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김하이
월요일 오전.

송하나는 현진 바이오테크에 막 도착하자마자 윤태오의 전화를 받았다.

“송하나 씨, 대표님께서 수요일 오전에 시간이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날로 이혼 수속 예약했으니 제시간에 맞춰서 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송하나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수요일까지 이틀 남았다. 이틀 뒤엔 드디어 이 억압적인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다.

“송하나 씨 맞으시죠?”

인사팀 직원이 그녀를 보자 안으로 안내했다.

“자리 배치는 이쪽이고요. 주요 업무는 신약 개발팀의 실험 진행과 자료 정리를 보조하는 거예요. 저희 회사는 최근 항암 표적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어요. 관련 자료는 이쪽에 있으니 먼저 살펴보도록 하세요.”

송하나가 지원한 직책은 신약 개발 보조 연구원이었다. 인사팀 직원은 두꺼운 서류 뭉치를 그녀에게 건넸다.

신약 개발은 길고 복잡한 과정이라 단기간에 업무에 적응하려면 프로젝트 상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했다.

송하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끼니를 거르며 자료를 탐독했다. 중요한 부분에는 특별히 표시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도 덧붙였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다.

자료가 4분의 1이나 남아서 그녀는 야근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사무실에는 그녀 혼자만 남아있었다.

송하나는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자신의 자리 옆에 서서 자료에 덧붙인 메모를 진지하게 읽고 있는 훤칠하고 준수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대표님.”

송하나가 정중하게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서유준은 고개를 들었다.

“이 자료들을 사흘 안에 다 읽어도 빠른 편인데 하루 만에 끝낸 건가요?”

“네... 대략적인 내용만 훑어본 정도예요. 세부적인 내용은 추가로 문헌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유준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덮었다.

“아직 저녁 안 드셨죠? 같이 나가서 뭐 좀 먹을까요?”

“아닙니다, 대표님.”

송하나가 거절하려 했지만, 서유준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출근 첫날부터 이렇게 늦게까지 야근하면 사람들이 날 가혹한 고용주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내 명예를 위해서라도 함께 나가주시죠?”

서유준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그녀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송하나는 가방을 들고 앞장서 걸었고 서유준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아리따운 뒷모습을 보며 서유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 그는 창업가 잡지 인터뷰를 했었다.

회사 근처를 지나다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을 보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와 봤더니 야근하는 사람이 바로 송하나였다.

사실 그는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다.

다만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할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먹어도 괜찮았다.

서유준은 직접 운전해서 송하나와 함께 한 이색적인 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할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고추는 빼주시고 요리에 생강 넣지 마세요.”

송하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표님이 주문한 음식은 전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고추와 생강도 그녀가 피하는 식재료였다.

전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데 대표님이 어떻게 자신의 식습관을 알고 있는 걸까?

서유준은 혹여나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몸에 열이 많아서 매운 거랑 생강을 못 먹거든요. 혹시 좋아하시면 좀 더 자극적인 걸로 몇 가지 더 시킬게요.”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대로도 충분해요.”

어쩌면 그저 대표님과 우연히 입맛이 같았을 뿐이겠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알겠는가.

식사를 마친 후.

서유준은 한사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어찌 됐든 내 직원인데 밤늦게 혼자 집에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해. 내가 얼마나 냉담하고 무심한 대표로 보이겠어.”

서유준의 도덕적 압박에 송하나는 결국 다시 그의 차에 올랐다.

젊은 모델과 데이트 중이던 최로운이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재빨리 사진을 찍어 자신과 이강우, 심성빈만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강우야, 네 와이프 요즘 좀 수상한데?]

[마이바흐 S클래스라니, 돈이 꽤 들었을 텐데. 혹시 너한테서 원하는 걸 못 얻어서 다른 남자로 갈아탄 거 아니야?]

이강우는 막 수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킨 참이었다.

단톡방 메시지를 열어본 그는 사진 속 송하나가 낯선 남자의 외제 차에 타고 있는 걸 보더니 얼굴에 분노가 치솟았다.

어쩐지 예전에는 죽어도 이혼을 안 해주던 그녀가 이번에는 선뜻 요구하더라니.

딴 남자로 갈아탄 게 틀림없었다.

자신과의 결혼 존속 기간에 감히 이렇게 대놓고 딴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건 말 그대로 제 남편이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강우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으나 한참을 뒤져도 그녀의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결혼 생활 4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송하나의 번호를 저장한 적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건 적은 더더욱 없었고...

예전에는 그녀가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전화를 걸어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지 조심스럽게 묻곤 했다.

하여 용건이 있어서 그녀를 찾을 때면 통화 기록만 뒤져봐도 금방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송하나가 그에게 연락이 끊긴 지 한 달이 돼갔다.

이강우는 결국 홍경자와의 대화 기록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는 분노에 들끓은 상태로 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그 시각.

송하나는 서유준의 차 안에 있었다.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화면에 뜬 익숙한 번호를 본 그녀는 마음이 잠시 아득해졌다.

이강우의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는 특별히 다른 벨 소리로 설정해 두었었다.

예전에는 밤낮으로 이 벨 소리가 울리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매번 실망으로 끝났다.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으니까.

언제나 서민경이나 그의 비서를 통해 연락해왔다.

이제 와서 휴대폰에 울리는 벨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송하나는 오히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멍하니 넋 놓고 있자 옆에 있던 서유준이 입을 열었다.

“왜 안 받아?”

송하나는 수신 거부를 누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번호예요. 잘못 걸려온 것 같아요.”

서유준은 곧장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정말 잘못 걸려온 전화라면 그녀의 눈빛에 왜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할까.

다만 그는 더 따져 묻지 않고 눈치껏 침묵을 지켰다.

호텔 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이강우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감히 그의 전화를 끊다니!

혹시 찔려서 못 받는 걸까?

이강우는 차량 모델명을 비서에게 문자로 보냈다.

[강현에 이 차량을 소유한 명단 전부 조사해. 사흘 안에 모든 정보를 내놓도록!]

대체 누가 죽을 용기를 내서 감히 내 와이프를 넘보는 것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아무리 송하나를 싫어한다 해도 그녀는 아직 명의상 이강우의 아내였다.

둘이 이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언제나 이강우의 여자였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이 일이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이강우는 대체 강현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차는 금세 아파트 단지 입구에 멈춰 섰다.

송하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냥 가던 길이니까 이렇게까지 틀 차릴 필요는 없어.”

송하나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 들어갔다.

서유준은 차 안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시동을 걸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강현에서 중간 정도의 수준이다.

그가 알기로 송하나의 남편은 사업가이고 집안이 손꼽히게 부유하므로 절대 이런 곳에 살 리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두 사람이 별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4)
goodnovel comment avatar
별빛가득
재미있어요. 다음이 궁금합니다
goodnovel comment avatar
조희영
재미있네요 계속 보고프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김애리
재밌네요 다음은요?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34화

    오후, 최시훈의 사무실.비서가 서류를 두 부 들고 들어왔다.“국장님, 프로젝트 입찰 건에 관해 현재 가장 경쟁력 있는 협력업체 두 곳을 선별했습니다. 기획안과 배경 모두 훌륭해서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검토 후 최종 확인을 부탁드립니다.”최시훈이 막 서류를 받아 들고 넘겨보려 할 때, 개인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화면에는 [아버지]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최태주는 장관급 인사로 요직을 맡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탓에 아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그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 있을 터였다.최시훈의 눈빛이 약간 굳어졌다. 그는 채 넘겨보지 못한 서류를 비서에게 돌려주었다.“일단 신 국장님께 가져가서 의견 여쭤봐.”비서는 곧장 알아채고 서류를 받아들고는 자리를 떴다.사무실 문이 닫히는 순간, 최시훈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아버지.”수화기 너머, 최태주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침착했다.“당장 집으로 와.”별다른 인사도, 이유도 없이 간결하게 말하고는 통화를 끊었다.최시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봤지만 끝내 망설임 없이 재킷과 차 키를 챙겨 최씨 가문 본가로 향했다.거실로 들어서자 무거운 분위기가 잔뜩 감돌았다.최태주는 소파 상석에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굳이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졌다.옆에 앉은 황윤미 또한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아버지, 어머니.”최시훈은 신발을 갈아 신고 침착한 걸음으로 다가갔다.고개를 든 최태주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오랜 고위직 생활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너 대체 오늘 점심에 서영이한테 무슨 짓 한 거야?”최시훈은 마음이 쿵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내지 않았다.“고작 이 일로 일부러 집까지 부르셨어요?”“똑바로 말해! 어떻게 된 거야?”황윤미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원망 섞인 투로 말했다.“서영이 엄마가 오후에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어! 서영이가 너랑 함께 점심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33화

    차정원은 무심코 송하나의 옆구리를 움켜쥐었다.“하지만 하나야, 만약 의뢰인이 우리의 전문성을 이용해서 약자에게 지극히 불공정하고 심지어 기만과 약탈로 가득 찬 공격을 하려는 걸 뻔히 아는데 승소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송하나는 조용히 들으면서 마음속에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많은 부부가 이혼 단계에 이르면 추악하고 이기적인 면을 드러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하지만 이토록 적나라한 계략으로 자신과 고생을 함께한 아내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정말이지 속이 뒤틀릴 정도로 불쾌감을 느꼈다.그에 비하면 이강우는 적어도 겉으로는 예의를 지켰던 셈이다. 심지어 반이나 되는 재산을 아낌없이 나눠주기까지 했다.단지 송하나가 마음에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이 사건 속 남편의 잔인함은 그야말로 치 떨릴 지경이었다.“아이는 몇 살이에요?”그녀가 나직이 물었다.“여섯 살이고 줄곧 엄마가 키웠어. 남편은 사업하느라 거의 돌보지도 않았지.”송하나는 법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인간성은 이해한다.그 아내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니 얼마나 절망적일까 싶었다.“아이는 아마 지금 아내에게 있어 유일한 정신적 지주일 거예요. 만약 그 희망마저 앗아간다면 여자분은 살아갈 의지도 잃을지 몰라요.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거든요. 그때 가서 남편이 소송에서 이기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도 틀림없이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거예요.”“그 남자는 수년 동안 아이를 돌보지 않았잖아요. 양육권을 억지로 빼앗아간다고 해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 자녀가 생기면 이 아이에게 과연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차라리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나아요. 적어도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잖아요.”차정원의 생각 또한 송하나와 일치했다.법이란 결국 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약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그는 즉시 결정을 내리고 지체 없이 담당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 이혼 소송 건 말인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32화

    진서영은 최시훈을 너무 잘 안다. 이 남자는 내뱉은 말을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다.송하나를 위해서 그는 정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터였다.마지막 한 줄기 환상마저 완전히 사그라졌다.진서영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공들여 화장한 얼굴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그녀는 건너편에 앉은, 수년간 사랑했고 온갖 수를 써서라도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그 남자를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의 최시훈은 낯선 이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최시훈의 세상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했다.레스토랑에는 여전히 잔잔한 배경 음악이 흐르고 창밖의 햇살도 눈부실 따름이었다.하지만 진서영의 세상은 이미 무너져 내렸고 남은 것은 단지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절망뿐이었다.그 시각, 아파트.아침 식사를 마친 송하나는 또 잠이 들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침실 밖은 고요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거실은 텅 비어 있었고 서재 문만 비스듬히 열렸다.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문틈으로 차정원이 넓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몸을 살짝 뒤로 기댄 채 미간을 구기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심각한 걸 보아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듯싶었다.송하나는 소리 내어 방해하지 않고 주방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정성껏 원두를 갈아 차정원이 늘 마시던 블랙커피를 내렸다. 커피잔을 든 채 문을 두드리고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따뜻한 커피잔을 그의 손 가까이에 내려놓고 나서야 남자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깼어?”차정원은 시계를 들여다보곤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배고프지? 금방 음식 해줄게.”“아뇨, 안 고파요.”송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어 움직임을 멈춰 세웠다.그녀의 시선은 남자의 주름 잡힌 미간에 머물렀다.“혹시... 일하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차정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그녀를 살짝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31화

    엄청난 기쁨이 순식간에 마음을 휩쓸었다!‘시훈 오빠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선물까지 준비했어?’그렇다면 이건 혹시 그의 마음속에 여전히 그녀가 남아있다는 뜻일까?“고마워요, 오빠!”진서영은 흥분 조로 말하곤 조심스럽게 선물을 받아 들었다.리본을 풀자 안에는 심플한 디자인임에도 한눈에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 있었다“너무 예뻐요!”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마음에 쏙 든다는 듯 팔찌를 꺼내자마자 손목에 착용했다.하얀 손목 위에서 다이아몬드가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린 채 이리저리 비춰보며 좀처럼 입가의 미소가 가라앉지 않았다.“선물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오빠!”최시훈의 표정은 시종일관 덤덤했고 심지어 약간 거리를 두는 듯했다.사실 이 선물은 그저 오기 전에 비서에게 급히 준비하라고 시킨 것뿐 자신은 열어보지도 않았다.진서영이 기쁨에 젖어 싱글벙글해 하고 있을 때 최시훈이 드디어 시선을 올리고 그녀를 차분하게 바라봤다.“앞으론 더는 하나 귀찮게 굴지 마.”순간 공기마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진서영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고 팔찌를 찬 손목이 허공에 붕 떠서 다이아몬드의 빛마저 약간 흐려진 듯했다.‘어제 일을 오빠가 벌써 안 거야? 그럼 오늘도 송하나 때문에 날 만난 거라고?’“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적절한 의아함과 약간의 억울함까지 드러냈다.“다 같은 동료잖아요. 하나 씨가 혼자 제연에서 지내는 게 안쓰러워 보여서 친구도 사귀었으면 하는 마음에 챙겨준 거예요. 그리고 배려 차원에서 특별히 고향 음식까지 시켜줬는데...”“진서영.”최시훈은 그녀의 말을 끊고 성까지 붙이면서 정색했다.싸늘한 남자의 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짙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진서영은 불현듯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남자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어제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30화

    송하나는 현기증에서 겨우 벗어나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 괜찮아요. 그냥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요. 나 이러다 지각인데...”그녀가 애써 일어나려 하자 차정원이 말렸다.“내가 이미 휴가 신청 냈어. 지금 이 상태로는 출근해도 일 못 해.”그는 약간 창백해진 송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깼으면 나와서 뭐라도 좀 먹어. 빈속이면 더 힘들 거야.”차정원은 또다시 그녀를 번쩍 안고 밖으로 나섰다.몸이 허공에 붕 뜨자 송하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이내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정원 씨, 내려줘요 얼른.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얌전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차정원은 그녀의 힘없는 저항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묵직하고 단단한 걸음걸이로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 쪽으로 향했다.식탁에는 이미 간단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따뜻하게 데운 우유, 먹음직스럽게 부쳐낸 계란후라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통밀 토스트, 그리고 곁들임으로 준비한 신선한 과일 한 접시까지...송하나는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혀진 채 맞은편의 차정원을 넌지시 바라봤다.“정원 씨는 출근 안 해요?”“오늘은 재택근무니까 집에서 너랑 함께 있을 거야.”차정원은 잼을 바른 토스트 조각을 그녀에게 건네며 자연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어제 네가 그런 상태였는데 혼자 집에 둘 순 없지.”송하나는 토스트를 받아 들고는 잠시 멍해졌다. 예상치 못한 다정함에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찌릿해졌다.어젯밤 기억을 되짚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머릿속이 하얬다. 술을 다 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척 룸을 빠져나와 차정원에게 전화를 걸던 모습까지만 선명할 뿐, 그 이후의 모든 것은 흐릿한 공백이었다.“어제 혹시... 실례될 만한 짓은 않았겠죠? 정원 씨 많이 힘들게 했나요?”그녀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한편 차정원은 접시에 담긴 계란후라이를 자르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해맑은 눈동자에 막연함과 불안감만 담겨 있을 뿐 최시훈에게 안겨 갔던 에피소드에

  • 별이 되어 빛나리   제629화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웅크린 채 고요히 잠든 송하나를 본 순간, 팽팽하게 굳어 있던 어깨선이 미세하게 풀렸다.차정원은 거실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 송하나의 이마를 짚었다. 실로 익숙하고 다정한 동작이었다.그제야 최시훈을 향해 감사를 표하는 이 남자.“돌봐주셔서 고마워요, 최 국장님. 그럼 이만.”말을 마친 차정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가려 했다.줄곧 옆에 서 있던 최시훈이 입을 열었다.“애가 취기가 꽤 심해요. 아까는 속이 안 좋은지 자꾸 토하려고 하더라고요. 해장차 다 끓여놨으니 속 편해지게 조금이라도 마시게 하죠.”차정원은 해장차를 힐긋 보더니 이내 정중하게 거절했다.“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집에 숙취해소제 있어요. 하나 얼른 집 데려가서 약 먹이고 돌볼게요. 폐 끼쳐서 죄송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숙여 송하나를 담요째 안정적으로 안아 올렸다.한 손으로는 그녀를 받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바닥에 떨어진 하이힐을 주웠다. 이내 몸을 돌려 그녀를 안고 문밖을 나섰다.최시훈을 지나칠 때 차정원은 다시 한번 짧게 인사했다.“오늘 밤엔 정말 고마웠습니다.”최시훈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정원이 송하나를 안고 현관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것까지 묵묵히 지켜볼 따름이었다.방금 그녀의 존재로 인해 미약하게나마 따스함이 감돌던 거실은 순식간에 모든 온기가 사라지고 늘 그렇듯 공허함과 차가움으로 되돌아갔다.탁자 위에 놓인 ‘버림받은’ 해장차는 김이 서서히 식어갔다.창가 쪽으로 다가가니 창밖의 짙은 어둠이 그의 곧은 실루엣을 따라 서늘하게 번져 나갔고 그 모습은 왠지 모를 고독마저 풍기고 있었다.이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꺼내 보니 비서한테 걸려온 전화였다.최시훈은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말해.”비서는 방금 조사한 정보를 보고했다.“확인 마쳤습니다, 국장님. 송 연구원님은 오늘 저녁 프로젝트팀의 진서영 부 연구원님과 다른 몇몇 여직원들과 함께 식사

  • 별이 되어 빛나리   제58화

    이강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깊게 드리웠다.그는 일을 처리할 때면 빠르고 단호함을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발목이 잡히는 상황을 가장 견디기 어려워했다.“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최소 석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윤태오가 무거운 어조로 한숨을 내쉬었다.“상대측이 철저히 준비해 온 모양입니다. 이 시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우리의 허를 찌르려는 의도일 수 있어요.”이강우는 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석 달이라...'그것은 명목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는 송하나와의 결혼생활이 최소 석 달은 더 유지되어야 한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57화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두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고요한 빛줄기 속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어쩐지 이 장면이 너무 눈부시게 보였던 이강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점심을 마친 후, 홍경자는 기운이 없어 안정인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 쉬었고 거실에는 이제 이강우와 송하나 단둘만이 남았다.송하나는 얼굴의 미소를 거두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할머니도 이제 퇴원하셨고 건강에도 큰 문제없으시니 저희 이제 이혼 절차를 진행하죠.”옥 단추를 만지작거리던 이강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 별이 되어 빛나리   제40화

    “할머니, 화내지 마세요.”송하나는 조심스럽게 홍경자의 등을 토닥였다.“의사 선생님께서 화내시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홍경자는 송하나의 손을 꼭 움켜쥐며 눈시울을 붉혔다.“하나야, 할머니가 미안하구나. 그때 내가 무리하게 너희를 억지로 맺어주지 않았더라면 너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할머니, 그건 전혀 할머니 탓이 아니에요.”송하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그냥... 강우 씨와의 인연이 다한 거뿐이에요. 저는 이제 다 내려놨어요.”송하나는 숟가락에 국을 떠서 조심스럽게 홍경자한테 먹여

  • 별이 되어 빛나리   제50화

    이강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금방 갈게.”전화를 끊고 그는 잠시 송하나를 응시했다.“약은 제때 발라.”송하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강우가 방을 나서자마자 바로 옆방에서 서유준이 모습을 드러냈다.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복도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했다.서유준이 1806호 문과 이강우를 번갈아 보며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이 대표님?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시죠?”이강우는 여유롭게 소매를 정리하며 천천히 답했다.“서 대표는 직원을 참 세심하게 보살피네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문 앞을 지키시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