일어나 보시라니까요.”아정이 한 번 더 말했다.민석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입을 열었다.“아정아, 대체 뭐 하려고 그래?”“아, 알았어요.”아정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짚고 허리를 숙여 민석을 바라보았다.“유 대표님, 생각보다 엄청 예민하시네요?”민석은 살면서 이렇게 난처했던 적이 없었다.이어 고개를 돌렸고, 귀 끝이 붉어진 것도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저 다 알아요.”아정은 자신이 꽤 대단하다고 느꼈다.“숨기려고 해도 소용없어요.”민석은 아예 될 대로 되라는 듯 말했다.“알면 이제 가야지.”“여긴 제 집인데 제가 어디를 가요?”아정이 말했다.“게다가 이건 제 잘못도 아니잖아요.”민석은 입을 다물었다.아정이 너무 가까이 있었다.아정에게서 나는 향기가 민석의 코끝으로 계속 밀려들었다.민석은 그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었다.더더욱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저 아정이 빨리 사라져 주기만을 바랐다.아정이 말했다.“저는 유 대표님이 지난번에 안 된다고 한 말... 거짓말이었던 것 같은데요.”민석이 설명했다.“다른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뜻이었어. 너는 다르고.”“저는 못 믿겠는데요.”민석은 무릎 위
서하가 입을 열기도 전에 민성균 교수가 먼저 서하의 팔을 잡아끌었다.“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임 교수님 얼른 가시죠.”기중환 교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얼굴이 붉어지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 민성균 교수가 재빨리 기중환 교수의 팔을 붙잡았다.“기 교수님!”민성균 교수는 기중환 교수를 옆으로 끌고 가서 한참 동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기중환 교수는 차마 배은혁이 서하의 전남편이라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결국 속으로만 분을 삭이며 말했다.“임 교수랑 잠깐
서하의 이혼 이야기는... 그동안 기중환 교수에게 쉽게 꺼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런 일은 결국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더구나 이후에 아이까지 낳았으니 언젠가는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기중환 교수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서하를 나무라거나 호되게 꾸짖지는 않았다.오히려 그 점이 서하를 더 괴롭게 했다.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걱정과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특히 기중환 교수와 아내는 이전보다 더 서하를 챙겼다.그럴수록 서하의 마음 한구석에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쌓여갔다.귀국한 뒤,
마치 교외처럼 주변에는 묘하게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 특유의 적막함이 깔려 있었다.은혁은 차를 세우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시선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무 데도 초점을 두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은혁은 눈을 감았다가, 곧 다시 떴다.눈가가 붉어져 있었다.그해, 서하는 그렇게도 단호하게 은혁의 아이를 지우겠다고 했다.은혁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그 말은 지금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은혁의 가슴을 찔렀다.그런데 지금, 서하는 어엿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임서하는...
서하는 피하지 않았다.그대로 은혁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우리 이미 이혼했어.”서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야. 난 할 말 없어.”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서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시선이 깊고 무거웠다.“임서하!”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천후였다.전화받고 돌아왔는데 서하가 보이지 않아 찾고 있던 참이었다.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에서 작은 소란이 느껴져 무심코 고개를 돌렸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은혁이었다.큰 키에, 압도되는 분위기.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