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샘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진정하세요. 저희는 그저 도와드리려던 것뿐이에요.”여자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그렇게 쉽게 웃으면 누구나 당신한테 친절하게 대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그 바보 같은 미소 좀 집어넣고, 당장 물러서요.”샘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더는 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았다.여자는 개를 품에 안아 올렸다. 모모가 작게 낑낑거리자 그녀는 아이를 달래듯 개를 품에 바짝 끌어안았다.“파파 샘…… 저 여자 무서워요.”마야가 작게 속삭였다.샘은 아이를 조용히 시키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 뒤로 살짝 물러나게 했다.여자는 마야의 말을 들었는지 아이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시선이 마야에게 향했다.“저 애한테 예의부터 가르치는 게 좋겠네요.”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마야는 샘의 다리에 바짝 붙었다. 샘은 움직이지 않은 채 여자가 산책로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무릎을 꿇고 마야와 눈높이를 맞췄다.“괜찮아?”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여자 못됐어요.”“무서웠던 거야. 자기 강아지가 다쳤으니까. 사람들은 겁이 나면 가끔 못된 말을 하기도 하거든.”마야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그럼 할아버지도 무서워서 못되게 굴었던 거예요?”샘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이를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응. 아마 그랬을 거야.”마야는 한동안 조용히 걷다가 입을 열었다.“저는 그 여자가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그럼 무서워하지 마.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야.”마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샘의 손을 잡았다.“이제 돌아가도 돼요? 아빠 보고 싶어요.”“물론이지.”두 사람은 에어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월요일 아침, 따스한 햇살이 도시를 비추었다.호라이즌 글로벌의 사옥은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우뚝 서 있었다.8층 규모로 그리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사로잡기에
점심 식사를 함께한 날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블랙우드 저택에는 새로운 일상이 자리 잡았다. 이제 아침 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식탁 상석에는 윌리엄이 앉았고, 그의 오른쪽에는 릴리, 왼쪽에는 밴스가 자리했다. 릴리 옆에는 마야가, 밴스 옆에는 네리사가 앉았다.식탁을 감돌던 침묵은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저 말이 없는 평범한 침묵이었다.밴스와 윌리엄은 여전히 형식적인 인사 외에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윌리엄은 네리사의 존재를 여전히 외면했다. 밴스의 아내로는 인정했지만, 며느리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대답 대신 낮게 콧소리를 내거나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그럼에도 마야가 찾아오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자신의 방에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림을 보여 주는 것도 허락했다.자존심과 상처로 가득한 어른들과 새로운 관계를 쌓는 것보다 순수한 아이와 가까워지는 편이 훨씬 쉬웠다. 마야는 윌리엄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사랑을 요구하지도, 사과를 바라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진 사랑을 그저 건네줄 뿐이었다.그날 이후 저택에는 평화가 찾아왔다.윌리엄의 성격도 아주 조금은 누그러졌다. 정말 아주 조금이었지만, 분명한 변화였다.그리고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마야는 샘이 도착하면 선물을 주고 싶다고 고집했다. 샘이 호라이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도시로 올라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가 가족을 떠나 낯선 곳에서 외롭게 지내지 않도록 고향을 떠올릴 만한 선물을 골라 주고 싶어 했다.마야와 밴스는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 중심가의 상점을 돌아다녔다. 마야는 한 시간이나 들여 샘에게 꼭 어울리는 선물을 고르는 데 열중했다.밴스도 딸을 도왔다. 문제는 두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는 것이었다.네리사는 상점 한쪽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 남편과 딸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작은 산호초가 들어 있
마야는 복도에 서서 작은 종이 한 장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그녀는 그림을 정성껏 그렸다. 한쪽에는 할머니 릴리, 다른 쪽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자신을 그려 넣었다. 그림의 가장 끝에는 할아버지 윌리엄도 있었다. 마야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를 그려 주었다.아무에게도 자신이 이곳에 오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을 들고 조용히 걸어왔을 뿐이었다.문은 닫혀 있었다. 마야는 조심스럽게 노크했다.“들어오렴.”이번에는 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야가 문을 밀어 열었다. 긴장한 탓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녀의 시선은 윌리엄과 릴리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갔다.윌리엄은 창가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눈가에는 여전히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그는 문간에 선 마야를 바라보다 그대로 굳어 버렸다.어제 자신이 그렇게 대했는데도, 이 아이는 또다시 찾아왔다. 윌리엄의 가슴 한구석에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희미한 희망이 피어났다.마야는 방 안으로 들어와 손에 든 그림을 내밀었다.“할아버지, 아프셔서 안타까워요. 제가 할아버지 드리려고 그림을 그렸어요.”윌리엄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크레용으로 그린 사람들, 환하게 웃는 얼굴들.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 이유가 전혀 없는 아이가 그려 준 자신의 얼굴까지.“왜……?”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할아버지는 제 할아버지잖아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윌리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엄마가 아빠랑 출근하기 전에 그러셨어요. 할아버지가 사랑받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금방 나으실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침대 곁에 서 있던 릴리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마야는 윌리엄의 의자 옆에 놓인 탁자로 다가가 그림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할아버지가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어요.”그 말을 남긴 마야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윌리엄은 한동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침 햇살은 희미하고 차가웠다.밴스는 아버지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한 탓에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턱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양옆으로 내린 두 손은 주먹을 꽉 쥔 채였다. 그는 분노와 고통을 억누르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문을 한 번 두드렸다.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쉰 듯 지친 목소리였다.밴스는 문을 열었다.윌리엄은 창가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평소 아스테라 제국을 이끄는 수장다운 날카로운 인상을 감춰 주는 편안한 셔츠 차림이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밴스는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과 그늘진 눈가를 살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그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앉지는 않았다.“아버지.”예의를 지키려 애썼지만, 목소리 끝에는 날 선 기운이 묻어 있었다.윌리엄은 아들을 바라보지 않았다.“무슨 일이냐?”밴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제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아시잖아요.”윌리엄의 턱이 굳었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밴스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목소리는 차분하게 억눌렀지만, 그 아래에는 단단한 강철 같은 분노가 깔려 있었다.“제 딸을 다치게 하셨습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유리잔까지 던지셨죠.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입니다.”윌리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아이에게 던진 게 아니다. 바닥에 던졌어.”“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마야는 겁에 질렸습니다. 울면서 할머니에게 달려갔고, 자기가 나쁜 아이냐고 물었어요.”밴스의 목소리가 끝에서 갈라졌다.“할아버지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윌리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마야는 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했습니다.” 밴스가 말을 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계신 걸 보고 걱정해서 다가간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유리잔을 내던지셨습니다.”“나는 그런 의도가…….”“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릴리는 마야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가느다란 팔로 작고 떨리는 몸을 감싸 안자, 아이의 흐느낌이 가슴에 묻혀 희미하게 울렸다. 마야는 작은 주먹으로 릴리의 블라우스를 움켜쥐고 있었다.“쉬이, 쉬이. 괜찮아, 아가. 이제 안전하단다.”마야는 할머니의 얼굴을 올려다볼 수 있을 만큼만 몸을 뒤로 뺐다. 얼굴은 울음으로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붓고 충혈되어 있었다. 뺨에는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렸다.“할머니…… 왜…… 왜 할아버지는 저를 미워해요?”릴리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그녀는 마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회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마야, 잘 들어 보렴. 할아버지는 널 미워하지 않으셔.”“그런데 왜 저한테 소리쳤어요? 왜 유리잔을 던졌어요?”릴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직은 모든 진실을 마야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미안하구나, 아가. 네가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할머니가 막아 줬어야 했는데…….”마야는 잠시 말이 없었다.“할아버지도 언젠가는 저한테 잘해 주실까요?”릴리의 목이 조여 왔다. 윌리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자존심과 고집,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진 차가운 태도까지.“그건 할머니도 모르겠구나.” 릴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너에게 다정할 거야. 아빠도, 엄마도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아껴 줄 거란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잊지 마렴.”마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느낌은 조금씩 잦아들고, 이따금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남았다.“우리 안으로 들어가도 돼요?” 마야가 물었다. “얼굴을 씻고 싶어요.”릴리는 작지만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그럼, 물론이지.”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야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함께 저택 안으로 걸어갔다.한 시간쯤 지나자 마야는 주방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우유 한 잔이 놓여 있었고, 얼굴은 깨끗하게 씻었지만 눈가에는 아직 부기가 남아 있었다. 릴리는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마야는 슬슬 지루해지고 있었다.한 시간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성도 그리고, 용도 그리고, 보라색 물고기까지 그렸지만 이제는 손이 아팠다. 릴리는 점심 준비를 확인하고 윌리엄의 몸을 돌보는 직원들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며 저택 안으로 들어간 참이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야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마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은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 피어 있었고, 돌로 만든 천사가 서 있는 분수도 있었다. 저택 옆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굽이굽이 휘어져 어디론가 이어졌다.마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그리고 걷기 시작했다.저택은 마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양옆에는 초상화와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방들로 통하는 문이 줄지어 있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천장은 높았다. 작은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마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가 함께 그려진 초상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그림 속 남자를 바라보았다. 회색 눈동자와 엄격한 얼굴.할아버지.마야는 생각했다.아프셔서 쉬고 계신다고 했지.아이는 다시 탐험을 이어 가려고 몸을 돌렸다.바로 그때였다.낮게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도 이어졌다. 무언가 나무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까지 났다.마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복도 끝을 바라보니 문 하나가 살짝 열려 있었다. 소리는 그 안에서 들려왔다.마야는 천천히, 소리를 죽이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그리고 벌어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윌리엄 블랙우드가 바닥에 있었다.그는 무릎을 꿇은 채 한 손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움켜쥐고 있었고, 다른 손은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숨을 몰아쉬느라 어깨가 거칠게 들썩였다.방 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마야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윌리엄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