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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수산월
시랑 부인은 부군을 따라 경성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것이 없었다.

조정의 일은 시랑이 처리했지만, 조정 밖의 일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특히 경성 귀족 사회의 비밀은, 공식적으로는 입밖에 올릴 수 없으나, 사적으로 은밀히 퍼지는 이야기를 뜻한다.

시랑 부인은 아예 자주색 옷의 부인에게 마차에 함께 타자고 청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어째서 서른이 넘도록 독신이신가요? 그 댁 아가씨는 수양딸인가요?”

시랑 부인은 말을 마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급히 입을 가리며 나지막이 외쳤다.

“혹 나리께서 남색은 아니시겠죠?”

마차에 올라타자 자주색 옷의 부인은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육 추밀사께서는 중요한 기밀을 다루시고 공무에 매우 근면하시며, 그 심성과 행동은 위엄 있는 분입니다.”

시랑 부인은 의아했다.

“권문세가 출신으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출세하셨고, 별다른 특이한 취향도 없으신데, 어째서 안채를 비우시는 겁니까? 첩을 두지 않더라도, 정신부인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아랫것들을 통솔하고 가규를 바로잡으며, 살림을 꾸려나가지요.”

“그렇지요, 사대부 자제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명문가 자제들은 일찍이 혼약을 맺지요. 열네다섯에 부인을 맞는 것도 예사고, 첩 하나 두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게요.”

자주색 옷의 부인이 이어 말했다.

“젊으셨을 때 부인을 맞이했거나 첩을 두셨다면 지금쯤 자식들도 꽤 컸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자주색 옷의 부인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육 추밀사께서 스무 살이 채 안 되던 해에, 한창 혈기 왕성하던 시절, 집안에서 혼사를 정해주었습니다. 여자 쪽 집안도 괜찮았는데, 혼사가 정해진 지 얼마 안 되어, 죽었습니다.”

“죽었다고요?”

시랑 부인은 한숨을 쉬었다.

“박복한 명을 지녔군요. 살았더라면 얼마나 존귀했을까요.”

자주색 옷의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제 말을 계속 들어보십시오. 명이 박한 것이 아니라, 아예 살지 못했을 겁니다.”

마차는 고요한 밤길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아갔고, 마차 안에서는 속삭이는 소리가 오갔다.

“그 여자가 죽자, 혼사는 파투가 났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부인처럼, 그 여인이 명이 짧아 병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만 여겼습니다. 일 년 후, 육 추밀사에게 혼담이 오갔습니다.”

자주색 옷의 부인은 말을 덧붙였다.

“육 추밀사는 젊고 뛰어난 인재에, 세습된 명문 배경까지 있으니, 문벌에 맞는 상대를 찾기는 쉬웠습니다.”

시랑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주색 옷의 부인이 말했다.

“일 년이 후, 그 댁 노부인, 즉 육 추밀사의 어머니께서 봐둔 가문이 있었는데, 두 집안의 문벌이 대등하여 잘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시집오기 직전에 그 아가씨가...”

시랑 부인이 놀라 소리쳤다.

“또 죽었나요?”

자주색 옷의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육 추밀사의 부인은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홀로 지내시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후 조정에 등용되어 권세가 더욱 커지자, 소문을 개의치 않고 명문가에 기대려는 집안도 나타났지요.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모두 그분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시랑 부인은 영문을 몰라 계속 물었다.

“또 무슨 이유에서죠?”

자주색 옷의 부인은 입을 열었지만, 망설이는 듯했다.

성은 육, 이름은 명장, 자는 안청인, 그의 이야기는 말 한 두 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침 마차가 멈췄고, 자주색 옷의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시랑 부인은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더는 물을 수 없었다.

한편, 육완아는 아버지가 궁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한쪽에 숨어 있다가, 그가 집으로 들어간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마부는 마차를 작은 문으로 몰았고, 그녀는 마차에서 내려 작은 문을 통해 안채 정원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지나기도 전에, 앞쪽 작은 길가에 서 있는 것을 사람과 마주쳤다. 오랫동안 기다린 듯했다.

“이제야 돌아오시는 겁니까?”

남색 긴 옷을 입은 사내는 서른쯤 되어 보였다. 단정하고 온화한 사내는 육명장의 심복, 장안이었다.

육완아는 장안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막 규수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장안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공손하게 말했다.

“주인어른께서 아가씨를 서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육완아는 어쩔 수 없이 서재로 향했다.

서재가 있는 정원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추고, 월동문너머를 살폈다. 정원은 매우 고요했고, 꽃과 덩굴 아래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담벼락 모퉁이에는 시렁이 있었고, 그 위에 포도 덩굴이 기어 올라가 있었다. 철이 되면 보랏빛 붉은 포도가 열린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정원의 풍경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이 시렁은 한 번도 옮겨지지 않았다. 시렁 위의 덩굴은 그대로인 것을 보니, 평소 하인들이 가지치기를 한 것 같았다.

육완아의 시선을 맞은편 창문에 닿았다. 창호지는 촛불에 비쳐 옅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장안이 육완아를 정원 안으로 인도하고, 계단을 올라가 조용히 방문을 두드렸다.

“나리, 아가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방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하라.”

장안은 대답하고 옆으로 비켜서서 육완아에게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육완아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책상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 관복을 벗고, 검푸른 직철을 입고 있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느긋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한 손으로는 서신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종이가 얇았던 탓에 불빛 아래로 배열된 작은 글자들이 희미하게 비쳤다. 다른 손은 의자 팔걸이에 얹고, 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육완아의 양아버지인 육명장이다.

그녀는 불행아면서도 행운아였다. 불행히도 아주 어릴 때 부모를 여의어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만, 운 좋겠도 눈앞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녀를 친자식처럼 길렀고, 조금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육명장은 엄격한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엄한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애로운 아버지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웃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양아버지의 이목구비는 매우 볼만했다. 세속에서 말하는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운치가 있었다. 그의 눈꺼풀은 얇았고, 희미한 쌍꺼풀이 있었다. 눈꼬리는 먹으로 그린 듯 섬세했고, 콧날은 곧았다. 피부색은 문인들이 지닌 청량함을 띠고 있었다.

준수하다거나 영민하다는 단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근엄한 태도는 종종 그의 젊은 외모와 실제 나이를 잊게 하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겨우 서른 남짓한 젊은 나이에도, 늘 근엄한 얼굴로 사람들과 무형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의 미래 배우자는 반드시 아버지처럼 뛰어나야 하며,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보다 높은 군자여야 한다고.

어떤 여자도 아버지를 감히 모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준영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닮았다. 그녀는 사준영에게서 잠재력을 보았고, 사준영이 성공하기 전에 그의 곁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사준영을 점찍었고, 그와 혼인하고 싶었다.

육완아가 방에 들어섰지만 육명장은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서신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후,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사씨 가문 그 녀석을 만나고 온 것이냐?”

육완아는 숨길 수 없었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명장은 서신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

“더는 그 집안사람들과 왕래하지 마라.”

“왜요?”

그녀가 사준영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육명장도 알고 있었다. 이전에는 노부인께 자신의 혼사를 언급하며 사씨 가문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맡기기도 했다고 어렴풋이 들었다.

게다가 육명장은 무조건 출신 배경만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심성과 재능을 더 중요하게 봤다. 사준영은 비록 관직은 낮지만, 아직 젊고, 오직 풍류나 즐길 줄 아는 명문가 자제들보다 나았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이 이상했다.

육명장은 수양딸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녀를 타인처럼 대한 적도 없었다. 아비가 여식의 교육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엄밀히 말해, 그녀는 그의 어머니, 육 노부인 손에서 자랐다.

“노부인께서 너를 위해 다른 가문들을 알아보셨다. 모두 문벌이 괜찮더구나. 하지만 사준영은 안 된다.”

“아버지!”

육완아가 급히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육명장은 손을 저었다.

“나가 보아라.”

육완아는 불만스러운 마음에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육명장이 한 번 흘겨보자, 겁을 먹고 황급히 절을 올리고, 순순히 물러났다.

육완아가 나간 후, 장안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옆에서 차를 따랐다.

그는 책상 위의 서신을 흘끗 보았다.

“훗날 아가씨께서 나리의 깊은 뜻을 분명히 이해하실 겁니다.”

사씨 가문의 도령은 정혼자가 있음에도, 감히 육완아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그 속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육명장의 서신을 쳐다보다가, 무심하게 물었다.

“평곡 대씨 가문 아이더냐?”

“네. 사씨 가문 부인께서 대씨 가문 당주의 친누이입니다. 그 댁 아가씨는 사씨 가문 도련님과 고종사촌지간입니다.”

육명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름은?”

장안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이내 답했다.

“성은 대이고, 이름은 하진입니다. 대하진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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