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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첫날밤의 선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8 15:41:33

결혼식 날은 맑았다.

강진그룹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었다. 호텔 그랜드볼룸은 정재계 인사들로 가득했고, 입구에는 화환이 끝도 없이 늘어섰다.

7년 전 아버지의 빈소에 놓였던 화환은 세 개였다. 서하는 그 숫자를 세다 그만두었다.

"신부 입장."

문이 열렸다.

원래는 신부의 아버지가 서야 할 자리였다. 강씨 집안에서는 사람을 붙여 주겠다고 했다. 강진그룹 임원 중 누구든 골라도 좋다고.

서하는 거절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걸었다. 하얀 드레스 자락을 끌며, 버진로드 위를 한 걸음씩.

하객들이 수군거렸다. 신부 혼자 입장이라니. 아버지가 없다던데.

어머니도 몸이 편찮으셔서 못 오셨다며. 그래도 친척 어른이라도 세우지.

신부 측 혼주석은 비어 있었다.

엄마를 부를 수 없었다. 강태식과 차성훈은 한정숙의 얼굴을 안다. 엄마가 저 자리에 앉는 순간, 모든 게 끝날 테니까.

서하는 앞만 보았다. 수백 개의 시선 중 어느 것도 7년 전 빗속의 시선보다 차갑지 않았다.

그때였다.

버진로드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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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1화. 말하지 못한 이름

    "가지 마요."서하가 코트를 걸치는 걸 보고 도현이 말했다."새벽 1시 반이에요. 그리고 차민재 변호사 아버지가…….""알아요."서하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찍어 둔 명단 사진이 떠 있었다. 마지막 줄, 차성훈."그래서 가는 거예요. 선배가 뭘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도현은 한참 서하를 보다가, 차 키를 집어 들었다."데려다줄게요. 차에서 기다릴 거예요.""당신이 오면 선배가…….""안 보이는 데 세울게요. 7년 동안 안 보이게 지켜보는 건 꽤 잘했어요."서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평창동 언덕 아래, 불 켜진 편의점 앞.민재는 파라솔 의자에 앉아 캔커피를 쥐고 있었다. 서하를 보자 일어서려다 다시 앉았다. 며칠 사이에 얼굴이 몹시 수척해져 있었다."기사 봤어. 연회장 일."민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강도현이 무대에서 네 이름을 밝혔다며. 괜찮아?""응. 오히려 잘됐어.""……그래."민재가 캔을 만지작거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삼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선배, 할 얘기가 뭔데.""서하야."민재가 고개를 들었다."나, 잘못한 것 같아."서하의 손끝이 코트 주머니 속에서 굳었다."그 CCTV 사진. 너한테 보여 주기 전에 아버지한테 먼저 물어봤어. 이 사진 속 남자가 누군지 아시냐고. 아버지가 모르신다길래, 내가 말했어. 강도현 같다고. 네가 결혼한 사람이라고."민재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그 순간 아버지 얼굴이 하얗게 질리셨어. 사진을 가져가시더니, 이 일에서 손 떼라고 하셨어. 다시는 서하건설 얘기 꺼내지 말라고.""…….""그 뒤로 아버지가 이상해. 나를 피하셔. 그리고 어젯밤에, 서재에서 통화하시는 걸 들었어."민재가 서하를 보았다.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회장님'이라고 하셨어. 그 사진 얘기를 하시면서."서하는 숨을 들이마셨다."서하야. 우리 아버지가 강진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아. 내가 확인해 볼게. 아버지 사무실 파일을 전부 뒤져서라도…….""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10화. 아버지의 U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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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8화. 금슬 좋은 부부의 가면

    사진 속 청년은 스물네 살이었다.지금보다 앳되고 마른 얼굴이었지만, 서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침마다 식탁 아래로 발끝을 건드리는 남자. 커튼 뒤에서 손을 잡아 주던 남자."선배, 이거 어디서 났다고 했지?""말했잖아. 아버지 사무실에서…….""7년 전 CCTV를 왜 선배 아버지가 갖고 계셨는데?"민재가 잠깐 말을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자문하던 사건 자료에 섞여 있었어. 아버지도 기억 못 하시더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서하야."민재가 서하의 어깨를 잡았다."강도현은 너한테 이 얘기 한 적 있어? 너희 아버지를 만났다고. 뭔가를 받았다고."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없었다. 단 한 번도.그날 밤, 별채 2층.도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서하는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쿠션 벽 위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도현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이거, 당신이죠?""…….""7년 전, 아버지가 쓰러진 날. 쓰러지기 40분 전이에요. 아버지가 당신한테 뭘 건네고 있어요."서하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 너무 차분해서, 스스로도 무서웠다."두 번째 계약 4조. 갑도 을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기억하죠?""기억해요.""그럼 말해요. 아버지가 당신한테 뭘 줬어요? 그날 무슨 얘기를 했어요?"도현은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오래, 아주 오래.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대답하지 않을게요."서하가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소리였다."그래서, 거짓말은 안 했다는 거예요?""…….""라운지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당신은 거짓말은 한 번도 안 했네요.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대단해요. 계약 조항을 이렇게 잘 지키는 사람은 처음 봐요.""서하 씨.""두 번째 계약서에 사인할 때, 당신 눈빛이 흔들렸어요. 난 그게 뭔지 몰랐어요. 이제 알겠네요."서하는 일어섰다. 베개 하나를 집어 들고, 침대 아래 바닥에 내려놓았다."2조 때문에 같은 방은 쓸게요.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7화. 두 번째 계약

    서하는 쿠션 벽 위에 멈춰 있는 그 손을 오래 바라보았다.원수의 아들. 원수의 집. 원수의 피가 흐르는 손.그런데 이 손은 오늘 밤 세 번이나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 금고 앞에서, 커튼 뒤에서, 그리고 이름을 말하던 순간에.서하는 그 손을 잡았다."조건이 있어요.""역시."도현이 웃었다."말해 봐요. 이번엔 을이 조항 추가할 차례니까."다음 날 아침, 서하는 계약서 뒷면에 새로 조항을 적었다.[두 번째 계약] [제1조. 목표는 강태식이다.] [제2조. 얻은 정보는 모두 공유한다.] [제3조. 상대의 복수를 방해하지 않는다.]그리고 펜을 잠깐 멈췄다가, 마지막 줄을 또박또박 적었다.[제4조. 갑도 을 앞에서 거짓말하지 않는다.]도현이 그 문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싫어요?""아뇨."도현이 펜을 받아 들었다."대신 대답하지 않을 권리는 그대로죠?""……그건 그대로예요.""그럼 좋아요."그는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망설임 없는 필체였다. 서하는 그 이름을 보며 생각했다.방금 그 흔들림은 뭐였을까.본채 식당의 아침 식탁은 조용했다."잠은 잘 잤느냐, 새아기."강 회장이 신문을 넘기며 물었다. 서하는 수저를 내려놓고 웃었다."네, 아버님. 푹 잤어요.""그래. 첫날이라 낯설었을 텐데."강 회장도 웃었다. 새벽 3시에 서재에서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식탁 맞은편에서 유라가 서하를 보고 있었다. 서하의 눈 밑에 옅게 내려앉은 그늘을, 유라는 오래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강진건설 창립 30주년이지?"강 회장이 재현을 보았다."본사에서 기념 파티를 한다고 들었다. 도현이 내외도 참석하거라. 새아기 인사도 시킬 겸."재현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도현은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그리고 식탁 아래에서, 서하의 발끝을 가볍게 톡 건드렸다.기회라는 뜻이었다."강진건설 신도시 수주. 기억나죠?"그날 밤, 별채 2층.

  • 복수하려고 결혼했는데 남편이 다 알고 있었다.   제6화. 처음부터 알았어요

    "찾는 게 그거예요? 블루하버 캐피탈."스탠드 불빛이 도현의 얼굴을 반쯤만 비추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어둠에 잠겨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서하는 파란 서류철을 쥔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머릿속에서 수십 개의 변명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잠이 안 와서 책을 찾으러 왔다고. 화장실을 찾다 길을 잃었다고. 금고 문이 열려 있어서 닫으려던 것뿐이라고."……잠이 안 와서요. 책을 좀 빌리려고…….""5조."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화가 난 것도, 비웃는 것도 아니었다.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권리는 있었다."3조로 할게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그래요."도현이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요. 갑은 대답하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말할 권리도 있으니까."그가 책상을 돌아 서하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쿨럭, 쿨럭.복도 끝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문으로 향했다. 슬리퍼가 대리석 바닥을 끄는 소리.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 이 집에서 새벽 3시에 저렇게 걷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강태식.서하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금고는 열려 있었다. 그림 액자도 열려 있었다. 손에는 대외비 서류가 들려 있었다.도현의 움직임은 빨랐다.그는 서하의 손에서 서류철을 낚아채 금고 안에 던져 넣고, 금고 문을 닫고, 산수화 액자를 벽으로 밀어 넣었다. 딸깍, 스탠드 불이 꺼졌다. 모든 것이 3초 안에 끝났다.그리고 그는 서하의 손목을 잡아 창가로 끌었다. 바닥까지 늘어진 두꺼운 벨벳 커튼 뒤, 창틀과 벽 사이의 좁은 틈.두 사람이 들어서기엔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도현이 서하를 벽에 붙이듯 밀어 넣고, 그 앞을 자기 몸으로 막아섰다. 커튼이 두 사람을 감싸며 내려앉았다.끼익.서재 문이 열렸다.서하는 숨을 참았다. 도현의 가슴이 코앞에 있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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