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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김하이
월요일 오전.

송하나는 현진 바이오테크에 막 도착하자마자 윤태오의 전화를 받았다.

“송하나 씨, 대표님께서 수요일 오전에 시간이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날로 이혼 수속 예약했으니 제시간에 맞춰서 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송하나는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수요일까지 이틀 남았다. 이틀 뒤엔 드디어 이 억압적인 결혼 생활을 끝낼 수 있다.

“송하나 씨 맞으시죠?”

인사팀 직원이 그녀를 보자 안으로 안내했다.

“자리 배치는 이쪽이고요. 주요 업무는 신약 개발팀의 실험 진행과 자료 정리를 보조하는 거예요. 저희 회사는 최근 항암 표적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어요. 관련 자료는 이쪽에 있으니 먼저 살펴보도록 하세요.”

송하나가 지원한 직책은 신약 개발 보조 연구원이었다. 인사팀 직원은 두꺼운 서류 뭉치를 그녀에게 건넸다.

신약 개발은 길고 복잡한 과정이라 단기간에 업무에 적응하려면 프로젝트 상황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했다.

송하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끼니를 거르며 자료를 탐독했다. 중요한 부분에는 특별히 표시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견해도 덧붙였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다.

자료가 4분의 1이나 남아서 그녀는 야근하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사무실에는 그녀 혼자만 남아있었다.

송하나는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자신의 자리 옆에 서서 자료에 덧붙인 메모를 진지하게 읽고 있는 훤칠하고 준수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대표님.”

송하나가 정중하게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서유준은 고개를 들었다.

“이 자료들을 사흘 안에 다 읽어도 빠른 편인데 하루 만에 끝낸 건가요?”

“네... 대략적인 내용만 훑어본 정도예요. 세부적인 내용은 추가로 문헌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유준은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덮었다.

“아직 저녁 안 드셨죠? 같이 나가서 뭐 좀 먹을까요?”

“아닙니다, 대표님.”

송하나가 거절하려 했지만, 서유준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출근 첫날부터 이렇게 늦게까지 야근하면 사람들이 날 가혹한 고용주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내 명예를 위해서라도 함께 나가주시죠?”

서유준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그녀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송하나는 가방을 들고 앞장서 걸었고 서유준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아리따운 뒷모습을 보며 서유준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오늘 그는 창업가 잡지 인터뷰를 했었다.

회사 근처를 지나다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을 보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와 봤더니 야근하는 사람이 바로 송하나였다.

사실 그는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다.

다만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할 수만 있다면 한 번 더 먹어도 괜찮았다.

서유준은 직접 운전해서 송하나와 함께 한 이색적인 요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음식을 주문할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고추는 빼주시고 요리에 생강 넣지 마세요.”

송하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표님이 주문한 음식은 전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고추와 생강도 그녀가 피하는 식재료였다.

전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데 대표님이 어떻게 자신의 식습관을 알고 있는 걸까?

서유준은 혹여나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몸에 열이 많아서 매운 거랑 생강을 못 먹거든요. 혹시 좋아하시면 좀 더 자극적인 걸로 몇 가지 더 시킬게요.”

송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대로도 충분해요.”

어쩌면 그저 대표님과 우연히 입맛이 같았을 뿐이겠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취향을 알겠는가.

식사를 마친 후.

서유준은 한사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어찌 됐든 내 직원인데 밤늦게 혼자 집에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해. 내가 얼마나 냉담하고 무심한 대표로 보이겠어.”

서유준의 도덕적 압박에 송하나는 결국 다시 그의 차에 올랐다.

젊은 모델과 데이트 중이던 최로운이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재빨리 사진을 찍어 자신과 이강우, 심성빈만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강우야, 네 와이프 요즘 좀 수상한데?]

[마이바흐 S클래스라니, 돈이 꽤 들었을 텐데. 혹시 너한테서 원하는 걸 못 얻어서 다른 남자로 갈아탄 거 아니야?]

이강우는 막 수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킨 참이었다.

단톡방 메시지를 열어본 그는 사진 속 송하나가 낯선 남자의 외제 차에 타고 있는 걸 보더니 얼굴에 분노가 치솟았다.

어쩐지 예전에는 죽어도 이혼을 안 해주던 그녀가 이번에는 선뜻 요구하더라니.

딴 남자로 갈아탄 게 틀림없었다.

자신과의 결혼 존속 기간에 감히 이렇게 대놓고 딴 남자나 만나고 다니는 건 말 그대로 제 남편이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강우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었으나 한참을 뒤져도 그녀의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결혼 생활 4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송하나의 번호를 저장한 적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건 적은 더더욱 없었고...

예전에는 그녀가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전화를 걸어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지 조심스럽게 묻곤 했다.

하여 용건이 있어서 그녀를 찾을 때면 통화 기록만 뒤져봐도 금방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송하나가 그에게 연락이 끊긴 지 한 달이 돼갔다.

이강우는 결국 홍경자와의 대화 기록에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는 분노에 들끓은 상태로 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그 시각.

송하나는 서유준의 차 안에 있었다.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고 화면에 뜬 익숙한 번호를 본 그녀는 마음이 잠시 아득해졌다.

이강우의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녀는 특별히 다른 벨 소리로 설정해 두었었다.

예전에는 밤낮으로 이 벨 소리가 울리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매번 실망으로 끝났다.

그가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으니까.

언제나 서민경이나 그의 비서를 통해 연락해왔다.

이제 와서 휴대폰에 울리는 벨 소리를 듣고 있자니 송하나는 오히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멍하니 넋 놓고 있자 옆에 있던 서유준이 입을 열었다.

“왜 안 받아?”

송하나는 수신 거부를 누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번호예요. 잘못 걸려온 것 같아요.”

서유준은 곧장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정말 잘못 걸려온 전화라면 그녀의 눈빛에 왜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할까.

다만 그는 더 따져 묻지 않고 눈치껏 침묵을 지켰다.

호텔 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이강우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감히 그의 전화를 끊다니!

혹시 찔려서 못 받는 걸까?

이강우는 차량 모델명을 비서에게 문자로 보냈다.

[강현에 이 차량을 소유한 명단 전부 조사해. 사흘 안에 모든 정보를 내놓도록!]

대체 누가 죽을 용기를 내서 감히 내 와이프를 넘보는 것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했다.

아무리 송하나를 싫어한다 해도 그녀는 아직 명의상 이강우의 아내였다.

둘이 이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언제나 이강우의 여자였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이 일이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이강우는 대체 강현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차는 금세 아파트 단지 입구에 멈춰 섰다.

송하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냥 가던 길이니까 이렇게까지 틀 차릴 필요는 없어.”

송하나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 들어갔다.

서유준은 차 안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시동을 걸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강현에서 중간 정도의 수준이다.

그가 알기로 송하나의 남편은 사업가이고 집안이 손꼽히게 부유하므로 절대 이런 곳에 살 리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두 사람이 별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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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이 되어 빛나리   제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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