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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作者: CHU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31 23:00:42

"노예야, 그렇게 불러도 좋을지도? 근데 그런 말 들으면 좆이 터지는 거 아닌지 몰라."

"그, 혹시, 마조예요?"

"지금까진 아니었는데, 주인님한텐 그럴지도 몰라."

"왜 나한테만 그래."

"주인님한테만 반응하는걸요."

주하는 짧게 한숨을 쉬고 손을 저었다.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계속 이런 결론만 내고 있었다. 

"일단, 밖에서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왜? 그럼, 뭐라고 불러요? 주하님?"

"부르지 마요."

"치. 그럼 반말이라도 해주면 안 돼?"

저 덩치로 치가 웬 말이야. 그리고 삐지긴 뭘 삐져. 이딴 걸로. 31살이나 먹어놓고.

주하는 왠지 피곤해져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이름도 못 부르겠는데 반말이라고 당장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해내야 했다. 더 한 것도 해서 이 남자를 쫓아버릴 생각이니까.

"알았어."

8살이 많은 커다란 남자에게 반말을 해볼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비록 술 마시고 모르는 남자 대딸을 해줬어도,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이었으니까. 그런데 8살이나 적은 조그마한 여자에게 반말을 들은 남자는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더 활짝 웃고 있었다.

"우선 확인했으니까, 오늘은 가."

"아니, 나 다 벗겨서 확인해 놓고 그냥 이대로 가라고? 사람을 이렇게 수치스럽게 만들어놓고?"

"수치스러워하지도 않아놓고 무슨 소리야. 뭔 노예가 이렇게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

주하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분명 잘생긴 얼굴에 약한 게 분명한데, 태도가 심히 심드렁했다. 도혁은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긴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했다. 

"어, 그리고 연락하지 마. 찾아오는 건 더 안되고."

"그게 무슨 방치야, 주인님! 언제 연락해 줄 건데요?"

"3일 안에."

도혁은 주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진짜로 말을 지킬지 확인해 보려고. 물론 어차피 3일 동안 연락이 없으면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긴 했다. 

"연락 없으면 다시 학교 찾아갈 거예요."

"알았어. 알았다고. 주인인지 뭔지 해준다고 했잖아. 사람 말 좀 믿어, 진짜."

주하는 귀찮은 새를 쫓듯 또 손을 휘휘 저었다. 아. 진짜. 오주하. 왜 이렇게 몸이 반응하는 거지? 도혁은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다. 그냥 그랬다. 생각해 보면 이틀 전에 술에 취해서 자기 성기를 흔들 때도 심드렁한 얼굴 그 자체였는데. 그게 좋았던 거면, 진짜 마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긴 했다.

"저 쫓아내고 어디 가시려고요?"

"집에. 피곤해서."

"모셔다드릴까요?"

주하는 이틀 전에 봤던 도혁의 차를 떠올렸다. 빨간색 스포츠카. 그것도 엄청나게 비싸고, 대체 무슨 짓을 해놨는지 굉음을 내는 그것. 이런 싸구려 모텔들이 즐비한 거리에는 절대 안 지나갈 것 같은 물건이었다.

"아니. 버스 타고 갈래."

"그럼 택시라도. 그거라도 하게 해주라, 진짜."

아니, 가는 사람이 걷겠다는데 뭘 저런 거로 우기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더 거절하기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피곤했다. 주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니까 이 남자 진짜... 조폭... 그런거 맞는 거겠지? 주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의 목뒤를 쳐다보았다. 이건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양심 없는 일 같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가 부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도혁은 정말 어이없게도 그녀의 주소를 묻지도 않고 입력했다. 이래 놓고 뭘 자영업 같은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무튼 지금은 3일 동안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 남자를 떼어낼 방법을.

-

"돈 빌려달라고 해. 그거면 보통 다 떨어져나가."

"......"

주하는 머릿속으로 도혁을 떠올려보았다. 누가 봐도 돈 많이 빌려주고 다녔을 것 같은 남자를. 빌려달라고 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빌려주면서 매일 독촉 전화를 할 것 같이 생긴 그 남자를. 혜진의 말대로 '보통'의 사람이라면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보통'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다. 

"보통 1~2천만 빌려달라고 해도 도망가거든? 근데 좀 지독해 보이면 한 1억 불러."

혜진은 주하의 표정을 읽었는지 다시 덧붙였다. 그녀는 혜진의 말을 들으며 자연스레 빨간색 스포츠카를 떠올렸다. 그 남자라면 1억 같은 거 분명히 껌값처럼 쓸 것 같았다.

더 지독하게 독촉 전화를 하겠네. 이자가 하루에도 수십만 원, 수백만 원씩 늘어날 것이 분명하고. 냉큼 빌려주면서 비실비실 웃기나 하겠지. 빚 독촉도 그런 얼굴로 하려나.

그런 생각만이 이어졌다. 아무리 금액이 많아져도 그를 떼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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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5.

    주하가 보낸 건 어느 번화가의 커다란 쇼핑몰이었다. 서울 한복판, 주말, 점심시간 즈음. 시간이 시간인지라 가는 내내 차가 막혀서 도혁은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차를 버리고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주차하는 동안에도 시간을 한참 버릴 것 같아서, 그는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쇼핑몰 근처에 사람을 대기를 시켰다. 도착하면 주차를 맡길 생각으로.쇼핑몰에 있나? 아니, 그냥 심부름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심부름하고 나면 얼굴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더라도 뭐 어때.도혁은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서면 어김없이 또 주하의 생각을 했다. 심장뿐만 아니라 손등의 맥박마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떨려서. 누가 보면 2년은 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줄 알았을 테다.그는 기나긴 운전을 끝낸 뒤 쇼핑몰 근처 갓길에 대충 차를 대고, 다가온 부하에게 차키를 던졌다. 그리곤 쇼핑몰 안으로 급하게 들어섰다. 하지만 당장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다음 명령이 없었기에. 그가 얌전히 그녀에게서 다시 문자가 오길 기다린 지 5분이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찾아도 말 걸지 마. 10걸음 뒤에서만 봐. ]도혁은 고개를 휙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7층 높이의 넓디넓은 쇼핑몰. 지하까지 따지면 얼마나 넓은지 다 가늠도 되질 않는, 주말의 복잡한 공간이었다. 도혁은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고 이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말을 걸 수는 없어도 우선 찾으면 얼굴은 볼 수 있다는 뜻이니까. 잠깐이라도 스친다면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얼마든지 이 넓은 쇼핑몰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는 제법 신중하게 층별 안내도를 한 번 훑어보았다. 주하가 갈만한 곳을 예측해 보는 건 딱히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와 숨바꼭질을 하겠다고 전혀 관심이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낼 사람이 아니었으니까.도혁이 1층에서 잠시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4.

    도혁은 고민도 없이 홀린 듯,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주하를 생각하며 발기해 본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자위를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거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눈을 그대로 감은 채 주하와의 섹스를 생각했다. 그녀는 최근 그의 위에서 웃고 있을 때가 많았다. 심드렁하게 손을 흔들어대던 때와는 달리. 그와 섹스하는 걸 즐기는 얼굴이었다. 특히 도혁이 정신을 못 차릴 때면, 그녀는 장난스레 웃곤 했다. 도혁은 그 얼굴이 정말 좋았다. 순간적으로 서있던 페니스가 꿈틀 반응을 했다. 주하의 웃는 낯만 상상해도 이랬다. 그래서, 점점 더 누가 박느니 하는 문제는 사실 상관이 없었다. 물론 안 박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하아..."오주하. 그 이름만 떠올려도 몸이 달았다. 미쳐도 단단히 미쳐선. 사실 미친 게 몸만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그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걸 다 인정하기에는 따라가기가 벅찼다. 왜냐하면 주하와 하는 모든 것이 전부 다 처음이어서.그는 결국 사정하지 않고 손을 뗐다. 갑자기 사정하고 싶은 기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하에 대한 갈증을 이런 식으로 풀고 싶지 않았다. 도혁은 바지 속에서 손을 빼내고 심호흡을 했다. 차라리 잠들자고, 또 생각하면서.-"야, 누가 본채 좀 가 봐. 보스 아직 안 나오셨다.""주무시거나 신문 읽으시겠죠.""이 시간까지 안 나오실 분이 아닌데?"도혁의 부하들은 시계를 보며 심각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도혁은 보통 아침 6시, 늦어도 6시 반에는 일어나는 편이었다. 식사도 얼마나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지 식당에서 아침에 얼굴을 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혁은 늦잠 같은 것은 잘 자지 않았다. 그들은 한참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다가 끝내 본채로 가지 않기로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3.

    도혁이 그러고 있을 때, 주하 또한 일상에 거의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매일 자신을 데리러 오던 존재의 부재는 생각보다 너무 큰 것이었다. 별 말 주고받지 않던 문자도, 없으니 허전했다. 벌을 준다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집중이 안 되어서 멍하니 있거나 도혁과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주하야! 무슨 생각해?""어? 아니. 왜? 뭐 줄까?"누가 부르는 것도 못 듣고 멍하니 있던 주하는 어깨가 흔들리고 나서야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결국 7시도 되지 않아 학교를 나섰다. 학교에 더 있어봤자 과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만히 걷고 있자니 또 도혁이 생각이 나서 주하는 한숨을 쉬었다. 못 이기는 척 연락할 생각도 없는 도혁을 보니 기특하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누가 그 남자에게 인내심이 없다고 했지? 주하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걸었다.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연락을 못하는 건 도혁이지 주하는 아니니까. 일방적으로 혼자 말해도 되고, 원한다면 답장을 하라는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훈육과 자존심 사이에 있는 무언가였다. 그녀는 걸으면서도 혹시 도혁이 근처에 있진 않을까 괜히 둘러보다가,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후다닥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선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시켰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볼 생각이었다. 늘 학교가 아니면 도혁과 있었기에 혼자 시간을 보낸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하지만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시킨 음식도 맛이 없었고, 영화도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심부름을 핑계로 도혁을 불러볼까 싶은 생각만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하는 그냥 일찍 자기로 했다. 그녀는 그제야 핸드폰을 들고서 도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찍 잘 거야. 수고해. ]침대에 누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2.

    [ 집에 와서 이제 잘 거야. 답장하지 마. ]새벽 1시, 결국 차키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그런 문자가 왔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게 벌이라더니 답장도 못하게 문자가 와서 도혁은 한참 동안 그 문자를 읽기만 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라고 하니까 다행인데 정말 손이 근질거렸다. 거창하게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잘 자라고, 평소처럼 한마디 하고 싶은 것뿐. 하지만 그는 참았다. 늘 그녀의 말을 듣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다음 날, 토요일 아침부터 저기압인 도혁 때문에 기찬은 몸을 사리고 있었다. 도혁은 최근 들어 가끔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오래가는 일은 드물었다. 평소엔 오히려 기분이 좋은 날이 더 많았고. 이렇게나 이성 문제인 게 티가 나는데 다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의아할 지경이었다. 물론 그만큼이나 혼자인 기간이 길었던 도혁이고, 이성과 관련된 문제를 내보인 적은 아예 없었으니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긴 했지만. 그냥 '기분이 안 좋으시네.'하고 의문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기찬만 속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자신이 말을 걸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도혁을 보다가 기찬은 이내 보고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더 말해봐야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할 것이 뻔했다.싸웠나? 싸울 일이 뭐가 있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기세던데. 혼난 모양이네.기찬은 그런 결론을 혼자 내렸다. 도혁이 주하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가 화라곤 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내면 너무 무서운 사람이니까 그랬다. 주하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가능했다. 화나는 일이 있었다면 오히려 숨기려고 노력할 것이 뻔했다. 물론, 지금의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1.

    '봤어요? 어제 잘 어울리길래.'"누가 마음대로 이런 걸 보내라고 했어?"명품이니 뭐니 모르는 사람이 봐도 유명한 브랜드의 로고였다. 그녀는 쇼핑백을 열자마자 그게 어제 자신이 입어본 옷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제 입을 때만 해도 그런 옷인지 몰랐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곳에서 명품이 아닌 옷을 입어볼 수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그런 곳에 안 가봤어도, 그 정도는 생각했어야 했다.'마음에 안 들어요?'"그런 게 문제가 아니잖아."주하의 목소리가 제법 차갑게 나갔는지 도혁에게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하는 도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연결해서 쏘아붙였다."내가 산다고 한 적 있어? 왜 마음대로 샀냐고 묻는 거잖아."'...나도, 선물 하나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겨우 꺼낸 말에 서운함이 묻어있었다. 그 정도 사이도 안되는 거냐고 묻고 있는 거였다. 어쩌면 조금은 상처받은 것 같기도 한 목소리에 주하는 순간 움찔 떨었다. 그야말로 선물을 한 사람에게 다짜고짜 너무 화를 낸 것 같았다."선물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애기 마음대로 결정해서 하지 말라는 거야."도혁이 백화점 VIP든,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되든, 주하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로 생각했던 거니까. 하지만 그가 제멋대로 그 돈을 자신에게 쓰는 건 싫었다. 돈이라는 건 곧 권력과도 같은 거니까. 선물이라는 이유로 결정권을 잃고 싶지 않았다."나한텐 그렇게 하지 마. 선물은 받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데 이건 통보잖아."나와의 관계에서는 그럴 수 없는 거라고, 주하는 못 박았다.'..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50.

    "이제-"그만 구경하고 나가자고 하려는데, 도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으로 되어있었지만 둘밖에 없는 조용한 공간이라 핸드폰의 소리가 아주 잘 들렸던 탓이었다. 도혁은 '잠시만요.'하고 주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나가서 전화 좀 받고 올게요.""여기서 받아."주하는 물끄러미 그를 보며 말했다. 도혁은 순간 멈칫거렸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도 바로 알아차렸다.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는 거였다. 그건 기쁘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녀가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실수를 할까 봐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주하는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얼굴에 항상 걸려있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왜."'아, 대표님.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뭔데."주하는 '아니', '지금' 같은 말로 짧게 짧게 대답하는 도혁을 관찰했다. 그가 평소에 어떤 목소리로 대화하는지는, 사실 과 동기인 소정과 있을 때 충분히 알게 되었지만 이런 모습은 또 색달랐다. 그는 '알아서 해.'하고 말하다가도, 주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웃음이었다. 늘 그렇듯, 그녀를 방심시키려는 그런 웃음. 주하는 마주 웃지 못하고 커피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괜히 여기서 전화를 받으라고 한 것 같기도 해서. 그는 언제나 저에게 얌전한 짐승인데 이럴 때만 맹수 같아 보이는 게 위험했으니까. 물론 잡아먹힐까 봐 위험하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잡아먹고 싶어질 것 같아서 위험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몇 번의 섹스가 이렇게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는지도 몰랐고. 왜 얌전할 때가 아니라 저렇게 보일 때 더 덮치고 싶은지도 궁금했다."지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4.

    도혁은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저장도 못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아니라지만, 아침이 되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실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받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대체 그 여자랑 뭘 하겠다고. 짧은 해프닝으로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어제를 기점으로 성욕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형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됩니까?""왜."그는 곧장 씻으러 가려다가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3.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그럴 리가."괜히 한 번 도발해 본 거였는데 태연한 척 받아치는 목소리가 사실 조금 멋은 없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그래요?"그 말이 마치 엄청난 도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버틸지 보겠다는 듯이. 도혁은 조금 오기가 생겼지만, 술이 조금 들어간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성생활과는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2.

    "뭐, 근처에도 방은 많으니까요."이 근처엔 널린 게 모텔방이었다. 도혁은 주하의 말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날 때부터 도련님이라 이런 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둘이 택시 타고 호텔을 찾아가는 건 좀 웃긴 것 같기도 했다."흠.""손으로만 해줄 테니까 가려면 가고요.""뭐?"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저보다 2배는 큰 남자를 보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싶다가도, 무슨 자신감인지 궁금하기도 했

  • 보스의 은밀한 비밀   001.

    주하는 개강 첫날부터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5학년 2학기. 이제 졸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졸업 논문만 쓰고 나면 길었던 학교생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나 술이 당기는지. 학교를 다니는 4년 반 동안 그렇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다. 건축학과는 제법 술을 많이 마시는 이미지가 있었는데도 주하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마실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날 좀 보기 드물게 취해있었다. 길에서 커다란 남자와 부딪혔을 때, 별생각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과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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